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는 해로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은 약 600불이었단다. 우리는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라고 시작되는 국민교육헌장과 국민소득 1000불, 수출100억불을 달성해야 한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외우고 다녔고, 그걸 못외운다고 야단맞고 얻어터지던 그런 시절을 보내던 때였다.그러나 우리는 민족중흥을 하는데도 아직 아이엔지이고, 국민소득 1000불, 수출100억불도 그보다 10년뒤인 1977년이나 되어서야 달성할수 있었다. 이제 그때의 국민소득에 비해 30배가 증가하여 세계에서 열몇번째로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고 하건만 우리내 삶(정신적인)은 그렇지 못한것 같아 안타갑다. 하긴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는 방글라데시라고 하지 않는가? 이는 행복이 물질과 환경만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상황을 항상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살아 갈수 있는 마음의 양식을 쌓아야 한다는데 그 마음의 양식은 어디가서 찿아보나.......ㅎ ㅎ ㅎ
개인적으로 집에서 3KM나 떨어진 양감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약 8KM나 떨어진 발안중학교 1학년에 입학한 해이다. 이해 하복이 650원, 4/4분기 사친회비가 720원 이었으며, 비오는날이나 타볼수 있었던 느런(고렴리)-발안간 버스는 10원을 내면 되었다. 물론 비가 안오는 날이면 고1이던 바로 위 병희형과 자전거 한대로 통학을 하던 아주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물론 그 다음해부터는 전용인 자전거가 생겼지만(물론 중고로)
이때의 성적표가 한장 남아있다. 지금처럼 스크랩북이 있던 시절도 아니어서 거의 모든 자료가 분실되었지만, 그래도 여러가지 자료들을 모아 두셨던 아버지 덕분에 건진 소중한 자료다.
(성적표 앞면)
(성적표 뒷면)
'추억하기 > 중고딩(발안중.고교)의 추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벌안'이라고 하는 교지에 실렸던 수필(1970년) (0) | 2009.12.16 |
---|---|
1972년 졸업앨범 야외 촬영 (0) | 2009.12.16 |
고교시절의 소풍(1970년~1972년) (0) | 2009.12.16 |
1971년 수학여행(고2) (0) | 2009.12.16 |
1972년 학생회 하계 수련회(고3) (0) | 2009.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