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나그네/맨발걷기 경험담

끝내 우리를 외면한 ~~금강산 신선봉

맨발나그네 2009. 7. 6. 17:39

끝내 우리를 외면한 ~~금강산 신선봉

 

● 산행일시 : 2009년 7월 4일                

● 누 구 랑 : 화성시 등산연합회 회원들이랑

● 산행코스 : 화암사입구 - 수암 - 선인재 - 상봉 - 화암재 - 화암사

● 사진은 ? : 언제나님, 따스한마음님, 김정헌님, 제니님, 산사니이님, 풍류님등

 

  오늘은 화성시 등산연합회가 금강산 신선봉으로 특별산행하는  날이다. 설악의 끝 미시령 너머 백두대간의 남한쪽 끝자락에 자리잡은 신선봉은 금강산 일만이천봉의 남한쪽 다섯봉우리중 그 첫번째 봉우리이다. 한동안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직접 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그나마 가볼 수 없게 되었지만, 금강산 한쪽 구석을 찾이하고 있기는 하지만 엄연한 금강산의 한 봉우리인 신선봉을 찾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 보다. 그런데 이 신선봉이 지금은 설악산 국립공원에 편입되어 관리되고 있다고 한다.

   아침 7시 수원을 출발한 일행은 길이 밀려 예상보다 늦어졌다. 며칠전부터 살폈던 일기예보에는 영동지방이 약간 흐리기만 하지 비 소식은 없었다. 그런데 미시령 터널을 지나자마자 이슬비가 우리를 맞는다.

미시령을 넘어 속초로 가다가 대명콘도를 우측으로 끼고 돌다보면 왼쪽에 '金剛山 禾巖寺'라는 이정표가 있고, 그 길을 따라 한 5분 더 올라가면 일주문이 나타난다.  일주문에도 어김없이 '金剛山 禾巖寺'라 당당히 내건걸 보면 이곳은 분명 설악이 아닌 금강이 맞나보다. 

 

                              

                             

                             

                              

 

   하여튼 일주문을 지나 버스에서 내린 일행은 비설걷이를 하고는 산행을 시작한다. 수암을 거쳐 선인재로 오르는 동안 일행은 비옷을 벗었다 입었다 하며 계속 걷는다. '출입금지'표지판이 있어 좀 그렇기는 한데 등산로가 제법 잘 닦여진 것으로 볼때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여튼 선인재로 오르는 길은 완만한 소나무 숲이다가, 선인재에 도착할 무렵부터는 모래처럼 부스러진 콩알돌이 나를 맞는다. 바위가 풍화작용으로 부셔져 깔린듯하다. 미시령의 매서운 바람이 휘돌아 바위조차도 잘게 부수어 놓았나보다. 거기다 비에 흙은 씻겨 내려가고 콩알돌만 남아 나를 맞이한 것이다. 맨발인 내게 첫번째 시련이 다가온 것이다. 하지만 이러길 한두 번이든가 의연한척 길을 재촉한다.

 

                             

                              

  이렇게 오른 선인재. 편평한 바위로 이루어진 반석이다. 이곳을 이미 여러차례 오른 이회장에 따르면 무지 무지 경관이 좋은 곳이란다. 설악의 울산바위가 지척에 보이고, 미시령이 발아래 있으며, 대청봉까지의 웅장함을 맛볼 수 있는 곳이란다. 아마도 옛 선인들이 이곳 반석위에 앉아 설악을 병풍삼아 동해의 출렁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도를 닦던 그런 자리이기에 부쳐진 이름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에게 그런 복은 없었다. 같이한 쌩쥐님 내외분은 작년에도 이곳에 들렸는데 주변 조망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번 산행길에 동행이 되었는데 올해도 마찬가지란다. 그저 뿌연 안개만이 흩어져 세상을 뿌였게 만들고 있다. 점심을 먹기로 한다. 그래도 비줄기는 잦아들어 그냥 안개에 쌓인채 밥을 먹으니 비에 말아먹는 불상사는 없을듯 하다. 어째거나 맛있게 점심을 먹고 신선봉를 향한다.

 

                             

                             

                              

                                

                              

                             

                               

선인재에서 상봉까지의 길은 지겨울 정도로 긴 암능 아니면 너덜지대이다. 우리가 가야할 신선봉이 아직도 시야에 안들어 온다. 그저 몇십미터 앞이나마 보이는게 다행이다 싶다. 그놈의 안개 때문에... 완만한 경사길에는 키작은 참나무 숲을 이루기도 하고 또 한참을 걷다보면 한참 긴 침봉이 나타나 옆으로 우회도 하며 길을 걷는다. 날씨가 좋았드라면 정말 좋은 조망을 우리에서 선사했으련만, 그저 내 복이 여기까지 인가보다 하며 약간은 지루한 암능과 너덜지대길을 걷는다. 가파른 암능에는 보기에도 안쓰러운 낡은 로프가 그저 한가로이 우리를 맞는다. 바위를 비집고 세찬 동해의 바람을 막아서며 그 생명을 괜신히 유지하는 소나무등의 질긴 생명력에 감탄사를 보내며, 우리의 삶이 버겁더라도 저 나무만이야 하랴 싶기도 하다. 가는길 조그만 샘에서는 샘물이 졸졸 흐른다. 아마도 대간길을 걷는 사람들의 식수원 노릇을 한다는 신선샘(?)이 아닌가 싶다.

