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나그네/맨발걷기 경험담

맨발나그네되어 금산 진악산의 품에 안기다

맨발나그네 2010. 3. 1. 21:15

맨발나그네되어 금산 진악산의 품에 안기다

 

● 산 행 지 : 진악산(737m,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남이면)

● 산행일시 : 2010년 2월 28일 (日)               

● 누 구 랑 : 산7000산악회 정기산행

● 산행코스 : 수리넘어재 - 732봉 - 암능길 - 737봉 - 도구통바위 - 영천암 - 보석사 - 주차장(약 7km, 약 3시간)

● 사진은 ? : 소리새, 태산북두, 쌩쥐

 

 

  산7000의 시산제가 있는 날이다. 始山祭라고 하면 당연히 경인년의 벽두에 지내야 마땅할 텐데 아마도 음력에 맞추고, 정기산행일에 맞추다 보니 2월 말이나 되서야 시산제를 지내게 된 것 같다. 하긴 뭐 날짜 갖고 시비 붙을 일이 아니니 그저 祝祭 한마당으로 즐길 따름이다. '祭' 字는 '제사지내다'라는 뜻과 '사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山祭'는 그저 산에서 여는  祝祭( Festival ) 로 받아들이면 편할 것이다.

 山과 神과 人間이 어울려 한바탕 어울리는 축제가 바로 '山祭'다.  비록 지난 1월달 정기산행이 있기는 하였지만, 옛부터 음력으로 여러 명절을 지내고 있는 실정이니 그 앞에 '始'자를 붙여 '始山祭'라고 칭한들 누가 시비를 붙겠는가?

 

 

  축제의 장인 시산제를 금산의 진악산에서 지낸다고 한다. 백두대간과 금남정맥 사이로 금강이 굽이쳐 흐르는 금산은 '금수강산(錦繡江山)'을 줄여서 붙인 이름이라 하니, 가보지 않아도 그 수려한 경관이 그려지는 곳이다. 3,000여개의 산이 고만고만한 높이로 비단결처럼 펼쳐져있고, 전체 땅덩어리의 72%가 산으로 이루어져 그 맵시를 뽐내는 그곳 금산을 산수화라 한다면 그 중심에 오늘 찾는 진악산이 있다고 한다.

 배의 형상을 한 금산 땅에서 돛 역할을 하는 진악산은 서대산, 계룡산에 이어 충청남도에서 3번째로 높은 산이며, 1500년 전 백제시대에 한 선비가 산삼 씨앗을 채취해 처음으로 삼을 재배했다는 전설을 갖은 개삼터를 품고 있기도 한 그런 산이다. 그래서 그런지 오고 가는길 도로 양옆은 인삼밭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옛부터 나라의 안위를 봉화로 알리는 봉화대가 있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임진년 8월 중봉 조헌 선생과 함께 싸우다 순국한 기허당 영규대사(이곳에 있는 보석사에서 수도를  했음)의 금산벌 싸움등 역사속의 크고 작은 여러 싸움을 지켜본 그런 산이다. 거기다 천년사찰 보석사를 안고 있는 영험산 산 진악산을 시산제를 지낼 산으로 선택한 것은 누가 보아도 탁월한 선택인 것 같다.

 

 

   새로운 애인인 진악산의 품에 안기기 위해 들머리인 수리넘어재를 출발한다. 祝祭의 장인 山祭를 축하해주는 햇살 고운 날씨이다. 아지랭이처럼 살랑거리는 바람결이 완연히 봄의 문턱이다. 몇주전까지만 해도 매서운 추위에 몸둘바를 몰라 했건만 , 칼바람 추위 모두 이겨낸 대지는 따스한 햇볕을 받고 용트림을 한다. 그 대지의 용트림 만큼이나 내마음은 벌써 연두빛 꿈으로 가득차온다. 햇살과 새애인 진악의 뜨거운 애무를 받은 내 가슴은 봄을 기다리는 마음에 설레어 진다. 두팔벌려 상쾌한 바람을 가르며, 새 희망, 사랑, 행복을 담아본다. 그리고 그 대지와의 입맞춤을 위해 오늘도 맨발이 되어 진악의 품을 파고 든다.

 

  

  수리넘어재에서 정상까지는 약 3km 정도인데 큰 어려움없이 오를 수 있다. 물론 등산로는 구간에 따라서는 약간의 돌투성이 길도 있어 오래간만에 맨발이 되어 본 나에게는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맨발이기에 타 산악회에서 오신 분들의 관심도 받아가며, 진악산의 품에 안겨 그녀의 애무를 받다보니 어느덧 정상(732봉)이다.

 

   올라가는 길 좌측으로는 안개에 쌓여 조망이 좋지 않았지만, 우측으로는 약간의 안개만 있을 뿐 목간통에 몸을 숨긴 여인내가 물안개 속에 나신을 수줍게 보이듯 모습을 드러내며 우리를 반긴다. 금산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고장의 진산답게 아기자기한 산세를 갖고 있다. 해발 732.2m인 정상에 도착한다. 삼각형 모양을 한 헬기장으로 넓은 터를 이룬 가장자리에 '進樂山'이란 표지석이 자리잡고 있다. 옛날에는 봉화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한다.

