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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보물(67년과 68년의 가계부)

맨발나그네 2009. 6. 26. 18:27

우리집 보물(67년과 68년의 가계부)

 

 

  우리 시골집에는 보물이 있습니다. 그 보물은 우리 아버지가 1967년부터 1995년까지 29년간 기록하신 가계부입니다. 우리 아버지 49세부터 77세까지의 기록이니 대단한 보물이라 할 것입니다. 아마도 아들 7형제를 키우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신 산물이 아닌가 합니다. 1967년이면 첫째형이 23살이고 그 밑으로 줄줄이 6명의 자식이 더 있었는데 막내는 4살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그 많은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키기 위해 보였던 우리 부모님들의 고단한 삶을 더듬어 볼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이런게 부모된 자세구나 하는 생각도 갖게 됩니다.

 

 

  1967년은 내가 중학교 입학하는 해이고, 내 바로 위 형님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해이기도 합니다. 그해 1월3일 설탕 40원, 석유1통 300원으로 시작된 가계부는 1월27일(아마도 설날 즈음이 아닐까?) 돈육1근 170원이 적혀있습니다. 3월로 접어들어 새학기가 시작되면서 흥부네보다는 적지만 하여튼 어마어마하게 많은 아들들이 앞다투어 타간 돈의 내역들이 상세하게 적혀있으니, 3월2일 병희(나의 바로 윗형)윤희 책값 항목으로 2,160원도 있고, 윤희 학급비와 도화지 120원도 있습니다. 아마 그 120원중에는 약 20원의 삥당도 있었으리라. 그리고 그 삥땅은 학교안 심씨네 빵집에 군것질값으로 지불 되었겠지요.......... 기록상으로 매달 100여원의 잡비 항목으로 용돈을 탔으면서도 어린시절의 군것질을 위해서라면 무슨질인들 못했을까. 하긴 청구금액이 과하다 싶으면 아버지는 웃으면 “이번엔 얼마나 남기니?” 하고 묻곤 하셨지요.

 

 

  좀 더 그 시절을 살펴보면, 럭키치약 70원, 미원 1봉 70원, 이발비50원, 우리아버지의 유일한 사치인 포마드 90원, 윤희하복650원, 윤희 4분기 사친회비 720원, 솟땜 250원, 쥐약 40원, 닭걀2끄러미(20개이겠지요)190원, 수탉 2마리를 380원에 산 기록도 있네요. 보통은 자전거 한 대로 병희형과 통학을 했지만 비가 오는날이면 콩나물 시루보다 더한 숙주나물 시루같은 버스로 통학을 하곤 했는데 그 시절 느런(고렴리)-발안간 학생버스요금은 편도 10원이었더군요. 그 시절 신문 한달 구독료는 130원, 추석을 지내기 위해 지불한 돈은 3,550원이고 그중에 소고기값이 1,550원(몇근인지에 대한 기록은 없네요)이었는데, 아마 일년에 두 번 소고기를 먹는 날이 아니가 싶습니다. 아마 그 소고기는 신왕리 면소 동네에 있는 소 도살장에서 일년에 두 번 소를 잡는날 그곳에서 사왔을거고요.

 

 

  아! 이해에 우리의 큰형인 봉희형이 군에 입대를 했군요. 입영노자로 2,000원이라는 거금을 쓴 것을 보니.... 이렇게 해서 1967년 일년간 우리집 총 지출액이 161,651원이었습니다. 이중에 사촌누나 결혼식 부조금으로 13,500원을 쓰셨으니 실제 금액은 148,151원이었으니 한달 평균 12,400원 꼴이네요. 물론 집에서 농사로 충당한 먹거리에 대한 기록은 당연히 없고, 어머니가 집에서 농사를 지은 곡식을 이용한 물물교환도 기록에 없는게 아쉽기는 하지만, 이렇게 자세하게 30여간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는 건 우리집의 자랑이랍니다.

 

 

  기왕 이야기하는 김에 1968년도 더듬어 볼까요. 시골이어서 오늘날 물가와 비교해 볼 자장면 값이 없는것이 애석하기는 하지만, 딴 공산품값 몇가지를 더 살펴 볼게요. 마늘 4접 1,000원, 낫70원, 삽250원, 호미50원, 남포150원, 성냥15원, 구두약20원, 은단23원, 김한톳150원, 종희(그당시 초등학교 6학년)동아전과 280원, 소금 3말 1,050원, 라면 7봉 100원, 머리염색약 35원, 석유는 1년전보다 30원이 오른 330원, 소주1병(몇홉인지에 대한 기록 없음) 110원등의 기록이 남아 있군요.

 

 

  이번에는 특이한 지출에 대해서 알아 봅니다. 1968년 4월 21일 방위성금을 230원이나 냈더군요. 아들 일곱을 모두 대한민국의 육군으로 복무시킨것도 모자라 이렇게 그 옛날에 방위성금까지 내가면서 나라를 지켰으니 나중에 울 아버지 국립묘지에라도 안장시켜드려야 하는거 아닌가... 내(중학교2학년) 2학기 기성회비 1,710원, 병희형(고등학교2학년) 기성회비2,400원 인걸로 봐서 이해에 교육비가 엄청 오른걸 알 수 있네요. 이해 추석에는 워낙 우리 형과 나의 수학여행등 여러 가지 씀씀이가 커서인지 추석에 소고기 1근 구입이 전부네요. 한근에 360원이니 그 전해에는 약 4근이상이나 먹었는데, 그때 부실하게 먹어서 아직도 약골인가 내가......

