家門의 영광

왜 족보를 알아야 하는가?

맨발나그네 2009. 12. 23. 15:25

  나무는 뿌리가 있고 강물은 수원이 있는 법이지만, 나무가지나 물갈래가 이미 뿌리나 수원으로 부터 멀어지면 도리어 그 뿌리나 수원을 망각하게 됨이 사물의 본래 모습이기도 하고 바쁜 현대생활에서 선조들에 대해서 알고저 함이 사치라고 생각될는지 모르지만 사람마다 조상이 계시고 따라서 부모가 계시고 내가 있으며 자손으로 이어가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니 감히 부모와 조상을 소홀히 생각하겠는가?

  사람이 그 누구를 부모로 하고 이 세상에 태어나느냐 하는 것은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순전히 운명적으로 태어난다. 따라서 우리가 전주류씨의 여러 훌륭한 조상님들을 선조로 하여 이 세상에 태어났음은 운명적이기는 하지만 참으로 고맙고 다행스러우며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우리 전주류씨가 파생한 것은 당령공  휘 습(濕)으로부터이니 고려시대 말엽으로 전해오고 있다. 당령공의 생존연대가 기록으로 전해내려오고 있지 않으나 사위인 대제학 심효생이 고려 충정왕 1년에 출생한 기록이 있고, 4세조 휘 경손이 조선 태조 4년에 태어난 것으로 미루어볼 때 우리 전주류씨는 약 700년의 종사를 이어 내려 왔으며, 그동안 많은 훌륭한  선조들이 이 땅에서 살다 가셨다.

 사람들이 자기 선조중에서 정승, 판서같은 높은 벼슬자리에 있었음을 자랑하지만 사실은 높은 벼슬자리에 있었다는 것보다는 무슨일을 어떻게 하였고 어떻게 살다 가셨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선조중에는 정승도 계셨고 판서와 참판도 계셨지만 많은 어른이  대사헌, 사간원에 많이 계셨음을 볼때 국왕이 정사를 바르게 해 갈 수 있도록 간(諫)하는 중책을 많은 선조가 많으셨으니 그 후손으로 무거운 책임감과 아울러 자랑스럽지 않겠는가?

 이조실록을 보면 우리의 선조 낙봉공 헌(軒) 할아버지는 지평, 집의, 평안도 경차관등을 지내면서 타인이 감히 말하지 못하는 직언을 국왕에게 아뢰어 국정을 바로 펴도록 하셨고 때로는 바른 말이 간악한 무리들의 모함에 의하여 유배를 당하기도 하였다. 후손으로 참으로 애통한 일은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마치고 중종반정으로 방환되어 돌아오시다가 왜구에게 살해를 당하시니 향년 45세로 지금의 의정부 송산 흑성동에 모신 묘에는 의관과 부장품 뿐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많은 선조들이 청렴하고 강직하게 살다 가셨다. 불의에는 추호도 굴하지 않으셨으니 우리 모두는 이토록 훌륭한 어른들을 조상으로 모시고 태어난 후예로 이땅에 태어난것을 자랑으로 생각하고 언제 어디서건 선조에 욕됨이 없도록 자중자애(自重自愛)하여 이 명예로운 문중의 전통을 후대에 물려줄 수 있도록 각자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