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나그네/맨발걷기 경험담

정월초하루의 해돋이

맨발나그네 2009. 6. 26. 18:11

정월 초하루날의 해돋이

 

  지난 양력 정월 초하루날 내애인 광교산에서 해돋이를 보았다. 그런데 우리네에겐 음력 정월 초하루날의 해돋이야 말로 진정으로 맞이하는 해돋이가 아닐까 하여 나선 길이다. 전날 여러 형제들과 조카들에게 정월 초하루의 새벽을 우리 고향동네 수호신인 주산봉에서 해돋이를 함께하자고 권해보는데 모두 머리를 절래절래 흔든다. 저녁 늦게까지 이어진 고스톱 전당대회지만 아침의 해돋이를 위하여 밤 12시 고스톱을 끝내자니까 동생들이 판깨지 말고 자고싶으면 혼자 가서 조용히 자란다. 마침 잘 됬다. 나야 길게 고스톱을 치는건 고역인 사람이니까. 그래서 혼자 잠을 청한다. 한참 자다 깨보니 새벽 2시 40분인데 그때서야 고스톱이 끝난 모양이다. 다시 잠을 청했건만 정월 초하루 해돋이를 할 수 있는 설레이는 가슴 때문인지, 아니면 잠자리가 바뀌어서인지 새벽 5시 40분에 잠에서 깨어났다. 고향 마을 뒷산 주산봉은 아주 낮은 산이기 때문에 약 20-30분이면 충분하니 너무 이르다. 오기전 인터넷으로 검색한 아침 해돋이 예상시간이 새벽 7시 40분 경임이니까 아직도 2시간 이상이 남은 것이다. 그래서 달밤에 체조하듯 안마당, 바깥마당에 밤사이에 내려 쌓여있는 눈을 치우고도 한참 시간이 남아 이불 속에서 몸을 녹인다.

 

  7시쯤 20여년이 넘게 나와 함께한 스패츠를 신고, 주산봉을 향해 힘찬 출발을 한다. 36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마을의 넉넉한 지킴이로 자리한 은행나무옆을 지나 주산봉 입구까지는 그래도 마을 주민들이 눈을 치워 놓아서 괜찮은데 등산로가 시작되는 마을 사당앞부터는 눈이 발목을 덮고도 남는다. 온세상이 하얗다. 어제 누군가 한사람이 지나간 발자국속에 다시 밤새 눈을 뿌린 자국만 있을 뿐이다. 오래된 소나무가지 위로는 하얀 눈이 소복히 쌓여 그 무게를 간신히 감당한다. 잎을 털어낸 나뭇가지 마다에는 장식을 위해 솜으로 싸놓은 것처럼 흰눈으로 감싸져 있다. 정말 동화속 나라를 걷는 기분이다. 아니 천상의 선녀들만 사는 나라에 여행을 온 기분이 든다. 어느 화가가 그려 놓은 그림이 이보다 더 예술일손가? 어느 작가가 글로 표현한들 지금 내눈 앞에 펼쳐진 파노라마를 그려낼손가? 혼자보기 아까운 풍경이지만 어쩌랴 준비부족으로 또 카메라를 넣고 오는 것을 깜빡했으니 이 부족한 글솜씨로 대신 할 수 밖에.... 그런데 그 어떤 미사려구를 늘어 놓는다 해도 내 눈속에 담긴 그때의 그 모습을 다 전할 수 없으니 안타까울 수 밖에 없다.

 

  집을 나선지 30여분만에 주산봉에 입성이다. 백두대간 속리산 천왕봉에서 갈라져 나온 한남금북정맥이 다시 안성 칠장산에서 금북정맥과 한남정맥으로 갈라지고, 그 칠장산에서 북서쪽으로 가지를 치는 한남정맥이 김포 문수산으로 달려가다 안양 베네스트CC 근처에서 갈라져 나와 군포 감투봉, 구봉산, 칠보산, 서봉산을 거쳐 주산봉에 이르고 이것이 다시 명봉산(덕지산)을 거쳐 계두산을 거쳐 아산만으로 이어지는 한남서봉지맥의 한 줄기에 당당히 위치한 작은 산이다. 사족이지만 이 한남서봉지맥은 공업화라는 미명하에 이리 찟끼고 저리 찟겨 전문 산악인도 독도법 실력이 월등하여야 한번 걸어 볼 수 있는 구간이라지 아마....

 

  하여튼 그 주산봉 정상(? - 너무 낮아 정상이라는 표현이 어색하긴 하지만)에서 설날 아침의 태양을 맞이한다. 그런데 7시 40분이 되어도 붉은빛 여명조차 소식이 없다. 그래도 끈기있게 기다린다. 정상에는 통나무 밑둥의자가 열 개 남짓 있지만, 그위에 눈이 소복히 쌓여, 앉는것 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그냥 하늘이 평생 몇 번 줄까말까하는 비경을 둘러보며 이생각 저생각에 시간을 보낸다. 서쪽으로 날씨 좋은 날이면 서해대교도 보인다는데 세상이 온통 하얀 세상속에서는 난망이다. 드디어 온통 하얀 세상을 뚫고 여명의 붉은 기운을 양옆으로 뿌리며 커다란 태양이 모습을 들어낸다. 드디어 기축년 정월 초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태양이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양력 정월 초하루에 이어 다시 한번 내가 알고 있는 모든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하며 커다랗게 떠오르는 새해 첫날의 해돋이를 본다. 정말 장관이다. 주변의 삼천초목이 반주하는 오케스트라 연주속에 떠오르는 새해 첫날 해돋이야 말로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에는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 어제밤의 고통을 이겨내고 찬란하게 떠오르는 저 태양처럼, 성실하고 온순하며 사납지 아니하며 우직하고 성급하지 않아 근면과 끈기의 상징이여서 우리 민족과 가장 친근한 올해의 동물인 소처럼 열심히 노력하여 올 한해 우리에게 닥친 모든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희망찬 기축년 한해가 되보자. 저 태양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어둠을 가르며 계속 떠오르듯이 우리 모두도 꿈을 갖고 희망찬 시작을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