그해 고2인 병희형과 내가 모두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지요. 형의 수학여행경비는 3,000원이고 나는 1,900원이었답니다, 둘의 여행중 용돈으로는 1,500원이었는데 아마 형이 1,000원이고, 나는 500원이었겠지만요. 하여튼 둘의 수학여행을 위해 6,400원이란 거금을 쓰셨는데, 이는 그해 총지출액의 3%나 된답니다.

 

 

  또하나 자전거 구입이 있었는데, 그동안 자전거 한 대로 형과 내가 둘이 통학을 하는 바람에 여러 가지로 힘들었는데 그해 10월 30일 10,000원이란 거금을 들여 자전거를 한 대 구입했답니다. 이 자전거 구입으로 난 매일 아침 준비가 늦다고 자전거 체대에 앉아 당하던 꿀밤을 안 맞아도 되었고, 방고개나 대양리고개, 양석골고개에서 미리 내려 뛰면서 형 자전거를 따르다 중턱서부는 자전거 뒤를 밀어야 했는데 이를 그만 두어도 되니 정말 좋았던 기억이 어슴푸레하게 나네요. 물론 새자전거는 형이, 그동안 아버지가 타시다 형이 물려받아 고물이 된 자전거이지만 그 당시 내겐 보물이 따로 없었지요.

 

 

  몇가지 더 살펴보면, 그해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동생(종희)의 아루바므(앨범의 우리 아버지식 표현)대금은 1,100원, 중학교 시험을 보는 전형료가 300원, 중학교 입학금 7,910원, 중학교 1학년 책값 2,000원이랍니다.

이렇게 해서 다사다난했던 1968년 저물어 가고 이해 우리집의 총지출액은 232,323원입니다. 67년에 비해 43.7%나 증가를 했으니 이는 여러 가지 물가 상승과 교육비에 대한 투자 때문이었겠지요.

 

  또 다른 기록으로는 일년동안 투입된 품(농사일에 쓴 노동력), 서로 교환한 품, 소를 빌려준 품, 농사에 총 사용된 비료의 종류, 수량, 금액등의 기록이 상세하게 있답니다. 그 시절 농사꾼의 품삯은 하루에 남자120원, 여자80원임도 알았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40여년전으로 되돌아 간 느낌입니다. 비록 누렇게 바랜 노트에 기록된 것들이지만 정말 소중하고, 어떻게 하면 잘 보존하여 후손들이 귀감을 갖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는 군요. 또한 이번에는 1967년과 1968년 사이의 이야기를 했는데 시간이 되는 대로 그 이후의 생활 변천사도 올려 볼까하는데, 가능할까 모르겠네요. 한편에 2년분씩 잡는다 해도 총15편의 다큐멘타리가 될거 같기도 한데.............

                                                        2007년이 저물어 가는 달에...........

이글을 읽고 나서의 댓글

 

 

이분재(초등-고교까지의 동창) : 윤희친구의 문장력이 가미된 아버님의 일기 정말 소중한 보물이네요, 윤희 어머님의 우아하고 고상한자태가 부러웠는데, 공무원이셨던 아버님의 근검절약이 있어서 많은 형제들을 대학까지 보낼수 있었겠지요? 큰 보물을 올려준 윤희친구 다음편을 기대할께요. 07.12.12 12:47

 

 

이희숙(초등-고교까지의 동창) : 정말 지금의 물가를 보면 상상할수도 없는 금액이었네... 부모님 의 짜임새있는 살림의 지혜를 엿볼수있고 또 7형제를 공부시키시느라 얼마나 힘이드셨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집안의 가보로 방송에 나갈만한 보룰이네요. 07.12.13 07:21

 

 

지기호( 초등시절 친구 ) : 소시댁 유가네 역사적 가보네요. 상세하게 기록해놓으신 아버님의 가계부 읽고나니 느낌이 옵니다. 그때 그시절 모두가 아련히 떠오릅니다. 07.12.12 19:20

 

 

유존희(시골 어릴적 동네친구) : 친구의 옛추억을 떠올리게하는 아버지의 가게부 정말 1967년이면 우리가 초등학교 졸업하던해. 그리고 그이후면 중학교 시절 그때을 떠올리게 하는 가게부... 와 -- 그때 100원 1000원이면 우리에겐 큰 돈 생생한 그때 그시절을 떠올리게한 가게부 아버지 덕분에 친구덕분에 생생한 옛날을 회상하게 하네요. 07.12.12 19:24

 

홍순근(중18.고19회) 08.06.03. 12:54
재미납니다..지금까지 쓰고 보관된 한가족의 자금내역은 한편으로는 추억의 묶음일테고 또한편으로는 생활에 참고서 같기도 할겁니다...자전거 통학하던 선배모습도 떠오르고 종희(동기)의 삥땅 지출내역도 나오네요...소중히 보관하세요~진짜 보물입니다...추억의 2탄도 보구싶네요...
 
향자 08.06.03. 20:21
계속 올려 주세요...어머나 참 신기합니다...그런데 아버님 정말 존경이갑니다. 혈액형은 A형이 아니실까 싶기도 하고 ㅎ, 지금 생각이 확실히 나는건 제가 중1때 하복입을때까진 사복을 입었는데, 제일 양장점에서 청바지를 800원주고 맞추어 입었는데, 비싼거네요 거금이네요...옵빠 글에 세월 많이 읽고 반성도 합니다...고맙습니다...곱상한 옵빠얼굴 떠오르넹 ㅎ,남양주소방서에 오시면 연락하세요
유윤희(16.17회) 08.06.04. 09:25
우린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B형이어서 아들 일곱형제가 모두 B형이랍니다.... 그야말로 B형 가족이죠............ㅎㅎㅎㅎ 혈액형에 대한 편견을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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