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대 전경-아주대 홍보팀 제공
아주대학교와 아주대병원은 이제 경기도와 수원은 물론이고 전국의 명문사학으로 자리 잡았다. 더구나 학교 주변이 광교신도시로 개발됨에 따라 학교도 자연 광교신도시로 편입되는 경사도 겹쳤다.
그러나 1973년 학교가 문을 열고도 10년여 지나도록 수원이나 수원역에서 통학하던 학생들도 지금의 아주대입구 삼거리에서 걸어 다녔고, 풍덕천 방향에서 통학하던 학생들은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 독바위에서 내려 산길을 넘어 다녔다.
1970년대 지금의 아주대 입구 삼거리에는 교문이 섰는데 한쪽엔 아주대, 다른 한쪽엔 유신고 현판을 붙였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 교문부터 300여 미터 떨어진 학교까지 죄다 학교 땅으로 알고 꽤 부자 학교라고 생각하였다. 학교 주변상가가 황량한 벌판에서 대학가 모습을 제대로 갖춘 오늘에 보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다.
그뿐인가. 이 주변을 지나면서 ‘앞으로 땅값 꽤나 오를 텐데’ 하면서도 돈이 없어 실천할 수 없고, 땅 한 평도 사지 못한 자괴감마저 드는 곳이다.
1970년 2월 경기연합일보 신문에는 65년 문화 및 기술 협력에 관한 한불협정에 의해 초급대학이 설립될 것이며 한국 측에서는 토지와 건물 등을 책임지고, 프랑스 측에서는 실험 실습 기자재 제공 및 기술전문가와 불어강사를 파견한다고 하였다.
71년 3월에 개교한다는 목표아래 70년 9월 기공식을 가질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이는 서울과 영남, 수원의 유치전 끝에 얻어낸 쾌거라고 하였다.
이때 학교 이름은 서교(西交)대학이라고 붙였다. 아마도 서양과 교류하여 만드는 대학이어서 서교대학이라고 붙인 것 같다.
유신학원이 아주대의 모태
75년 수학여행-유신고 홈페이지
신문보도와 계획과는 달리 서교대는 아주공업초급대학으로 이름을 바꾸어 73년 3월에 개교하는데 이웃한 유신고등학교와 함께였다.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아주공갈대’로 불리기도 하였고...
그해 12월에는 아주공과대학으로 승격되는 영광도 안았다.
유신학원이라는 이름으로 두 학교를 설립한 사람은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군 생활을 하다가 5.16혁명으로 관계에 발을 들여놓은 고 박창원씨였다.
그는 경기도지사도 역임하였고, 서울에서 수원을 오가는 고속버스회사인 유신고속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시내버스는 웬만한 언덕에서도 허덕이던 시대에 깨끗한 외제 버스에다 복장을 제대로 갖춘 승무원들이 써비스하니 하릴없는 사람들은 괜히 버스를 타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이 버스는 매교동 삼거리에서 서울역 인근의 동자동까지 다녔는데 나중에는 코오롱고속이 이 노선을 운영하였다.
유신학원은 지금도 유신고와 창현고(86년 개교), 배학유치원(79년 개원) 등을 운영한다.
고 박창원씨의 부인인 김갑현씨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고 박창원씨와 김갑현이사장은 1976년 산상교회도 설립하였는데 기독교 정신을 앞세워 교육입국을 실천하려 한 의지이다.
산상교회가 처음 세워지던 때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이처럼 이국적인 모습의 교회는 거의 없었다. 더구나 아주대와 유신고 사이 언덕에 자리를 잡아서 멀리서도 교회의 모습이 잘 보였고 두 학교의 학생들이 교회에 오기 편하도록 한 것이다.
서구식 주택 모습의 관사-아주대 홈페이지
1975년 11월 경기신문에는 ‘단일공대로서는 국내 최대 규모’, ‘전학생 15% 장학금 지급’, ‘재학 중 · 졸업 후 프랑스 유학’ 등의 기사로 아주대를 극찬한다. 게다가 기숙사는 440명을 수용하는 규모라고 했다.
아주대와 유신고에서는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프랑스어 웅변대회를 열었는가 하면 프랑스 유학도 많이 보냈다. 또한 프랑스에서 온 교수나 강사들을 위해 뒷산에 관사도 지었는데 복층 구조의 서구식 주택으로 멋지게 지었다.
아주대는 1977년 제 1회 졸업생을 배출하였고, 뒤이어 대우그룹의 김우중씨가 대우학원을 설립하면서 유신학원으로부터 아주대를 인수한다.
1981년에는 종합대학으로 승격되고 88년에는 의과대학을 세우는가 하면 94년에는 아주대병원도 설립한다. 또 간호 인력을 자체 양성하기 위해 2006년에는 간호대학도 설립한다. 수원 지역의 의료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 올리는 역할을 한 것이다.
세계 100대 대학 진입이 목표
아주대의 상징 용마상-아주대 홍보팀 제공
아주대는 경영대학원을 비롯하여 국제대학원, 공공정책대학원, 교육대학원 등도 세웠고 평생교육원을 만들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부분도 많아졌다. 단기적으로는 국내 10위 안에 드는 대학으로, 더 나아가 아시아 50대 대학으로, 또 세계 100대 대학으로의 도약을 꿈꾸는 중이다.
아주대를 알리는데 견인차 역할을 한 것으로는 축구부도 빼놓을 수 없다. 국가대표 축구선수의 산실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선수들을 배출했을 뿐만 아니라 기량 좋은 선수들도 많이 길러냈다.
아주대와 그 언저리는 이제 30년 전과는 무척 많이 달라졌다. 영동고속도로의 동수원 나들목이 가깝고 월드컵경기장이 이웃으로 앉았는가 하면 광교신도시의 개발까지. 한적한 수원의 변두리가 이제는 수원의 중심 지역으로 떠오른 것이다.
또한 수원의 대표적인 대학가로 알려져서 아주대생들을 포함하여 인근 학교의 학생들까지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늘 젊은이들로 북적대는 젊음의 거리가 된 것이다.
학교의 위치가 경기의 중심으로 부상한 것처럼 앞으로는 배학유치원과 유신고, 창현고 출신 학생들도 아주대 학생들과 더불어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르길 빌어본다.
염상균/화성연구회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