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나그네/맨발걷기 경험담

속리산의 멋들어짐에 취한 맨발나그네

맨발나그네 2012. 11. 27. 00:58

 

속리산의 멋들어짐에 취한 맨발나그네

 

● 산행일시 : 2012년 11월 25일 (日)

● 누 구 랑 : 산 7000 산악회

● 산행코스 :  대목골-천왕봉-비로봉-입석대-신선대-문수봉-문장대-화북탐방지원센터

● 사진은 ? : 따스한마음, 소리새, 쌩쥐, 혁이아빠

 

 

 

 

속리산은 충북 보은군과 괴산군, 경북 상주시에 걸쳐 있는 산이다.

백두산에서 발원한 산줄기가 백두대간을 형성하며 남으로 뻗어나가며 12대종산을 만드는데 그 중 하나가 속리산이다.

소금강산, 광명산, 지명산, 미지산, 구봉산, 형제산, 자하산 등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삼국시대부터 속리산으로 불리우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 연유로 신라의 진표율사가 이곳에 이르자 밭갈이를 하던 소들이 무릎을 꿇어 율사를 맞이했고, 이를 본 농부들이 속세를 버리고 진표율사를 따라 입산수도했다는 전설에서 찾는다.

또 다른 설로는 신라 말기 문장가인 최치원이 속리산에 왔다가 남긴 시

道不遠人   ()는 사람을 멀리 하지 않았는데

人遠道      사람은 도를 멀리 하는구나.

山非離俗   산은 사람()을 떠나지 않는데

俗離山      사람이 산을 떠나는 구나.

에서 유래했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시는 이수광이 편찬한 <지봉유설><백호집>에 의하면 조선시대 백호 임제가 쓴 시라고 하니 좀 더 지켜봐야 할 사안이다.

어째거나 (세속 속)(떼놓을 리)을 놓고 누구는 속세를 버리고 산으로 출가해서 속리산이라 하고, 누구는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고 세속이 스스로 산을 떠났을 뿐이기에 속리산이라고 한단다.

과연 내게 있어 속리산은 어느 쪽일까?

 

 (천왕봉에서 문장대로 이어지는 서북암능길, 저멀리 문장대가 보인다)

 

원래 산악회는 속리산이 속해있는 충북알프스의 속리산 묘봉~상학봉 구간을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산불방지기간이어서 통제가 되고 있다고 하여 바뀐 코스가 속리산 천왕봉에서 문장대까지 이어지는 속리 서북릉길이다.

속리산에는 팔봉팔석문팔대(八峰八石門八臺)가 있으니 여덟 개의 봉우리는 천왕봉, 비로봉, 길상봉, 문수봉, 보현봉, 관음봉, 묘봉, 수정봉이요, 여덟 개의 돌문은 내석문, 외석문, 상환석문, 상고외석문, 비로석문, 금강석문, 추래석문이요, 여덟 개의 대는 문장대, 입석대, 경업대, 배석대, 학소대, 은선대, 봉황대, 산호대이다.

팔봉, 팔석문, 팔대에서 보듯 모든 숫자에 ‘8’에 맞추어져 있는 것은 불교의 실천 수행인 8정도(八正道)에서 의미를 빌려왔다고 한다.

 

(천왕봉 조금 못미쳐에서 발아래 풍광에 발길을 멈춘다)

 

속리산은 부처님의 법이 머무르는 사찰인 법주사에 그의 한 쪽 품을 내어 주고 있기도 하다.

어째거나 속세를 떠나 하루살이 신선이 되 보고자 산7000산악회를 따라 나선다.

그러나 버스 안에서 오사마 산행대장에 의하면 장장 11.5km6시간정도 걸릴 것이라고 하니 자꾸만 B코스(날머리에서 문장대만 갔다 오는 코스) 쪽을 기웃거리게 되니 이제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나보다.

그러나 큰 맘 먹고 A코스(천왕봉~문장대) 일행을 따라 나선다.

천왕봉에서 문장대에 이르는 3.4km 구간은 1,000m이상의 천왕-비로-입석-신선-경업-청법-문수-문장대로 이어지는 고산준봉들이 참나무류의 나무와 조릿대를 벗삼아 암장 암능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 아름다움이 백미라고 하니 따라나서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대목골에서 천왕봉 오르는 길)

 

(조릿대 울창한 산길을...)

