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나그네/맨발걷기 경험담

신선봉에서 신선들의 만찬

맨발나그네 2013. 10. 29. 06:31

 

신선봉에서 신선들의 만찬

 

산 행 지 : 충북 충주시, 괴산군. 신선봉(966m)

산행일시 : 20131027()

누 구 랑 : 7000 산악회

산행코스 : 신혜원마을-뾰족봉-할미봉-서봉-신선봉-휴양림-주차장(고사리마을)

사진은 ? :  따스한마음, 노루귀, 혁이아빠

 

 

▲  들머리에서 본 신선봉

 

 

▲  함께한 일행들

▲  신선봉 가는 길

 

 

가을은 짧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자 단풍의 계절이기도 하다. 25세의 나이로 요절한 영국의 시인 존 키츠는 <가을에게(To Autumn)>에서

 

안개와 열매가 무르익는 계절

성숙시키는 태양과 내밀한 친구여,

(중략)

열매마다 속속들이 익게하고,

조롱박을 부풀리고 개암 껍질 속

달콤한 속살을 여물게 하고,

(하략)

라고 노래한다. 열매마다 속속들이 익게하고, 조롱박을 부풀리고 개암 껍질 속 달콤한 속살을 여물게 하는 풍요의 계절인 이 가을에 또다시 일일선(一日仙)이 되어 집을 나선다. 오늘 일일선(一日仙)이 되어 운우지정을 나눠 볼 곳은 충북 충주시와 괴산군에 걸쳐있는 신선봉(966m)이다.

 

 

 

 

 

 

 우리나라는 남한만을 기준으로 했을 때 국토면적의 65.2%가 산지인 나라이다. 그러기에 우리민족은 예부터 산에 대한 경외심이 남달랐다. 그 경외심은 자연스럽게 신선사상으로 발전하였으니 <제왕운기>, <삼국유사> 등에 나오는 단군에 관한 기사가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환인과 환웅을 계승한 단군은 신선이 되어 1,908세의 수명을 누렸고, 일설에는 신선이 되어 죽지 않았다고도 한다. 고구려의 국상 을파소가 만들었다는 선인도랑(仙人徒郞)제도, 신라의 화랑제도 등의 예를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는 신선들의 나라였던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오죽하면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와서도 그동안 민간신앙으로 뿌리내려 있던 신선사상을 내치지 못하고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 뒷 계단을 올라 더 높은 곳에 산신각을 지어 신선을 모시기까지 하였겠는가. 그러다 보니 신선이나 이와 연관된 이름이 포함된 명산대천(名山大川)과 이름난 강해(江海)가 하나 둘이 아니다. 설악산에는 신선봉(누구는 금강산 신선봉이라고도 한다), 신선대, 비선대 등 이 있어 이곳이 신선들의 주활동무대였음을 알리고 있고, 좀 유명한 산이다 싶으면 하나둘씩은 신선과 관련있는 지명이 꼭 있으니 계룡산 연봉(連峰)중의 하나도 신선봉(642m)이요, 내장산 연봉(連峰)중 최고봉도 신선봉(763m)이고, 소백산 연봉(連峰)중 하나도 신선봉(1,389m)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충북에는 특히 신선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산들이 많이 있으니 충북 보은군의 산외면과 청원군 미원면, 괴산군 청천면 경계의 신선봉(620m), 충북 제천시 청풍면과 수산면에 걸쳐있는 신선봉(839m), 충북 괴산군과 경북 문경시에 걸쳐있는 신선암봉(939m) 등이 있으며 오늘 일일선(一日仙)이 되어 운우지정을 나눌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과 괴산군 연풍면에 걸쳐있는 신선봉(966m)도 그 중의 하나이다.

