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순응하는 산행법]
[자연에응하는 산행법]
1.들어가면서
흔히들 발을 건강의 거울이라고 한다. 그만큼 발이 중요하다는 말일 터이다. 발은 평생 동안 우리 몸을 지탱하고 움직이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기관이다. 발에는 26개의 뼈와 38개의 관절,107개의 인대,19개의 근육이 있으며 특히 우리 몸의 206개 뼈 가운데서 약 1/4인 52개가 양쪽 발에 모여 있다.
발이 늙는다는 것은 우리 몸도 늙는다는 것을 뜻한다. 발의 살갗이 메마르고 발톱이 바스러지고 발이 쑤시거나 저리고 자주 냉기를 느끼며 발의 색깔이 변한다면 노화의 한 징조라고 발전문의들은 진단한다.
걸음을 걸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자신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의사나 발전문가들도 걷기가 건강을 지키는 가장 좋은 운동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문제는 신발을 신고 걷느냐,타고난 맨발 그대로 걷느냐이다.
(1) 왜 이 글을 쓰게 되었는가?
이 글을 쓰게 된 근본 동기는 산행의 한 방법으로써 맨발산행을 하는 사람들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맨발 산꾼이란 한마디로 말해서 삶의 한 형태인 맨발을 택하여 산행을 즐기는 사람을 말한다. 여기서 맨발 산꾼이란 일시적으로 집 주위나 해변가를 맴도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많은 시간을 내어 맨발이 되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나 맨발로 산행을 하는 사람들은 그 수효가 지극히 적다. 따라서 이들은 사람들의 주목도 받지 못할 뿐더러 올바른 평가도 받지 못한 채 사람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피해 음지에서 맨발 산행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이 글은 그런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고 사람들 앞에 당당히 나서도록 격려하여 스스로 설 땅을 마련하는데 있다 할 것이다.
왜냐구요? 그 까닭은 맨발은 기분 좋다는 것, 신발이 발을 편안하게 해준다 할지라도 결국 발은 불편하다는 것과 어떤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맨발은 단지 기분 좋은 느낌 그 이상이다. 그건 우리가 평생 잊고 있던 감각기관인 발바닥으로부터 전해오는 무한한 즐거움과 갇힌 발의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잘 때만 빼곤 신발을 꼭 신는다. 그래서 항상 발을 대지로부터 차단시킨다. 그러는데 어떤 유전인자가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이제 신발이 없는 세계는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신발 속에 있는 발은 다치지 않는다는 통념을 깨고, 우리와 같은 맨발 산꾼들에게 신발을 벗어버리는 순간은 어떤 위안이요 기쁨이다.여름철 내내 맨발로 있으면 우리의 인격이 바꾸어지는 걸 느끼게된다. 맨발로 산행을 하면 우리는 늘 평화스럽다. 우리는 동료에게 친절하게 되고 관대해진다. 스트레스와 고민 따위는 날아가고 우리의 발이 자유스러운 한 슬픔도 참아낼 수가 있는 것이다.
예로부터 선인(仙人)들은 발바닥으로 숨쉬고 범인은 코로 숨쉰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우리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영혼이 발바닥 속에 산다. 그리고 그들은 빛과 공기와 자기표현을 끊임없이 동경한다. 우리의 발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풀이나 진흙 혹은 아스팔트와 자갈, 바위를 느끼는 촉각기관인 발은 우리의 눈이나 귀처럼 소중한 게 틀림없다.
그러나 신발을 벗고 맨발이 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맨살을 드러내놓는 것을 금기시하는 풍토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점은 미국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맨발이 위험한 것으로 잘못 알려지는 바람에 많은 공공시설에서 푸대접을 받고, 사람들이 성급한 판단을 내려 맨발꾼을 경멸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신발을 신어야 한다는 사회적인 강력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맨발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맨발이 되면 무언가 즐거움을 준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맨발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인 견해는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불과 몇 십년 전만 해도 농촌에 살았던 나이 든 사람들은 신발을 신지 않고 김을 매고 일을 한 기억을 즐겁게 회상한다. 아니 1세기 전만 하더라도 지구상의 사람들 대부분은 맨발로 다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글을 쓰게 된 참 동기도 맨발 산꾼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우리 부모들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맨발이 되었던 자유를 되찾기 위해 우리의 기록을 바로잡는데 있다 할 것이다.
