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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맨발의 금선씨,지리산 천왕봉 오르다

맨발나그네 2009. 6. 27. 07:22

'엄마! 저 아줌마 좀 봐. 맨발이야' 하는 어린아이의 앳된 목소리가 뒤쪽에서 들립니다. 몇 걸음 가지 않아 '와! 아지매 대단 하심더' 하는 경상도 사투리의 굵직한 아저씨 목소리도 들려옵니다. 힐끔 뒤돌아보지만 한눈에 띄는 뭔가는 보이질 않습니다. 정상을 향해 조금씩 오를 때마다 뒤쪽에서 또 다시 감탄인지, 수군거림인지 헷갈리게 하는 이런저런 소리에 '맨발'이라는 단어가 들려옵니다.

지리산 해발 1600고지 부근, 숨을 헉헉 몰아쉬며 천왕봉을 오르기 위해 옥녀봉 둘레를 올라가고 있을 때 뒤쪽에서 끊어질 듯하면 다시 이어지길 반복하며 수군거리듯 감탄하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계속됩니다. 외줄을 타듯 한 줄로 서서 올라가야 하는 길이기에 아무 때, 아무 곳에서나 멈춰 서기가 곤란한 그런 등산길이니 조금을 더 올라가 적당한 공간이 나와 한쪽으로 비켜서서 길을 터주고는 뒤따르던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맨발등산을 하고 있는 중년 아줌마를 발견하다

일찌감치 천왕봉엘 올랐다 하산을 하느라 마주쳤던 사람들이 조금 더 내려가더니 '와! 아줌마 대단하네요. 발 안 아파요?' 하며 소리를 지르듯 말들을 합니다.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둥둥 걷어 올린 바짓가랑이에 발등을 뽀얗게 드러낸 아줌마가 맨발로 뾰족뾰족한 돌길을 걸어 올라오고 있습니다. 검정색 등산복 때문인지 아줌마는 더 없이 건장해 보였지만 짊어진 가방을 빵빵하게 채우고 있는 뭔가가 무겁게만 보였습니다.

▲ 사람들은 수군거리듯, 감탄을 하듯 맨발등산을 이야기합니다. 탄탄해 보이는 체구지만 커다랗고 빵빵한 가방이 무거워 보입니다.
ⓒ 임윤수
대부분의 등산길은 비탈도 비탈이지만 울퉁불퉁한 돌길이거나 나무 뿌리가 성글성글하니 두툼한 등산화를 신어도 먼 길을 걷고 나면 발바닥이 얼얼하거나 자칫 물집이라도 잡히기 십상입니다.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는 길도 역시 여느 등산로와 마찬가지로 가파른 경사에 툭툭 불거진 바윗길이 대부분입니다. 그런 험한 길을 웬 중년의 아줌마가 맨발로 내딛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등산에 대해 말할 기회가 있을 때면 제일 먼저 발 편하고 좋은 등산화를 권장하던 필자의 입이 민망해지는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몇 사람을 앞세우고 드디어 맨발의 주인공인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천왕봉을 향해 발길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궁금한 것이 참 많았습니다. 어디 사는지? 이름은 뭐지? 나이는 얼마나 되었는지? 언제부터? 왜? 무엇 때문에 맨발 등산을 시작했는지? 어느 산을 얼마나 다녀왔는지? 발이 정말 아프지는 않은지? 상처를 입었던 적은 없는지?….

넉살좋게 '안녕하세요! 맨발등산 아줌마 대단하시네요' 하고 인사말을 건네고는 '오마이뉴스를 아세요?' 하고 재차 물었더니 아주 실망(?)스럽게도 '들어 본 것은 같은데…' 하며 말끝을 흐립니다. <오마이뉴스>를 간단하게 소개하다보니 자연스레 말동무가 되어버렸습니다.

맨발 등산의 주인공은 49살의 주부 이금선씨

그렇게 말벗이 되어 산길을 오르는 동안에도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어머머~'라고 놀라거나 또 다른 감탄사를 쏟아냅니다. 그러고 보니 아주머니는 등산길로만 걷는 게 아니라 이따금 샛길로 빠지기도 합니다. 그때서야 아주머니의 등산 가방에 너털너털 매달려 있던 또 하나의 가방, 쓰레기 비닐봉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주머니는 길을 걷다 쓰레기를 발견하면 그것을 주우러 샛길로 빠지는 것이었습니다.

