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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맞이

맨발나그네 2015. 1. 3. 09:53

2015년 영일(迎日)에서의 새해 해맞이

● 여 행 지 : 영덕과 호미곶

● 여행일시 : 2015년 1월 1일 (목)

● 누 구 랑 : 산7000 산악회

● 사진은 ? : 소리새, 따스한마음, 설악산

 

▲ 동해바다를 박차고 떠오르고 있는 2015년 새해 첫날의 태양

 

  올해도 어김없이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한 해가 닥아오고 있다. 이를 사람들은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 한다. 사람들은 새로운 해를 맞이하기 위해 추위와 여러 번잡함을 무릅쓰고 전국의 해돋이 명소를 찾아 해맞이를 떠난다. 해가 뜨고 짐은 과학적으로 보자면 지구가 북극에서 봤을 때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 시간에 15도씩 자전하고, 이에 따라 해가 수평선 아래로 지는게 해넘이, 수평선 위로 떠오르면 해돋이가 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내륙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뜬다고 하는 호미곶과 서울 남산과의 차이는 고작 15분이라 하니 그리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장소가 어디가 되었던, 때가 언제가 되었던 해가 지고 뜨는 것은 비교적 단순한 천문현상일 뿐이다. 하지만 이해인님의 시 <다시 시작하는 기쁨으로>에서

첫눈, 첫사랑, 첫걸음 / 첫 약속, 첫 여행, 첫무대 / 처음의 것은 / 늘 신선하고 아름답습니다. / 순결한 설레임의 기쁨이 / 숨어있습니다.....(하략)

이라고 노래했듯이 사람들은 새해 첫날 해맞이에 의미를 부여하고, 명소를 찾아 해맞이를 하며 새로운 한 해에 소망하는 일을 기원하며 희망찬 미래를 다짐하기도 한다. 우리 속담에 ‘남이 장에 간다고 하니 거름 지고 나선다’라고 했던가.... 해맞이를 떠나는 많은 인파 속에 이 맨발나그네도 매년 그랬던 것처럼 남들을 따라 길을 나선다.

  『무속에 살아있는 우리 상고사』<민속원>의 저자 조성제 님은 그의 책에서 한인천제가 9,000여년전에 한국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떠오르는 태양신께 민족의 번영과 화합을 기원한데서 해맞이가 유래한다고 전한다. 누구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연오랑과 세오녀의 설화속에서 해맞이 풍습이 전해 졌다고도 한다. 연오랑과 세오녀의 설화를 위에 소개한 조성제님은 아달라왕이 영일현에서 해맞이 굿을 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코리안들이 신대륙을 발견했다>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오두 김성규님은 그의 블로그에서 우리 조상들은 복을 가져 온다고 믿는 조상귀신고래에게 새해가 솟아 오를 때 절을 하거나 합장을 하던 풍습에서 유래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동해안의 이름난 해돋이 명소는 모두 귀신고래가 출현하던 명소였다는 것이다. 어째거나 해가 뜨고 짐이야 자연현상의 하나일런지 모르나 이렇게 먼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태양을 숭배하고 태양을 보며 소원을 기원하던 풍습이 전해졌던 것이다.

 

▲ 추워서 카메라 작동이 원활하지 못한 가운데 해돋이 풍광을 잡기 위해 폼 잡고 있는 소리새

 

▲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소원을 기원하고 있는 일행

 

 

▲ 함께 해를 기다리고 있는 까칠리아와 맨발나그네

 

 전국에는 많은 해맞이 명소가 있지만 사람들은 영일만에 위치한 몇몇 곳을 제일로 친다. 영일(迎日)이라는 지명은 동해 바다에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이하는 곳이라는 뜻이니 그야말로 새해 해맞이를 하는데 제격인 곳이다. 그래서 우리 일행도 영덕군의 해맞이 공원에서 해맞이를 해보자고 길을 떠났다. 전날 밤 10시 수원을 출발하여 차안에서 제야의 종 타종도 지켜보며 해맞이 공원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4시. 그러나 그곳은 이미 차량으로 가득차 발 디딜곳이 없을 정도로 만원이다. 타고간 버스를 주차할 곳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만원이니 어쩔 수 없이 장소를 옮겨 영덕군의 한적한 축산항으로 향한다. 영덕군 대게공원에서 고래불해수욕장에 이르는 약 64.6km의 도보여행길인 영덕 블루로드 코스안에 있는 축산항-죽도산 코스내에 있는 작은 어촌으로 고즈녁하다. 그곳에서 일행들은 해맞이에 나선다. 강풍에 날씨 또한 무척 추웠지만 모두들 즐거운 마음으로 떠오르는 해를 기다린다.

