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나그네/맨발걷기 경험담

바다를 보며 거닌 암능길 ~ 사천 와룡산

맨발나그네 2011. 3. 30. 09:37

바다를 보며 거닌 암능길 ~ 사천 와룡산

 

 

● 산 행 지 : 경남 사천 와룡산(801.4m)

● 산행일시 : 2011년 3월 27일 (일)

● 누 구 랑 : 산7000 산악회

● 산행코스 : 남양동 임내저수지-백팔탑(갑룡사)-도암재-새섬바위봉(801.4m)-헬기장-수정굴 갈림길-도암재-임내저수지

● 사진은 ? : 따스한마음(회장), 소리새

 

봄이 어디쯤 오고 있나하고 확인하고 싶어 떠난 길이다.

지난 겨울 그리도 극성스럽게 맹위를 떨쳤던 추위도 어느새 봄볕에게 자리를 내주곤 어디론지 가버렸기에 남쪽바다에 뜬 봄그림자를 보고 싶어서 경남 사천에 위치한 와룡산으로 발길을 옮긴다.

경남 사천은 중부지방에서 보자면 꽤 먼 곳이다.

그래서 발걸음이 쉽지않다.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출발하는데다, 새벽녁 잠까지 설쳐 컨디션이 안좋기는 하지만 봄을 맞으러 떠나본다.

 

와룡산!

누구는 산세가 용이 누워있는 모습을 닮아서 와룡산이라 한다고 하고, 누구는 고려 8대 현종에 얽힌 역사 때문에 와룡산이라 한다고 한다.

전자를 주장하는 사람은 예로부터 99개의 봉우리가 있어 '구구연화봉'이라 불리던 이 산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좌청룡 우백룡의 두마리 용이 여의주를 놓고 다투다 지쳐 누워있는 형상이기에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후자를 믿고 싶은 사람은 고려초의 역사를 논한다.

2009년인가 KBS에서 '천추태후'라는 드라마로 방영되었던 고려초의 역사를 조금 더듬어 보자면 고려 태조 왕건은 29명의 왕비를 맞이함으로 해서 우리나라 역사속의 임금중 가장 많은 부인을 둔 왕으로 기록되고 있다.

시대적 배경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는 하나 많기는 정말 많았다.

그 고려 태조의 여덟째 아들이 왕욱이다.

'천추태후' 드라마에서는 아마 김호진이 그 왕욱역을 맡아서 했던걸로 기억한다.

왕욱은 자신의 조카인 고려의 5대 임금인 경종의 후비인 헌정왕후('천추태후' 드라마에서는 신애가 역을 맡음)와 사랑에 빠져 아들을 하나 두고는 헌정왕후는 세상을 떠난다.

물론 경종 사후 10년 뒤의 일이고 근친결혼이 일반화되어 있던 시대이기는 하지만 조카비와 사랑한 죄로 왕욱과 그 아들이 사천 와룡산 아래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그 아들은 자신의 이모이고 제5대 임금의 첫째비이자 제7대 목종의 어머니인 천추태후의 시기를 받아 강제로 승려가 되는 등 갖은 고초를 겪지만 결국은 와룡산에서 잠룡(潛龍)의 시기를  거쳐 임금이 되었기에 현종이 뛰어 놀던 절이름이 와룡사이고 그 산 이름이 와룡산이 되었다는 설도 전해져 내려 온다고 한다.

그렇게 고생을 한 임금이어서 인지 현종은 거란의 침입을 강감찬으로 하여금 귀주대첩으로 물리치게 하고 서민을 위한 정책을 많이 펼쳤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사천에서는 매년 5월이 되면 '와룡문화제'를 열어 고려 현종과 와룡산과의 인연을 기린다고 한다.

 

나와 와룡산과의 운우지정이 왕욱과 헌정왕후의 사랑만큼이야 하겠냐마는 그녀 와룡산과는 꽃잠자리이니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최근에는 이런 저런 일로 바빠 조강지처 광교의 품에 안기는 일도 쉽지 않았기에 더 소중한 와룡산과의 꽃잠자리이다.

 

오늘의 들머리는 남양동 임내 저수지 입구 주차장이다.

11월1일부터 5월15일까지는 산불예방을 위해 많은 코스가 통제되고 있어 코스 선정에 신중을 기하여야 할 것 같다.

 

임내저수지부터 도암재를 거쳐 새섬바위봉을 향한다.

도암재 우측으로 상사바위봉(천왕봉)이 자리잡고 있는데 새섬바위봉과 반대 방향이므로 그냥 먼 발치에서 감상하는 것으로 생략한다.

