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나그네/맨발걷기 경험담

광교산에서의 해돋이

맨발나그네 2009. 6. 26. 18:10

 

1) 2009년 광교산에서의 해맞이( http://blog.daum.net/yooyh54/43)

2) 2011년 경주 토함산에서의 해맞이( http://blog.daum.net/yooyh54/342)

3) 2013년 울산 대왕암에서의 해맞이( http://blog.daum.net/yooyh54/458)

4) 2015년 영일에서의 해맞이( http://blog.daum.net/yooyh54/576)

 

 

 

광교산에서의 해맞이

 

● 산행일시 : 2009년 1 월 1 일 (木) 05:50~ 08:50 ( 10km, 소요시간 3시간 )

● 산행코스 : 경기대 - 형제봉 - 양지재 - 종루봉 - 토끼재 - 시루봉 - 노루목대피소 - 억새밭 - 절터 -                   사 방댐 - 상광교 버스정류장

● 누 구 랑 : 나홀로

 

  무자년을 보내고 기축년을 맞는다. 한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해를 맞는 이때에 나라 안팎은 물론 세계가 흔들려 아픔을 번지게 하여 우리를 더욱 더 우울하게 한다. 그래도 세월은 흘러 다시 웃으며 옛날을 이야기 할 날이 올것이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인것이다. 하여 멀리는 못가도 올해는 꼭 해맞이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작년 12월 한국관광공사는 해넘이와 해돋이가 일품인 강원도 강릉, 충남 태안, 울산광역시, 울릉도 등 4곳을 선정 발표했다. 강릉 정동진이나 동해 추암에서 바닷바람 맞으며 떠오르는 해를 본다면야 더없이 좋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곳이 아니면 어떻랴. 그냥 이글이글 떠오르는 2009년 첫 번째 해와 마주하고 소망을 빌고, 다짐을 하는 뜻 깊은 시간이 되면 될것이다. 그래서 내애인 광교산과 함께 해돋이를 보기로 하였다.

 

  알람을 새벽 5시에 맞추어 놓고 잠을 청하였는데, 일어나 보니 4시였다. 영낙없는 소풍을 앞둔 초등학생 꼴이다. 행여 해돋이을 놓칠새라 조바심이 났나보다. 하긴 250여년전 연암 박지원(1737~1805)이 29세에 금강산 일대를 유람하다 총석정에서 동해 해돋이를 기다리는 마음을 읊은 ‘총석정에서 해돋이를 구경하다’라는 시의 일부를 살펴보면,

'길손들 한밤중에/서로 주고받는 말이/ 먼 닭이 울었는가/ 아직 울지 않을 텐데/먼저 우는 먼 닭은/ 그게 바로 어드메냐/의중에만 있는 거라/ 파리 소리처럼 희미하네'(行旅夜半相叫)/ 遠鷄其鳴鳴未應/ 遠鷄先鳴是何處/ 只在意中微如蠅)

라고 읊으며, 해돋이를 놓칠새라 잠 못이루며 조바심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놨다. 시공을 뛰어넘고, 장소를 뛰어넘어 장엄한 해돋이를 보고픈 마음은 한결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새벽 5시반, 수은주는 영하 9도로 혹한의 날씨에다가 같이 가기로 한 친구는 추워서 도저히 갈 수 없단다. 유자차를 끓인 보온통을 배낭에 담고 집을 나선다. 작년에 산 헤드렌턴은 어느 구석에 숨어있는지 얼굴 내밀 생각을 안한다. 그래서 달빛마져 꽁꽁 얼어 어두운, 아직 채 열리지 않은 새벽 산길을 심술부리는 찬 바람과 함께 오른다. 잎새를 털어낸 나목들의 숨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비탈진 오르막길을 숨차하며 오른다. 오로지 웅장하게 모습을 드러낼 둥근해를 생각하며 오르고 또 오른다. 지난 한해가 막막했고, 올 한해가 막막할거라고 하지만, 이렇게 한발 두발 오르다 보면 우리네 삶도 새날 새아침의 빛으로 어둠을 걷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부활을 꿈꾸는 거위처럼.......

 

  이런 저런 상념속에 경기대를 5시50분에 출발하여 형제봉에 도착한 시간이 6시50분이다. 형제봉을 오르는 길도 인산인해였는데, 형제봉 정상부는 이미 발 디딜곳이 없을 정도로 시장바닥이다. 그러나 어제 조사해 본 바로는 오늘 일출시간이 7시47분이라니 아직도 1시간이나 남았다. 그래서 일출은 종루봉이나 시루봉에서 보기로 마음먹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먼동이 먼 하늘을 열어가며 제법 길을 내준다. 희망과 소망이라는 나만의 비밀을 안고 오르니 발걸음이 가볍다. 힘차게 솟구치는 해님의 얼굴을 대할 생각에 미소지며 오른다. 해님을 맞으며 지난날의 과오를 태우려 즐거운 마음으로 오른다. 기축년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맞이하는 호기심에, 새로운 길을 내며 떠나야 하는 아침을 설레는 마음으로 오른다.

 

  7시30분 시루봉이다. 이곳도 발디딜 틈조차 없이 인산인해다. 모두 해돋이를 보기 좋은 자리를 찿이하느라 부산하다. 나도 그들 틈에 끼여 한곳에 자리를 잡고 그분을 맞는다. 드디어 그분이 모습을 서서히 드러낸다. 마법에 걸려 잠을 자던 대지가 옷을 벗는다. 7시 46분.아스라한 여명을 뚫고 동해바다를 자궁삼아 출산의 고통을 안고 이세상에 모습을 내보인다. 장엄한 오케스트라의 연주속에, 멀리 동녘하늘에서 붉은 속을 드러내며, 선녀탕앞에서 옷벗기전의 선녀처럼 수줍어 어찌할 줄 모르며 그 모습을 내보인다. 거대한 불덩어리가 되어 천천히 생명의 빛으로 이 땅에 임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울리고, 모두들 한해를 계획하고, 소망하는 것들과 가족 그리고 이웃의 안녕을 빌고 있다. 나도 그틈에 끼여 기축년 한해는 햇살 고루 퍼져 나에게 혹시나 있을지 모를 미움과 아집과 불평을 모두 털어내고, 훈훈하고 따뜻한 마음만 남게 하여 달라고 기원해 본다. 그러나 그 달콤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 일분여나 됬을까. 어둠이 물러가고 밝은 아침이 되어있었다. 해는 한참이나 뜸을 들이며 우리 곁으로 온것 같은데 그 시간은 정말 짧았다. 하지만 지난날을 반추하고 새희망을 품는데 그리 부족한 시간은 아니었다.

 

오늘은 아름다운 날이다.

기축년 새해 첫 아침이기 때문이다.

추위를 무릅쓰고 어둠을 헤치며 올라 해돋이를 보았기 때문이다.

다른해에 비해 떠오르는 해가 크고 선명하여 모든 기원을 다 들어줄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애인 광교산과의 기축년 첫데이트이기 때문이다.

 

 이 아름다움이 일년내내 계속 되기를 기원해 보며, 이글을 읽고 있을 여러분에게도 올 한해 이 햇살이 고루 퍼져 항상 건강과 행운이 같이하고, 기쁨과 행복이 충만한 한해가 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