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나그네/맨발걷기 경험담

추색에 물든 설악에서의 추억

맨발나그네 2012. 10. 30. 14:00

 

추색에 물든 설악에서의 추억

 

● 산행일시 : 2012년 10월 28일 (日)

● 누 구 랑 : 산 7000 산악회

● 산행코스 :  B코스 (장수대- 대승폭포-장수대-주차장)

● 사진은 ? : 따스한마음, 자스민, 본인

 

(설악과 만난 날들)

 

 

(1971년 설악과의 첫 만남)

 

 

(1985년10월의 설악)                            (1989년 설악의 대청봉)

 

 

(1990년의 설악)

 

 

 

설악과의 만남은 항상 설레임이다.

묘한 마력에 흥분하게 되는 산이다.

설악을 처음 만난 고2시절의 수학여행이 그러했고, 30대 젊은시절 몇 번인가 찾았던 설악이 그러했다.

그후 한동안 내게 있어 설악은 그저 바쁜 일상에서 지인들과 몰려가 하루저녁 술과 고스톱으로 지내곤 먼발치에서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던 시절도 있었다.

설악의 능선과 골은 그저 추억의 한편에 묻어둬야 할 그리움만 가득한 곳인 줄 알았다.

그 멤버중에 한분이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난 다시 설악의 품을 찾기 시작했다.

 

 

(2009년6월과 2010년10월에 찾은 설악의 십이선녀탕계곡)

 

 

(2009년 10월의 공룡능선, 수많은 인파로 등산로가 지체되어 대기중인 모습)

 

 

설악가

 

굽이져 흰띠두른 능선길따라

달빛에 걸어가던 계곡의 여운을

 

내 어이 잊으리오 꿈같은 산행을

잘-있거라- 설악아 내 다시 오리니

 

저멀리 능선위에 철 쭉꽃 필적에

너 와나 다정하게 손 잡고 걷던 길

 

내 어이 잊으리오 꿈같은 산행을

잘-있거라- 설악아 내 다시 오리니

 

 

(설악, A코스팀중  자스민님의 사진중에서)

 

 1970년 이정훈님이 작사작곡한 '설악가'이다.

그의 노랫말 맨 뒷 소절처럼 꿈같은 산행을 잊지 못해 또다시 찾게되는 것이 설악산인 것이다.

하지만 설악과의 데이트는 쉽지않다.

산행코스 어느 것 하나 만만하게 그 품을 내주는 법이 없으니 말이다.

하긴 설악산은 높이 1,708m로 남한에서는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에 이어 세번째로 높은 산이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산7000산악회가 그런 설악산의 귀떼기청봉을 품은 서북능선을 걷는다기에 꼬리를 잡긴 잡았는데, 컨디션이 난조다.

그래서 난생 처음으로 B코스를 선택해 본다.

거리래야 모두 합쳐 4km 내외의 길을 걷는다.

 

 

(한계령, 양양에서는 오색령이라 부른다)

 

 

 

그래도 설악은 설악이다.

아름다운 풍광이 있고, 제법 난이도 높은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A코스팀들이 잡은 들머리인 한계령은 이미 단풍이 다 지고 난 다음이지만, A코스팀의 날머리이자 B코스팀의 나들머리인 장수대는 곱게 물들인 단풍이 길 떠날 준비에 분주하다.

사람들은 모두 남쪽으로 단풍을 보기위해 떠나서인지 한적한 등산로를 여유자적하게 걷는다.

계곡의 맑은 물에는 떠러진 낙엽으로 수놓고, 걷는 길 또한 낙엽으로 수놓았으니 그 정취가 아쉬움을 달래주기에 손색이 없다.

 

 

 

 

이제 곱디 고운 단풍은 낙엽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을 떠날 것이다.

강원대학교 생물학과 명예교수인 권오길님은 그의 글에서 "식물은 사람의 콩팥과 같은 배설기가 없어서 세포 속에 액포라는 작은 주머니에 배설물을 담아뒀다가 갈잎에 넣어 내다 버리기 때문에 낙엽은 일종의 배설물"이라고 말한다.

단풍은 가을 어느날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봄여름 내내 짙은 엽록소 그늘에 묻혀있다가 온도에 약한 엽록소가 파괴되면서 그것에 가려있던 카로틴, 크산토필, 타닌, 안토시아닌 같은 색소들이 겉으로 드러날 뿐이라한다.

