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나그네/맨발걷기 경험담

이봉산~승학산~와룡산과의 사랑

맨발나그네 2013. 4. 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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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산하와 사랑나누기(19)>

이봉산~승학산~와룡산과의 사랑

 

어 디 를 : 화성시 이봉산(105m) - 승학산(111m) - 와룡산(108m)

언 제 : 2013331

누 구 랑 : 나홀로

코 스 는 : 마산리와지화리사이 고개마루-이봉산-승학산-와룡산-송산서로-고개마루(원점회귀)

 

 

(내가 걸었고, 앞으로 걸어야 할 화성의 산하, 붉은색 동그라미는 이미 사랑을 나눈 사이임)

 

(화성시 관광안내도 중 송산면 일원)

 

 

(오늘 사랑을 나눈 이봉산~승학산~와룡산)

 

 

내고향은 화성시 양감면 요당리이다.

고향의 사전적의미는 태어나 자란 곳 또는 제 조상이 오래 누려 살던 곳으로 되어 있다.

400여년전 나의 조상 중 한 분이 터를 잡아 오래 누려 살았고 내가 태어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곳이다.

1926년 잡지 <어린이>에 발표한 이원수의 동시에 화성시가 고향인 홍난파가 곡을 붙여 탄생한 동요가 <고향의 봄>이다.

이 동시는 이원수가 열다섯살 때 쓴 동시라 한다.

열다섯살 소년이 지은 동시답지 않게 한국적인 서정을 잘 표현한 동시라 한다.

어째거나 우리 모두는 고향에서 놀던 때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다.

고향에서의 어린시절 추억은 향수에 젖게 한다.

시나 소설 등 많은 문학 작품에서 다루어 온 주제가 노스텔지어이다.

그 중에서도 1989년 김희갑이 작곡하여 테너 박인수와 대중 음악가수 이동원이 듀엣으로 불러 잘 알려진 정지용의 시 <향수>는 압권이다.

사람들은 일제시대 민족적인 시를 지으며 일제의 탄압을 피해 은유적으로 민족정서를 표현한 시라 해석하지만 내겐 그저 아름다운 시어로 표현된 고향에 대한 향수로만 보인다.

이외에도 많은 시인, 작가들이 고향과 고향에 대한 향수를 노래하였다.

<고향의 봄>에서처럼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고, <향수>에서처럼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 없는 곳이 고향이다.

고향이란 <고향의 봄>에서처럼 파란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이니 그리운 곳이다.

고향은 <향수>에서처럼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게를 돋아 고이시고’,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고’,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가 있을 듯 하기에 차마 잊을 수 없는 곳이다.

 

 

(이봉산과 승학산 기슭에 옹기종기 마을을 이루고 있는 화성의 마을)

 

(승학산 기슭에서 바라 본 와룡산)

 

내고향 화성시는 우리나라 역사의 중심에서 실크로드의 시작과 종착역이었던 당성( http://blog.daum.net/yooyh54/306)이 자리하고 있고 아주 먼 옛날 중생대 백악기(8,300~8,500만전으로 추정되는)에는 공룡들이 뛰어놀던 곳(( http://blog.daum.net/yooyh54/307)이다.

정조대왕의 효심이 깃든 용주사와 세계문화유산인 융건능( http://blog.daum.net/yooyh54/377)이 자리잡고 있으며, 임진왜란 때는 의병장으로 활약한 추연 우성전 선생을 배출한 고장이다.

3.1운동 때에는 일제에 용감히 항거한 제암리, 고주리, 화수리가 있었으며, 근대음악의 선구자 난파 홍영후와 신문학 초기 낭만파 시인인 노작 홍사용의 고향이기도 하다.

화성시는 가왕 조용필과 축구계의 레전드 차범근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고향 화성시는 산업화의 몸살로 고향으로서의 기능을 잃어가고 있는 중이다.

우선 1986년 화성시에서 발생한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으로 10여명의 희생자가 있었고, 범인이 아직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2003년 이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인하여 타 지역에 가서 고향이 화성시라고 이야기하기가 거북해졌다.

인구추이를 보더라도 20041237천명이던 것이 20131526천명으로 늘었는데, 아직도 신도시를 건설한다고 여기 저기 파헤져 논 주택건설지를 보고 있노라면 이것이 과연 발전이라고 표현해도 되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도시의 성장속도가 전국 지자체 중 1,2위를 다툰다고 하는데 이를 위해 격는 성장통은 상상 이상이다.

도시의 성장속도는 고향의 피폐화와 속도를 같이하고 있다.

 

 

(승학산 기슭에서 바라 본 고향의 모습, 멀리 길게 누어 있는 산이 대부도이다)

 

그래도 화성시는 나의 고향이다.

몇 년전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고향에 들릴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나이가 들어가니 고향에 들리는 횟수에 반비례하여 고향에 대한 향수는 커져가기만 한다.

