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나그네/맨발걷기 경험담

발길 닿는 대로 걸어 본 응봉산과 천등산

맨발나그네 2013. 4. 16.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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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산하와 사랑나누기(20)>

발길 닿는 대로 걸어 본 응봉산과 천등산

 

어 디 를 : 화성시 응봉산(=매봉산, 융봉산 109m), 천등산(146m)

언 제 : 2013414()

누 구 랑 : 나홀로

코 스 는 : 응봉산 - 송산지역 3.1운동 기념탑 - 천등산

 

 

(오늘 사랑을 나눈 응봉산과 송산 3.1운동 기념탑, 천등산, 점선부분은 차량 이동)

 

(화성시 관광안내도의 일부, 송산면 부분 발췌)

 

 

오늘도 내고향 화성시의 곳곳을 두루두루 살펴 보기 위해 길을 떠난다.

오늘은 송산면에 있는 응봉산과 송산지역 3.1운동 기념탑, 천등산이다.

응봉산은 화성시 송산면 삼존리에 있는 산이다.

화성시 관광안내도에는 융봉산, 화성시 홈페이지 삼존리에 대한 설명에서는 매봉산, 다음의 지도찾아보기에는 응봉산으로 표기되어 있으니 불리우던 이름도 여럿이었나 보다.

화성시의 산들이 그러하듯이 높이라고 해봐야 109m이니 동네 뒷산 수준이지만 송산면에 있는 100m 넘는 몇 안되는 산이다.

송산면사무소 옆 화성시립 송산도서관을 들머리로 해서 맨발나그네되어 응봉산의 품에 안긴다.

 

 

(응봉산 정상)

 

그저 잠시 잠깐 걸었을 뿐인데 어느덧 응봉산 정상이다.

산위 벤치에 앉아 쉬면서 산아래 동네 삼존리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삼존리는 예부터 서당이 많았고 광해군의 손 위 처남인 문창부원군 류희분과 그 아우 희발, 희량의 일가들이 살았는데 벼슬이 높고 행검이 출중하여 크게 존경을 받았기에 생겨난 지명이라 한다.

광해군은 친형인 임해군이 있으며, 이복형제로는 영창대군을 포함하여 12명의 남동생과 11명의 여동생이 있었다.

무려 25명의 자녀를 둔 선조시대에 조선은 분당이 시작되니 기성사림인 심의겸의 집이 도성 서쪽 정동에 있어서 서인이 되었고, 신진사림인 김효원의 집이 도성 동쪽 낙산 건천동에 있어서 동인이라 불리웠다.

그후 서인은 다시 노론과 소론으로 갈리고, 동인은 서인의 우두머리인 정철이 실각함에 따라 귀양보내자는 사람들은 남인으로, 사형을 시키자는 사람은 북인으로 갈리게 된다.

남인은 임진왜란 중에 화친을 주장하였다 하여 실각하고 북인이 정권을 장악한다.

북인은 선조말 홍여순이 대사헌으로 천거되자 이를 찬성하는 이산해를 중심으로 한 대북과 이를 반대하는 소북으로 갈리게 되는데 대북파는 광해군이 왕위를 이어야 한다고 하고, 소북파는 인목대비의 아들 영창대군이 왕위를 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삼존리라는 지명을 낳게 한 류희분은 나의 13대조 둘째 할아버지인 류영경과는 같은 당파인 소북파에 속해 있었으나 선조가 붕어하고 광해군이 즉위한후 대북파에 가담하여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응봉산을 걷고 있는 맨발나그네)

 

 

광해군이 즉위한 후에는 예조참판이 된 류희분은 이이첨,정인홍 등과 함께 소북파 영수인 선조말 영의정 류영경 일파를 탄핵하여 숙청한후 대사간, 도승지와 이조. 병조. 형조의 참판, 판서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정권을 농단했다.

대북파와 손잡고 임해군, 영창대군 등을 무고하여 죽이고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시켰으며, 반대파의 많은 관료, 서인, 유생들을 투옥하거나 유배하는 등 횡포를 자행하였다는 것이 역사적 평가이다.

