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나그네/일반산행후기

유청량산록(遊淸凉山錄)

맨발나그네 2012. 11. 11. 18:30

 

유청량산록(遊淸凉山錄)

 

 

● 산 행 지 : 청량산( 경북 봉화, 안동 870m )

● 산행일시 : 2012년 11월 10일 (土)

● 누 구 랑 : 수원문화원 산악회

● 산행코스 : 선학정-청량사-뒷실고개-하늘다리-선학봉-하늘다리-뒷실고개-자소봉-김생굴-입석

● 사진촬영 : 따스한마음, 전용훈님, 본인

 

 

 

 

청량산은 경북 봉화와 안동 땅에 걸쳐 있다.

청량산은 그 높이가 비록 870m 밖에 안되지만 명산 대열에 그 이름을 올려 놓고 있다.

일찍이 청량산의 진가를 알아 본 이는 원효대사이다.

그는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이곳 청량산 기슭에 청량사를 창건했다.

이후 김생과 최치원이 그 이름을 알리는데 한 몫 하였고, 후대에 이르러 주세붕과 퇴계 이황에 의해 그 진가가 만천하에 알려진 산이다.

이후 많은 선인들이 청량산을 다녀온 후 글을 남겼으니 유산기가 100여편이요, 시는 1,000여편을 헤아린다고 한다.

청량산박물관은 이 글들을 모아 <옛 선비들의 청량산 유람록> 1, 2, 3편을 펴냈는데, 이 책에 의하면 조선시대 유산기는 대략 560편이고, 그 중 금강산을 유람한 기록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지리산, 청량산, 소백산, 가야산, 북한산 순서라고 하니 청량산의 진가가 다시 한 번 확인되는 대목이다.

 

 


신재 주세붕은 풍기군수로 재직하던 1544년 일주일동안 청량산을 유람한 뒤 최초의 청량산 유산기인 ‘유청량산록’을 남겼다.

“우리나라의 명산을 묻는다면 반드시 저 다섯 산을 이를 것이니, 북은 묘향산, 서는 구월산, 동은 금강산, 가운데는 삼각산, 남은 지리산이다. 그러나 작으면서도 선경의 산을 묻는다면 반드시 청량산을 꼽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아! 이 산이 중국에 있었다면 반드시 이백과 두보가 시를 지어 읊었을 것이며, 한유와 유종원이 글을 지어 구했을 것이며, 주자와 장식이 올라 감상했다면 마땅히 천하에 크게 알려졌을 것이다. 그런데 쓸쓸하게 천년 동안 김생과 고운 두 사람에게 기대어 한 나라 안에서만 알려졌으니 탄식할 만 하다”라고 세상이 청량산을 알아주지 않는데 대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퇴계 이황의 청량산 사랑은 주세봉보다 한 술 더 뜬다.

그는 어려서부터 청량산을 오가며 수양을 쌓았으며, 관직에 나아간 후에도 항상 청량산을 그리워하다가 그예나 자신의 호조차 ‘청량산인’으로 하였다.

심지어 “청량산을 가보지 않고는 선비노릇을 할 수 없다”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청량산을 주제로 많은 시문을 남겼으니 이보다 더한 청량산 사랑이 있을까?

 

 

(안심당 너머 뒤편 왼쪽이 선학봉이요, 오른쪽이 자란봉이다)


청량산!

870m이니 그리 높은 산은 아니다.

그리 큰 산도 아니다.

하지만 천길단애를 이룬 육육봉(六六峰)이라 이르는 12개의 기암절벽을 가진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주왕산, 월출산과 함께 한국의 3대 기악(奇嶽)에 그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그 청량산을 나그네되어 걷기위해 떠난다.

 

 

(나그네길을 동행한 산우님들, 우로부터 따스한마음, 먼걸음, 초롱이님)

 

선학정을 들머리로 일주문을 지나 청량사를 향해 길을 잡는다.

처음부터 된비얄길이다.

어제밤 지인들과 나눈 술자리가 길어진게 원인이 되어 계속 나를 뒤로 잡아끈다.