 

 

▲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고 있는 신선봉 가는 길

 

 

 

 

 오늘 산행의 들머리는 괴산군의 신혜원 마을이다. 7000산악회가 매월 2대씩 떠나던 버스가 이번에는 한 대 뿐이어서 그런지 왠지 조촐한 출발이다. 올 가을 들어 가장 춥다는 기상예보 속이지만 맨발이 되어 본다. 그리고 제법 된비얄 길을 오르니 뾰족봉이다. 그곳에 펼쳐진 풍경이라니.... 아직 완연한 단풍은 아니지만 신선봉까지 이어지는 능선길이 사방의 시계가 탁트여 시야가 거침없다. 할매봉을 지나 방아다리 바위까지 이어지는 길도 과연 신선들이나 다녔음직스럽게 소나무와 어울어진 기암괴송이 있고, 가끔은 신선들의 쉼터였을 너럭바위들이 많아 그 곳에서 쉼을 가지며 아름다운 풍광을 눈에 담고 마음에 담기 바쁘다. 필설로는 다하기 어려운 풍광이고 눈과 마음에 담아 둔 것은 잊혀지기 마련이니 오늘의 찍사인 따스한 마음과 혁이 아빠에게 여길 찍어라 저길 찍어라 주문이 많아진다. 

 

 

▲  국적불명의 유하주(流霞酒 )를 치켜 든 풍류(風流)

 

 

▲  신선들의 만찬(오른쪽 하단이 신선들이나 먹는다는 한우 육회.......ㅋㅋ)

 

 

▲  신선들(우로부터 풍류, 따스한마음, 맨발나그네, 노루귀, 현정, 종아, 그리고 찍사 혁이아빠)

 

 

 서봉 못미쳐에서 옛날 신선들이 앉아 쉼을 가졌을 만한 너럭바위에 점심상을 펼친다. 배낭에서 하나 둘 꺼내 놓은 음식들이 뷔페를 넘어 만찬 수준이다. 따스한 마음은 어제 한우로 만들었다는 육회를 내어놓고, 솜씨좋은 노루귀와 종아, 현정님이 준비한 음식들은 먹기도 전에 군침부터 돈다. 그뿐이라면 오늘 점심상을 일러 신선들의 만찬이라 감히 이름 부칠 수 없을 것이다. 원래 신선들은 외물(불사약을 먹고 불로장생을 기도하는 것)과 수행을 거듭한다. 거기다 선단(仙丹 : 신선이 만든다는 장생불사(長生不死)의 환약)을 먹었다고 하는데 거기에 빠지지 않는 것이 신선주(神仙酒). 마침 풍류님이 국적불명의 유하주(流霞酒 )를 내놓으니 그야말로 신선들의 만찬이다. 원래 유하주(流霞酒 )는 신선들이 마시던 술로  논형 論衡에 만도라는 사람이 신선을 만나서 이 술을 얻어먹었는데 한 잔을 마시니 몇 달 동안 배가 고프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동문선·색경 穡經·임원경제지등에도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유하주는 쌀누룩으로 빚어 향이 단백해야 하는데 풍류(風流)가 유하주라고 우기는 술은 외국산으로 그 도수 또한 50도가 훌쩍 넘으니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쳐 버렸다. 그야말로 구름 위에 만찬을 즐기는 신선들이 되어 버렸다. 아마도 혁이아빠의 사진이 아니었더라면 신선들의 만찬이 역사가 아닌 전설로 남을뻔한 자리였다.

 

 

▲  휴일이면 일일선(一日仙)으로 변하는 맨발나그네

 

 

 어느 스님이 회수간산취류하 의수침면일이사’(回首看山醉流霞 倚樹沈眠日已斜 : 머리를 돌이켜 산을 보면서 유하주(流霞酒)에 취하고, 나무에 기대어 졸음에 들다보니 날이 이미 저물었구나)라는 시를 남기셨다던데, 유하주가 몇 순배 돌고 나니 나야말로 황홀경에 신선봉아래 너럭바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바로 선경(仙境)이다. 이런 때는 흥타령이 제격이겠지만 명색이 일일선(一日仙)이니 경허성우(鏡虛惺牛)스님이 쓴 시 한 수로 대신한다.

 

 

▲  석성으로 둘러쳐진 신선봉 가는 길 

 

 

無題

鏡虛惺牛 지음

山自靑水自綠 (산자청수자록)

淸風拂白雲歸 (청풍불백운기)

盡日遊盤石上 (진일유반석상)

我捨世更何希 (아사세갱하희)

 

"산도 절로 푸르고 물도 절로 푸른데

맑은 바람 불어오고 흰 구름 돌아가네.

온종일 너럭바위 위에 노닐며

내가 티끌세상을 버렸거니 다시 무엇을 바라랴."

