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만의 해후 ~~조강지처 광교산과....
● 산행일시 : 2009년 6월 27일 (土)
● 산행코스 : 경기대 - 천년약수터 - 양지재 - 상광교 (우리끼리 명명한 '광교산둘레길')
● 누 구 랑 : 아주대 동문산악회원들이랑
실로 오래간만에 조강지처와의 해후이다. 이제보니 지난 5월1일 만나고는 거의 두달만이다. 정말 너무 무심했다. 버거운 삶을 짊어지고 쫒기듯 살아오는 동안 그래도 나를 지탱해주고, 그나마 이렇게라도 생을 유지시켜 준것이 조강지처 광교산과의 사랑이련만...
조강지처는 《후한서》의 <송홍전(宋弘傳)>에 나오는 말로 원말은 조강지처 불하당(糟糠之妻不下堂)이다. 술지게미와 쌀겨로 끼니를 이을 만큼 구차할 때 함께 고생하던 아내라는 뜻이다. 전한(前漢)을 찬탈한 왕망(王莽)을 멸하고 유씨(劉氏) 천하를 재패한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일이다. 건원(建元) 2년(26), 당시 감찰(監察)을 맡아보던 대사공(大司空:御史大夫) 송홍(宋弘)은 온후한 사람이었으나 간할 정도로 강직한 인물이기도 했다.어느 날, 광무제는 미망인이 된 누나인 호양공주(湖陽公主)를 불러 신하 중 누구를 마음에 두고 있는지 그 의중을 떠보았다. 그 결과 호양 공주는 당당한 풍채와 덕성을 지닌 송홍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 광무제는 호양공주를 병풍 뒤에 앉혀 놓고 송홍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이런 질문을 했다."흔히들 고귀해지면 (천할 때의) 친구를 바꾸고, 부유해지면 (가난할 때의) 아내를 버린다고 하던데 인지상정(人之常情) 아니겠소?"그러자 송홍은 이렇게 대답했다. "폐하, 황공하오나 신은 '가난하고 천할 때의 친구는 잊지 말아야 하며[貧賤之交 不可忘], 술지게미와 겨로 끼니를 이을 만큼 구차할 때 함께 고생하던 아내는 버리지 말아야 한다[糟糠之妻 不下堂]'고 들었사온데 이것은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되나이다."이 말을 들은 광무제와 호양 공주는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물론 송홍에게는 조강지처(糟糠之妻)가 있어 송홍은 이를 존중한 것이며, 광무제도 그 조강지처를 억지로 내쫓고서 누나의 희망을 채워 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조(糟)는 술지게미를 뜻하고, 강(糠)은 쌀겨를 뜻하며 몹시 거친 음식을 말한다. 조강지처는 이와 같이 거친 음식을 나누어 먹고 온갖 고생을 함께 한 아내라는 뜻이라 한다.
광교산은 내게 조강지처이다. 그런데 최근들어 너무 외도를 많이 한 것 같다. 3월달 이후 총 23회의 산행중 겨우 5번만 광교산을 찾았을 뿐이다. 더군다나 5월 1일을 마지막으로 그녀와 사랑을 나누지 못했으니 해도 해도 너무한 처사가 분명하다. 3월이후 외도로 만난 북한산부터 가야산, 도드람산, 불곡산, 소요산, 내변산, 진안 구봉산, 서봉산, 서산 팔봉산, 지리산둘레길, 진도 동석산, 운악산, 설악산 십이선녀탕계곡, 양평 소리산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여인과 사랑을 나눈 팔난봉꾼이 되어버렸다. 모두 전국에서 모인 빼어난 미모를 지닌 경국지색으로 손색이 없다. 지금도 틈만 생기면 이리저리 눈을 돌리며 아름다운 여인 찾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진정 취하고 싶었던 여인들과 하룻밤 사랑을 나누었다고 그녀(산)가 내여자가 되는건 아니다. 그러나 조강지처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오래간만에 집에 돌아온 팔난봉꾼 남편을 그 잔잔한 미소로 맞아준다.