계절이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 듯 나 또한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전날 술을 많이 먹으면 다음날 이렇듯 힘이드는데도 술자리에 앉기만 하면 젊음을 흉내내고 있으니 병도 큰 병이다.

진땀을 흘려가며 겨우 겨우 청량사에 도착이다.

 

(청량산의 조망이 가장 좋은 어풍대에서 본 청량사)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된 절로 주위에 30여개의 암자와 부속건물이 있었다고 하니 대가람이었을 것이다.

 

청량산의 아담한 산세에 비해 독특한 육육봉이라 불리우는 12개의 아름다운 바위봉우리들이 연꽃처럼 둘러쳐져 있는 가운데 자리잡은 것이 청량사이다.

12개의 연꽃 꽃잎사이로 청량사는 꽃술 형상이니 그야말로 원효대사의 안목이 부럽다.

 

 

(공민왕 친필 현판을 가진 유리보전)

 

 

다른 절의 대웅전에 해당되는 법당은 ‘유리보전(琉璃寶殿)’으로 현판은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 때 피난와서 쓴 친필이라 전해진다.

유리보전안에는 약사여래불과 지장보살, 문수보살이 모셔져 있는데, 약사여래불은 닥종이를 녹여만든 ‘지불(紙佛)이고, 그 옆의 문수보살은 모시로 만들어진 불상이라 한다.



(삼각우송과 오층석탑, 그너머에 금탑봉이 위용을 뽐내고 있다 )

 

유리보전과 오층석탑 사이에 우뚝 서 있는 소나무가 이름하여 삼각우송(三角牛松)이다.

원효와 함께 이 절을 오르내리며 각종 자재를 실어 나르던 뿔 셋 달린 소가 창건 하루 전에 죽자 그 소를 묻은 자리에 소나무가 계속 난다고 한다.

그 소나무는 신기하게도 나무 중간에 세개의 가지를 뻗은 다음에야 잔가지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청량사에서 뒷실고개로 오르는 된비얄길)

 

다시 길을 떠난다.

뒷실고개로 오르는 계단 길은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된비얄이어서 다시한번 술에 쪄든 이 나그네의 숨소리를 가쁘게 만든다.

청량산 산신령께서 한마디 거드는 환청이 내 귓가를 때린다.

“이놈아! 내(신선) 흉내를 내고 다닌다며....

오랫동안 신선흉내질 내려면 나이를 생각하고 술을 퍼 먹어라.

술은 적당히 마셔야 약이 되느니라..........”라고.

“암요, 적당히 먹어야지요, 약술로.......헉헉” ....나의 대답이다.

 

 

(청량산의 하늘다리)


그렇게 힘들게 오른 뒷실고개에서 하늘다리를 다녀와야 되는냐 마느냐로 다시 고민에 빠진다.

고민 끝에 하늘다리로 방향을 잡는다.

청량산의 하늘다리는 해발 800m 지점의 자란봉과 선학봉을 연결한 길이 90m, 높이 70m, 폭 1.2m로 국내 최고 높은 곳에 만들어진 최고 긴 현수교라 한다.

아직 덜 깬 술이 확 깨는 기분이다.

혹시 이성친구와 서먹서먹하다면 청량산의 하늘다리를 같이 건너시라.

뽀뽀까지는 몰라도 틀림없이 손을 잡지 않고는 건너지 못할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하늘다리를 왕복하고는 청량산의 정상인 장인봉을 생략한 채 다시 뒷실고개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초롱이님표 즉석 골뱅이무침과 함께한 점심상)


연적봉 못미처 바람없고 양지바른 곳을 터잡아 점심상을 펼친다.

오늘의 특별요리는 초롱이님표 즉석 골뱅이 무침이다.

정말 오늘은 무알콜산행을 해야겠노라고 뒷실고개를 오르며 산신령과 약속하였건만, 그 약속이 작심삼일이 아니라 작심 한시간만에 무너진다.

어찌 경개좋고 안주좋고 분위기 좋으니 권하는 반야탕을 거절할 수 있으리오.

내 맨날 산의 품에 안길 적마다 신선타령이었지만 오늘 청량산의 품에 안겨 반야탕까지 한 잔 걸치니 또다시 신선타령이 절로 난다.

