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나그네/일반산행후기

봄을 꿈꾸는 여인 광교산과의 데이트(그 두번째 이야기)

맨발나그네 2010. 1. 31. 10:50

     봄을 꿈꾸는 여인 광교산과의 데이트(그 두번째 이야기)

● 산 행 지 : 광교산

● 산행일시 : 2009년 12월 26일 (土)               

● 누 구 랑 : 아산회(많이 안나와서 달랑 셋이었지만......)

● 산행코스 : 경기대 - 형제봉 - 종루봉 - 토끼재 - 상광교버스종점(약2시간)

● 사진은 ? : 본인

 

  매월 4번째 토요일은 아산회와의 광교산 산행일이다. 그걸 매번 놓치다 5달만인가 참석해 본다. 어제 낮 나홀로 광교산과의 데이트가 있었고, 그 저녁에는 퇴사한지 20여년이나 되는 금호전기 회사의 OB모임에 한잔술을 걸친데다가, 아침에 일어나보니 밖의 날씨가 장난이 아니기에 산행을 하기에는 꽤가 나는 그런 날이기는 하지만 오래간만에 동기, 후배들을 볼 요량으로 이불을 박차고 집을 나선다. 그러나 들머리인 경기대에 도착해 보니 와있는 사람이라곤 달랑 회장인 동기 김중권이 한명 뿐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곁눈질로 또 오는 사람은 없나하고 기다려 보지만 약속시간 임박하여 나타난 사람은 한해 후배인 김영준사장 뿐이다. 그래도 한 20여분을 기다린 후에 젊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포함한 연휴에 고리타분하게 광교나 찾을리 없다며 셋이서 형제봉을 향해 길을 떠난다.

 

 

 일기예보는 수원지방 수은주가 영하 6~7도라고 한다.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내일 남덕유산 산행을 앞두고 있어 옷을 여러벌 껴입고, 추위에 대한 감각을 가름해 본다. 온 몸을 파고 드는 추위는 감내하기 쉽지 않다. 아마 혼자라면 산행을 포기 할 수도 있겠다 싶다. 어제 맨발산행으로 무리를 해서인지 코에는 콧물도 맺힌다. 그러나 오늘도 내 좌우명인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를 실천할 수 밖에 없는 날이다.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나의 조강지처 광교의 품으로 파고 든다.

 

 겨울산 !

어제의 산행후기의 제목을 '봄을 꿈꾸는 여인 광교와의 데이트'라고 붙였더니 나에게 본인의 카페에 소중한 지면을 할해하고 있는 경인일보의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여행'의 객원기자 송수복님은

  경인-송수복

"봄이 오려면 아직 멀었어요. ㅎㅎㅎ 근데 왜 혼자가셨답니까....더 쓸쓸하게스리....12/26  02:54 "

라고 한다. 하긴 오늘에 비해 포근한 날씨 때문에 착각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비록 앙상한 나뭇가지만이 남아있고, 계곡의 물길마져 숨어버린 외로운 계절이지만, 분명 겨울잠을 자면서도 숨죽인채 봄날을 꿈꾸며 날짜를 세고 있는 나목들의 모습이 보인다. 봄여름가을의 영광스러웠던 지난 계절을 그리워 하며, 비록 지금은 고통의 계절을 간직하며 쉬는 시간이지만 새로운 꿈을 펼칠 날을 기대하며 준비하는 겨울산의 몸부림이 보인다.

 

  그 겨울산이 다시 한번 나의 인생의 스승이 되어 가르침을 늘어 놓는다. 인생길의 순탄하지 않음을 강의하고 있다. 봄의 화려한 영광과 여름의 정열, 그리고 붉은 단풍이 유혹하는 가을의 영화가 어찌 겨울잠을 자며 긴 시간을 인내하며 준비한 겨울이 없었다면 있었겠느냐며 나의 귀에 대고 속닥인다.  추위와 싸워야하고, 몰아치는 찬바람과 맞부닥쳐야 하는 두려움과 긴긴 겨울밤을 지세워야하는 외로움을 이겨내는 데는 봄을 꿈꾸지 않고서야 견뎌내기 어렵노라고 나에게 충고한다. 겨울산이야 일년 단위로 되풀이 되는 일이지만 인간들도 조석으로 맞이하는 일상사가 아니냐고 묻는다. 생각해보니, 우리네 인생사가 바로 등산길이다. 추위가 있지만, 잘 견디고 나면 언제 그러했느냐고 더워 죽겠노라고 한다. 분위기 있는 오솔길을 만나면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고 쾌재를 부르다가 오르막을 만나면 이래서 산에 오기 싫다고 투정을 부린다. 인생길도 이와 마찬가지로 늘 순탄하지만은 않은 것이 세상 이치이다. 오르고 내려가고, 어느때는 넘어야 하고, 다시 오르고자 몸부림치는 여정이 계속되는 것이 인생길이다. 그 인생길을 가는데 산행길이 나의 스승을 자처하며 나에게 충고를 한다. 오르막은 고행의 길이 아니라 산정(山頂)에서의 희열을 위한 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산정(山頂)에서 보면 지금까지 오른 오르막은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임을 알려준다. 산너머에 산이 있고, 그 산너머에 또 다른 산이 있어 결국 끝없는 길을 가야하는 것이 산행이며, 결국 인생길도 그러하다고 말한다.

 

  나는 그 인생길 고비 고비마다 닥아오는 오르막의 고통을 즐기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내 인생의 좌우명도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라고 정해 놓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본다. 지난해 부터 산행길에 맨발이 되어 산행길에서의 고통을 더 늘려 그 고통지수를 끌어 올린다. <걷는 행복>이란 책을 쓴 프랑스의 이브 파칼레가 이책에서 "몸이 고통을 받을 때, 부신피질에서 분비되는 엔도르핀이 고통부호를 만드는 신경세포의 뉴런 회로 작동을 차단하고 숨겨진 쾌락센터를 자극하는 흥분제를 분출하는 괘락의 화학이다"라고 말했다고 해서가 아니고, 고통지수가 오르면 오를 수록 쾌락의 크기가 커져 그 즐거움이 커지기 때문이다. 삶의 길이야 일부러 힘든 고비를 만들 바보는 없겠지만, 닥아오는 고비라면 피하지 않으리라. 고행과 맞서되 그 고행을 즐거움으로 알고 남은 여생을 즐기리라.

 

 

  추운 겨울산을 오르며, 인생길을 되돌아 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상광교버스 종점이다. 비록 추운 날씨이지만 내 인생의 스승이자 조강지처인 광교와의 만남은 더 없는 행복이다. 어제 그녀의 품에 안겼고, 오늘 또 그녀의 품에 안겨보건만,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봄을 꿈꾸는 여인 광교의 품에 안김은 나를 쾌락의 늪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하다. 내려와 친구들과 닭도리탕을 안주삼아 나눈 반야탕<반야탕(般若湯: 범어에서 반야는 Prajna로 지혜라는 뜻을 가진다, 그래서 반야탕, 즉 술은 '지혜의 물'인 셈이다)>[사실은 서울 장수 생막걸리이였지만...]의 힘을 빌려 취기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지혜의 힘이라고 우기며 또다시 이렇게 말도 되지 않는 글들을 늘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