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나그네/맨발걷기 경험담

낙영산의 품에 안겼다 온 맨발나그네

맨발나그네 2011. 7. 26. 23:55

 

낙영산의 품에 안겼다 온 맨발나그네

 

● 산 행 지 : 괴산 낙영산( 684m)

● 산행일시 : 2011년 7월 24일 (일)

● 누 구 랑 : 산7000 산악회

● 산행코스 : 공림사>헬기장>정상>안부 갈림길>공림사

● 사진은 ? : 산7000 산악회 회원 여러분

 

새벽부터 비가 내린다.

컨디션 난조로 어제밤부터 망설여지던 산행길인데 새벽부터 내리는 빗줄기는 나의 마음을 시험에 들게 한다.

그래도 오래간만에 산7000산악회 식구들과의 만남이니 산행을 포기하더라도 현지에 가서 결정하기로 하고 집을 나선다.

괴산 낙영산을 가는 길은 휴일과 여름휴가철을 맞아 제법 붐빈다.

 

 

 

 

 

 

낙영산 산행의 들머리이자 날머리인 공림사는 여름 비속에 고즈넉하다.

공림사 입구에 쭉 늘어서 있는 느티나무 숲은 세월의 무게를 느끼기에 더할 나위없다.

그 느티나무 숲 끝자락의 1,000여년을 견디온 느티나무는 너무나 인자한 우리네 옆집 할아버지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맞는다.

 

 

 

 

 

 

내리는 비 때문에 안개에 덮힌 공림사와 노거수와 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하긴 공림사도 서기 873년 신라 경문왕 때 창건된 절이라 한다.

조선 중기까지는 속리산 법주사보다 더 융성했지만 임진왜란과 6.25를 거치면서 다 타버리는 바람에 지금의 절은 30여년 밖에 안된 젊은 절이다.

그러나 1,000여년된 느티나무와 조화를 이루어 왠지 고색창연한 아주 오래된 절집같아 보인다.

이 맨발나그네에게 그 오래된 기품을 뽐내려 적당히 안개를 뿌려 옛스러움을 만든듯 하다.

 

 

 

 

 

천년의 세월을 보듬으며, 임진왜란과 6.25의 아픔까지를 온몸으로 느꼈을 느티나무 옆을 지나 공림사 오른쪽 능선을 따라 맨발나그네되어 낙영산으로 향한다.

숨을 헐떡이며 오르는 능선길이기에 거의 대부분 거추장스러운 우비를 벗고 비속을 걷는다.

왼쪽으로 안개 속을 헤치고 어렴풋이 올려다 보이는 대 바위 슬램은 우리 모두의 숨을 멈추게 한다.

장관(壯觀), 장엄(壯嚴)이라는 말은 아마도 이런때 쓰라고 만들어 졌음이 분명하다.

정말 날씨가 좋았더라면 경치에 취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을 것 같다.

 

 

 

 

 

 

 

 

그렇게 아쉬워하며 오른 곳이 681봉 헬기장이다.

헬기장부터 낙영산 정상까지의 능선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자연 박물관이다.

안개 때문에 백두대간 속리산의 연봉들을 감상하는데는 실패했지만, 능선길 전체가 전망대이니 아쉬울게 없다.

기기묘묘한 바위들과 노송이 연출하는 경치는 수십폭의 동양화 병풍이 따로 없다.

어떤 조각가가 이 보다 더 환상적인 모습의 조각을 남길 수 있을까?

거대한 바위에는 신라의 어느 장수가 새겨넣은 글씨가 풍화작용에 마모된듯 보이는 멋스러움에다 그 밑에 어느 나그네가 아주 작은 돌들을 끼워 넣어 마치 그 바위가 넘어지는 것을 막겠다는 모습까지도 우리의 마음을 한바탕 즐겁게 흔들고 지나간다.

바위 하나 하나 마다 뭔가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모습을 가진 바위들의 암능미는 또 어떤가?