(2) 생각의 틀을 깨라
크게 보면, 맨발을 선호하는 것은 그 사람의 부정적인 성격이나 삶의 스타일에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직함이나 종교, 정치적인 견해 또는 사회적 신분과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사회의 궤도로부터 일탈한 사람들, 히피족이나 거지와 관련시켜 맨발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도 물론 맨발로 다니긴 하지만 대체로 그들은 우리가 말하려는 논지에서 벗어나 있다.
맨발 산꾼은 치열하게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들은 기술자이며 교사이고 사진가요 저술가이며 연구원이고 회사의 중역들이다. 우리들은 보수적이면서도 자유로우며 우리들 중에는 불가지론자도 있고 여러 종교의 헌신적인 추종자도 있다.
맨발 산꾼은 나이나 인종을 초월한다. 통상 우리는 맨발이 신발을 신는 것보다 편하고 발 건강에 훨씬 이로우며 더욱 더 발의 감각을 즐길 수 있다고 믿는다. 맨발로 산행을 하다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환경을 잘 인식하게되고 그 환경을 진정으로 보호하려 한다.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맨발은 무례함이나 야만행위 또는 어떠한 파괴적인 행동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예를 들면, 유리병을 깨는 것은 신발을 신은 사람들인 반면 깨트린 유리를 몸소 치우는 것은 맨발 산꾼이다.
게다가 맨발은 시끄러운 소음을 내지 않으며 땅에 손상을 주지도 않고 흠집이나 상채기를 내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맨발보다 더 훌륭한 것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맨발 산꾼은 자연예찬론자들이며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3) 맨발은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맨발은 간혹 60년대의 한물간 히피 스타일과 관련시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맨발꾼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1914년 제임스 L.M.베인은 『맨발 걷기의 미덕과 즐거움』이란 논문에서 ‘맨발 동맹’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나는 맨발 걷기를 계속했다.나는 흙의 감촉을 사랑했고 그러기 위해 많은 시간을 바쳤다. 그뤼예르 산맥의 아르마이릴리에 살았을 때, 나는 여름 내내 거의 신발을 신지 않고 살았다. 풀과 꽃으로 뒤덮인 가파른 비탈, 그 향기와 색깔을 몇 킬로미터에서도 느끼던 천 미터에 이르는 가파른 비탈을 오르는 즐거움 또는 따뜻하게 더워진 암벽 옆구리를 따라 맨발로 기어오르는 즐거움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 주제만으로도 한편의 시가 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이어서 그는 “이렇게 청년시절과 장년시절을 거치면서 맨발로 단련을 해왔고 이 늙은 나이에도 유순한 골짜기 사이로 솟아오르는 여명을 보기 위해 산책을 나가거나 산을 오를 때 샌들이라도 신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결코 없다. 단언하건대 신발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든다. 그러나 산이나 큰길에서가 아니라면 또 사람들이 아직 잠든 시간이 아니라면 어찌 그런 인습에 사로잡히지 않는 방법을 결행할 수 있겠는가. 런던의 포장도로를 걸으며 기쁨의 에너지를 들이마시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아 잊지 못할 아테네의 그 맛! 이렇게 몇 킬로미터를 계속 걸어 끝날 무렵이 되었는데도 내 몸은 지치기는커녕 오히려 찬란한 에너지로 불타올랐다.”고 적고 있다.
2.맨발 산꾼에 대한 차별대우
맨발 산꾼을 차별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첫째는 자신의 맨발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나 맨발이 사회적으로 위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둘째는 대체로 맨발을 싫어하고 그런 견해를 정당화하기 위해 마음대로 이유를 둘러대는 사람들의 두 부류이다.