 

                           

 

드디어 상봉에 입성이다. 신선봉이 1214m이니 이 상봉(1244m)이 더 높은 봉우리이다. 정상에는 바위 너덜지대로 되어있고 조그만 정상석과 함께 돌탑이 쌓여져 있다. 설악의 주름을 한발짝 물러나 볼 수 있는 설악의 전망대라고 한다. 푸른 동해를 발아래 두고 북으로는 향로봉 넘어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굽어볼 수 있고 설악의 멋드러짐을 만끽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아! 통재라! 그저 뿌연 안개만이 우리를 맞는다. 그게 내 운명일진대 어딘가 섭섭하다. 다음에 다시 한번 와야겠다고 다짐해 보지만 그게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이던가.

 

 

 

 상봉에서 화암재에 이르는 길도 만만치 않다. 많은 바위 암능과 너덜지대를 통과해야 한다. 성봉을 조금 지나서는 김석렬 산행대장이 로프를 꺼내든다. 로프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데 일행이 그냥 통과하기는 무리라는 판단인가 보다. 일행중의 한분은 다리에 쥐가 난단다. 그래서 조금 많은 휴식을 갖는다. 휴식장소의 오른쪽은 엄청 높은 단애이다.그새 김대장은 바위 암벽에 붙어 석이버섯 채취에 열을 올린다.

 

 

                        

  그저 뿌연 안개속을 헤메며, 사람의 왕래가 많지 않아 괜신히 금그어진 산길을 걷는다. 그리고 화암재에 이른 시간이 선두가 17시 20분이다. 벌써 계획 세웠던 하산완료 시간이 이곳에서 동이 나 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신선봉을 다녀 올 경우 약 1시간에서 1시간 반이 소요될 것이란다. 회장님과 산행대장님등의 결정으로 신선봉은 포기하고 화엄사로 하산하기로 한다. 나도 이곳에서 안개 때문에 어둑어둑 해진 날씨와 비로 인해 젖어 있는 등산로의 위험을 생각해 맨발을 포기한다. 흙묻은 발을 그저 풀잎에 대충 털어내고 양말과 등산화를 신는다.

 

                         

                        

                         

                        

                         

                         

  아마도 신선봉 신선님이 단단히 화가 났나보다. 조강지처 광교산을 버리고 새애인이 되어 달라고 꼬리친 내가 잘못인가. 그래도 금강산 신선봉을 안아 보기 위해 먼길 마다하지 않고, 꼭두새벽부터 달려온 길 아니던가. 그런데 내게 그럭저럭 속살을 보여오다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니 안된다고 하니 말이다. 치마자락 꼭 붙잡고 안된다고 하는데 대략 난감이긴 하지만 뭐 사랑이란 꼭 거시기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니 금강산 한 귀퉁이를 밟아 본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후일을 기약할 수 밖에........ "내 늙어 꼬부러지기 전에 꼭 다시 한번 자네를 안으러 옴세. 그러나 자네 몸대신 선물로 준 야생화 때문에 그럭저럭 힘든줄 모르고 자네 품에 잠시 안길 수 있었으니 고맙네 그려"라고 속으로 그녀 신선봉과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해본다.

 

 

 

 

 

모두들 긴 산행에 지쳐 있는데 화암재에서 화암사에 이르는 길도 쉽지 않다. 길은 젖어 미끄럽고, 날씨는 어둑 어둑하여 사람의 왕래가 별로 없어 간신히 그어진 산행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회장이 후미를 위해 자주 꼬리표를 달아가며 길을 개척한다. 드디어 화암사 옆 계곡을 만나고, 그곳에서 발을 담그고 휴식을 취한후 화암사로 향한다. 출발할 때는 잘 몰랐는데 거대한 수암이 쑥 내앞을 가로 막는다.

 

 

 

 

  그리고 조금 더 앞으로 가니  금강산 일만이천봉 팔만구암자중 남쪽에서 시작하는 첫번째 봉우리 밑에 위치한 첫번째 암자인 화암사이다. 안내표지판에 절의 내력이 잘 적혀있다.

금강산 화암사(禾巖寺)의 이름은 원래 화엄사(華嚴寺)였다. 사적기에 따르면 신라 후기인 769년(혜공왕 5년)에 법상종의 개조인 진표율사가 창건을 했다고 적고 있다. 진표율사는 이절에서 수많은 대중에게 화엄경을 설했으며, 진표율사에게 화엄경을 배운 제자 100명 중 어느 날 하늘로 올라가고 남은 69명은 무상대도를 얻었다고 한다. 진표율사는 이 절집에서 지장보살을 친견하고 지장암을 지어 부속암자로 삼았다고 전한다. 화엄사를 화암사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1912년 경 부터인데, 이름을 바꾸게 된 이유는 절을 오르다보면 길 좌측에 높다랗게 솟은 왕관모양의 기암괴석이 있고 그 이름을 수바위라고 부른데서 기인하였다고 한다.