 

오늘 들머리는 보은군 속리산면 대목리로 한다.

출발지의 고도가 240m라고 하는데 천왕봉이 1,058m이니 입에 단내가 나도록 된비얄을 올라야 만나지는 곳이 천왕봉이다.

수북히 쌓인 낙엽을 밟으며 산우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보니 그럭저럭 견딜만 하다.

그렇게 8부 능선쯤 오르니 주변의 산들도 머리를 내밀고, 조릿대 숲이 펼쳐져 힘에 부쳐하는 일행들에게 위로라면 위로가 된다.

 

(천왕봉 표지석에서의 인증샷)

그렇게 도착한 천왕봉.

속리산의 정상이다.

일제에 의해 1918년 일본총독부에서 만든 지도에서부터는 천황봉으로 불리워왔다고 한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이며 천황의 땅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왜곡한 결과라고 한다.

2007년 중앙지명위원회가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지지><대동여지도>등을 근거로 천황봉을 천왕봉으로 바꾸었다니 다행이다.

 

(천왕봉에서 맨발나그네되어...)

 

천왕봉은 한남금북정맥의 분기점이자 삼파수(三派水)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한남금북정맥은 다시 안성의 칠현산에서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으로 갈라지니 백두대간 13정맥중 세 개의 정맥을 품고 있는 산이 천왕봉인 것이다.

삼파수란 천왕봉에 떨어진 빗물이 동쪽으로 흘러 내리면 낙동강물이 되고, 남쪽으로 흘러 내리면 금강물이 되고, 서쪽으로 흘러 내리면 남한강물이 되기에 이르는 말이다.

제법 맑은 날씨 속에 발아래 펼쳐진 산들이 웅대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모든 산들이 오직 천왕봉을 우러러 보며 경배를 올리고 있으니 그 웅장하고 장엄함이 표현할 말을 잊게 한다.

 

 

 

그 천왕봉에서 속리산의 지기를 제대로 받아 볼 요량으로 맨발이 된다.

어제 조광지처이자 나의 종교인 광교산 7km 산행중 3km를 맨발로 걸어 좀 무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번 기회 아니면 속리산에서의 맨발이 되어 볼 기회가 다시 없을 것 같아 실행에 옮긴다.

날씨는 예보와는 달리 따듯한데, 산길은 북사면으로 이어져 있어 얼어 있거나 녹아서 진흙길이다.

그 길을 주인  잘못 만난 내 발에게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맨발로 걷는다.

때로는 서릿발도 밟아보고, 채 녹지않은 눈길도 걸어보고, 진흙길도 걸어 본다.

 

(점심식사후 출발에 앞서 수십폭 산수화 병풍 앞에서)

 

그렇게 조금 걷다 만나는 헬기장에서 점심상을 펼친다.

오늘도 진수성찬이다.

진수성찬을 자연이 선사하는 수십폭 산수화 병풍앞에서 먹는다는 것은 상상만 하여도 즐거운 일인데 오늘 그 상상이 실제가 된 날이다.

아니 신선들이 아니면 빚을 수 없는 석공예품을 감상하며 반야탕을 한잔 걸치니 내가 신선이 된다.

하긴 인간()이 산()에 들어왔다면 이미 신선()일지니 산에 올 때마다 신선흉내를 낸 들 누가 뭐라 하겠는가?

 

(사랑을 한번 해보고 싶게 만든 연리지목)

 

 

점심식사후 다시 길을 떠난다.

길옆으로 아주 오래된 아람드리 참나무들이 빼곡하다.

조금 걷자니 길옆 우람한 아람드리 참나무가 사랑가를 부른다.

애틋한 사랑을 자랑하듯 연리지가 되어 우리를 맞는다.

사람들은 부부나 연인, 또는 부모 자식 사이의 애틋한 사랑을 표현할 때 연리지 사랑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송나라 범영이 쓴 역사책 <후한서>에 의하면, 후한 말의 대학자인 채옹이라는 사람은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지극 정성으로 간호를 하였다.

그러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무덤 곁에 초막을 짓고 3년 동안 묘를 지켰단다.

얼마 후 채옹의 초막 앞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서로 마주보면서 자라나기 시작했는데, 차츰 두 나무는 서로의 가지가 맞붙어 마침내 연리지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채옹이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와 자식이 한 몸이 된 것이라고 칭송했다.

