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나그네/맨발걷기 경험담

맨발의 일일선(一日仙)되어 거닌 두타연과 비수구미

맨발나그네 2017. 10. 3. 09:19

맨발의 일일선(一日仙)되어 거닌 두타연과 비수구미

어 디 를 : 양구 민통선 안 두타연, 화천 비수구미

언 제 : 2017930(추석연휴 첫날)

누 구 랑 : 경기무지개산악회

 

   올 해의 추석 휴무는 무려 열흘간이란다. 대저 학창시절의 방학을 빼고 성인이 된 이후 이렇게 긴 휴무기간을 가져 본 적이 있었나 싶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긴 휴가를 어찌 보내야할까 걱정들이 태산이다. 나라고 예외이던가? 그럴리 없어 머리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도 뾰족한 방법이 없다. 하긴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언제 제대로 휴가를 보내 봤어야 휴가답게 보내려만 ....

그래서 이 번 기회에 제주도 한라산을 한 번 가봐야겠다고 이리 저리 수소문 해보지만 너무 뒤늦게 생각한지라 예약이 될 리가 없다. 해서 내 연인들인 이 여인() 저 여인()을 만나 운우지정이나 펼쳐야 할 것 같다. 연휴 첫날 선택한 연인은 양구 민통선 안 두타연과 화천의 오지마을 비수구미로 트래킹에 따라나서 본다.



▲  지도상 두타연 위치


    

▲  두타연 GPS 기록


▲  양구군청 홈페이지의 두타연 출입신청 방법


▲  두타연 관광 안내도

 

   1천년 전 두타사라는 절에서 유래된 두타연(頭陀淵)은 양구 8경 중 제 1경으로 옛 금강산 가는 길목이다. 반세기 넘는 동안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던 곳인데 2004년부터 일부가 개방되었다. 그 덕에 싱싱한 자연이 오롯이 남아있는 보물의 숲길을 우리는 걸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늘의 들머리는 이목정안내소이다. 두타연 주차장까지 3.7km는 차랑 출입이 가능하므로 우리는 타고 간 버스로 두타연 주차장으로 향한다. 버스를 타고 가는 이 길이 옛 금강산가는 길목이라 하니 삼국시대의 많은 고승들이 절집을 짓기위한 명당터를 찾아 이 길을 드나들었을 것이고, 금강산 구룡동의 너럭바위에 고운 최치원(857~?) 필적의 여러 개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고 하니 신라시대 비운의 천재 또한 이 길로 금강산을 찾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어디 그뿐이랴. 조선시대 최고의 트랙커이자 풍류객으로 꼽는 김시습과 김삿갓으로 불리우는 김병연도 이 길로 금강산으로 향했을 것이다. 더 더듬어 보건대 지도를 그릴 자료 수집을 위해 김정호도 이 길을 걸어 금강산으로 향했을 것이고,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도 이 길을 걸어 금강산으로 향했을 것이다. 조선시대 금강산을 주제로 <풍악행(楓嶽行)>을 남긴 이이, <관동별곡(關東別曲)>을 남긴 정철도 이 길을 걸었을 것이고, 1788년 금강산을 가보고 싶었던 정조의 어명을 받고 금강산과 관동팔경으로 사생여행을 하였던 김홍도와 <금강산도>를 남긴 겸재 정선도 이 길을 걸었을지 모른다. 위에 열거한 모든 분들이 내가 동경해 마지않는 풍류객이고 오늘날 말로 표현하자면 트랙커들이다. 일일선(一日仙)을 자처하며 풍류객 흉내를 내고 있는 이 맨발나그네도 그 분들의 족적을 따라 버스로 10여분 비포장도로를 달리니 두타연 주차장이다.








    


    




  주차장에서 문화관광해설사로부터 설명을 듣고 본격적인 트래킹에 나선다. 민간인통제선 안쪽의 원시림이 만든 숲길과 맑고 깨끗한 시냇물 사이를 걷는 다는 것은 도시의 공해와 세속에 찌든 우리의 가슴을 씻어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길 양편으로는 철조망이 이어지고 철조망에는 여기저기 지뢰 표시판이 걸려있다. 철조망 안 군데군데에는 녹슨 철모와 포탄 탄피, 지뢰 등을 모아둬 이곳이 전쟁의 상흔를 안고 있는 곳임을 상기 시킨다. 하긴 6.25전쟁시 양구지역은 도솔산, 대우산, 피의능선, 백석산, 펀치볼, 가칠봉, 단장의 능선, 949고지, 크리스마스고지 전투 등 9개 전투가 치열했던 곳이다. 더군다나 이즈음들어 여러 차례에 걸친 북한 핵미사일 시험발사로 세계의 시선은 한반도로 향하고 있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의 한가운데 우리가 놓여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  두타연







 한 참을 걷다가 맞이한 두타연은 유수량이 많지 않아서 이겠지만 명성 만큼 화려하지는 않다. 하지만 주위의 산세가 수려한 경관을 이루고 오염되지 않아 천연기념물인 열목어의 국내 최대서식지로 알려져 있으니 아쉬움을 달래는 수 밖에 없다.