▲ ‘여기요!’하고 소리를 지르니 얼떨결에 맨발등산의 주인공이 고개를 들고 카메라를 바라보았습니다. 금선씨 어깨에는 가방뿐 아니라 휴지를 주워 담는 비닐봉지도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 임윤수
제일 먼저 정말 발이 아프지 않은지가 궁금해 '발 안 아프세요?' 하고 물으니 조금도 머뭇거림 없이 '괜찮다'는 대답을 합니다. 이어서 나이를 물으니 내년이면 딱 절반이 된다고 하기에, 49살이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합니다. 아주머니 발이 혹시 의족이거나 가죽발이 아니냐고 장난삼아 물으니, 당신의 발은 '천연가죽발'이라고 천연덕스럽게 답을 합니다.

'닭띠 아줌마라 닭처럼 땅을 헤집어도 아프지 않은 그런 발을 가진 모양'이라고 말을 하니 부잣집 맏며느리 같은 웃음으로 '싱거운 사람하고' 답을 합니다. 몇 번에 걸쳐 이름을 물으니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라며 이금선이라고 알려줍니다.

장난기가 발동해 혹시 곰발바닥을 가질 걸 예상하고 이름을 '곰선'이라고 지어줬는데 금선이라고 바꾼 것이 아니냐고 하니 금자가 쇠금(金)이라고 합니다. 이름에 쇠 금자가 들어간다는 사실에 천왕봉을 오르던 위대한 아줌마의 맨발은 졸지에 닭발에서 곰발바닥 그리고 쇠발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 금선씨는 그 힘든 등산길, 천왕봉 깔딱고개로 들어서는 입구에 있는 천왕샘에서 물 한바가지 퍼주는 여유도 보였습니다.
ⓒ 임윤수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빠트리지 않고 한 마디씩 놀라움을 표현하기에 '신발값이 없어 맨발입니다. 신발값 좀 보태주십시오'라는 글을 매달고 등산하면 수입이 꽤 괜찮겠다고 농을 건넵니다.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수익금을 나누어 갖자고 하니, 넉넉한 웃음으로 개의치 않습니다.

그런 이야길 하며 얼마 가지 않아 아주머니의 맨발을 바라보고 계시던 한 아저씨가 '신발값이 없어서 그래요? 내가 얼마는 보태줄 수 있는데' 하시며 진짜 농을 건네니, 우리 둘은 마주보며 웃어야 했습니다.

금선씨, 국내 웬만한 산들은 전부 맨발로 정복했다

금선씨는 국내 웬만한 산들은 전부 맨발로 정복을 하였다고 합니다. 설악산, 월악산, 소백산, 오대산은 물론 지금 오르고 있는 이 지리산도 중산리코스가 아닌 종주코스(노고단이 시작되는 성삼재로부터 능선을 타고 등산을 하다 천왕봉에서 하산하는 코스)를 일찌감치 몇 번씩이나 종주를 한 적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 이쯤이면, 그 험한 산길을 올라온 아줌마의 맨발이 다가서면 천왕봉 푯돌도 감탄을 했을 겁니다.
ⓒ 임윤수
아름아름 이야길 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천왕봉 깔딱고개로 접어드는 천왕샘엘 도착했습니다. 빠르지 않지만, 그렇다고 여느 등산객들보다 결코 느리지 않게 쉼 없이 발길을 옮기고 있던 아주머니가 샘가로 성큼 앞서가더니 물이 가득한 작은 바가지를 인심 좋게 넘겨줍니다.

천왕봉 등정에서 이쯤이면 주변을 돌아볼 여유조차 잃을 정도로 지치니 자칫 그 옆에 샘물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지나기 일쑤인데 금선씨는 맨발의 베테랑답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 한 바가지 퍼주는 여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깔딱고개를 올라서니 드디어 1950고지의 지리산이 금선씨 발 아래 놓였습니다. 맨 몸에 좋다는 등산화를 신고 와서도 힘들다거나 발바닥에 물집이 잡혔느니 하며 엄살을 부리기 십상인데, 그 뾰족뾰족한 돌길을 맨발로 정복한 금선씨의 발과 정신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천왕봉을 정복한 금선씨의 발은 '평범'

그 험한 산길을 맨발로 다녀도 되는 발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나 궁금하여 발바닥을 보여 달라고 하니 '발바닥은 서방님도 안 보여 주는 거'라며 난색을 표합니다. 그래도 궁금합니다. 두꺼비 등처럼 짝짝 갈라진 것은 아닌지? 웬만한 운동화 바닥을 능가 하는 굳은살이 두툼하게 박혀 있는 것은 아닌지? 경주마처럼 편자라도 박혀 있는 것은 아닌지? 이래저래 궁금해 견딜 수가 없습니다. 아니 꼭 확인을 하고 싶었습니다.