 

 

(탑필봉)


그렇게 반야탕을 걸치고 산우님들과 길을 나선다.

이어지는 연적봉, 탑필봉, 자소봉이 능선을 이루며 연이어져 있다.

자소봉에는 철난간으로 봉우리에 올라 주변 경관을 두루 살필 수 있는 계단도 있지만 산악회일행들과 떠러져 딴 코스를 밟고 있는 중이니 시간상 생략한다.

아름다운 풍광에 저절로 느려지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걷다보니 직각암벽에 도착하게 된다.

암벽 밑에는 움푹하게 들어간 굴이 있는데, 이곳을 김생굴이라 부른다.

비가 오면 굴 앞으로 빗물이 떨어져 마치 폭포를 연상케 하는데 폭포이름은 김생폭포라고 한단다.

김생이 서도를 닦던 이 굴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김생과 청량봉녀의 전설이 담긴 김생굴)

 

신라 때 김생이라는 사람이 서도를 닦기 위해 청량산 금탑봉 근처에 있는 굴로 들어갔다.

김생은 9년여의 시간 동안 서도를 열심히 닦았다.

9년이 지나 이제 김생은 이만하면 자신이 명필이 되었을 거라는 자신감을 갖고 산을 내려 올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갑자기 한 젊은 여인이 김생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는 "도령이 이 산에서 서도를 닦은 것처럼 소녀도 길쌈을 수련해 왔사옵니다.

그러니 그 동안 우리가 닦아 온 솜씨를 겨루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처음 보는 여인이 당돌하게 이런 제안을 하자 김생은 자신의 실력을 자부하고 있던 터라 "좋소. 그럼 솜씨를 겨루어 봅시다."하고 선뜻 수락을 하였다.

그리하여 김생과 여인은 굴속의 불을 끄고 각자의 실력을 발휘하였다.

이윽고 불을 켜고 살펴보니 여인이 짠 천은 올 하나 틀리지 않고 고르게 짜여졌는데 김생의 글씨는 여인의 천처럼 고르지 못했다.

여인은 웃으면서 "도령이 명필이 되겠다고 하더니 실력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군요." 하며 김생을 조롱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그제서야 김생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1년을 더 공부하여 십 년을 채운 후 세상에 나와서 명필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후대의 한석봉과 그 어머니 이야기와 판박이로 너무 닮기는 했지만 이곳 청량사 김생굴에 얽힌 이야기이다.

 

다시 걷는다.

이번에 만나게 되는 곳이 청량사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어풍대(御風臺)이다.

고대 중국의 인물 ‘열어구(중국 고대 도가(道家의 사상가로서, 전설의 인물<두산백과>)’가 바람을 타고 와서 보름 동안 놀다가 돌아갔다고 전해져서 ‘어풍대’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다.

청량산 최고의 전망대라 한다.

 


(총명수)


곧이어 총명수가 나오는데 안내 간판이 한 옆에 서 있는 총명수에는 고운 최치원이 청량산에 들어와 이 물을 마시고 총명함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불운한 천재, 골품제에 희생된 당나라 유학파 천재인 최치원이 이 물을 먹고 총명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니 귀가 솔깃한다.

긴 세모꼴의 바위 틈 사이에 물이 고여 있다.

청량산은 돌산인데 이렇게 높은 곳에서 물이 나온다는 것이 신기롭기도 하다.

하지만 물의 양이 많지않고 수질검사합격통지서가 붙어 있지 않으니 아무리 총명해진다해도 마실 수는 없는 일이고 그저 바가지에 입술만 대 본다.

 

 

 

그리고 다시 길을 떠난다.

이제 길은 완만한 경사로로 아주 걷기 편한 길이다.

깊어지는 가을날 비록 오색영롱한 단풍은 아닐지라도 그럭저럭 떠나기 아쉬워하는 단풍이 가끔 얼굴을 내밀고, 낙엽 두툼히 덮힌 오솔길을 걷는다.

