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나그네/맨발걷기 경험담

운악과의 첫포옹~행복했던 하루

맨발나그네 2009. 6. 26. 07:24

● 산행일시 : 2009년 6월 7일 (日)                  

● 누 구 랑 : 수원하늘채 산악회원들이랑

● 산행코스 : 하판리주차장 - 일주문 - 눈섭바위 - 운악산정상 - 절고개 - 현등사 - 하판리주차장

● 사진은 ? : 수원하늘채 산우님들

 

                      

 

 운악산!

 처음으로 그녀가 내게 속살을 내보이는 날이다. 거기가 거기겠지만 조강지처나 다름아닌 내애인 광교산에 비해 그녀의 품에 안겼을때 어떨지 기대가 된다. 바람난 난봉꾼이래도 좋다. ㅎㅎㅎ

 

 운악산은 가평군과 포천군의 경계에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산이다. 경기도에는 경기도에서 가장 높다는 화악산(1468m)이나, 가평군의 명지산(1267m) 등 기라성 같은 많은 산들이 그 위용을 자랑하지만 작으면서도 예쁘고, 아기자기한 운악산(936m)을 경기도의 일등산이라고 꼽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또한 운악산은 우리나라 10대 악(嶽 또는 岳 )자가 들어가는 산인 설악산(1708m), 화악산(1468m), 치악산(1288m), 황악산(1111m), 월악산(1097m), 운악산(936m), 모악산(794m), 감악산(675m), 삼악산(654m), 관악산(629m)에 당당히 6번째 높이로 그 이름을 올려 놓았는가 하면, 그중 가평-화악산, 파주-감악산, 과천-관악산에다 개성 송악산과 이 운악산을 더해 경기 5악(嶽, 岳)이라 일컫는 산중의 하나이다. 그뿐아니라, 각 산에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하고 오르기 좋아하는 어느분은 남한의 5악(嶽,岳)을 설악, 치악, 월악, 운악, 삼악을 꼽고 있으니, '악'소리가 나는 산이긴 산인가 보다.

  그 '악'소리에 반해 모든 일 접어두고, 맨발로 운악산의 속살을 보듬기 위해 따라 나섰다. 맨발산행을 시작한 이후 경기 5악이라 일컫는 산중에 경기도에서 가장 높다는 화악산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가볼 수 없는 개성 송악산을 남겨두고, 2008년 10월 5일 감악산을 필두로, 2008년 11월 9일 관악산에 이어 남어지 운악산과의 데이트이니 설레임으로 그녀에게 다가간다.

 

 운악산을 향해 가는 동안 주변의 온 산이 푸르름으로 넘실댄다. 차창 밖으로 초여름의 푸르름에 빠져 가평으로 가면서 가평과의 인연을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와 참을 수가 없다. 35년전 군입대와 동시에 가평의 제3하사관학교라는 곳으로 배치되어 6개월의 훈련을 받고 육군단기하사가 되었는데, 그때 어찌나 훈련이 고되던지 가평 쪽을 바라보고 거시기도 보지 않겠노라고 전우들과 나누던 대화가 생각나서인데, 그후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이런 저런 일로 가끔 들르게 되는 것이 가평땅인 것이다.  

 

 

 

 

 일기예보는 오전 비올 확률 30%, 오후 60%라지만 모두들 즐거운 마음으로 산행시작을 하기 위해 채비를 한다.

 

 

 주차장을 떠나 손두부집이 옹기 종기 모여 있는 골목길을 들어서 산행을 시작한다. 입구의 어느 집에는 남근석이 놓여 있고 그녀석 고추에서는 열심히 물을 뿜어 대고 있다. ㅎㅎㅎ

 

 

 

 

 

 

 주변은 온통 푸르름으로 덮여있다. 처음 얼마간은 낙낙장송을 아니지만 제법 수령이 된 소나무가 우리를 맞아주고, 좀더 올라가면 떡갈나무 숲이 6월의 실록을 뽐내며 피톤치드를 맘껏 선사한다.  얼마 오르지 않아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자 일부 회원이 내려가겠단다. 그래서 상을 펴고 산토끼님이 준비해온 홍어회에 곡주를 한잔씩 기울인다.