이때부터 연리지는 효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은 부모 자식 간의 사랑보다는 남녀 간의 사랑을 비유할 때 더욱 많이 쓰인다.

그것은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쓴 장한가(長恨歌)’ 때문이다.

이 시에서 백거이는 당현종과 양귀비의 애절한 사랑을 연리지에 비유했다.

그 후 연리지는 남녀 사이의 애틋하고 변함없는 영원한 사랑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생물학적인 연리지는 두 나무의 몸이나 가지가 서로 맞닿아서 성장하면서 맞닿은 부분이 압박을 견디다 못해 껍질이 벗겨지면서 생살이 부딪혀 하나로 이어진다.

그 쓰리고 아픈 시간을 견뎌낸 뒤에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먼저 부피성장이 일어나는 부름켜가 이어지고 유세포(柔細胞)가 하나로 섞인다.

그 뒤를 따라 일반 세포들이 이어지면서 연리의 과정이 끝난다.

이렇듯 아픔을 견뎌가며 서로 합쳐져 하나가 되는게 참된 사랑임을 연리지 나무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연리지나무를 보고 있자니 하동진의 노래 '사랑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가 언뜻 떠오른다.

올겨울이 가기전 저 연리지를 닮은 매력있는 여자를 만나 사랑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그리고 석문과 만난다.

아마도 비로봉 부처님이 사는 피안(彼岸)과 우리 중생들이 사는 차안(此岸)을 나누는 문이 아닌가 한다.

그 문을 통과하여 한참을 오르니 비로봉(1,034m)이다.

비로(毘盧)는 비로자나불을 줄인 말로서, 인도말로 몸의 빛, 지혜의 빛이 법계(法界)에 두루 비치어 가득하다는 것으로 부처의 진신을 얼컫는 말이자, 광명을 의미한다고 한다.

진표율사가 속리산에 온 다음날 아침 새벽 방안에서 좌선을 하고 있는데, 별안간 밝은 빛이 방문 가득히 비췄다.

깜짝 놀라 방문을 열었더니 맞은 편 봉우리에서 눈부신 햇빛이 오색 무지개를 띄고 사방팔방 비추고 있었다.

대사가 급히 합장배례를 하고 그곳으로 달려가 보니 비로자나불이 암석에 앉아 있다가 서쪽 하늘을 향해 구름을 타고 떠났다 한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비로봉이다.

 

 

 

그렇게 천왕봉에서 문장대에 이르는 10여리길은 신선이 빚지 않고는 만들 수 없는 수석전시장이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오묘한 바위들이 주저리 주저리 전설과 신화를 이야기 하고, 거기에 걸맞는 이름을 하나씩 꿰차고 풍광을 자랑한다.

가까이서 봐도 멋있고, 멀리서 봐도 백미다.

그 아름다움에 언 땅위를 걷고 있는 맨발의 시려움도 서서히 몰려오는 장딴지의 아픔도 잊게 해주기에 충분하다.

 

 

 

 

 

 

 

 

 

 

비로봉을 떠나 조릿대 숲을 헤치며 걷자니 임경업 장군이 7년간 수도 한 후 신통력을 얻어 세웠다는 전설이 서려있는 입석대(1,033m)를 지나 신선대(1,016m)로 향한다.

그 옛날 산봉우리에 백학이 수없이 날아와 춤추고 신선들이 놀았다는 신선대이다.

거대한 바위를 깍아 만든 바위 계단을 오르 내리며 도착한 곳이 문수봉(1,018m)이다.

그 문수봉을 거쳐 문장대로 향한다.

 

(멀리서 본 문장대)

 

(가까이서 본 문장대)

 

문장대(1,054m)는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에 위치한 석대다.

원래 구름 속에 묻혀있다 하여 운장대(雲藏臺)로 불렸으나, 조선시대 세조가 열 섬의 환약과 열 두 동이의 탕약으로도 낫지 않는 괴질을 달래고 있을 때 월광태자라는 귀인이 알려 주는 대로 오른 곳이 문장대이고, 거기에 올라 삼강오륜을 읽고 병을 고치니 구름 자를 글월 로 바꾸어 문장대가 되었다고 한다.

 

 

(문장대 정상에서)

 

문장대는 세 번만 오르면 극락에 들 수 있다는 말이 전한다고 하니 안 올라가 볼 수 없다.

