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나그네/일반산행후기

신선놀음에 취하고 미인에 홀린 하루

맨발나그네 2012. 3. 29. 06:20

 

신선놀음에 취하고 미인에 홀린 하루

 

● 산 행 지 : 충북 제천  신선봉(839m)

● 산행일시 : 2012년 3월 25일 (일)

● 누 구 랑 : 산7000 산악회

● 산행코스 : 학현리 학생야영장 → 학봉(774m) → 미인봉(596m) 학현리 청풍명월팬션

 ● 사진은 ? : 회원여러분

 

충북 제천은 산과 물의 고장이다.

조선조 초기 충청감사를 지낸 정인지는 관할 지 제천을 순방하면서 남긴 글에서 '가는 곳마다 물이 넘치고 청산의 위엄이 준엄한 곳'이라고 극찬했다.

이처럼 산과 물이 지천에 깔려있고 수려한 경관을 지녔기에 제천을 일컬어 '청풍명월의 고장'이라 한다.

중국 송나라 시인 소동파는 적벽부에서 '이 세상의 만물 중에 주인이 없는 물건은 없어 털끝만큼도 내 것으로 취할 수 없지만 오직 강상지청풍(江上之淸風)과 산간지명월(山間之明月)은 무궁 무진해 누가 취해도 금할 자가 없고 아무리 취해도 없어지지 않는다'라고 노래했다.

소동파 뿐 아니라 시선인 이백이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은 한 푼의 돈이라도 써서 살 필요가 없다(淸風明月 佛用錢買)라고 했는데 제천이 바로 그 청풍명월의 대명사로 알려진지 오래다.

오늘 금수산 자락인 신성봉~미인봉을 걸으며 명월을 취할 수는 없겠지만, 청풍을 맘껏 취(取)하며 신선봉에서 신선놀음에 취(醉)하고 미인봉에서 미인에 홀려 볼 요량이다.

 

 

(들머리에서 만난 이정표)

 

 

(청풍호)

충북 제천의 충주호 주변의 산들은 모두가 예사롭지 않다.

그 모두가 충주호에 꼬리를 담고 있으면서도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어 호수 풍광이 감탄스럽고, 암릉을 타는 재미까지 쏠쏠하니 매력적이지 아니 할 수 없다.

충주호는 86년에 만들어진 다목적호수로 충주시, 제천시, 단양군에 걸쳐 있으며, 가장 크고 깨끗한 호수라 한다.

하지만 제천시민들은 이 호수를 굳이 청풍호라 부르며 애착을 보이니, 오늘은 제천땅에서 신선놀음에 빠질 예정이니 그냥 청풍호로 받아드리련다.

 

오늘의 들머리는 원래 상학현에서 시작하여 신선봉을 거쳐 학봉을 지나 미인봉, 조가리봉으로 이어지는 암릉을 걸은 후 하학현으로 내려 올 예정이었다.

뭐 그 반대의 코스를 선택하여도 되겠지만, 청풍호반을 뒤로 두고 가끔씩 뒤돌아보아야 하는 것보다는 청풍호의 풍광을 눈에 가득 담으며, 절경인 암릉을 걸을 수 있다고 하니 상학현 쪽을 들머리로 하는 것이 훨씬 나을 듯 하다.

하지만 일행이 제천에 도착해 보니 눈이 발목을 덮을 만큼 내려 있어 학현리 학생야영장에서 출발하여 학봉~미인봉을 걸은 후 학현리 청풍명월팬션 쪽으로 내려 올 수 밖에 없었다.

철 잃은 눈 속에 아이젠을 준비하지 못한 분들도 많아 많은 사람들이 산행을 포기해야만 했다.

 

 

(아이젠을 한쪽씩 나눠 신은 한스맥과)

 

하긴 나도 지난 주 경주 남산을 다녀오는 바람에 배낭에 아이젠이 안 들어 있어 한스맥으로 부터 한쪽을 빌려야만 했으니 제법 산에 관한한 방귀 좀 뀐다는 사람으로 예의가 아니었다.

봄이 오는 소릴 들으며 맨발로 걸어 보고자 집을 나선 내가 그저 우스울 뿐이다.

 

 

(밧줄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일행들)

어째거나 학봉을 오르는 길은 쉽지 않았다.

여기 저기 빙벽을 이룬 바위에는 로프가 매듭지어 놓여 있는데 모두들 힘들어 한다.

그렇게 힘들여 학봉에 이르니 과연 신선이 놀만한 풍광이 펼쳐진다.

눈덮인 산군(山群)들 사이에 펼쳐진 청풍호반의 아름다움에 절로 감탄사가 쏟아져 나온다.

학봉 전망데크에서의 전망은 떠나가기 싫을 만큼 오랫동안 나그네의 발을 붙잡는다.

 

 

(오늘의 하일라이트 구간, 잡아야 할 곳도 동아줄이요, 발을 지지할 곳도 앙카로 고정한 동아밧줄이었으니...)

 

 

미인봉을 향하는 암능길도 경이로움의 연속이다.

길은 미끄럽고, 급경사 내리막길에는 어김없이 매듭지어진 밧줄이 매어져 있어 스릴까지 덤으로 얹어 준다.

 좌측과 앞면으로는 어디다 눈길을 주던 청풍호와 눈 덮인 산들이 조화를 이루어 진경산수화가 되고, 능선길 내내 몇십년, 아니 몇백년간 일부러 키운듯한 노송 분재(?)를 수도 없이 만나게 되니 이 또한 절경이다.