 

 

우리나라 옛사람들은 '팔경'을 무지 좋아한다. 그래서 '수원팔경', '화성팔경', '관동팔경' 등 곳곳에 '팔경'을 정해놓고 즐긴다. 이 운악산에도 어김없이 '운악8경'이 있으니, 백년폭포, 다락터 오랑캐소,  코끼리바위, 만경대, 민영환 암각서, 큰골내치기 암벽, 노채애기소에 여기 눈썹바위를 더해 '운악8경'이라 한단다. 혹자는 '관동팔경'보다 낫다는 사람도 있다지만, 어찌되었건 그 아름다운 자태가 예사롭지 않다.  부처님의 눈썹이 이렇던가? 아님 산신령님의 눈썹이 이렇던가?

 

 

 

 

이슬비인지 보슬비는 계속 내리고 있다. 절경인 운악산에서 그저 이나마 이기를 다행으로 여기며 미륵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한장....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악'소리 나게 바위로 뒤덮인 산이다. 다행히 지자체에서 안전시설을 잘 갖추어 놓아 우중임에도 별로 어려움 없이 산행을 할 수 있다. 아마도 옛날에는 좀 어려웠었나 보다. 맨아래 오른쪽 사진은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옛날에 설치했던 철계단이다. 저 철계단을 내려오려면 오금이 저렸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지금은 바로 옆으로 방부목을 깔은 아주 좋은 계단이 놓여있다.

 

 

 

 

   

 

  

 

비는 오고 있지만 그리 큰 비가 아니어서 모두 즐겁게 산행을 하고 있다. 기암괴석에 둘러 쌓여 있는 운악의 운치가 그만이다. 절경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마침 오던 비도 점심을 먹을 때 즈음부터는 잦아들어 맛있게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특히나 상추쌈에다 고추, 오이등 푸짐한 식탁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니 오락가락하던 이슬비가 잦아들어 병풍바위를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하얀 암벽 사이로 몸을 기댄 노송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절경이다. 시원하게 펼쳐진 주변 산들과 앙상블을 이루는 깍아지른 듯한 절벽, 그사이 틈을 비집고 자라는 소나무는 항상 그 생명력이 경이롭다.

 

         

              

         

 

 

쉽지 않은 철계단과 바위에 구멍을 내 설치한 스테인레스 손잡이들을 이용하여 정상에 오른다.

 날씨가 좋아드라면 탁트인 사방이 조망이 좋을 뻔했다. 그러나 오늘은 내 복이 여기까지이니 그냥 운무에 휩싸여 있는 주변 경관에 만족하여야 한다. 그냥 구름 위에서 노니는 신선이라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그래도 망경대를 중심으로 우람한 바위들이 구름을 뚫고 솟아있는 폼이 장관중의 장관이다. 저멀리 동쪽으로는 명지산의 거대한 산맥과 연인산, 매봉, 깃대봉, 대금산 줄기가 펼쳐저 있고, 남쪽으로는 수락산, 북한산, 도봉산이 바라보이고, 남서쪽으로는 불곡산, 서쪽으로는 포천 국사봉, 파주 감악산, 북서로는 소요산과 철원 평야가 파라다이스를 펼쳐보인다고 하는데 오늘은 날씨 때문에 그저 어렴풋이 그 형체만을 보여 줄 뿐이다. 이 조차도 그저 내 복이 여기까지라 여기니 지금의 이 운무가 나를 신선으로 만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상 표지석 뒷면에는 포천출신 백사 이항복(李恒福 1556~1618) 의 시 한수가 새겨져 있다.

 

"운악산 깊은 계곡에(雲岳山深洞)/

현등사 처음으로 지었네(懸燈寺始營)/

노는 사람들 성(姓)을 말하지 않는데(遊人不道姓)/

괴이한 새는 스스로 이름을 부르네(怪鳥自呼名)/

용솟음 치는 흰기운 폭포수 장대하고(沸白天紳壯)/

푸른 산 빗긴 섬에 지축이 기운듯(橫靑地軸傾)/

은근히 호계에서 이별하니(慇懃虎溪別)/

석양 속에 저문 산 밝아오네(西日晩山明).”

라고 ....

 

 

 

 

 

 

 올라오고 내려오는 길은 잘 정비되어 있다. 안전시설도 좋은 편이고 안내 표지판도 잘 되어있다. 특히 절고개 근처의 안내판에 적어 놓은 '산 사랑은 내애인과 같이'라는 글귀는 내가 광교산을 애인처럼 아끼는 마음을 적어 놓은 것 같아 흐뭇했다.