화암사는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신평리에 자리 잡고 있으며, 현재 강원도 문화재 자료 제114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1623년(인조 1년)에 소실되어 1625년에 복원이 되었으며, 그 후에도 몇 차례의 소실과 중창을 거듭하였다. 1912년에 화암사라고 이름을 고친 후 1915년에 다시 소실된 것을 복원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인해 다시 소실이 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 후 법당만을 다시 신축하여 전해오던 중 1991년 8월 신평 뜰에서 열린 제17회 세계잼버리대회의 일환으로 주변 정비계획에 따라 기존 법당을 철거하고 재정비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한다. 이절 남쪽에 있는 수바위와 북쪽에 코끼리모양의 바위가 있는데, 바위의 맥이 서로 상충하는 자리에 절터가 있어 수바위가 뿜어내는 열기를 이겨내지 못하여 여러 차례 화재를 겪었다고 전한다. 이런 연유인지는 몰라도 지금의 절은 창건당시 위치에서 남쪽으로 100m쯤 떨어진 장소에 있단다. 지금의 화암사는 고종원년에 또 화재로 소실되어, 그해 9월에 수봉으로 이전하여 건립하고, 한때 수암사라 이름 하기도 하였다. 현재 화암사 경내에는 삼성각, 미타암, 대웅전, 명부전, 설법당, 요사채, 종각, 금강누각, 일주문 등이 있으며, 일주문 앞에는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춘담대법사탑을 비롯하여 화곡, 영담, 원봉, 청암스님 등의 부도 15기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화암사라는 이름을 갖게 된 연유인 남쪽 300m 지점에 우뚝 솟아있는 기암 수(秀)바위. 멀리서 바라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모습의 기암이다. 이 수바위에서는 진표율사를 비롯해 여러 스님들이 정진을 하였는데, 바위 위에는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샘이 있다고 하며, 이곳에서는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단다. 화암사는 민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스님들이 시주를 구해 공양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아무리 수행을 하는 스님들이라고 하지만 먹지를 않고는 수행을 할 수가 없으니, 멀리 떨어진 민가에 가서 시주를 구하다 보면 수행을 하는데 지장을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느 날 이 절에서 수행에 전념하고 있던 두 스님의 꿈에 백발노인이 동시에 나타났다. 백발노인은 수바위에 있는 조그만 구멍을 알려주면서 끼니때마다 그 구멍에 지팡이를 대고 세 번을 흔들라고 했더니 두 사람 분의 쌀이 쏟아져 나왔다. 그 뒤 두 스님은 식량 걱정 없이 수행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런데 몇 년 후 한 객승이 이 이야기를 듣고 세 번을 흔들어 두 사람이 먹을 쌀이 나왔으면, 여섯 번을 흔들면 에 사람이 먹을 쌀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다음 날 날이 밝기를 기다려 욕심을 내어 쌀 구멍에 지팡이를 대고 여섯 번을 흔드는 바람에 쌀이 나오는 구멍에서 피가 흐르고 난 뒤 쌀이 끊어져 버렸단다. 화암사가 벼 화(禾)자에 바위 암(巖)자를 쓰게 된 것도 이 전설에 연유한다는 이야기이다.

다시 버스에 오른 시간이 20시경이니 물경 8시간에 걸친 사투 끝에 끝낸 금강산 신선봉 산행이었다. 비록 신선봉의 신선님의 외면으로 신선봉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뭐 산행이 꼭 정상을 밟아야 하는 것도 아니니 그저 금강산의 한 자락에 내 몸을 잠깐 맡긴것으로 만족할 뿐이다. 곧바로 동명항으로 자리를 옮겨 맛있는 회와 반야탕에 피로를 풀고 농협 수련원을 찾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내일을 기약한다.

 

                               

                              

                               

 

  그 다음날 원래 계획은 울산암을 오르는 것이었으나 전날 무리한 일행들은 그냥 설악동에 들려 자유시간을 갖는다. 누구는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에 오르고, 누구는 그냥 막걸리를 마시고......

나는 나로 인해 맨발 바이러스에 감염된 조포맨님등과 비선대에 오르기로 한다. 어제의 피로 때문에 조금은 어려웠지만, 그저 즐겁게 천불동 계곡을 따라 비선대까지 이르며, 금강송에서 발산되는 피톤치드를 맘껏 마시며, 천불동 계곡에서 내뿜는 음이온도 맘껏 마시며, 크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며 다녀왔다. 내려오는 길 어느 어여쁜 여자분이 나와 같이 맨발병에 걸려 산을 오르는 모습을 보곤  양해를 구하고 뒷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그리고 다시 주문진항으로 이동하여 또다시 회와 반야탕으로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정말 화성시 등산연합회 회원들과의 행복한 1박2일이었다.

 

*** 주 : 반야탕(般若湯: 범어에서 반야는 Prajna로 지혜라는 뜻을 가진다, 그래서 반야탕, 즉 술은 '지혜의 물'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