그런 고향 화성시이기에 짬이 날 때마다 화성의 산하와 사랑나누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 사랑을 나눌 곳은 화성시 송산면에 있는 이봉산~승학산~와룡산 이어 걷기다.

송산면은 화성시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면이다.

백두대간이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남으로 달려가다 속리산에서 한남금북정맥을 낳았고, 이 정맥은 경기도 안성의 칠장산에 다다라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으로 갈라진다.

한남정맥이 김포로 달려가다 다시 분맥하여 서봉지맥을 이루는데, 서봉지맥이 평택 계두봉을 향해 달려가다 칠보산과 서봉산 사이의 샘골고개에서 분맥하여 삼봉산 태행산 염티고개 다락고개 이봉산 승학산 와룡산으로 이어지며 태행지맥을 형성한다.

그 태행지맥이 서해로 가라앉기 전 마지막으로 만든 산들이 이봉산~승학산~와룡산이다.

오늘의 들머리는 마산리에서 지화리로 넘어가는 고개마루이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지역이므로 오늘도 어쩔수 없이 승용차를 이용한다.

이봉산은 원래 마산(馬山)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산 동쪽 아래 동네의 마산리가 산의 형세가 말의 모습과 같다고 하여 생긴 명칭이라니 말이다.

다음(Daum)지도와 몇몇 지도에는 삼봉산이라 표시된 곳도 많지만 화성시의 거리명이나 국토지리정보원 자료에도 이봉산으로 표기되어 있으니 이봉산이라 불리우는 것이 마땅할 것 같다.

 

 

(길없는 길을 가고 있는 맨발나그네)

 

(낡은 리본만이 정상임을 알려주고 있는 이봉산 정상)

 

100m 남짓한 산이지만 등산로가 없어 애를 먹는다.

정상도 선답자들이 오래전에 걸어둔 낡은 리본이 그저 정상임을 알릴 뿐이다.

정상의 조망도 잡목들에 막혀 전혀 없고, 변변히 앉아 쉴 공간도 없어 서서 잠시 휴식을 취한후 다음 행선지인 승학산을 향해 떠난다.

승학산과 와룡산은 화성시 송산면 지화리에 있다.

마산리와 지화리는 모두 시화방조제가 생기기 전에는 바다와 맞닿은 포구였었다.

하지만 사화방조제 준공이후 내륙지역이 되었다.

마산리에서 지화리로 넘어가는 고개마루로 다시 돌아와 승학산을 향한다.

승학산은 이봉산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찾았는지 등산로라고 불러도 될 만큼 길이 뚫려있다.

그 길을 자연을 벗삼아 홀로 걷는다.

 

 

(승학산 정상에서)

 

그렇게 도착한 승학산 정상이다.

승학산 정상도 선답자들이 매어 놓은 낡은 리본만이 이곳이 정상임을 알려 줄 뿐이다.

이봉산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 자란 나무들에 막혀 시원한 조망을 기대할 수 없다.

그래도 나무와 나무사이로 얼핏 얼핏 내비치는 내고향 산하는 정답다.

그곳에서 배낭안 과일을 꺼내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다시 와룡산을 향해 떠난다.

승학산과 와룡산사이에 지화리의 도완두들이 평화롭게 펼쳐져 있다.

그 들녘에는 그 유명한 송산포도밭이 널려 있고 때늦게 가지자르기를 하는 아낙네와 트랙터를 이용하여 밭을 갈고 있는 등 분주한 농부들이 한가한 들녘의 봄을 깨우고 있다.

도완두들을 거쳐 와룡산 입구에서 등산화를 벗어 배낭에 챙기고 맨발이 되어 본다.

 

 

(진달래로 뒤덮인 와룡산을 걷고 있는 맨발나그네)

 

앞선 두 산에서는 등산로가 시원찮고, 밤까시도 많아 등산화를 벗지 못했는데 와룡산은 산세로 보나 등산로로 보나 괜찮을 것 같아 맨발걷기를 시도해 본다.

올라가는 길 양옆으로 진달래가 지천이다.

양지바른 곳에서는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트리기 위해 한참 젖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다.

맨발나그네 되어 젖몸살 앓고 있는 진달래 숲을 걷는다.

 

 

(와룡산에서 해바라기 중인 맨발나그네)

 

그렇게 오른 와룡산이다.

와룡산 정상은 상주박씨 묘가 찾이하고 있다.

묘 주변으로 몇 개의 낡은 리본이 이곳을 정상이라 알려 줄 뿐이다.

산소에 세워진 비석에 기대 또 한참을 쉰다.

 

 

(와룡산에서 잡목사이로 건너다 보이는 서해바다)

 

(와룡산에서 건너다 보이는 구봉산과 봉화산)

 

나무와 나무 사이로 보이는 풍광은 아름답다.

11시방향으로는 대부도 청소년수련원 뒷산 전망대가 보이고, 9시방향으로는 탄도방조제와 탄도가, 8시방향으로는 전곡항이 모습을 들어낸다.