 

정상과 절고개 중간쯤에서 조망되는 남근석이다. 그 우람하기가 변강쇠의 남근이 아니었을까.....

다만 절고개에서 현등사 사이에서 볼 수 있다는 코끼리 바위를 그냥 지나친 아쉬움이 남는다.  운악산에 대한 공부가 부족했음을 탓하며 다음을 기약한다.

 

           

 

 

천년고찰 현등사이다. 가파른 산등성이에 높다란 축대를 쌓아 그 위에 지었으니 그 옛날 얼마나 공을 들인 절인지 실감이 난다. 좁은 땅을 이용하여 아담하게 지어진 절집이다. 신라 법흥왕(540년)때 포교차 목숨걸고 신라를 찾은 인도의 승려 마라가미를 위해 왕이 지어 주었는데 그후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현등사는 고려 희종때 보조국사 지눌이 전국을 순회하던중 하룻밤을 머물게 되었는데 산속에서 환한 광채가 나 올라가 보니 폐허의 절터에 있는 석등에 빛이 환하여 절을 중건하고 현등사라 이름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 현등은 '부처의 가르침을 드러낸다'는 뜻도 담겨 있다 한다.

수백년간 수차례의 폐사와 재건을 반복한 불행한 과거가 있지만 극락보전, 아미타삼존상, 범종등이 보존되어 있으며, 삼층석탑(3.7m)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63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산길따라 흐르는  운악계곡이다. 현등사에서 조금 내려오다 보면 민영환 암각서와 만난다. 민영환 선생이 기울어 가는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며 바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하고 걱정하던 곳으로 1906년 나세환 외 12인이 이 바위에 새겨 놓은 암각서가 남어 있는 곳이란 안내판이 있다. 내려오는 길 오른쪽으로는 운악계곡이 이어져 있다.거창하거나 힘차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으나 투박하지 않고 정교한 느낌은 준다. 석공이 다듬은 듯한 반들반들하다. 그런 절제된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다. 어느 석공이 바위를 다듬어 물길을 낸건 아닐까??

 

한참을 내려오다 무우폭포와 만난다. 운악산을 처음 포옹해 보는 나로서는 그저 이곳이 무우 폭포려니 하며 그녀와의 입맞춤을 한다. 안내판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등산길에서 그 흔하게 만나던 안내판이 이 유명한 무우폭포에는 없는 아쉬움이 있다. 무우폭포는 옛날 중국의 시인, 묵객들이 금강산 구경을 평생소원으로 여기고 조선에 와 금강산을 찾아 가던 중 이 무우폭포를 구경하고 기간금강이니 돌아 갈 수 밖에 없다고 하며 돌아갔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유명하다는 폭포들이 그 웅장함과 까마득히 먼 하늘에서 천둥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폭포를 연상한다면 오산이다. 그저 흘러내리는 작고 아담한 물줄기 밑에 그저 선녀가 목욕을 함직한 소가 놓여있는 아기자기한 폭포이다. 소박하다.

 

 

 무우 폭포와의 작별을 고하고 조금 더 내려오면 백년폭포와 만난다. 그러나 이곳도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마찬가지로 안내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을 그냥 지나친다면 두고 두고 후회가 될 것이다. 무우폭포와 마찬가지로 웅장함은 없지만 비경이다. 방금 선녀가 목욕을 끝냈을 것 같은 맑은 못이 자리하고 있다. 인간 세속의 모든 번뇌를 씻어 줄 것 같다. 그래서 가만히 손을 담고 세상사의 찌든 때를 잠시나마 씻어 내본다.

 

 

현등사에서 주차장까지의 길은 꽤 넓지만 경사가 심해 거의 모두 시멘트 포장이 되어있다. 그러나 오른쪽으로 흐르는 운악계곡의 시냇물 소리와 주변의 신록이 기분좋게 발길을 이끈다.

 봄에는 들꽃이 피어 좋고, 여름이면 운악계곡을 따라 피서를 즐기고, 그 계절에 산을 오르는 사람에겐 원시림이 하늘을 가려줘 숲속의 시원함을 맛보게 하는 산, 가을이면 단풍이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겨울의 설경 또한 매력덩어리인 운악산을 신록이 완연한 초여름에 맨발로 보듬어 안고 그녀와 데이트를 한 오늘은 행복한 날이다. 그녀 운악산과 함께여서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