하지만 이미 조정은 서인세력들이 장악하여 1623년 인조반정의 성공으로 류희분은 참형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아버지 류자신은 관작이 추탈되고, 그의 아우 류희량은 거제도로 유배되었다가 아들 류효립의 역모에 연좌되어 5년뒤 교살되었다 한다.

이로써 대북파는 완전 실각하게 되고 소북파도 와해되어 남인에 흡수되게 되니 정국은 남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다시 당파싸움을 시작하게 된다.

물론 인조반정으로 소북파의 영수 류영경의 동생이자 나의 13대조부인 류영하 할아버지는 거제도 유배에서 풀려났으나 정치적 기반인 소북파의 와해로 둘째 아들과 가솔을 이끌고 화성시 양감면 요당리로 낙향을 하여 정착하게 되니 내가 화성시 양감면 요당리를 고향으로 둔 배경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고향을 화성시로 두고 역사적인 사실 속에 조상님들이 직접 연관이 있었던 내게는 관심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에겐 재미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이 스틸사진은 영화 '광해, 왕이된 남자'속 에필로그에 나오는 중전 류씨역의 한효주)

 

 

해서 잠깐 옆길로 빠지자면 천만관객을 동원한 영화 광해, 왕이된 남자에서 광해와 하선 두명의 왕이 사랑한 여자 중전으로 분해 당당한 위엄과 아름다움을 겸비한 한효주가 바로 류희분의 누이동생인 중전 류씨이다.

극중에서 음모와 암투만이 가득한 궁궐 속에서 웃음을 잃어버린 단아한 카리스마를 펼쳐 보였던 한효주의 아름다움에 삼존리는 류희분 형제들의 벼슬이 높고 행검이 출중하여 크게 존경을 받았기에 생겨난 지명이이 아니라 중전 류씨를 배출한 지역이기에 생겨난 지명은 아닐까하는 객적은 생각에 절로 웃게 된다.

최근 광해군에 대해 실리외교의 대외정책과 대동법 등의 민생 안정책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며 비운의 폭군이 아닌 개혁 군주로 재조명되고 있다고 하니 그 시절 광해를 둘러싼 사색당파싸움의 희생양이 된 듯하여 그의 드라마틱한 삶이 더 애처러워 보인다.

그저 맨발로 세상을 떠돌고 있는 내가 임금대역을 하기전의 만담꾼 하선과 오버랩되는 이유는 뭘까.

자유로운 영혼이 아마도 닮았을 것 같다.

 

 

(송산지역 3.1운동 기념탑 전경)

 

응봉산의 품을 벗어나 어딘지 부족한 것 같아 송산중학교 옆 송산지역 3.1운동 기념탑에 들른다.

3.1 만세운동이라 하면 화성시의 제암리 만세운동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곳 송산면에서도 활화산처럼 타올랐으니, 1천여명 가량이 만세운동에 참여했으며 시위진압을 위해 현지에 파견된 수원경찰서 순사부장 노구치(野口廣三)를 주민 수백명이 몽둥이 등으로 집단 구타해 처단하였다 한다.

다시 길을 떠난다.

 

 

 

(천등산 들머리에서 만난 표지판과 보리밭 )

 

송산로를 따라 약 6km쯤 승용차로 이동하여 도착한 곳이 천등산 입구이다.

누군가가 설치했을 천등산 산책로라는 표지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저 인터넷 지도를 검색하여 어림짐작으로 화성의 산들과 데이트를 하고 있는 내게 있어 이런 안내판은 그녀()들의 성감대를 표시해 놓은 것 같아 반갑기 그지없다.

천등산 들머리에서 만난 보리밭도 어릴적 아버지를 따라 보리이삭 줍기에 나섰던 추억으로 나를 안내한다.

그렇게 천등산의 품에 안긴다.

응봉산에 비해 40m 더 높을 뿐인데 응봉산에 비하면 제법 산답다.

지천으로 깔려 있는 진달래꽃은 만개하여 맨발로 걷고 있는 이 나그네의 마음을 기쁘게 만든다.

하지만 천등산 중턱의 밤나무 밭을 지나는 일은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밤까시 지뢰밭은 아무리 조심을 해도 피해갈 수 없는 난적이다.

이리저리 피해도 보고 까치발로 걸어보건만 별무 소용이다.

등산화를 신어볼까도 했지만 오기로 맨발로 걷는다.