  다만 아직 단풍 전 단계인 황풍(黃楓)이 만연한 숲길을 걸을 수 있음은 행복이다. 숲길을 빠져 나오는데 ‘10년이 젊어지셨나요?’라는 팻말이 보인다. 아마도 양구군의 슬로건인 양구에 오면 10년이 젊어집니다!’에 대한 답변을 듣고 싶어하는 것 같아 물론이고 말고요라고 마음 속으로 대답을 하곤 두타연 숲길 걷기를 마친다.



▲  지도상 비수구미 위치



    

▲  비수구미 GPS 기록



 

   민통선 안 두타연 숲길의 여운을 안은채 화천의 비수구미로 향한다. 화천은 화천댐과 평화의 댐, 파로호와 춘천호 등 2개의 댐과 2개의 호수를 가진 물의 고장이다. 그곳 화천에 강원도에서도 오지 중에 오지마을로 손꼽히는 비수구미마을은 파로호가 꽁꽁 숨겨놓은 비밀스러운 곳으로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에 푹 빠질 수 있는 곳이 있다하여 찾아 나선길이다.









  해산령에서 비수구미에 이르는 대략 6km의 트래킹 코스의 들머리는 해산령이다. 평화의 댐에서 남한 최북단,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해산터널이 있는 해산령까지 가는 길은 양 옆으로 아름다운 숲으로 뒤덮혀 있지만 현기증과 멀미가 날 정도의 아흔아홉 굽이 길이다. 해발 700m에서 시작한 트래킹은 계곡을 따라 걷는 내리막길이다. 내심 좁은 산 길을 기대하고 간 내겐 약간 실망이다. 산길은 대략 3m 넓이로 거칠게 다듬어진 길인데다 사람이나 차량의 왕래가 적어서 인지 흙길이 아닌 울퉁불퉁한 자갈이 널려있는 길이기에 맨발나그네가 맨발로 걷기에는 대략난감한 길이기 때문이다. 또한 산 속 숲길을 걷자는 목적을 가지고 왔음에도 어디를 둘러보아도 길, , 하늘과 물 뿐이니 주변 풍경이 단조로워 지루함이 느껴지는 2시간의 트래킹이다. 하지만 도시에서 찾기 힘든 풍경과 여유가 있으니 깨끗한 자연과 각종 야생화들과 물소리, 바람소리는 도시의 공해에 찌든 우리의 마음을 정화시켜 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  비수구미마을 산채비빔밥집


  그렇게 도착한 비수구미 마을이다. 화천댐이 생기면서부터 육로가 막혀 오지 중의 오지가 되어 육지 속의 섬마을이라 불리우는 마을이다. 오직 서너 가구만이 지키고 있는 마을이기에 오지라고 표현하나 본데 지금은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오지의 맛은 덜 한 것 같다. 하긴 비수구미마을의 대표적인 식당도 몇 해전 TV에 소개된 이후 지금은 기업형에 가까운 식당으로 변했으니 말이다. 어째거나 오후 3시쯤에 접한 산채비빔밥은 배가 고파서이기도 하려니와 양념향이 강하지 않게 무쳐낸 나물과 어울려 맛있게 먹은 한끼였다.



▲ 파로호


 

  비수구미 마을을 뒤로하고 다시 오솔길을 따라 평화의 댐 근처의 도로까지 걷는다. 모터보트를 이용할 수 있으나 대부분 오솔길 걷기를 택한다. 대략 2.5km의 숲길을 걸으니 버스가 기다리는 선착장이다.



▲  평화의 댐





 

  일행을 태운 버스는 평화의댐으로 향한다. 북한의 금강산댐에 대응하고자 국민모금운동까지 벌여가며 만든 댐이건만 그후 이런 저런 잡음이 끊이질 않은 곳으로 수많은 사연과 질곡의 현대사를 함께 격은 곳이다. 우린 아직 휴전중인 분단국으로 전쟁의 기억과 안보에 민감한 국가이지만 모두가 이솝 우화속 양치기 소년을 바라보는 심정으로 대하고 있으니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추석 연휴 첫날 양구의 두타연과 화천 비수구미의 12km를 맨발로 걸었다. 떠들썩한 도심을 떠나 민통선 안의 손타지않은 두타연과 강원도 오지 중의 오지인 비수구미를 걸을 수 있었음은 행복이다. 오늘도 일상생활 속에서 내 마음속을 가득 채웠던 오욕칠정과 번뇌는 거친 자갈길을 걸으며 발바닥이 전해주는 통증과 주변의 풍광으로 생각할 겨를이 없다. 아니 너무 흔해 깨닫지 못하고 사는 주변의 많은 나무들과 물소리가, 맑은 공기와 햇살이 내 마음을 어루만지고 재충전을 돕는다. 인생이란 즐거운 여행길에 만난 두타연과 비수구미가 고마울 뿐이다. 가장 가난한 방법으로 가장 부유한 천국을 맛 본 오늘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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