안토시아닌 성분이 많으면 붉은색으로 보이고, 카로틴 성분이 많으면 당근같은 황적색을 보이고, 크산토필 성분이 많으면 은행잎처럼 노란색으로 보일 것이다.

타닌 성분은 많은 참나무류나 너도밤나무 잎들은 갈색을 갖기 때문에 낙엽이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그 또한 커피색의 아름다운 단풍인 것이다.

위 성분이 적당히 섞이면 감나무처럼 붉은색과 노란색이 섞여 오묘해진다.

 

 

 

그러고 보면 푸른 녹음이 단풍이 되고 다시 낙엽이되어 우리 곁을 떠나는 것이야 말로 자연의 순리인 것이다.

되돌아가면서도 마지막까지 종족보존을 위한 치열한 몸부림을 한다.

자외선을 차단하여 양분을 뿌리로 내려보내게 하고, 갑작스러운 추위에 나뭇잎 세포가 얼지않게 하며, 열매 주위에 해충이 꼬이는 것을 막아주는 구충제역할을 하기도 한단다.

잎이 땅에 떨어졌을 때는 독소를 내뿜어 경쟁관계에 있는 주변 나무의 생장을 방해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한다.

 

 

 

이 낙엽길에 단풍을 보고 걸으며 단풍나무의 치열한 몸부림을 생각하자니 인생길을 다시 한번 음미하게 하는 대목이다.

인생이라는 긴 여행도 결국은 자연의 순리대로 흘러간다.

긴 인생길의 구비구비마다 예측없이 만나는 수 많은 일들에 일희일비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희로애락의 인생사에서 너무 쉽게 슬퍼하고 좌절하고 권태하며 지루해하지 않았나 돌이켜보게 된다.

이제 얼마남지 않은 나의 인생이라는 여행길이 항상 즐거웠으면 하는 바램이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그날까지 항상 들뜨고 설레이는 여행길이었으면 좋겠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그날 삶을 되돌아 보았을 때, 나의 인생이 지우고 싶지 않은 추억여행이었으면 좋겠다.

 

(댓글 들)

 

  • 핑크쭈니

    한권의 빛바랜 노트를 펼쳐보이는듯 어제가 바로 오늘로 되살아 오는듯 합니다.
    어린시절부터 찾던 그곳에 희끗희끗 노안?으로 다시서는 감회가 참으로 깊겠습니다.
    누근들 과거가 없었겠냐만 맨발 나그네님의 산사라은 한결같아 더욱 돋보입니다.
    2012.10.30 21:51

  • 산지기

    설악의 어제와 오늘..설악은 말없이 그대로인데 사람은 가고 또오고 철부지 어린애가 이제 백발이 성성...
    이쁜 운동화가 군화로 등산화로.. 이제는 맨발로..이제 처음 온길로 되둘아가는 길을 걸어가는 이들의 뒷모습이 처연하다고나 할까.. 아름답다고나 할까.. 돌고 돌아서 윤회의 체바퀴에 걸린 인생.. 설악의 아름다움에 모든 고뇌를 묻어나 볼까나...
    2012.10.31 20:41

  • 배따라기

    설악산의 아름다운 이야기와 전설을 잘보고 갑니다. 맨발나그네님의 걸어오신 길을 즐겁게 엿보고 가네요. 2012.11.01 06:33

  • tetetete

    이분의 글은 참 한 편의 에세이 같네요 2012.11.01 11:42

  • 순희

    나그네님의 아름다운 한편의 서정시 같은 산행기 마음에 담아가네요. 항상 즐산 안산하시길 2012.11.01 20:55

  • 사랑의인사

    아름다운 한편의 시를 읽는것 같아요. 인생이란 이런것...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는..
    어느새 ....그런거지요.
    2012.11.02 22:50

  • 헤즐넷

    말만 들어도 맘이 설레이는 설악산...
    공룡을 4번 다녀왔지만 산행할때마다 느낌이 달랐는데
    이렇게 다시보니 가고싶은맘이 간절해지네요..
    좋은글 잘보고갑니다..
    2012.11.03 20:28

  • 미소천사

    저두 고2떄 수학여행 첨 설악산 다녀오구요 이젠 열번 정도 다녀왔네요 나그네님 산행후기도 잘 쓰시고 사진도 잘 보고 갑니다~~ 2012.11.07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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