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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맨발 산행 14년, 나도 자연도 가벼워지다

맨발나그네 2009. 6. 27. 07:25

 

 

맨발 산행 14년, 나도 자연도 가벼워지다
한겨레
나의 자유 이야기 /

내가 맨발로 산행을 시작한 것은 14년 전인 1993년부터였다. 그 무렵, 나는 일년에 한번 꼴로 단식을 했는데 그 해 여름에는 24일간의 비교적 긴 단식을 시도했다. 단식은 몸과 마음을 비우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문명의 때를 씻고 자연과 가까워지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처음 신을 벗어든 곳은 산을 한 바퀴 돌아 내려오는데 두 시간 남짓 걸리는 야트막한 산 어귀였다. 맨발로 산을 걷다 보니 작은 유리조각과 쇳조각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나는 더욱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전에는 왜 보이지 않았는가. 신을 벗고 보니 산 전체가 거대한 쓰레기장이었다.

우선 발을 찌를지도 모를 유리조각부터 줍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차츰 욕심이 생겨서 인간이 남겨놓은 온갖 문명의 찌꺼기들을 보이는 대로 주머니에 넣어서 내려오곤 했다. 산행이 잦아질수록 수확량도 늘어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봉지를 들고 다니며 본격적으로 산 청소를 하게 되었다. 봉지의 크기는 점점 커졌다. 시야도 넓어져서 산길을 벗어난 숲속에 묻혀 있던 유물(?)을 발굴한 적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똑같이 손에 봉지를 든 맨발의 사내와 마주쳤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초로의 신사였는데 사람을 보면 언제나 합장을 했다. 나는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신을 신는다. 그런데 이 범상치 않은 ‘맨발의 신사’는 나보다 한 수 위였다. 그는 하산 후, 귀갓길에서까지 맨발로 도로를 활보하는 것이다. 우리는 산에서, 도로에서 자주 마주쳤다. 그러나 서로 미소만 지을 뿐 누구도 말을 건네지 않았다.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나는 그가 누리는 자유의 의미를 안다. 그는 산과 도시, 어느 쪽에서도 거리낌 없는 자유인이었다. 그의 영혼 또한 정녕 그러하였으리라.

세월이 흘렀다. 나는 산에서 사람을 만나면 두 손을 모은다. 그리고 산을 벗어나도 집에 도착할 때까지 신을 신지 않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름 모를 스승을 닮아버린 것이다. 간혹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묻는다. “발이 아프지 않은가”, 혹은 “발을 다친 적은 없느냐”고. 이제 다시 한 번 고백하건대 14년 동안의 맨발 산행에서 발을 다친 적은 단 한 번, 돌부리를 차서 엄지발가락에 작은 상처가 생긴 일 뿐이다. 이 정도라면 신발을 신고, 부상할 확률과 비슷할 것이다. 그러니 누구든 약간의 주의만 기울인다면 안심하고 신을 벗어도 좋다. 자, 신을 벗고 자연에 경배하라. 맨발의 자유, 영혼의 자유를 위하여!

최윤하/한나채식연구회 대표

출처 : 맨발걷기의 즐거움과건강
글쓴이 : 맨발대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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