상사바위에 전해진다는 부모의 반대로 좌절한 남녀가 절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는 애틋한 로맨스가 왕욱과 헌정왕후의 사랑이야기와 오버랩되어 나그네의 발길을 붙잡는다.

 

도암재에서 급경사길을 대략 1시간쯤 오르면 새섬바위봉에 이를 수 있다.

이 길이 스릴 넘치고 산 아래로 펼쳐지는 남해의 모습이 환상적이다.

와룡의 등을 타고 다도해를 노니는 느낌이라면 너무 몽환적이라 하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시원하게 펼쳐진 아기자기한 암능, 끝없이 펼쳐진 다도해에 옅은 안개까지 더해 파노라마가 따로 없다.

와룡산과 그 주변 풍광이야 말로 어느 곳에 렌즈를 갖다대어도 바로 동양화 한폭이다.

아니 그냥 가곡이 되어 우리 귓가를 맴돈다.

비록 생강나무 꽃 몇그루와 어린아이 젖몽우리 만도 못한 진달래와 철쭉 꽃몽우리가 봄소식을 전하는 초봄이지만 바람만은 봄임을 알리는 따스한 훈풍이다.

 

그렇게 새섬바위봉에 도착이다.

옛날 천지개벽이 일어나 삼천포 일대가 물에 잠겼을 때 새 한마리가 앉아 있을 정도의 터만 남아 있었다는 곳이다.

얼마전부터 와룡산의 정상이었던 민재봉(799m)으로 부터 정상의 자리까지 뺏어버린 새섬바위봉(801.4m)은 국립지리원의 인증을 받았다고 한다.

새섬바위봉에서의 조망은 압권이다.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보니 용의 허리 아래 부분이 이제 막 하늘로 승천하기전 바다로 부터 몸을 빠져나오는 형상이니 압권이 아닐 수 없다.

 

새섬바위봉에서의 주체 못한 감탄을 뒤로하고 민재봉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이후 약간의 바위지대를 내려서면 이내 철쭉 군락지의 터널로 들어선다.

철쭉이 필 무렵이면 능선을 따라 핑크빛 융단이 깔릴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이른 봄이기에 그저 젓몸살도 앓지않은 어린아이 젓몽우리만도 못한 꽃몽우리에 만족해야만 한다.

이곳 와룡산의 철쭉은 '사천팔경'중의 하나라고 하는데 그저 그림의 떡일 수 밖에 없다.

 

그렇게 헬기장에 도착하여 점심상을 펼친다.

일부는 배낭을 벗어 놓은채 민재봉을 향하기도 하나 선두인 우리 일행은 민재봉을 포기하고 하산길에 나선다.

아마도 아직까지 와룡산의 최고봉이 민재봉이었드라면 기를 쓰고 들렸을테지만 민재봉이 새섬바위봉에게 최고봉 자리를 빼앗긴 비애이리라.

 

하산길은 수정굴 삼거리를 거쳐 도암재에 이르는 길을 선택했는데, 해발 4~500m 높이의 산허리를 돌아 완만하게 이어지는 길이어서 조금은 밋밋하다.

그러나 암괴류에 의한 너덜지대가 많다.

세계에서 그 규모가 가장 커서 천연기념물인 대구 비슬산 암괴류에는 못미치지만, 이곳도 암괴류의 천국이어서 맨발나그네의 맨발을 괴롭히고 있다.

암괴류는 수만년전 지구의 빙하기 때 돌덩어리들이 골짜기를 흘러내리며 쌓인 돌 무더기를 말하는데 새섬바위봉의 전설이 그럴듯한 이유이다.

 

도암재를 거쳐 처음 출발지였던 임내저수지에 도착하고 이내 삼천포 어시장에 들려 회와 반야탕으로 와룡산과의 꽃잠자리로 지친 나그네의 심신을 떨쳐내니 이보다 더 행복일 순 없다. 

 

(출발에 앞서...)

 

(안내도)

 

 

 

 

 

 

 

 

 

(널려있는 암괴류도 누군가의 손을 거치면 예술이 된다)

 

 

 

(상사바위봉)

 

(삼천포 화력발전소라지....)

 

(끝없이 펼쳐지는 다도해)

 

(전에는 밧줄만 늘어져 있어 아슬 아슬 했다지...)

 

(맨발나그네를 괴롭히고 있는 암괴류의 너덜지대)

(환상적인 다도해 풍경)

 

 

 

 

 

 

(새섬바위봉)

 

(방금 바다를 빠져나온 용의 자태)

 

 

 

 

(이어지는 너덜지대로 인해 맨발나그네의 발바닥이 제법 고생을 해버렸다)

 

(생강나무꽃)

 

 

(모두가 행복에 넘쳐나는 하산길)

(삼천포어시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