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나그네/맨발걷기 경험담

雪이 없는 雪國으로의 여행 ~~남덕유산

맨발나그네 2009. 12. 28. 15:10

      雪이 없는 雪國으로의 여행 ~~남덕유산

 

● 산 행 지 : 남덕유산(1507m, 경남 함양군 서상면, 거창군 북상면, 전북 장수군 계북면 )

● 산행일시 : 2009년 12월 27일 (日)               

● 산행코스 : 육십령 - 할미봉 - 서봉 - 남덕유 - 영각재 - 영각사 이었으나 본인은 할미봉지나 931봉에서 능선길을 따라 탈출함

● 사진은 ? : 본인

 

              

 

   초청장이 날아든 것은 12월 초 어느날이었다. 설국(雪國) 남덕유산의 산7000으로 부터 멋진 설국(雪國)풍경까지 곁들여 날아온 설국(雪國)에의 초대장(http://cafe.daum.net/san7000/1EUq/414)을 받는 순간부터 설레임의 연속이었다. 소풍을 앞둔 초딩생처럼 잠을 설치며, 설국(雪國)과의 만남을 준비한다. 일기예보를 보니 날씨는 영하 10도이하로 내려간다고 하니 제대로 된 상고대와 눈꽃을 구경할 생각에 흥분되고, 옷은 무엇을 어떻게 입어야 좋을까 고민한다. 오래되어 볼품없는 아이젠과 스페츠도 챙겨넣는다. 어제 광교산의 품에 안겨보니 귀가 시렵던데 방한모는 어느 것을 쓸까하고 이것저것 뒤척여본다. 물도 뜨겁게 데어 꿀까지 타서 보온병에 담고, 간단히 도시락도 준비하고, 마지막으로 설국(雪國)행 비자와 여권도 챙긴다. 그리고 추운 겨울아침을 가르며 설국(雪國)으로 떠나는 버스에 몸을 실는다.

 

(초대장에 실려있던 남덕유에서 바라본 모습)

 

 

 맘껏 기대한 설국은 이미 설국이 아니었다. 들머리인 육십령에 도착해 올려다 본 주변 풍경은 그저 음지에 바람이 몰아다 논 잔설을 조금씩 밖에는 구경 할 수 없었다. 일행들 모두가 실망하는 빛이 역역하다. 그래도 모두들 힘차게 출발이다. 명색이 산꾼들이 산을 앞두고 오르지 않을 수 없기에........

 

  들머리인 육십령은 조령(643m), 죽령(689m), 팔량치(513m)와 함께 영남지방의 4대령중 하나라 한다. 육십령은 육십현(六十峴), 육복치(六卜峙)라도도 한단다. 옛날에는 높이가 734m로 가파르고 험하여 도적떼가 많아 이 고개를 넘으려면 60명이 모여야 넘을 수 있다고 하여 육십령이라 했다고 한다. 이 육십령은 영남지방과 호남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요지여서 삼국시대부터 이용되던 고개라 한다. 그래서 신라와 백제는 이 고개를 확보하기 위해 자주 전쟁을 벌였던 격전지여서 인근에는 함양사근산성, 황석산성등의  삼국시대 성곽들이 남아있다고 한다.

 

 

  날씨는 생각했던 것 보다 포근하여 껴입은 옷의 무게를 더하게 한다. 그래서 오름길 중간 중간 옷을 하나씩 벗어 배낭에 챙긴다. 그러며 도착한 할미봉에서 보는 백두대간길 남덕유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능선이 장쾌하게 펼쳐짐을 감상한다. 그리고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니 많은 회원들과 다른 산행회원들이 길게 줄을 서서 로프구간의 하강을 기다린다. 응달이어서 길은 얼어있고, 로프로 하강하기가 익숙하지 않은 많은 분들을 어렵게 하여 약 30~40여분은 족히 기다린것 같다. 기다리는 동안 차안에서 나누어준 등산지도를 펼쳐보고 있던 탕골님이 옆구리를 찌른다. 몸이 불편하여 같이 산행을 못하고 날머리에 기다리고 있을 회장님과 말동무라도 하게 931봉에서 탈출하잔다. 말동무라는 염불보다는 동동주라는 잿밥이 눈에 선한 말이지만, 나도 앞으로 가야할 길이 뻔히 내다보이는데 쉽지 않을 듯 하여 슬그머니 그말에 동의를 한다.

 

(저멀리 남덕유산과 서봉이.....앞쪽으로 내가 중간에 탈출한 931봉과 그뒤의 913봉등이 펼쳐져 있다)

 

 역시 산행경험이 많은 탕골은 931봉에서 부터 길도 별로 나있지 않은 길을 성큼 성큼 잘도 내려간다. 나야 뭐 그뒤를 따라, 이건 어디까지나 탕골의 발뒤꿈치만 따라 오다 보니 이렇게 되었노라고 농담을 건네며, 그리고 혼자 쓸쓸해 할 회장님을 위해서라고 염불을 외우며 내려오다 보니 어느덧 작은 농로가 보이고 그농로 옆에 있던 대장경문화학교의 덕유산작업실에서 목판서화가인 안준영 대표님과 그 문화생들이 몇일 간의 세미나를 마치고 뒤풀이로 문어와 과메기를 불에 구어가며, 소주잔을 기울여가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틈에 나그네의 자격으로 슬쩍 끼어 앉는다. 그리고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불판에 구어진 문어와 과메기를 안주 삼아 꽤 많은 양의 소주를 털어 넣는다. 정말 그 맛이 일품이다. 그곳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 대구의 한 고등학교의 역사 선생님이시며 이 모임의 기획홍부부장이신 조윤화님과의 많은 대화는 술잔을 자꾸 입으로 가져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심심하고 쓸쓸해 할 회장님을 위해서라며 염불을 앞세우고 중간에 탈출한 이유가 얼마나 옹색한 일이었나를 실감하며, 역시 잿밥은 맛이 기가막히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다시 탕골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영각사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길을 걸으며 나누는 이야기 속에는 항상 진솔함이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며 한참을 걷는다.

 

  날머리에서 다시 총무님 이하 여러분이 정성스레 준비한 돼지고기 숭덩숭덩 썰어 넣은 김치찌게를 안주삼아 반야탕<반야탕(般若湯: 범어에서 반야는 Prajna로 지혜라는 뜻을 가진다, 그래서 반야탕, 즉 술은 '지혜의 물'인 셈이다)>의 세계에 빠진다. 대장경문화학교 덕유산 작업실에서 넘긴 소주와 합해지니 지혜가 아닌 혼미가 머리속을 가득 채우지만 그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그러기를 한참. 오후 3시가 넘었는데도 선두팀조차 보일 생각을 안한다. 걱정이 된 회장님은 계속 무전기로 상황을 파악하고........그래서 후미가 도착하고 늦은 시간 18시 40여분쯤이나 되어서야 날머리인 영각사를 출발 할 수 있었다. 그 시각 우리가 떠나온 수원은 설국(雪國)으로 변하여 있다고 한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데이브님이 하신 말씀대로 세상은 생각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인가 보다.  비록 12시를 넘겨 수원에 도착하는 바람에 1박2일에 걸쳐 남덕유산을 멀리서 그냥 감상만 하고 온 산행이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는 즐거웠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