 


(금탑봉에 매어달린 응진전)

 

 

(가까이서 본 응진전)


그렇게 터벅터벅 산우님들과 이야기하고 걷다보니 만나는 것이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고려말 노국공주가 홍건적의 난을 피해 피난 온 후 불공을 드렸다는 응진전이다.

응진전은 금탑봉 중간 절벽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바위가 층으로 금탑 모양을 내고 그 층마다에는 소나무들이 테를 두른 듯 생을 이어가고 있다.

암자 안에는 16나한과 고려 공민왕 부인인 노국공주대장공주상이 있다고 한다.

금탑봉과 어울려 한 폭의 진경 산수화로 우리에게 닥아온다.

 



응진전을 지나 빠른 걸음으로 날머리로 향한다.

출발전 일행들과 약속한 시간을 지키기 위해 서둘러 발걸음을 빨리해야만 한다.

하지만 주위 풍광에 어디 그게 쉬운 일이던가.

단풍이 절정은 아니지만, 낙엽이 황금 카펫이 되어 이 나그네의 마음을 헝클어 놓는다.

낙엽 떨어지는 소리가 사르륵 사르륵, 낙엽 밟는 소리가 바스락 바스락 거리며 가는 가을을 아쉬워한다.

하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천여년전 과거로 여행을 떠나 김생굴, 어풍대, 총명수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걷는 길은 행복하고 즐겁다.




이 산을 무척 사랑했던 이황은 ‘유산(遊山)은 독서와 같다’라고 했다.

정말 재미있고 유익한 책 한권을 읽은 기분이다.

머리와 마음을 깨우쳐 맑고(淸), 시원(凉)하게 해 준 하루였다.

오늘도 바쁜 발걸음에 이것 찍어라, 저것 찍어라하는 소리에 군말없이 전속 카메라맨이 되어 산행기를 빛내준 따스한마음이 고맙기 한량없다.

청량산 입구 퇴계시비를 거쳐 청량산관리사무소 근처의 식당에서 뒤풀이로 메기매운탕에 반야탕(般若湯: 범어에서 반야는 Prajna로 지혜라는 뜻을 가진다, 그래서 반야탕, 즉 술은 '지혜의 물'인 셈이다)까지 한잔 걸친다.

 점심 때 초롱이님표 골뱅이 무침에 한 잔 한 반야탕의 취기가 더해져 감히 나 따위의 글에 ‘유청량산록(遊淸凉山錄)’이란 제목을 붙여 옛 선비들의 흉내를 내본다.

 

( 댓 글 )

 

  • 마지막잎새

    산좋고 물좋은 청량산에 가볼거나... 나도 김생 총명수 먹고 고시공부나 해볼거나...
    반야탕이 아니라도 청량산 산행기에 취해 정신이 몽롱합니다. 넘 잘보고 갑니다.
    2012.11.13 21:24

  • 언년이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가장 반가운 소리는 애인과 같이 하늘다리를 건너는 것이지요. 나그네님의 말씀이 정답...청량산 넘 아름답군요. 저설도 구수하구요. 반야탕이 아니라도 이야기에 취한듯 멍합니다. 2012.11.13 22:23

  • 산악매니아

    해박하신 역사지식과 구미당기는 전설을 들으며 산경치를 보노라면 더욱 청량산이 가고싶어집니다. 2012.11.14 08:32

  • 정든이여

    청량산의 산행기를 읽으니 청량산이 너무 가고 싶네요. 2012.11.15 05:55

  • 작대기

    청량산 전설에 다시보이는군요. 청량산 다시 가봐야겠어요. 산행기를 읽으니 새롭게 보이네요. 2012.11.15 06:09

  • 할로윈

    우리들 선인들은 산세를 너무 잘보시는것 같아요. 육육봉에 청량사가 꽃술이라...너무 멋지지않아요.. 2012.11.15 21:16

  • 럭키가이

    머리와 마음을 깨우쳐 맑고(淸), 시원(凉)하게 해준 산(山)행이었노라.

    2012.11.15 21:41

  • 핑크쭈니

    나그네님 청량산 산행기 넘 재미있게 읽고 가네요. 항상 건강하세요. 2012.11.22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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