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의 팜므파탈 권금성~집선봉~망군대의 품에 안기다
● 어 디 를 : 설악산 망군대
● 언 제 : 2017년 10월 7~8일(무박)
● 누 구 랑 : 경기산길따라산악회
● 코 스 는 : 소공원-안락암-권금성-집선봉-망군대1.2.3봉-가는골-소공원
● 사 진 은 : 호돌이님, 스마트님, 본인
▲ 망군대에서 본 공룡능선
내게 있어 설악은 노스텔지어다. 그러나 쉽게 그 품을 내어주지 않으니 그저 속앓이만 하며 지낼 수 밖에 없는 처지이다. 그동안 대청봉 서너번을 포함해 여러번에 걸쳐 설악의 품에 안겨 보았고 공룡능선을 한 번 걸어보았지만 아직도 꿈에 그리는 곳들이 수도없이 많이 있으니 화채능선, 용아능선 등등, 하지만 나이, 체력 등으로 이젠 도저히 그들 품에 안기기는 애즈녁에 틀렸다고 포기한지 오래다. 그러다 따스한마음과 어느 날 술 한잔 기울이다 또다시 일을 내고 말았다.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무박까지 감수하며 덜커덕 미혼탕의 힘을 빌려 약속하고 말았으니 설악의 팜므파탈 망군대의 품에 안기는 일이다.
▲ 산행기록
▲ 지도상 산행코스
▲ GPS 기록
권금성~집선봉~망군대로 이어지는 능선을 누군가는 칼날능선이라 부르고, 누구는 설악의 킬리만자로라 부르는 명품코스라 한다. 그 모습이 수려하기에 붙여진 이름일게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영락없는 팜므파탈이다. 프랑스어인 팜므파탈(femme fatale)은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여성’, ‘남자를 위험과 재앙으로 이끄는 여성’을 뜻한다. 권금성~집선봉~망군대로 이어지는 능선이야말로 다른 단어로는 대체불가능한 팜므파탈이다. 그러기에 출입불가라는 푯말을 무시하고 그곳에 숨어드니 인류가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종종 있어 온 일이다. 아니 인류가 하느님에 의해 창조될 때 부터의 일이니, 사탄의 유혹에 빠진 ‘이브’가 아담과 함께 선악과를 먹을 때부터 우리는 하지말라는 일에 더 기를 쓰고 덤벼들고 있는 것이다. 어디 ‘이브’뿐이던가. 그리스 신화 속 최초의 여자 ‘판도라’는 제우스가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하며 준 상자를 열어 인류를 영원히 괴롭힐 모든 재앙들이 쏟아져 나오게 하였으니 하지말라고 하는 일을 하고야 마는 오늘날의 인간들은 인류 최초의 조상들의 원죄라고 자위를 하는 수 밖에 없다.
▲ 권금성 전망 표지
▲ 오래간만의 야간산행
▲ 권금성에서
그렇게 설악산 소공원을 출발한 시간이 새벽 3시반, 설악산케이블카가 놓이기 전 안락암을 통해 권금성으로 오르는 옛길로 스며든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길이니 험하고 힘들다. 안락암(安樂庵)은 자장율사가 652년 신흥사를 창건할 때 산내 암자로 시작되었다고 하니 1,300년 이상 이 길을 따라 사람들은 수행을 위해 걸었을 것이고, 권금성으로 난리를 피하기 위해서도 올랐을 길을 따라 걷는다. 아직 어둠 속이어서 안락암과 800여년이 되었다는 무학송을 그냥 지나쳐 권금성에 이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권금성이라 하고 권(權)·김(金)의 두 가지 성을 가진 사람들이 이곳에서 난리를 피하였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라는 전설을 소개하고 있다. 물론 이 맨발나그네 아직 설악산 케이블카를 타보지 못한 일인이기에 감회가 남다르지만 아직 동트기 전이어서 잠시 쉼을 가진후 집선봉으로 향한다.
▲ 집선봉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기다리며
▲ 여명이 걷혀가는 동해
▲ 집선봉에서
▲ 주변 풍광에 매료되어 있는 일행
▲ 멀리 울산바위와 그 오른쪽으로 조금 보이는 달마봉
▲ 함께한 진도개, 무심천
▲ 열심히 촬영에 임하고 계신 경기산길따라산악회의 스마트 총무님
권금성에서 집선봉에 이르는 쉽지않은 길을 올라 5시 30여분경 선녀들이 운집해 있다는 집선봉에 이른다. 명색이 일일선(一日仙)을 자처하는 맨발나그네가 나타났으니 버선발로 선녀 몇명은 마중나올 줄 알았는데 그런 호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상부는 비좁지만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동해의 일출을 기다린다. 7년전인가 중청에서 일출을 본 후 정말 오래간만에 설악의 품에 안겨 일출을 기다리니 감회가 새롭다. 아마도 앞으로의 나의 생에 보기가 쉽지않은 풍경이리라. 거의 30여분을 기다리며 동해를 박차고 솟아오르는 태양을 기대했건만 동해바다쪽 구름으로 멋진 일출을 연출하진 못했지만 그런대로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하고 망군대로 향한다.