 

 

▲  유하주에 젖어 힘들게 오른 밧줄구간

 

▲  유하주에 젖어 힘들게 오른 밧줄구간

 

▲  유하주에 젖어 힘들게 오른 밧줄구간

 

 

 유하주에 취해 나무 등걸에 기대어 졸고 싶은 마음 굴뚝이지만 이제 미몽에서 깨어나 길을 가야 한다. 서봉 바로 아래 로프가 매어달린 암벽은 유하주에 취해 신설놀음 중인 맨발나그네를 확 깨게 만든다. 로프를 타고 발 디딜 곳 만만치 않은 바위벼랑을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서너군데 매어져 있는 로프에 의지하여 서봉에 이르고 다시 10여분정도 가면 신선봉이다. 다시 신선모드로 전환하여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풍광에 취한다. 북으로는 월악연봉(連峰)이 손에 잡힐 듯 이어지고 언젠가 들렸던 만수봉, 포암산이 바로 코 앞이다. 동으로는 마패봉이요, 남으로는 조령산, 희양산이 안개 속에 굽이굽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으니 바로 이곳이 신선들의 놀이터가 아니고 무엇이었겠나.

 

 

 

▲  신선봉에서 본 북쪽(월악연봉들과 만수봉, 포함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  신선봉에서 본 남쪽의 산군들

 

▲  신선봉에서 파노라마로 펼쳐진 풍광에 신선놀음을 잠시 중단하고 사진찍기에 열중인 일행들

 

▲  신선봉 정상

 

 

 

▲  신선봉에서 하산길

 

 맑은 바람 불어오고 흰 구름 돌아가는 신선봉 너럭 바위에 온종일 노닐고 싶지만 일일선(一日仙) 주제이니 이제 하산을 하여야 한다. 신선봉에서 마패봉과 휴양림으로 갈라지는 삼거리까지도 쉽지않은 암능이다. 그렇게 삼거리에 도착하여 잠시 고민한다. 그동안 유하주를 마시며 신선놀음을 하였기에 일행에 좀 뒤쳐져 있으니 마패봉을 다음에 들를 곳으로 고히 모셔두기로 하고 오른쪽 휴양림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마패봉은 일명 마역봉으로도 불리는데 암행어사 박문수가 이 산을 넘으며 조령 제3관문에서 쉬었을 때 마패를 관문 위의 봉우리에 걸어 놓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  일일선(一日仙)이 되어 유하주(流霞酒)에 취하고 신선봉의 풍광에 취한 맨발나그네

 

 

 오늘도 일일선(一日仙)이 되어 유하주(流霞酒)에 취하고 신선봉의 풍광에 취한 하루였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내가 신선흉내를 내가며 맨발로 걷고 있노라면 혹자는 불로장생(不老長生)할려고 하느냐고 묻는다. 맞다. 인간이 먹고 자고 움직이는 것은 불로장생(不老長生)하기 위한 행위이다. 하지만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로장생(不老長生)을 분석해 보자면 늙지 않고 오래산다는 뜻이 아니라 주어진 생을 사는 동안 인체노화를 줄여가며 병들지않고 살아가는 일이라 해석하고 싶다. 옛날에는 삶의 일부였던 걷기가 이제는 불로장생의 지름길이 되었고, 옛날에는 식사하셨어요?”라는 말이 인사가 될 정도로 없어서 못먹던 음식인데 불로장생을 하자면 소식(小食)이 비결이라 한다. 그런데도 오늘 만찬수준으로 준비한 음식 때문에 과식을 하고 과음을 하였으니 문제도 이런 문제가 없다.

 

 

▲  조령산 휴양림 길

 

 

▲  일일선이 되어 아사세갱하희(我捨世更何希)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경허스님 말씀처럼 아사세갱하희 (我捨世更何希 : 내가 티끌세상을 버렸거니 다시 무엇을 바라랴)이다. 명심보감에 이르기를 일일청한 일일선(一日淸閑 一日仙)이라 했다. ‘하루를 맑고 욕심없이 소박하게 산다면 하루일망정 신선같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유하주에 취해 작심해 보건데 그런 삶을 살아보련다.