궁금증과 확인을 하고 싶다는 욕심에 '서방님이 아니니 보여 달라고 하는 거 아니냐'며 너스레를 떠니, 커다란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바위에 올라 앉아 발바닥을 볼 수 있게 포즈를 취해 줍니다.

내심 손으로 만져 그 딱딱함이나 부드러움 정도를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렌즈를 통해 바라본 금선씨의 발은 50세를 바라보는 중년의 아주머니들 발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뒤꿈치와 엄지발가락 부분에 갈라진 각질이 조금 보였지만 50대를 바라보는 중년이면 대개 이 정도의 각질이나 갈라짐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 지리산 천하를 정복한 발바닥을 드러내고 편안한 성취감을 즐기고 있습니다.
ⓒ 임윤수
몇 차례 맨발 등산을 하게 된 계기를 물었지만 금선씨는 말을 돌리거나 답을 회피해 더 이상 꼬치꼬치 물을 수 없었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에 등골이 선뜩해짐을 느끼며 하산을 서두르니 아직도 건너 쪽 바위에 서 있던 금선씨가 잘 내려가라고 손을 흔들어 줍니다. 올랐던 길을 터덜터덜 내려오는 내내 궁금하기만 합니다. 금선씨는 왜 맨발등산을 시작하였을까?

금선씨는 유방암 절제수술 후 맨발 등산 시작

그 궁금증을 어쩌지 못하고 있던 24일 전화가 연결되었습니다. 첫 만남이었지만 힘든 등산길을 동행한 탓인지 오래된 지인처럼 안부를 묻고는 다시 한 번 맨발등산을 하게 된 동기를 물었습니다.

금선씨는 98년 유방암이 발견되어 젖가슴을 도려내는 절제수술을 받았답니다. 3남매, 유산처럼 남겨진 3남매를 키우며 뒷바라지를 하느라 장사에 매달리다보니 자신의 몸뚱이 깊숙한 곳, 갈빗살까지 도려내야 할 만큼 중증으로 유방암이 확산된 것도 모르고 있다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 금선씨는 이렇듯 맨발로 걸어온 그 길들을 뒤돌아보며 살아갈 힘을 얻는지도 모릅니다.
ⓒ 임윤수
청천벽력처럼 들려오는 유방암 3기라는 진단 결과, 절제 수술에 따른 육신의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가장의 역할까지 짊어지고 있던 금선씨. 가장의 역할이 더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그래도 책임져야겠다는 의지로 버티며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금선씨는 그때의 고통을 '전장에서 반신이 잘려나가는 고통, 머리카락만 만져도 뼈까지 으스러질 듯한 그런 고통'이었다고 회상합니다. 갈빗살에 붙은 살점까지 도려내는 그런 수술을 받고는 그 통증이 너무 심해 간병을 하고 있는 언니에게 '차라리 죽여 달라'는 애절한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며 그때의 아픔을 회상하듯 들려줍니다.

할 일이 있기에, 해야 할 일이 있기에 어느 정도의 회복기를 거쳐 몸을 추스르고는 99년 하반기부터 맨발 등산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금선씨 자신은 물론 책임져야 할 3남매의 운명이 당신의 몸을 땅처럼 의지하고 있으니, 자연의 어머니인 대지를 지탱해 벌떡 일어서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금선씨의 맨발등산은 해가 거듭되면서 웬만한 산들은 한두 번씩 오르게 되는 그런 경력을 낳게 되었답니다.

