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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흙장난 하는 아이들이 건강하다

맨발나그네 2016. 11. 22. 05:40

[Why] 흙장난 하는 아이들이 건강하다

  • 송태호 송내과의원 원장·의학박사     

[송태호의 의사도 사람]

흙바닥 운동장에서 놀던 70년대 아이들
잔병치레 지금보다 적어

친환경 소재라던 우레탄 납으로 뒤범벅 충격…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요즘 세상에 왜 아이들 아토피가 잦을까

흙장난 일러스트
197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기억이 날 것이다. 입학식 때 아이들이 깨끗한 옷에 누런 코를 흘리며 가슴팍 이름표에 손수건을 덧대 연신 코를 닦아내던 풍경 말이다. 지금 기준으로는 모두 비염이나 축농증으로 병원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을 것인데 당시에 그런 친구들이 병원 근처에라도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수업이 끝나면 흙바닥 운동장 구석에서 놀다가 집에 가면 흙으로 더러워진 옷 때문에 엄마에게 야단맞고 옷이 해지기라도 했다면 엉덩이를 맞았던 기억들도 있을 것이다. 동네에서도 아이들의 놀이란 대개 흙 장난이었다. 흙바닥에서 팽이를 돌리고 구슬치기를 하고 술래잡기를 하며 뛰어다녔다.

집안은 물론이고 버스와 지하철 플랫폼에서도 어른들이 담배를 피워댔는데 아토피 걸린 아이도, 기침을 달고 사는 천식을 앓는 아이도 당시에는 보기 힘들었다. 아토피와 천식을 가진 아이들이 많아지기 시작한 건 동네 길이 콘크리트로 뒤덮이고 아파트에 살면서 친환경을 부르짖고 나서부터다. 예전엔 아이들이 아프다고 하면 열이 심하게 나는 감기나 배앓이 정도였다. 그때도 해열제 몇 알이면 거뜬해져 나가서 친구들과 놀고 싶어했던 기억이 난다.

A형 간염은 어렸을 때 앓으면 심한 열감기나 장염으로 나타난다. 물론 후유증 없이 완치된다. 성인이 되어 앓게 되면 85% 정도는 완쾌되지만 나이 먹어 걸릴수록 간 이식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전격성 간염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흙장난이 일상이었던 1960년대 이전 출생자들은 거의 모두 A형 간염에 대해 항체를 가지고 있는 반면 197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자연적인 항체를 가진 경우가 드물다. 현재 50대 환자 중 A형 간염 항체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귀하게 자라셨나 봅니다" 하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다.

'위생가설(Hygiene Hyphothesis)'은 깨끗하고 위생적인 환경이 오히려 면역 체계의 정상적인 발달을 막아 알레르기와 감염병을 증가시킨다고 주장한다. 선진국에서 많은 아토피와 천식이 후진국 아이들에게는 거의 생기지 않는 현상에서 출발한 가설이다. 아주 심한 알레르기를 가진 환자에게 이 가설을 바탕으로 기생충을 감염시키는 치료를 하였더니 알레르기가 좋아졌다는 보고도 있다. 동물실험에서는 심한 아토피를 가진 쥐에게 유산균을 투여했더니 아토피가 좋아졌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흙장난을 하던 학교 운동장은 점점 친환경 소재라는 우레탄으로 덮이고 있다. 아파트 놀이터도 우레탄으로 덮여 이제 흙장난을 할 장소가 없을 정도다. 황당하게도 아이들 위생과 건강을 위해 깐 우레탄은 납으로 오염돼 있다. 깨끗한 사회 환경은 분명히 건강에 좋은 것이지만, 인류의 유전자는 수십만년 동안 바뀌지 않았다. 적당한 외부 환 경의 노출은 우리 몸의 면역 체계를 정상적으로 발달시킨다. 위험 없이 면역을 얻는 방법으로는 예방접종 이상이 없다.

내가 다니는 교회 근처 아파트에는 아직도 흙과 모래로 만들어진 놀이터가 있다. 그 귀퉁이에 자리를 펴고 앉은 엄마들과 모래 장난을 하면서 노는 유치원 또래 아이들을 보고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저 아이들은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자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