맨발나그네/일반산행후기

봄을 꿈꾸는 여인 광교와의 데이트

맨발나그네 2010. 1. 31. 10:47

         봄을 꿈꾸는 여인 광교와의 데이트

● 산 행 지 : 광교산

● 산행일시 : 2009년 12월 25일 (金)               

● 누 구 랑 : 나홀로

● 산행코스 : 반딧불이화장실 - 형제봉 - 종루봉 - 토끼재 - 상광교버스종점(약2시간)

● 사진은 ? : 본인

 

  오늘이 크리스마스란다. 기독교, 천주교 신자들이야 이날이 특별할런지 모르지만, 나야 그저 달력에 빨간색으로 날짜가 쓰여져 있는, 많은 사람들이 쉬므로, 별로 할 일이 없는 그런 날이다. 그래서 오래만에 나의 종교인 광교를 믿기 위해 나의 조강지처 광교산의 품에 안겨보기 위해 집을 나선다. 우리나라야 70%가 산지여서 특별할 것도 없지만, 정말 100여만의 인구를 가진 대도시에 광교산 같은 명품 산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이 도시에 사는 사람으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어찌되었건 들머리인 반딧불이 화장실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크리스마스여서 그런지 평소의 바글바글 대던 광교산에 비해서는 약간은 한가로운 모습이다. 형제봉을 향해 열심히 오르다가, 문득 한겨울이라고 움추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맨발 면역주사를 맞아 보기로 한다. 그래서 형제봉을 1.5km 남겨두고 등산화와 양말을 벗어 배낭에 넣는다.

 

맨발과 찬 대지와의 만남!

소주를 먹을 때 찬 소주의 첫잔을 입안에 털어 넣었을 때의 기분과 같다고나 할까. 찬 소주가 목젖을 통과하여 식도를 거쳐 위장에 닿을때의 그 알싸한 느낌, 바로 그 느낌이 발바닥을 통과하여 종아리와 허벅지를 거쳐 배꼽을 지나 위로 쭉 뻗는 그런 기분이다.

200m나 갔을까? 아닐게다 기분이 그런것이지 아마 100m도 못 갔을런지 모른다. 발바닥인지 어디인지 분간이 안가는데, 하여튼 얼얼하다 못해 아려온다. 온 몸의 모든 세포들은 별안간 찾아온 냉기로 부터의 공격에 방어를 하기 위해 부산을 떠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중앙 통제센터인 뇌로부터 명령을 받는 대로 착착 움직이며, 못되 먹은 주인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느라 분주하다. 그래서 그런지 한 500여m 쯤 앞으로 나아가니 그럭 저럭 견딜만 하다. 그래서 길옆으로 조금 솟아있는 서릿발을 한 번 밟아 본다. 지지직........ 서릿발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다시 한번 발바닥을 통해 찬 기운이 스멀 스멀 배꼽부분을 향해 올라오기 시작한다. 다시 한번 중앙통제센터인 머리에서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방어기전을 피고......

 

 어째거나 맨발이 되어 형제봉을 향해 열심히 걷는다. 오늘도 지나가는 등산객들의 예사롭지 않은 눈길을 받는다. 대부분이 경이롭다는 눈빛이 아니다. 아마도 또하나의 정신줄 놓은 사람으로 치부하는 그런 눈길인 듯하다. 그렇게 도착한 형제봉이다. 원래는 이곳에서 신을 신을 요량이었다. 그러나 좀더 면역력을 키워보기로 마음을 먹고 종루봉을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약 3km에 이르는 맨발걷기를 마감한다.

 

                       

 

 그 종루봉에서 잠깐 나옹선사의 시와 만남을 갖는다. 그리고 오늘 하루나마 나옹선사의 시속의 나그네가 되어 보고자 마음 먹는다.

                                                   

  그리고 토끼재를 거쳐 상광교 버스 종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 놓는다. 내려오는 길 나목들이 고독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본다. 나목들의 허위와 가식이 없는 의연한 자세를 본다. 찬란했던 봄, 여름, 가을의 영화를 다 버리고 매운 바람을 견뎌내며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겨울산을 본다. 그래서 그를 보는 나의 마음까지도 숙연해지지만, 눈이라도 펑펑 쏟아부어 모두를 하햔 세상으로 만들어 수원팔경중의 하나라는 광교적설이라도 보였으면 금상첨화이련만.......

 

                                                     

 금강산을 겨울에는 개골산(皆骨山)이라 한단다. 살점은 모두 없어지고  뼈만 남아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렇다고 한다면 어디 금강산만 개골산이랴, 내 조강지처 광교산도 지금은 그 개골산이나 다름아닌 것을... 그러나 난 그런 광교산도 좋다. 꾸미지 않은 수수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말이다. 군더더기 없이 단아한 모습으로 팔난봉꾼인 이 맨발나그네를 품어주는 겨울 광교는 나의 조강지처임에 틀림없다.

 

                           

  흔히들 겨울산은 스산하고 삭막하다고 한다. 적막하고 숙연하다고 한다. 하긴 꽃피는 봄같이 파릇파릇한 환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태양내리쬐는 여름같이 화려한 푸르름의 정열이 있는 것도 아니요, 부슬비내리는 가을같이 단풍으로 치장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소박하게 담아내는 겨울산이야 말로 모든 것을 초월한 구도자같은 진실이 보인다. 그리고 머지않아 봄이 온다는 기다림의 설렘이 있다. 그래서 난 겨울산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겨울산은 곧 닥칠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두툼한 낙옆이불 밑으로 속삭이는 봄의 정령들의 외침을 나는 들을 수 있었다. 개울가 얼음밑으로 흐르는 시냇물 속으로 사알짝 봄이 오고 있음을 전해주고 있었다. 벌써 무슨 봄이냐고 하겠지만, 그들은 준비하고 있었다. 겨울산이 봄을 꿈꾸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 봄을 꿈꾸는 여인 광교와 2시간에 걸쳐 속닥이며 마친 데이트였다. 젊었을 적 데이트처럼 까무러치게 좋았다고 할 수는 없었만 봄을 꿈꾸는 화사한 그녀(광교산)의 품에 안긴 것은 더 없는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