 

( 댓 글 )

따스한마음(회장) 13.10.30. 11:04
산행기에 취해 덩달아 신선이 된 기분으로 그날의 추억을 되새겨 봅니다
유하주에 취하고 신선들의 우정에 취하고 펼쳐진 풍광에 매료되어 구름위를 하염없이 걸었나 봅니다
함께한 추억 소중한 산행기와 함께 고이 간직 하겠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ㅎㅎ
 
노루귀 13.10.31. 19:26
만나면 편안한 사람들과 어울려 걷고, 오르고, 쉬고...
그러다 싸 온 도시락을 풀어 먹는 산 위의 점심은
반찬이 없어도 늘 꿀맛입니다.
육회와 홍어회에 갖은 반찬에 주(酒)님까지 있는 산 위에서의 만찬이라니...
조금씩 물들어 가던 단풍처럼 얼굴도 발그레져 가던 모습과
목소리 높여 떠들고 웃던 신선봉의 만찬이 오래 기억 될 것입니다..
 
최현정 13.11.01. 21:55 new
인생중반에 노루귀와 멋진선배님들과 추억의 한페이지 그릴수 있슴에 감사합니다

 

 

도요새의 눈 13.10.31. 16:45
고생하셨습니다.
좋은 곳 다녀 오셨습니다.
구경 잘하고 갑니다.
 
김부림 15:44 new
맨발로 대단하시네요 조심하세요

 

이분재 13.11.01. 08:15 new
산사에서의 술한잔.....
애주가들에겐 최고일듯..........
 
김병학 18:09 new
멋져 친구야
건강조심해서 산행하시게
무릎관절은 괜찮은가
내 건강에 맞게 오르시게--

 

아름다움에 흠뻑~선배님은 나날이 더 멋져지시네요...비와서 닭강정 먹었는데, 충무김밥보니 군침이 꼴깍...산칠천 화이팅~~~

 

엘도라도 13.10.31. 07:23
끊임없는 형님의 산행행보가 부럽네요....
일교차가 심하니 감기 조심하세요

 

  • 산미리

    아사세갱하희를 외칠수 있는 맨발 나그네님 부럽군요. 천수를 누리시길... 2013.10.30 18:29

  • 해오름

    신선봉에서 하루는 인간세상의 천일에 해당된다고 누군가 말하더이다..참 좋은 하루를 보내셨군요. 2013.10.30 18:45

  • 훈남

    학교에서 배울수없는 전설과 역사를 배우고 아름다운 산행을 같이하는듯..너무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2013.10.31 11:25

  • 머스마

    저 험한 산길에서도 맨발이라니...발이 서러워할것 같네요. 덕분에 신선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을 배우고 갑니다. 2013.11.01 12:57

  • 스노맨

    모두들 신선 같으십니다. 산행기를 읽으니 다음 주말에는 신선봉으로 신선수업 여행을... 2013.11.01 13:13

  • 오랜친구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든 신발이 더 발목손상 당하기 쉽다는 이야기를 들은듯하네요 맨발님 보니까 자연그대로가 제일인듯싶어요 저는 엄두도 못내지만 부럽고 대단합니다 그리고 다들 건강한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2013.11.02 21:52

  • 병수리

    아름답게 그려낸 신선봉을 잘보고 갑니다. 맨발님 건강하세요. 2013.11.02 22:39

  • 지영이

    산행기 정말 감상 잘했네요. 저도 맨발이고 싶네요. 2013.11.03 15:09

  • 연정이

    맨발 나그네님의 일행이고 싶넹..잘보고 가네요. 2013.11.04 10:49

  • 동이

    신선봉엔 일일선님들이 많으셩...그중엔 맨발 신선님도..멋진 산행기 즐감하네요. 2013.11.04 14:59

  • 상철희

    신선들의 여러모습...오늘 첨 봅니다. 모다 속인들 모습처럼 보이지만 ... 2013.11.05 13:25

  • 순희

    신선들도 평범한 우리네 모습...나도 신선봉에서 일일선이라도 되보고 싶네요. 2013.11.06 12:07

  • 미수다

    신선봉에서 신선들의 점심상... 2013.11.08 13:17

  • 이하니

    신선은 아무나 되남요? 사람다운 사람이나 되지...산행기 넘 재미잇게 보고 가네요. 맨발님...늘 건강하세요. 2013.11.10 13:03

  • 이루미

    나그네님의 산행기는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이 열립니다. 즐감하고 가네요. 2013.11.13 09:44

  • 와이로

    신선이 되는길...신선봉에서 맨발님처럼 맨발로 우화등선... 2013.11.18 1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