그런데 광교산이 예사롭지 않다. 꽤나 더운날씨의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파로 몸살을 앓는다. 하긴 광교산이야말로 많은 애인들과의 데이트에 나같은 건 안중에 없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가 돌아온들 그저 광교산이 열어준 길을 따라 광교산이 허락한 시간동안 그녀의 가슴선을 따라 잠깐 안겼다가 다시 등을 돌릴 뿐이다. 그래도 그녀는 나의 조강지처인 것이다.
하여간 오래간만에 들린 광교산은 너무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후배 한분이 천년수로 해서 형제봉을 우회하여 양지재로 가는 길을 알고 있으니 사람들을 피해 그길로 가잔다. 경기대를 출발하여 많은 인파를 따라 앞사람 머리만 보고 걷던 중이었으므로 당연히 그길을 택하기로 하고 그길로 들어섰다,
백련수갈림길 못미쳐서 부터 천년수에 이르는 길은 아까의 많은 사람들에 비해 호젓하다. 그리고 울창한 산림에 뒤덮혀 천연그늘을 만들어 주므로 초여름의 날씨에도 걷기에 무난하다.
천년수약수터에 도착이다. 옆에 붙어있는 수질검사서에는 불합격 종목도 있던데 사람들은 그래도 열심히 그 물을 마시고 있다. 천년수약수터에서 쉼을 갖는다. 후배인 아빠를 따라나선 초등학교 1학년 공주님은 조금은 칭얼대면서도 여기까지는 잘 따라와 주었다. 그리고 운동기구를 보자 그곳에 올라 폼도 잡고...
천년수약수터를 지나 원래는 형제봉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왼쪽 능선을 따라 올라가야 하나 우리는 형제봉을 우회하여 양지재로 오르기로 하였으므로 직진하여 앞으로 나아간다. 조금 가다가 어느분이 산소를 재조성하기 위해 닦아논 길을 오늘 이길을 소개한 후배가 잘못 읽어 약간의 알바를 한다.
그렇게 조금더 앞으로 나아가니 폐절터와 약수터가 나온다. 천년수약수터 이후로는 나에게도 처음 발을 들여 놓는 곳이다. 옛날에는 제법 규모가 컷을듯싶다. 그곳 약수터에서 약수도 한사발씩 들고 또 쉰다. 그렇게 저렇게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는다. 능선길이 아니여서 조망이 없고, 바람도 없어 좀 답답하지만, 천연그늘막이 있고, 좋은 벗들이 있으니 이아니 즐겁지 아니한가?
12시30분쯤 양지재에 도착이다. 양지재 한쪽에선 30~40여명은 족히 되는 사람들이 점심을 먹고있다. 아마도 멀리서 온 산악회 회원인듯하다. 하긴 천년수 약수터에서 양지재까지 오는 동안 사람들을 봐왔지만 그리 많은 인원은 아니었다. 정말 평소에 다니던 경기대에서 능선을 따라 형제봉으로 오르던 길에 비하면 한가하기 그지없다. 양지재에서 상광교까지도 종루봉을 거쳐 토끼재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종루봉을 오른쪽으로 두고 비스듬히 상광교로 향한다. 우리끼리 이름하여 ‘광교산둘레길’이라 명명하였다.
그동안 수도 없이 광교산을 찿았었건만, 천년수에서 형제봉을 왼쪽에 끼고 오른 양지재까지의 길과 종루봉을 오른쪽에 두고 상광교에 이르는 이길은 처음이다. 광교산은 내 조강지처라고 그리도 많이 우겨왔건만, 이여인(광교산)의 성감대를 아직도 다 파악하지 못한 나야 말로 과연 그녀를 안을 자격이 있는 것인지 ....
하긴 요즘 인터넷에 이런 이야기도 떠돈다고 한다.
10대 : 금강산^^
바라만 보고 사진만 봐도 아름답고,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베일에 가려진 신비한 곳,
특별한 사람들이 한번씩 찾아가 보지만
비경 주위만 둘러 보고 오는 山.
