家門의 영광

2세 류극서(柳克恕)

맨발나그네 2009. 12. 23. 15:55


고려 보문각 직제학공 류 극서(柳 克恕)

       

《연보》
서기 1360년대에 문과에 급제
1383년에 양광도 안찰사로 재임중 선정으로 중정대부 보문각 직제학 지제교(中正大夫 寶文閣 直提學 知製敎)를 역임하시고 전객시 판사(典客寺判事 정3품)명나라 사신으로 요경(遼京)을 다녀 오신 후 서기 1387년 정순대부 연안부사(正順大夫 延安府使)로 재임 하신후 우왕의 부름으로 순군위 천호(順軍衛 千戶 왕실 경호대)로 재임중 임견미 사건에 연루 참화를 당하심.

 

 

《약력》
  시조 완산백(습)의 둘째 아들로서 출생연대는 알 수 없다. 배위 진주 하씨는 진양부원군 하윤린(河允潾))의 따님인데 첨지공[汀]을 낳고, 배위 수원 이씨는 밀직사 이인수(李仁壽)의 따님으로 아들 영흥공[濱]을 낳았다. 


  공은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우왕9(1383)년에 양광도(楊廣道) 안렴사(按廉使)를 하였고, 우왕11(1385)년에 천호(千戶)로서 당직을 하였는데 옥에 가둔 내시 김실이 도망가자 그 죄로 옥에 갇혔다.


  우왕13(1387)년에는 판사복시사 임수(任壽) 및 전공판서 김승귀(金承貴)와 함께 판전객시사(判典客寺事)로서 요동에 갔다 왔고, 중정대부(中正大夫) 보문각(寶文閣) 직제학(直提學, 정4품)과 지제교(知製敎, 종3품)를 지냈는데 우왕14(1388)년 연안부사를 할 때 환관(宦官) 김실과 함께 우왕에 의하여 피살당하였다. 


  후에 손자 의손(義孫)이 고관(高官)이 되어 통정대부(通政大夫) 이조 참의(參議, 정3품)에 추증되었다.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군 녹전면 죽송리의 범바위 마을 부근 류빈동(柳濱洞)에 있다. 


  옛날에 비석이 있었으나 글자를 알아볼 수 없게 마멸되어 선조39(1606)년에 경상도 관찰사 영순(永詢)이 새로 작은 비석을 세웠다. 증숙부인 진주하씨 묘소는 경남 진주시 미천면 오방리에 있고 증숙부인 수원이씨 묘소는 직제학공 묘소 바로 밑에 있다. 재실 호암재사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09호로 지정되었다.

 

 

《배위》
진주 하씨(조선초기 영의정을 역임한 하륜의 누님)
수원이씨(김방경 장군의 따님이 영양 남씨로 출가하시어 그 따님을 낳고 그 따님이 수원 이씨로 출가하시고 그 따님이 바로 직제학공의 배위가 되심)
고려조정의 풍속은 정처를 두분[향처(鄕妻)와 경처(京妻)]을 둘 수 있도록 제도화가 되어 있었음. 어느 분이 향처 고 경처인지는 알 수 없음)

 

 

《직제학공의 묘소와 재실(문화재로 지정됨)》
안동시 녹전면 죽송리 호암동 을좌

 

 

《묘소》
○수원이씨 묘소 : 안동시 녹전면 죽송리 호암동 을좌 
○진주하씨 묘소 : 진주시 미천면 오방리 산 186 건좌



출처 : 전주류씨 대종중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