 

 

 

 

 

호수와 기암괴석, 그리고 그 기암에 뿌리내린 노송이 어울린 풍경.....

오랜 풍상을 못이긴 고사목...

그리고 주변의 산들과의 조화....

거기에다 때 잃은 백설....

그야말로 신선들의 나라가 따로 없다.

그곳에서 하루짜리 신선이 되어 길을 걷는다.

 

하지만 암릉길 곳곳에 숨어있는 아찔한 절벽들은 만만하지가 않다.

어느 곳은 매듭지어진 밧줄이 늘어져 있고, 또 어느 곳은 앙카를 박아 늘여논 밧줄과 바위턱을 잡고 아찔한 절벽길을 건너야만 하는 코스들이 즐비하다.

 

 

(747봉 전망데크에서 산행대장 진도개와 함께)

 

그렇게 절경에 취하고, 아찔한 바위길에 가슴 조이며 걷다보니 어느새 774봉 전망데크이다.

왼쪽으로는 하마를 닮았기도 하고 코뿔소를 닮은 바위가 있고 청풍호가 주변의 산들과 어울려 그 위용을 맘껏 뽑내고 있다.

약간의 바람이 있긴 하지만 기왕 신선 흉내를 하기로 하였으니 그곳에 점심상을 펼친다.

그리고 다시 길을 떠난다.

떠나기 아쉬운 멋진 신선들의 쉼터를 두고 가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지만, 어쩌랴...

난 그저 하루살이 신선인 것을.... 

 

다시 미인봉을 향하는 한동안은 숲으로만 이어지는 길을 걷다가는 미인봉에 다다르면 다시 조망이 터진다.

이런 저런 사유로 저승봉으로 불리우다가 최근에 제천시가 미인봉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곳 절벽위에서 잠시 청풍호와 학봉~신선봉으로 이어지는 금수산 자락을 마지막으로 눈과 마음에 담고는 하산길을 잡는다.

원래 계획은 조가리봉까지 걷는 것이었는데 여러가지 사정상 생략하기로 하고 학현리 팬션단지로 발걸음을 옮긴다.

 

 

 

 

비록 명월도 없고, 청풍도 아니었지만, 하루살이 신선이 되어 신선놀음에 취하고, 아름다운 미인(학봉~미인봉)에 홀린 하루였다.

손과 발은 다른 날의 산행에 비해 고달펐지만, 눈과 마음만은 상쾌, 유쾌하고 청량하다.

날머리에서 산악회가 준비한 김치찌게에 반야탕을 한 잔 들이키니 이 또한 즐거움이고 행복이니라......

 

 

(그외 사진들)

 

 

 

 

 

 

 

 

 

 

 

 

 

 

 

 

 

 

 

 

 

 

 

 

 

 

 

 

 

 

 

 

 

     ( 답글 ) 

  • 장고

    청풍명월의 고장 신선봉에서의 하루를 넘 재미있게 그려내셨네요.경치에 홀리고 그리고 미인에 홀리셨다고 하셨는데..보니 하나도 아니요 둘이서 대작을 하시니 저같아도 홀릴만하네요. 미인봉 신선봉 아름다운경치와 글 감사합니다. 2013.02.01 12:52

  • 쥬얼리

    전망이 넘 좋으네요. 구수한 얘기도 좋고요. 2013.02.01 21:36

  • 아스라히

    미인을 얻기위한 고행이 엄청나군요. 하기야 그만한 미인을 손에 넣기위해서는 무었인들 못하랴..
    나그네님이 곁에 있는 미인에 취해서 얼굴이 붉어진것 같습니다..아니면 위옷이 붉어서 물들었나...
    2013.02.01 21:40

  • 핑크쭈니

    청풍호를 바라다보며 산행을 하심 아주 전망이 좋았겠어요. 청풍명월이란 단어도 새삼 상기하게 되네요. 임자없는 것은 잡는자가 주인이라..미인도 마찬가지...미인을 얻기위한 님의 고행에 박수를 보냅니다. 2013.02.02 09:32

  • 밀키스

    너무 멋진 산행이군요. 청풍에 취하고 명월에 안기고.. 2013.02.03 10:14

  • 배따라기

    아름다운 산행입니다. 전망도 끝내주고...미인과 함께한 산행 ... 2013.02.04 06:24

  • 사랑의인사

    원래 청풍명월의 고장에는 미인이 많아요. ㅋㅋㅋ 자주 찾아오세요. 2013.02.05 10:32

  • 소현이

    충청도에 태어나 사는 사람들은 모두 미인입니다.ㅎㅎㅎ. 자연이 그렇게 만든다니까요. ㅎㅎㅎ 2013.02.07 22:24

  • 산악매니아

    미인도 미인나름..청풍명월의 순수 자연 미인이죠. ㅎㅎㅎ. 그래 참 좋았나요? 2013.02.08 09:41

  • 정든이여

    신선봉 어려운 겨울산행을 잘도 다녀가심...하기야 님도보고 뽕도 따려면 어쩔도리가 없지만..미인은 두툼한 옷으로 무장을 해도 겉으로 드러나는법..겨울미인이 진정한 미인이지요.ㅋㅋㅋ 2013.02.09 08:41

  • 보경이

    부럽네요 좋은사람과 아름다운산 모두가 다요 사진 잘보고갑니다 2013.02.25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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