5시 방향으로는 2주전 사랑을 나눈 봉화산과 함경산이 자기들에게 이제야 눈길을 주느냐고 곱게 눈을 흘긴다.

3시와4시사이의 방향에는 당성이 있는 구봉산이 오래전 사랑을 나눈 사이인데 왜 또 안오느냐고 눈을 흘기고 있으니 이 맨발나그네의 화성산하와 사랑나누기도 쉽지 않은 길이다.

그렇게 한참을 내고향 산하를 마음에 담고 눈에 담은후 박씨묘 비석에 기대 해바라기를 한다.

비석 바로 앞이 따듯해서인지 할미꽃이 꽃을 피워내 나로 하여금 할미꽃 전설을 머리에 떠올리게 한다.

이 지역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중국과의 뱃길로 이용되던 곳이다.

그래서 이 와룡산정상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에는 일명 화량진성이라고도 하는 남경성이 있다.

지금이야 화성방조제로 인하여 농경지로 변해있지만 방조제 완공 전 까지만해도 구봉산의 당성(당항성)과 와룡산의 남경성(화량진성)사이는 바닷물이 드나들었다.

굽이굽이 반도(半島)와 만(), ()이었을 주변 풍광이 그려진다.

당성은 6세기부터 10세기에 이르기까지 대중국 교역항이자 군사요충지로 역사에 많이 노출되어 일부 성곽도 보수되어있고 사적 제217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하지만 남경성(화량진성)은 성 밑에 있던 화량포와 함께 상당한 임무와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보여짐에도 문화재로서도 푸대접 받고있고, 나에게도 푸대접 받고 있어 찾아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린다.

 

 

 

 

오던 길을 되돌아 내려오다 송산서로를 따라 승용차를 둔 송산서로와 이봉산서길이 만나는 삼거리까지 맨발로 걷는다.

겨우내 신발에 싸여있다가 오래간만에 포장도로를 맨발로 걷자니 발바닥이 조금 아파한다.

오늘도 나홀로 내고향 산하 이봉산~승학산~와룡산과의 사랑으로 하루를 보냈다.

한가로이 걸으며 내고향 산하를 둘러 볼 수 있는 시간과 건강이 내게 있음이 행복이다.

세상살이에서 물질적 풍요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도 사람들은 오로지 물질적 풍요의 잣대로만 평가하려 한다.

물질적 풍요만이 지고지순한 목표가 되고 말았다.

넓은 집, 좋은 자동차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물질적으로 풍요한 나라들에 정신적으로 빈곤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게 현실이다.

물질적으로 나보다 나은 주변사람들을 바라보며 상대적인 박탈감에 허탈해한다.

모두들 길지 않은 인생길을 물질의 풍요를 쫓아 발버둥치지만 각자가 이룬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크고 더 많은 물질의 풍요를 바란다.

더 크고 더 많은 물질을 바라다 보니 물질=행복의 방정식은 틀린 방정식이 되고 만다.

가끔씩이라도 인생길이 게임이 아닌 즐거운 여행이었으면 한다.

수의 하나 얻어 입고 떠나는 인생의 종착역에 다다랐을 때 덜 억울한 삶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내고향 화성시의 산하를 나홀로 맨발로 한가로이 걸으며 정신적 가난을 채워 하루나마 정신적 풍요를 누려 본다.

오늘도 가장 가난한 방법으로 가장 부유한 천국을 다녀 온 행복한 날이다.

 

( 댓 글 )

 

  • 연산홍

    산행기를 읽다보면 불연듯 고향이..어머니가..시집간 누이가 그리워 집니다. 친구도 어린시절 같이 놀던 동무..
    모두다 그리워 오늘밤도 잠을 설쳐야 할것같습니다.
    2013.04.02 16:11

  • 소영

    맞습니다. 뭐든지 돈을 표준잣대로 삼아요. 신랑감도 돈, 친구도 돈, 돈돈 도이면 다되는 세상인양..
    진정한 행복은 물질에 있지 않다는것을 대다수의 사람들이 잊고 살지요. ㅎㅎㅎ
    2013.04.03 11:05

  • 훈희

    혼자서 걸으시는 모습도 태평하시네요. 그것도 맨발로.. 2013.04.04 11:34

  • 이대로

    산행기내내 즐거웠네요. 건강하시고 맨발로 걸으시는 흔적들을 또 남겨주세요. 감사합니다. 2013.04.06 19:50

  • 연정이

    물질과 행복의 등식을 거부하는 사람들..맨발의 나그네..추종자들이 날로 늘어나기를... 2013.04.08 15:51

  • 수박

    산이라 이름 부를수도 없는 작은 봉우리에도 나그네님의 입김이 서리면 산으로 살아나는것 같아요. 신기.. 2013.04.11 12:04

  • 주전자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발길...유행가 가사처럼은 아니지만 걸으시는 모습이 너무 정겹습니다. 2013.04.12 10:54

  • 진수

    나름 색다른 취미네요. 아니 철학입니다. 따라하고 싶은.. 2013.04.16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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