일행들 모두가 바위들에게 각자 이름 하나씩 짓는 것을 거들며 즐거워 한다.

그 수많은 바위들이 그냥 바위만 그자리에 있었다면 동양화가 될 수 없다.

바위가 주는 암능미와 조화를 이루어 수많은 세월을 견뎌내며 낙낙 장송이 되어 있는 소나무들이 바위에 기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산 이름 낙영산(落影山)은 산의 그림자가 비추다 혹은 그림자가 떨어지다는 뜻이다.

신라 진평왕때 중국 당나라 고조가 어느날 세숫물을 받아놓고 세수를 하기위해 세숫물을 들여다 보니 아름다운 산의 모습이 비쳐 화가를 불러 그림을 그리게 한 후 산을 찾게 하였으나 중국내에서는 찾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동자승이 나타나 세숫대야에 비친 산은 동방의 신라국에 있다고 알려줘 신라에 사신을 보내 이런 저런 고생 끝에 찾아낸 산에 낙영산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고 한다.

 

 

 

 

매혹적인 모습으로 맨발나그네의 발걸음을 잡는 풍광들과 아쉬운 이별을 해가며 괜신히 도착한 곳이 낙영산 정상이다.

그저 언덕배기 같은 바위들이 모여있고 그 한가운데 '낙영산 684m'라는 비석이 서있는데 여느 산들의 정상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 없다.

하긴 매혹적인 낙영산 자체가 있는데 정상석이 무슨 상관이랴.

능선길따라 오는 동안 맨발나그네의 눈이 호강을 한지라 낙영산 정상의 모습이 조금은 실망스럽지만, 이 또한 낙영산을 돋보이게 하려는 장치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이다.

 

 

 

 

정상을 지나 또다른 동양화를 감상하며 20여분쯤 걸었을까하는데 안부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도명산이요,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우리가 들머리로 잡았던 공림사이다.

이곳부터는 여느 산과 다름없는 그렇고 그런 하산길을 지나온 동양화를 음미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낙영산!

그저 그렇고 그런 산이 아니라 당 고조를 현혹한 산이다.

그래서 오늘은 조강지처가 어떻고 저떻고, 운우지정이 어쩌구 저쩌구 사설을 늘어 놓지 않으려 한다.

낙영산이 내준 품에 잠시잠간 안겨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황홀하기 그지 없으니 말이다.

날씨가 좋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시원한 여름비를 맞으며 절경에 취해 그녀 낙영의 품속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감사하게 생각할 따름이다.

잃는게 있으면 얻는게 있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 했던가?

날씨로 조망을 잃었지만, 여름비를 맞고 더 큰 녹음을 만들어 청량감을 최고로 만들었으니 얻은 것의 첫번째요, 무더위를 싹 가실 정도의 시원함이 있었으니 얻은 것의 두번째로 꼽을 수 있겠다.

 

 

 

 

 

 

 

 

오늘도 자연이 빚은 신의 예술을 감상하고 나니 눈이 호강하고 마음이 향기로와 진다.

모두가 삶의 버거운 짐들을 잠시나마 내려놓고 자신이 자연이 되어 보낸 하루다.

뒷풀이로 산7000산악회가 준비한 통돼지에 반야탕(般若湯 : 범어에서 반야는 Prajna로 지혜라는 뜻을 가진다, 그래서 반야탕, 즉 술은 '지혜의 물'이란다)까지 함께하니 오늘도 하루살이 신선임이 분명하다.

 

(몇몇 카페에 실린 댓글들)

 

(푸른나무 맨발산악회)

엘도라도 07:09 new
와우~~~형님 후기넘넘 섬세하게 써주셨네요.변함없는 단독맨발....함게하신모든분 즐거워보이시는 모습이 넘쳐나는군요.형님은 산행시젤루 멋져 보여요^^*~ 비오는산행 수고하셨어요.

 

(산7000산악회)

홍화 06:31 new
후기글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습니다..
매번 느끼는것 이지만 말입니다..
멋진글 즐감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