맨발 산꾼에 대한 차별은 부분적으로 사람들이 맨발에 대해 갖고 있는 어떤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나온다. 유감스럽게도 인간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는 적대시하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 맨발 산꾼이 아닌 사람은 맨발 산꾼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반대도 사실이다. 그들이 맨발 산꾼에 대해 지닌 이미지는 겉으로 보기에는 알콜중독이나 마약남용 그리고 게으른 생활태도 때문에 신발을 신지 못하는 미숙하고 무책임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우리 맨발 산꾼들은 맨발로 산행을 한다. 왜냐면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환경을 가장 잘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발바닥은 본디 기가 막힐 정도로 민감하므로 몇 개월 동안만 맨발이 되어도 그걸 실감할 것이다.
신발을 신은 사람이 맨발로 자갈길을 걸어가는 젊은 연인들을 보았을 때 “자갈 위를 걸으면 몹씨 고통스러울 텐데.....”라는 잘못된 믿음 때문에 “발바닥이 무감각해져서 아무 것도 못 느낄 거야.” 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 연인들도 풀잎 하나 하나 자갈 한개 한 개를 느낀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은 여름 내내 아니 일년 내내 맨발이 되었다. 그들의 맨발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모든 것을 느끼지만 실제로 그들을 해칠만한 아픔에 대처하는 훈련을 오래 전부터 해왔다. 따라서 그들은 자갈길을 걸어가면서도 웃을 수가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인간의 유감스러운 버릇은, 개인의 참된 선택이 더 좋은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그저 다수를 따르려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자신이 선택한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납득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그 다음으로는 저 악명 높은 “깨진 유리조각” 논쟁이 기다리고 있다. 내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이러한 두려움은 근거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깨진 유리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도심의 거리일지라도 아무 데나 유리가 있진 않다. 방금 깨진 유리가 아니라면 채이기도 하고 갈라져 담벼락으로 치워져 길바닥에 흩어져 있지는 않을 것이다. 설령 유리조각이 남아 있더라도 걸어가면서 조심하면 된다. 발바닥을 강하고 두텁게 훈련한 맨발 산꾼이라면 그 유리를 밟더라도 거의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막상 맨발 산행을 해보면 숲 속 산길은 도심의 도로보다 훨씬 안전하다.
맨발의 안전을 위협할 또 다른 두려움은 상처에 대한 위험이다. 무심코 날카롭게 튀어나온 물체를 밟아 몸무게가 쏠리면 발바닥 표면은 튀어나온 물체의 공간만큼 그 물체를 받아들인다. 이렇게 함으로써 발바닥이 찔리는 것을 막아준다. 그런데 발바닥이 찔려 상처가 날 위험은 신발을 신었을 때보다 맨발일 때 훨씬 큰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발바닥은 그런 것에 찔리지 않을 만큼 스스로의 방어력을 갖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3.맨발은 건강의 지름길
맨발은 “시원함”이나 “상쾌함”을 주는 것 말고도 건강에 매우 좋다. 그리고 많은 맨발 산꾼 역시 그 같은 유익한 효과 때문에 맨발이 된다. 사실상, 신발을 신을 때보다 오히려 맨발일 때 더 안전하고 편안함을 느낀다는 맨발 산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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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맨발은 자연의 뜻.
