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셔온글)
간암, 폐암, 인파선 암을 인간 승리로 극복한 청계산 ‘맨발맨’ 이주선 | |||||||||
“살아날 확률이 1/1000? 제가 그 기적의 주인공입니다” | |||||||||
기적이라는 걸 믿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웃으며 한 귀로 듣고 흘릴 말이 바로 ‘기적’이라는 단어다. 하지만 기적을 믿었던 이주선씨는 병원에서도 포기한 말기 암을 극복하고, 멀쩡해진 몸으로 산을 활보하고 다닌다. 정말 기적이라고밖에 설명이 안 되는 일을 몸소 겪은 청계산 맨발 산행의 달인, 이주선씨를 만났다.
간암, 임파선암, 폐암, 무려 3개의 암에 걸려 죽을 날만 기다려야 했던 이주선씨(58). 그가 맨발 산행을 통해 암을 극복했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것도 의사가 “당신이 살 수 있는 확률은 1천분의 1도 안 됩니다”라며 사실상 진료 포기를 선언했던 말기 암 환자가 말이다. 기자는 이 놀라운 소문의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10월 어느 날 오후, 청계산을 찾았다. 청계산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이주선씨. 맨발에 등산복 차람의 그를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옆집 아저씨 같은 푸근한 인상을 지닌 그는 “멀리서 오느라 수고했다”며 “그럼, 올라갈까요?”라면서 바로 청계산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의 집에서 청계산 입구까지는 걸어서 10여 분 거리. 이렇게 가까운 곳에 살기 때문에 그동안 맨발로 청계산을 수천 번씩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가능했단다. 발 밑에 유리 파편과 거친 돌이 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그 잔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밟고 지나갔다. “조심하세요~!”라고 기자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자 “이 정도쯤은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괜찮다”며 웃어 넘긴다. 밝은 혈색과 천진난만하게 웃는 표정이 과연 죽음 문턱에까지 갔다 온 사람이 맞을까 의아할 정도였다. 그에게 암 판정을 받게 된 게 언제쯤인지 물었더니 “내가 병원을 나온 지가 벌써 11년이나 됐다”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그는 원래부터 간이 좋지 않았다. 1995년에는 간경화가 악화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2년 뒤 1997년 4월 속이 아파서 다시 병원을 찾았고, 그 사이 간경화는 간암으로 발전해 있었다. 그것도 간암 말기에 혈관에까지 전이가 돼서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이었다. 의사 앞에서 태연하게 모든 설명을 들으며 김씨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다음해인 1998년 5월과 8월에는 잇따라 3cm 정도 크기의 암세포 덩어리가 그의 간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게 시련의 끝이 아니었다. 1999년 3월에는 임파선과 폐에도 암 덩어리가 보인다는 판정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혈관에까지 전이가 된 상태이기 때문에 미국에 가서 치료를 받아도 힘들다”며 “지금 상태로는 항암제밖에 방법이 없는데 항암제가 생명을 연장시킬 수도 있고, 후유증이 심해서 생명을 단축시킬 수도 있으므로 잘 결정하라”고 전했다. 이씨의 주장으로 항암제를 투입했더니, 백혈구 수치가 1,500 이하로 떨어져서 다시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에 병원에서는 “이런 경우 살아날 확률은 거의 없다. 6개월을 넘기기 힘들다”는 절망적인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이주선씨는 “내가 기적의 주인공이 되겠습니다”라며 병원을 박차고 나왔다. 그때가 1999년 6월이었다. 가족과 지인들은 장례 절차 의논 병원에서 나왔지만 막상 어디서부터 무얼 해야 할지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문득 집 뒤에 있는 청계산을 바라보니 푸르른 산이 그렇게 웅장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집을 나와 산을 향해 걸었다.
그렇게 유리와 밤송이에 찔려 피가 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집에 돌아오면 아들이 발에서 밤송이 가시를 빼내면서 일부러 상처를 내기도 했다. 이제 그만 맨발로 다니시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상처가 아물어서 걸을 만하면 다시 맨발로 집을 나섰다. 그의 맨발 산행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지금처럼 건강한 상태에서는 1시간이면 올라갈 거리를 처음에는 무려 백 일이나 걸려서 올라갔던 것. “청계산 꼭대기 옥녀봉까지 오르는 데는 1시간 정도가 걸려요. 그런데 암세포가 온몸에 퍼진 환자가 무슨 힘이 있어서 산을 오르겠어요. 게다가 병원을 나왔으니 진통제도 못 맞아서 통증이 엄청났거든요. 그래서 이를 악물고 조금씩 올라갔죠. 결국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데 석 달 하고 열흘이나 걸리더라고요. 그런데 그 꼭대기 위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세요? ‘아, 이제 난 살 수 있겠구나였어요’ 그가 처음 병원에서 나왔을 때 사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포기 상태나 다름없었다. 가족과 교회 지인들, 친인척들 모두 그가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산 사람을 옆에 두고 장례식 준비를 의논했다. “교회장으로 치러야 하느니 어떠느니” 하면서 말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아직도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는데. 그러나 정작 그는 한 번도 죽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신앙이 있어서 그런지 죽음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없었어요. 병으로 잘못된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그냥 살 것 같았어요. 사실 환자들이 자신의 병을 알고 나면 두려움에 못 견뎌서 더 고통스러워해요. 내 친동생도 1998년에 간암으로 죽었어요. 저녁에 무서워서 잠을 못 자더라고요. 그게 병 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죽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가족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해요. 환자에게 희망을 줘야 하거든요. 그런데 99%가 그렇지 못하더라고요.” 맨발 산행 1년 6개월 만에 암세포 없어져
하지만 그는 맨발 산행을 멈추지 않았다. 그 전보다 더 열심히 맨발로 산을 누볐고, 사람들과 즐겁게 인사를 나누었으며, 아무거나 다 열심히 먹었다. 평소 좋아하는 라면과 커피도 아랑곳하지 않고 잘 마신다. “지금 와서 내가 현미밥을 해 먹자고 하면, 우리 아내는 힘든 투병생활에도 안 먹었던 현미밥을 왜 먹냐고 투정이에요. 하하하.” 암 환자에게 필요한 건 살 수 있다는 자신감 ■글 / 김민주 기자 ■ 사진 / 이성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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