그야말로 일망무제다.

참으로 장관이다.

절경이다.

겹겹이 펼쳐지는 절경에 잠시 속세를 잊기에 충분하다.

 

(문장대에서 바라본 관음봉과 그 너머 묘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오른쪽 가까이로는 관음봉이요 그 옆 너머로는 묘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이어져 있고, 좌측으로는 지금껏 지나온 신선대와 입석대이고 그 너머로 비로봉,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주저리 주저리 걸려있다.

그리고 그 사이로는 상주 화북 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들이 아스라이 산그리메가 되어 닥아온다.

비록 4m차이로 속리산의 최고봉을 천왕봉에 내주긴 했지만 그 위용은 천왕산을 능가하기에 충분하다.

 

 

(문장대 정상의 웅덩이에 주인 잘못 만나 고생중인 맨발나그네의 발)

 

문장대 정상에는 군데 군데 웅덩이가 움푹 파여있고 그 안에는 물이 고여 있는데 얼어 있어 발 씻을 엄두를 못 내고 그냥 더러운 발을 털어내고는 양말과 등산화를 찾아 신는다.

 

 

(1982년 연애시절의 속리산과 그 사랑의 결실을 안고 다시 찾은 1987년의 속리산)

 

그렇게 극락에 드는 티켓을 얻어 들은 후 (왜냐? 이번까지 서너 너댓번 문장대에 오른 것 같으므로....) 옛날 아내와 연애시절 과 그 몇년후 어린 자식들을 앞세우고 다녀간 속리산을 추억하며 날머리인 화북주차장으로 향하니 장장 6시간에 걸친 천왕봉~문장대 구간 산행을 마무리한다.

역사와 전설과 문화가 숨쉬는 속리산이 내준 품에 안겨 하루를 보낸 행복한 날이다.

속리산의 멋들어짐에 취해 힘든 줄 모르고 그녀 속리산과의 데이트가 즐거웠던 하루였다.

그리고 다시 신선에서 속인이 되어 속리산을 떠나 세속으로 향하는 俗離山이 된다.

 

답글

  • 할로윈

    속리산에 팔봉팔문팔대가 있다는 사실을 첨 알았슴.
    산해기 내내 전설처럼 아름다운 옛애기를 들으면서 연리지목에 사랑을 배움니다.
    2012.11.27 20:08

  • 뭘로할까

    산은 사람(俗)을 떠나지 않는데 사람이 산을 떠나는 구나......
    누가 한말인지 모르나 산은 그대로 있는데 우리는 그무었이 그리워서 떠나는 것일까..

    2012.11.28 21:37

  • 후리지아

    할머니의 이야기 주머니를 풀은듯 넘 재미있고 유익한 예기 즐감합니다. 더욱 속리산이 멋져 보입니다. 2012.11.29 06:15

  • 참새18

    신선들이 아니면 빚을 수 없는 석공예품을 감상하며 반야탕을 한잔 걸치니 내가 신선이 된다...반신선이 되신 소감이 ..... 넘 즐거운 산행기 입니다. 항상 즐산안산하시길... 2012.11.29 20:31

  • 돌쇠

    속리산에도 통천문이 있네요. 그리고 연리지목도 있고...넘 가고싶다. 2012.11.30 05:54

  • 영희

    잘쓰신 산행기 즐감하고 가네요. 감사합니다. 2012.12.01 20:54

  • 효리

    속리산을 여러번 가봤어도 나그네님이 올리신 사진속 명물들을 거의 못본것 같아요. 한심하네요.
    땅만보고 갔었나...덕분에 좋은 사진과 글 즐감하고 갑니다.
    2012.12.02 09:17

  • 달파란마을

    연리지목 말로도 정말 여러가지 볼것들이 많네요. 여러형상의 바위들도 멋지고요. 즐감하고 갑니다. 2012.12.03 21:21

  • 고향바다

    문장대 꼭대기에서 맨발을 담그는 기인을 여기서 보네요. ㅋㅋㅋ.산행기 넘 잘보고 갑니다. 2012.12.04 06:12

  • 목단

    어름위에 맨발로 있으시넹...발이 참 불쌍합니다. 주인 잘못만나 허구헌날 돌뿌리..개똥밭..안가는 곳이 없으니...재미있는 산행기 즐감하고 갑니다.
    2012.12.06 2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