▲ 집선봉에서 본 망군대
▲ 달마봉과 동해바다
▲ 마법의 성(?)
▲ 마법의 성을 탐험중인 일행
▲ 마법의 성 탐험대들
망군대로 향하는 동안 좌로는 공룡능선의 아름다움이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우로는 동해와 울산바위가 그 위용을 뽐낸다. 망군대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한 거암(巨巖)들이 천태만상의 형태를 갖고 우리를 맞는다. 오랜 시간 풍화와 침식을 통해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니 만물상이 따로 없다. 그 길을 걷는다. 주변 풍광에 취해 발걸음이 더뎌지고, 난코스여서 발걸음이 더뎌지기도 한다. 이 곳이 꽃잠자리인 이 맨발나그네는 맨발이 아닌데도(험로여서 맨발걷기를 포기했음) 어렵게 어렵게 앞으로 전진한다. 망군대 1봉이 어디인지, 2봉이 어디인지도 모른채 주변 풍광에 심취하여 앞으로 나아간다. 그야말로 팔다리와 엉덩이까지 동원된 오체(五體)가 모두 가동되어야만 하는 코스이다. 3봉으로 내려서기 전 산행대장은 로프까지 설치하고서야 진행을 할 수 있었다.
▲ 백폭폭포(?)
정말로 이 코스야 말로 팜므파탈이 아닐 수 없다. 델릴라, 살로메, 세이렌, 메두사, 옴팔레, 헤밀턴 부인, 롤라 몬테즈 등 신화와 역사 속 팜므파탈로 꼽히는 수많은 여인들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이 수많은 남자들을 위기에 몰아넣지 않았던가. 내 비록 팜므파탈적인 요부를 만난 적 없으니 그들의 상대였던 남성들이 슬쩍 부러워지지만, 어쩌랴. 오늘같이 아름다운 애인(山)을 만나 온 몸을 부딪혀가며 사랑을 나누며 그녀(山)의 품에 안겨 뇌쇄적 관능미를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다.
▲ 망군대3봉의 의자바위
▲ 망군대3봉의 의자바위
그리고 도착한 망군대3봉. 특별히 바위가 깍여 만들어진 의자바위가 있는 곳이다. 신은 이곳에 어렵게 올라 온 사람들을 쉬게 할 요량으로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위치가 아슬아슬하다. 하지만 모두들 기꺼이 그 의자에 앉아 기념사진 한 장 씩을 남긴다. 이 맨발나그네 일일선(一日仙)입네 하고 갖은 개폼을 잡지만 오늘은 그냥 인간세상의 속물이 되어 남들 따라 콩알만해진 간을 부여잡고 그예나 사진 한 장 남긴다.
▲ 장군봉을 배경삼아 아침상을 펼친 일행
이제 위험한 코스는 어느 정도 끝났다고 하니 아침 겸 식사시간을 갖는다. 멀리 장군봉에 매달린 암벽타는 사람들을 감상하며 무심천님이 준비한 돼지고기 수육에 진돗개님이 준비한 홍어가 합쳐지니 홍어삼합이 되고, 거기다 홍어껍질로 만든 묵에 문어와 갑오징어 새끼 회 까지 동원되었으니 이보다 푸짐한 식단이 있으랴. 술안주로 금상첨화지만 아직 하산길이 만만치 않다고 하니 그저 반야탕 수준으로 만족한다.
가는골이라고 한다던가. 그 골짜기 삼단폭포을 따라 계곡으로 내려오니 신흥사 주차장이고 총 7.7km, 3시간여의 휴식시간을 포함하여 총 9시간에 걸친 운우지정을 마친다. 일일선(一日仙)을 자처하면 갖은 폼을 잡던 이 맨발나그네 오늘은 오체(五體)를 총동원하여 엉금엉금 기다보니 여기저기 근육통이 말이 아니다.
비록 사랑에 눈멀어 출입금지 푯말을 보고도 못본 척 하였고, 나이와 체력을 고려하지 않은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이런 팜므파탈 여인(山)과 만난다면 아마도 또다시 사랑에 빠지지 않고는 못 배길 거라는 예감이 드는 행복한 꽃잠자리였다. 표지판 하나없는 곳을 걷다보니 혹시 위 지명 중 틀린 곳이 있을 수도 있는데 꽃잠자리이니 이해 부탁드린다.
맨발나그네가 일일선(一日仙)이 되어 세상을 걷는 이야기( ☞ http://blog.daum.net/yooyh54/524 )
( 댓 글 )
Charming 17.10.10. 22:12
사진감사,잘보고 갑니다.ㅎㅎ
길이 추억속에 남으시리라 ~~~ㅎ
사진도명품!입니다~~
나는야!설 설악 설악산이좋더라^^
멋진글 감동입니다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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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사진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