밤까시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는 심산이다.

하지만 결국은 집에 돌아와 밤까시 파내기 대작전을 펼쳐야 했으니 맨발걷기에서 가장 강적은 유리조각이나 사금파리조각이 아니라 밤까시가 아닌가 한다.

 

 

(천등산 정상에서)

 

그렇게 도착한 천등산 정상이다.

마을의 지형이 나무 등잔과 모양이 비슷하다 하여 생긴 이름이 천등(天燈)이고 그 뒷산이 천등산이다.

천등산 동쪽 밑에 있는 마을 이름은 신천리(新天里).

바다를 막고 염전을 일구는 동안 천등산 밑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명칭이 신천(新天)이라 한다.

 

 

(정다운 내고향 산하)

 

(좌로부터 승학산, 와룡산, 이봉산)

 

(구룡산, 봉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북동쪽의 전망)

 

높이라봐야 146m이지만 주변에 높은 산이 없으니 내고향 산하가 한 눈에 펼쳐진다.

주변의 천등리와 신천리, 고포리, 독지리, 고정리의 풍광이 내 마음을 탁 트이게 한다.

동쪽으로는 대부도, 8시 방향으로는 선감도, 7시 방향으로는 지지난주 만났던 이봉산, 승학산, 와룡산이 들어오고, 6시 방향에서 7시방향으로 돌아가며 구봉산, 봉화산, 함경산(=서경산:화성시 관광안내도에 표기된)이 펼쳐진다.

5시 방향으로는 아까 안겼던 응봉산이요, 12시에서 2시방향까지는 반월공단과 안산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막혔던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다.

 

 

(진달래꽃이 지천인 천등산을 걷고 있는 맨발나그네)

 

남들은 내게 산같지도 않은 산들을 왜 기를 쓰고 다니느냐고 한다.

그것도 혼자서 맨발로...

플럼 빌리지(틱 스님이 이끄는 영성 수행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는 베트남의 수도승 틱낫한은 그의 저서 <걷기명상>에서

고민과 두려움, 외로움, 그리고 계획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그러면서 땅과 발의 접촉을 즐깁니다.

그리고 온 몸으로 호흡을 즐기지요.

.............

걸음걸음이 무척 즐거운 일일 것입니다라고 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다비드 르 브르통은 <걷기예찬>에서 보행은 가없이 넓은 도서관이라 하고, 키르케고르는 걸으면서 나의 가장 풍요로운 생각들을 얻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심오한 영감의 상태, 모든 것이 오랫동안 걷는 길 위에서 떠올랐다라고 한다.

 

 

(그냥 걷는다. 발길 닿는 대로.....  )

 

 

뭐 이렇게 심오한 말씀들을 예로 들 필요가 있을까 싶다.

법정스님은 그냥 걷기만 하세요라는 글에서

마음 쓰지 말고 가세요

발길 닿는 대로 그냥 가는 겁니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

그냥 걷는다.

발길 닿는 대로.....

 

  답글 )

  • 이연

    발길 닿는대로 그냥 걷는다...텅빈 마음으로...모든것에서의 자유를 만끽하며.. 2013.04.17 11:15

  • 미소

    그냥걷는다...심오한 철학... 2013.04.18 13:28

  • 쌍룡

    맨발로 걷는 넉넉한 마음가지신 나그네님..존경합니다. 2013.04.19 16:35

  • 숙녀

    따라해보고 싶어요. 맨발로 ...산행.. 2013.04.19 23:07

  • 소영

    고향의 산하는 언제보아도 정겹기만하데요. 맨발님도 그러하지요? 고향이 그나마 남아 있어서 고맙지요.
    잃어버린사람도 많아요. 고향을 잃은 사람은 꿈도 못꾼다네요.ㅎㅎㅎ
    2013.04.24 14:34

  • 훈희

    전에는 바다가 발밑에 출렁이고 있었겠어요. 갯벌에가서 조개도 줍고..고향은 좋은 것이여... 2013.04.25 11:16

  • 이대로

    한효주의 미소가 아름다운 것은 고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언제나 우울하답니다. 2013.04.27 13:26

  • 주전자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맨발로 유유자적 산길을 걸으면 가능할까요? 2013.05.03 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