맨발이 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맨발이란 부자유스러우며 다른 동물의 그것과 달리 인간의 발만이 형편없이 만들어졌고 연약하다고 생각한다.그러나 이것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수긍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53년 힐러리 경이 에베레스트를 정복했을 때 그가 고용한 네팔의 셀파들은 모두 맨발이었다 한다. 그들은 눈 속에서도 맨발로 아무 탈없이 견뎌냈다. 그리고 이보다 몇 년 전에 중공이 티베트를 침공하자 1959년 그 학정에 시달린 달라이라마와 그 일행 모두 맨발로 험준한 히말라야 설산을 넘어 인도로 망명했다. 이때 그 어느 누구도 발에 동상이 걸렸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좀더 거슬러 올라가서 스틸 F 스튜어트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국과 아시아에 있는 수백만의 인디언들과 아프리카인들은 자신들이 태어난 초원과 비 내리는 숲 속을 아무 것도 걸치지 않고 한마디 불평이나 불만 없이 돌아다닌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신발이란 전혀 쓸모 없는 것이다. 우리들은 맨발의 원초적인 즐거움과 그들의 무고통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발이 본래부터 연약하다는 견해는 자연도태의 개념에 어긋난다고 하겠다. 어쩌면 신발을 신음으로써 발이 도태되는 건 아닐런지 모르겠다. 한번도 신을 신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거의 발병이 생기지 않으며 대개 그들은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쇠약하지도 않다. 이들의 발 동작은 놀랄 만큼 대단해서 발 전체를 움직일 정도다. 건강한 발에는 신발이 불필요하며, 신발은 대부분의 발병을 일으키게 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2) 맨발이 되면 건강해진다.
많은 사람들은 맨발이 되면 무좀이나 발병이 잘 나고 발이 쇠약해질거라 생각한다.“무좀은 전통적으로 맨발인 민족들 가운데서는 발생하지 않는다. 발이 축축하고 땀나고 공기가 제대로 순환되지 않을 때 무좀균이 자랄 수 있는 완벽한 조건을 제공하는 셈이다.”라고 미국피부학회는 밝히고 있다.
또 맨발의 종족을 관찰해온 연구가들은 “인간의 자유롭고 자연스런 발은 신발을 신은 사람들한테서 흔히 나타나는 발장애,예컨대 엄지발가락의 못, 굳은살, 망치발가락, 엄지발가락 안쪽의 염증, 발의 통증 따위와 무관하다”고 보고하고 있다.
맨발 그 자체는 악취가 나지 않는다. 발과 손의 땀샘 사이에 차이점은 별로 없다. 발에서 악취가 나는 것은 신발을 신고 몇 시간 가량 땀을 흘린 뒤에 비로소 악취가 난다. 발 그 자체가 냄새를 내기 때문에 당연히 악취가 난다고 믿는 많은 신발꾼들의 생각은 틀린 것이다.
끝으로 발은 몸 바깥에 나와 있는 오장육부라는 말이 있다. 발바닥으로 흙과 자갈과 바위 따위를 밟게 되면 자연스럽게 지압이 이루어져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몸 안의 기혈을 원활하게 해준다고 한다. 실제 맨발로 며칠간만 산행을 해보면 발이 더워지면서 신체에 변화가 일어남을 감지할 수가 있다.
그리고 맨발산행을 해보면 모든 의식이 발바닥에 쏠리기 때문에 차분해지고 들뜬 마음은 사라지게 된다. 머리는 맑고 투명하며 그러면서도 즐겁고 유쾌한 기분이 온몸을 감싼다. 그리고 맨발로 산행을 해보면 발바닥이 단련이 안 돼 종종 발바닥이 아픔을 느끼는 경우는 있어도 “발의 피로”는 거의 느낄 수가 없다.
(3) 맨발은 결코 연약하지 않다.
허벅지살에 견주어 발바닥살이 아픔을 느끼는데는 약 6배에 이르는 엄청난 하중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발바닥살의 두께는 보통 살갗보다 10배나 두껍다고 한다. 따라서 통상 신발을 신은 사람들이 맨발로 산행을 해도 상처가 날 위험은 극히 낮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맨발의 활동을 조사하여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신발을 전혀 신지 않는 사람의 발은 주로 발 앞부분의 움직임이 탁월하다”고 하는데, 발바닥살이 1cm까지 두터워지더라도 발가락을 분산시키고 중족골과 지골을 잘 정렬시킴으로써 발의 뒤틀림을 막아주며 몸무게가 걸리는 발 아치의 이동이 용이하다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발바닥살이 튼튼해지면 발바닥이 상처를 입지 않고도 맨발로 보통보다 빠른 속도로 오랫동안 이동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것은 신발에 의해 구속받지 않고도 사람의 발이 운동에 얼마나 잘 적응하는지를 알려주는 증거라 하겠다.