20대 : 한라산 ^^
가까이 하기엔 너무 멀리에 있는~
큰 맘 먹으면 한번 찾아 볼 수 있는 곳.
아직은 신비로움이 가시지 않은 대한민국에서
두번째로 높은 山.
30대 : 설악산 ^^
비록 산세는 험하고 봉우리는 높지만~
그 아름다운 자태와 끊임없는 메아리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산의 조화를 가장 잘 이루고 있는 山.
40대 : 지리산^^
백두대간의 대미를 장식하며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면적만큼이나 넓은 포용력으로 정상까지
찻길을 내주어 아무나 넘을 수 있는 편안한 山.
50대 : 내장산^^
평소엔 잊고 살다가 단풍이 아름다운 계절이 오면~..
가는 시절 아쉬워 한번쯤 가보고 싶은 곳.
저무는 가을~, 석양의 물든 단풍이 아름다운 山.
60대 : 광교산(각자 자기집 근처의 그럴듯한 산)^^
누구나 다 알고 있고
너무 가까이에 있어 예전에 수도 없이 올라본 곳,
구석구석 샛길까지 다 알고 있어 거의 찾지 않는 山.
70대 : 고향언덕^^*
산이라고 하기보단 어머니 품속 같은 곳.
일년에 한두번 고향길에~
멀리 바라보며 옛 추억을 회상하는 작은 언덕.
이글을 보니까 내애인 광교산을 외면한게 나뿐만 아닌가보다 하는 생각을 하며 경기대에서 상광교까지 우리끼리 명명한 ‘광교산둘레길’을 2시간반에 걸쳐 천천히 걸었다. 오랜만의 조강지처와의 데이트에 그녀의 또다른 성감대(산행루트)를 알게 된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이런저런 일정으로 앞으로 또 언제나 그녀와 데이트를 할 수 있을런지... 암만 경국지색들이라지만 딴 여인(山)들을 안으려면 시간들고(보통 버스로 왕복 6~10시간) 돈드는 일인데 엎드리면 코닿을 그런 가까운 거리에 있고 몸매(산세)로 보나 여러모로 경국지색들에게 뒤지지 않건만 왜 자꾸 딴 여인(山)들에게 눈이 돌아가는 건지......
(출발에 앞서 경기대에 있는 만남의광장(아직 개소하지 않음)앞에서 단체사진을...(막내가 02학번이니 딸애 또래이다. 내나이가 벌써 그렇게 되었으니...)
인산인해를 이룬 광교산 산행길
백련수갈림길 한참전에 좌측으로 난 천년수 쪽을 향한 길로...
아까의 않은 인파에 비하면 호젓하기 그지없다.
천년수 약수터를 향하여...
천년수 약수터... 오른쪽 안내판 밑에 붙어있는 검사성적서에는 몇가지 부적합하다는 내용이 있다
천년수 약수터에 휴식
후배의 딸내미 (초딩1학년이라는데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잘 왔는데 그 다음부터는 제아비를 조금 괴롭혔다...ㅎㅎㅎ)
천년수 약수터에서 나도 한장 착칵...
다음 폐절터와 약수터까지의 길.....
절터 .... 꽤 큰 가람이 있었던 듯 하다. 지금은 신선각이란 조그만 팻말과 함께 아주 작은 암자가 있다.
절터내에 있는 돌무덤
어느 등산객이 수고했을 안내판
형제봉 넘어 용인시 쪽이어서 용인시에서 세워논 안내판
길은 점점 좁아지고...
양지재로 오름길 직전에 산소 때문에 빠꼼히 열린 하늘로 시루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양지재로 오름길
초딩꼬마와 아빠와의 혈투...... 그래도 그녀는 대단했다.
양지재 직전의 오름길
양지재에서 종루봉을 오른쪽으로 두고 상광교로 가는 길.... 아마도 양지재에서 상광교까지 가는 길중 사람은 모두 대여섯명이나 봤을까..... 그리고 상광교 거의 다 내려와서는 농로가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 있어 뜨거운 날씨에 달아 올라 맨발인 나를 불로 구울 듯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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