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 화성 & 수원 이야기

<화성의 역사 01> - 삼한시대 ~ 삼국시대

맨발나그네 2010. 5. 13. 07:04

화성의 역사 01 - 삼한시대 ~ 삼국시대

 

                                                                                                                              ◆ 화성문화원 09-01 | VIEW : 1,018

 

화성시(華城市)는 1914년 일제(日帝)에 의해 남양군(南陽郡)이 수원군(水原郡)에 폐합되기까지는 남양(南陽)과 수원(水原)의 2개 군이 독자적인 연원을 갖고 내려왔다. 따라서 화성시의 연혁은 2개 군(郡)의 이원적인 체계를 시대별로 함께 설명해야 한다.

 

화성시의 연혁(沿革)의 시원(始原)은 문헌상 삼한시대(三韓時代)에 시작된다고 추정할 수 있다. 삼한 중 마한(馬韓)은 약 54개의 부족국가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중 모수국(牟水國)은 지금의 태안 · 봉담 · 매송 · 향남 · 양감 · 정남 · 동탄면 일대에, 상외국(桑外國)은 지금의 우정 · 장안면 일대에 그리고 원양국(爰襄國)은 지금의 비봉 · 남양 · 마도 · 송산 · 서신 · 팔탄면 일대에 위치하였다고 한다.

 

이 중 모수국과 상외국은 고구려(高句麗) 장수왕(長壽王)의 남진정책으로 고구려에 편입되면서 매홀군(買忽郡)으로 불려지게 되었고 원양국은 먼저 백제(百濟)로 편입되어 당항성(唐項城)이 되었다가 후에 다시 고구려로 재편입되면서 당성군(唐城郡)으로 개칭되었다.

 

그 후 고구려와 백제를 통일한 신라는 경덕왕(景德王) 16년(757)에 전국의 행정구역을 9주(州)로 통합하였다. 이때 매홀군은 한주(韓州)에 속하게 되면서 수성군(水城郡)으로 개칭되었고 그 아래 차성(車城) · 영풍(永豊) · 진위(振威) · 광덕(廣德) 등 4개 현(縣)을 두었으며 당성군은 당은군(唐恩郡)으로 개칭되면서 쌍부(雙阜) · 정송(貞松) · 안양(安陽) 등 3개 현을 관할하였다. 그 후 헌덕왕(憲德王) 14년(822)에 이르러 당은군은 현으로 격하되면서 이듬해 수성군으로 병합되었다. 그러나 흥덕왕(興德王) 4년(829)에 다시 분리 되어 당성진(唐城鎭)으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