맨발산행의 결과 발바닥살이 두터워진다고 해서 발바닥이 그만큼 딱딱해져서 죽은살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발바닥은 오히려 매우 활동적이며 살아있는 피부층으로 변한다. 그런 점에서 어떤 맨발 산꾼은 아주 두터운 발바닥 쿠션에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4) 어떤 신발은 해롭다.
어떤 신발은 자라는 어린이들에게 대단히 해롭다. 이 점에 대해 벤자민 죠셉 박사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 어린이들이 발병원을 찾는 가장 흔한 이유는 평발 때문이다. 그러나 인도의 어린이들이 평발을 치료하러 발병원을 찾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평발 때문에 병원을 찾는 소수의 어린이들은 대개 부유한 도시의 가족들로 모두 신발을 신고 있는 사람들이다.
신발을 신는 6살 어린이와 신발을 신지 않는 같은 또래의 어린이들 가운데서 평발을 잘 관찰해보면 발 아치의 발육은 6살 이전에 결정적으로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즉, 아주 어릴 적부터 신발을 신으면 정상적인 아치 즉 발 중앙의 수직 아치의 발육에 해롭다는 것이 드러난다. 신발을 신는 어린이 가운데서 평발이 될 가능성은 인대가 늘어날 때 제일 크다. 따라서 어린이들은 신발을 신지 않고 놀도록 권장해야 하며 신발 콧등이 막힌 것보다 슬리퍼나 샌들이 훨씬 덜 해롭다는 점을 깨닫게 해줘야 한다.”
따라서 발을 제대로 발육시키기 위한 최적의 조건은 맨발의 환경일 때이다. 어린이들은 모름지기 맨발로 활동에 참여하도록 권장해야 한다. 결국 유아용 신발은 어린이의 발 성장에 극히 위험을 초래한다. 어린아이용 신발의 소위 감상적인 가치는 이제 무의미하다.
오늘날까지 무지한 대다수의 부모들은 신발이 자기 얘들의 발을 변형시키며 평생동안 쇠약한 조건을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정말 믿으려 들지 않는다. 어린아이들은 그 어떤 누구보다 먼저 맨발이 되어야 한다.
한편 어른들, 그 중에서도 특히 달리기꾼들에게 지금의 모든 달리기용 신발은 신발의 제법상 상당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로빈스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오늘날의 운동화는 걷거나 달리거나 점프할 때 발바닥에 놀라울 정도로 편안함을 주고 있다. 그러나 부상을 당하기 쉬운 발바닥의 하중은 실제 감지할 수 있는 불편함을 하찮은 것으로 이끌어 실제의 충격에 비할 때 본인이 느끼는 충격을 대수롭지 않다는 가상의 환상을 만들어 부적절한 충격에 순응하도록 함으로써 끝내는 부상을 당하게 된다.”
맨발 인구가운데서 달리기와 관련된 부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데 이것은 맨발로 달리도록 길들여진 사람들이 훨씬 충격을 덜 받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울러 이것은 팔다리는 본래 견뎌낼 수 있는 제 스스로의 능력이 있는 반면, 신발을 신게 되면 부상을 당하기 쉽다는 점을 암시한다. 신발을 신은 달리기꾼에게 오랫동안 과부하가 걸리는 문제를 해결하는 확실한 방법은 맨발로 달리도록 권장하는 것이다.
[주]이 글은 1998년,부산시인협회에서 펴내는 계간 산행지,
"풀나무돌"에 연재되었던 것을 다시 고쳐 썼다.
다음은 맨발산행의 실제 <맨발산행 따라 하기>를 다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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