 

 

 

 

 

 

 

 

  끝없이 펼쳐진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해가 떠오른다. 약간의 구름이 있어 동해바다를 박차고 떠오르는 모습을 연출하진 못했지만 나름대로 새해 바다위 약간의 구름을 헤집고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2015년 1월 1일 오전 7시 34분 드디어 새해의 태양이 고통스러웠던 2014년을 버리고 희망만이 가득찬 2015년임을 알리며 솟는 모습은 한 편의 웅장한 서스펜스이다. 이해인님은 그의 시 <해를 보는 기쁨>에서

해 뜨기 전에 / 하늘이 먼저 붉게 물들면 / 그때부터 / 내 가슴은 뛰기 시작하지.

바다 위로 / 둥근 해가 서서히 떠오르는 아침 /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 살고 싶고 또 살고 싶고 / 웃고 싶고 또 웃고 싶고 ....... (하략)

라고 노래한다.

 

▲ 떠오르는 태양을 기다리며......

 

  새해 첫날 바다 위로 둥근 해가 서서히 떠오르는 풍광을 바라보며 일행들은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모두들 마음속으로 새해 소망하는 일들을 기원할 것이다. 나도 거의 매년 되풀이 되는 소원이긴 하지만 몇가지를 생각해 본다. 우선 가족들이 건강하고 아이들이 자기 하고 싶은 일 하며 잘 지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남은 나의 삶이 웰 에이징(Well-Aging : 사랍답게 늙는 것)이기를 소망해 본다. 비록 앙드레지드 조차도 아름답고 행복하게 늙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고 했다지만 최선을 다해 초라하지 않고 우아하게 노년을 보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 사랑, 여유, 용서, 아량, 부드러움을 일상화하고 여기에 비록 몸은 늙어가지만 열정적으로 삶을 즐겨보자고 다짐한다. 그러는 사이 해는 높이 떠 온 대지를 환하게 비춘다.

 

▲ 강구항에서

 

▲ 강구항 대게 거리

 

 

▲ 강구항에서 까칠리아와 맨발나그네

 

▲ 대게를 시식중인 일행들

 

▲ 강구항에서 만난 풍경

 

  해맞이 장소에서 자리를 옮겨 강구항에 들려 영덕대게를 맛본다. 대게는 몸통에서 뻗어나간 다리가 대나무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달고 연한 맛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해양오염 등의 원인과 암컷이나 9cm이하인 대게는 포획이 금지되어 있어 어획량이 수요를 쫓아오지 못하니 그 가격이 만만하지 않다. 그래도 특별한 나들이이니 풍성하게 대게 맛을 보고는 강구항을 둘러보고 다음 목적지인 호미곶으로 향한다. 

 

 

▲ 호미곶해맞이광장의 육지 쪽 상생의 손

 

 

 

▲ 호미곶해맞이광장 앞 바다 쪽 상생의 손

 

▲ 호미곶 바다 풍경

 

▲ 호미곶에서

 

  강구항과 호미곶에 이르는 길은 해맞이 인파로 더디기 한량없다. 그렇게 호미곶에 도착이다. 조선의 풍수지리학자 남사고가 『동해산수비록』에서 한반도는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모양으로 백두산은 코, 호미곶은 꼬리에 해당한다고 묘사한데서 얻은 지명이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만들면서 국토 최동단을 측정하기 위해 영일만 호미곶을 일곱 번이나 답사 측정한 뒤 우리나라에서 가장 동쪽임을 확인한 곳이다.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이기에 오늘 새벽에도 해맞이 축제가 열려 많은 인파가 다녀간 곳이다. 좀 한가해진 오후 시간에 호미곶 이곳 저곳을 둘러 본다. 호미곶해맞이광장에는 상생의 손, 성화대, 천년의 눈동자, 연오랑 세오녀상 등이 조성되어 있다. 상생의 손은 육지에 왼손이, 바다에 오른손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새천년을 맞아 모든 국민이 서로 도우며 살자는 뜻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곳을 한 시간여 둘러보고는 구룡포시장으로 향한다.

  구룡포시장에 들려 오징어, 과메기 등을 사기도 하고 먹기도 하며 한바퀴 돌고는 수원으로 향하니 수원도착 시간이 밤 10시이다. 어제 저녁 10시에 출발하여 꼬박 24시간에 걸친 2015년 새해 해맞이 일정이다. 몸은 고되고 피곤하지만 좋은 친구들과 새해 첫날 떠오르는 해를 맞아 닥아오는 새해를 다짐하는 추억을 만든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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