▲ 맨발로 걸으며 발바닥으로 길에서 담아온 이런저런 느낌이라도 음미하는 듯 달콤한 표정입니다. 돌 맛은 어떤 맛이고, 흙 맛은 어떤 맛인지 맨발이 느꼈을 그 맛들이 궁금합니다. 금선씨! 지금 행복하신 거죠?
ⓒ 임윤수
정말 발이 아프지 않으냐고 다시 한 번 또 물었습니다. 너무도 태연한 목소리로 '누구나 다 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오르는 길은 아프지도, 특별하게 고통스럽지도 않지만 내리막길, 특히 노면이 흙이나 돌이 아닌 마사(磨砂)일 경우엔 아프기도 하고 통증을 느낀다고 말을 합니다. 맨발등산을 하는 그동안, 뭔가에 발을 찢기거나 다친 적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우연인지 다행인지 아직까지는 그런 적이 없다고 합니다.

지금의 모습처럼 아름답고 건강한 삶을...

'탄탄한 근육질로 체격이 좋게 보여 전혀 아팠던 사람처럼 생각되지 않는다'고 하니 금선씨가 제일 싫어하고 피하는 게 다른 사람과 어울려 잠을 자야 하는 장거리 여행이라는 말을 합니다. 무슨 말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고 부탁을 하니 '금선씨가 말하는 자신의 벗은 몸은 1급 장애인 수준'이라고 합니다. 도려낸 젖가슴은 물주머니로 대신했고, 얼기설기 꿰맨 수술자국이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엉망이기에 남에게 자신의 맨몸을 보여줘야 하는 그런 여행을 가장 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건이 되지 않아 그러지 못하고 있지만 '흉터 부분을 수술을 하고 조금만 뜯어고치면 아직은 쓸 만한 그런 40대 아줌마'라고 하며 들려주는 너털웃음에는 왠지 상흔 같은 아픔이 배어 있는 듯했습니다. 금선씨는 이미 커다란 고통을 겪어 고통이 뭔가를 알고 있기에, 누군가가 겪어야 할 고통, 무형의 죽음에 시달려야 할 그 고통을 기꺼이 나누기 위해 일찌감치 장기기증도 서약해 놓은 상태라고 합니다.

▲ 보십시오! 천왕봉을 가득 메운 그 누구도 맨발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한 사람, 금선씨 뿐이었습니다.
ⓒ 임윤수
직장생활을 하며 통장까지 맡고 있는 금선씨는 주말이 되면 다시금 가방과 신지도 않을 등산화를 챙겨 어느 산인가를 오르게 될 겁니다. 남들이 보기엔 험한 산길을 내딛고 있는 그녀의 발끝이 무척 고통스럽게 보이겠지만 정작 금선씨는 그들이 관념적으로 상상하는 그 통증에서 살아가며 맞닥뜨리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과 방편을 얻을지도 모릅니다. 맨발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연약한 맨발로 이 산 저 산을 정복하였듯 어떤 난관도 금선씨는 그렇게 극복해 나갈 거란 믿음이 갑니다.

내년에 딸이 시집을 가면 금선씨의 사회적 호칭은 아줌마에서 자연스레 할머니로 업그레이드 될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아줌마에서 할머니로 그 호칭이 바뀌어도 지리산을 맨발로 오르던 그날의 당당한 모습처럼 꼿꼿한 그런 삶을 살아가실 겁니다. 땅에서 솟구치는 지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타박타박 걸어 삼천리금수강산 빠짐없이 정복하길 바랍니다.

▲ 두 손을 들어 환하게 웃어주던 그 웃음처럼, 당당하고 꼿꼿하게 옮기던 그 맨발처럼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 될 겁니다.
ⓒ 임윤수
넉넉하게, 맏며느리의 후덕한 모습으로 맑은 웃음을 보여주셨지만 맨발 등산을 시작한 금선씨의 아픔을 듣게 되니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금선씨의 오늘까지 삶이 통곡 같은 웃음으로 살아야 하는 인고의 세월이었다면 이제부턴 3남매와 그 자손들에게 존경받는 어른으로 굳건하게 존경받는 그런 행복하고 건강한 삶이 영위되길 바랄 뿐입니다.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던 금선씨의 호탕한 웃음이 메아리처럼 머릿속과 귓전에 맴돌고 있는 건 맨땅에 우뚝 선 금선씨의 맨발이 기인의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일 겁니다. 남녘산하를 정복한 금선씨의 굳건한 정신력과 이를 드러낸 금선씨 맨발 파이팅! 

출처 : 맨발걷기의 즐거움과건강
글쓴이 : 맨발대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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