  남쪽으로는 운장산, 구봉산이요, 서북쪽으로는 대둔산, 서대산이 자리잡고 있고 동남쪽 멀리 삼도봉에서 덕유산으로 이어가는 백두대간길이 있다고 하나 날씨관계로 그저 형체를 어슴푸레하게 알아 볼 정도로만 실루엣으로 모습을 드러내니 우리의 애간장을 태운다. 그 모습이 더 이 맨발나그네 마음을 홀려 놓기에 충분하다.

 

    정상(732m봉)에서 737m봉에 이르는 구간도 아기자기한 바위등성이가 많고, 이따금 바위벼랑도 나타나 산행재미가 쏠쏠하다. 이름하여 암능길이라 지도에 표시된 구간이다. 오늘은 시산제후 점심을 먹기로 하였기에 암능길 구간중 어느 바위등걸에 서서 소리새내외님께서 준비한 간식과 들풀님이 마련한 과일을 먹고, 오늘 후미를 맡은 쌩쥐부회장님의 독촉을 받아가며 도착한곳은 737봉이다. 누군가 돌무더기를 조금 쌓아 놓았다. 그곳에서 용인에서 오신 모 산악회분들이 시산제를 지내고 있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조금 기다렸다 제주 한잔 얻어 걸치고 떠나는 나그네가 되고 싶건만, 앞서 산을 내려가 시산제를 위해 기다릴 일행을 생각하며 발길을 재촉한다.

 

   로프가 매어진 내리막길을 거쳐 능선을 따라 약 1km정도 내려오니 도구통바위이다.도구통은 절구통의 사투리로 바위 모양이 절구통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앞에 '금산 인삼과 진악산'이란 안내판이 서서 금산에 인삼을 재배하기 시작한 이유와 금산 인삼이 좋은 이유 등을 알리고 있었다.

 

   도구통바위에서 보석사까지는 약 2km에 이르는 내리막길이다. 올겨울 유난히 많이 내린 눈과 며칠전 내린 비로 계곡은 수량이 풍부하다. 물흐르는 소리가 봄의 정령들이 들려주는 봄의 교향악처럼 내 귓가를 파고든다. 그 계곡의 조릿대를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흔들어 놓고 떠난다. 이 정겨운 숲길을 이정표보다 더 많이 걸린 여러 시인들의 시를 적은 팻말을 벗삼아 걷는다. 시간관계로 마음깊이 음미하지 못함이 못내 아쉽다. 그중 나태주님의 '금산에 가면'이란 시를 여기 옮겨 적어본다.

 

금산을 바라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눈빛이 깨끗해진다

거기

산빛을 닮아

강물을 닮아

외롭지만

아름다운 사람들

오늘도 살아가기

때문이다

 

   따사로운 햇볕과 봄내음을 맡으며 내려오다보니 보석사(寶石寺)이다. 신라 헌강왕 11년(885년) 주구스님이 창건한 보석사는 절 앞산 기슭에서 캐낸 금으로 불상을 만들어 보석사라는 이름을 얻었다든가. 한참 전성기에는 500여명의 승려와 3,000여명의 신도가 북적댔다고 하니, 오늘 이산을 시산제 산으로 선택한 이유가 거기에 있는듯 했다.

 

 

   보석사 바로 옆에 은행나무와 만난다. 양평 용문사, 영동 영국사 은행나무와 함께 천연기념물(365호)로 지정된 은행나무의 하나로 수령이 무려 1120여년이나 된다고 한다. 세월의 무게를 못이겨 몇몇 가지는 지지대로 버티고 있기는 하지만, 그 위용은 대단하다. 땅속으로 뻗은 뿌리가100여평이요, 높이 40m, 둘레 10.4m라 한다.

 

 

  그리고 그곳부터 보석사 일주문까지 200여m에 이르는 길은 전나무 터널이다. 하늘을 찌를 듯 도열한 전나무 숲을 지나는 길, 왼쪽으로 흐르는 보석처럼 맑고 청아한 계곡물 소리는 천상의 하모니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부처의 세계인 피안(彼岸)과 우리 중생들이 살고 있는 차안(此岸)을 나누는 길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엄숙함이 닥아온다. 그 전나무 터널을 지나 온갖 번뇌와 고통속에 살아가는 중생들의 세계인 차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불국(佛國)과 속세의 경계인 보석사 일주문 옆에 고사상을 차려놓고 산7000 산악회의 안전산행을 기원하고, 회원 각자는 가족의 건강과 무사함을 기원하며, 각 가정에서 바라던 일이 잘 이루지길 기원하며 시산제도 끝맺는다.

 

 오늘 하루도 새애인 진악산의 품에 안겨 서너시간에 걸쳐 그녀의 애무를 받으며, 따스한 봄볕을 받으며, 더 할 나위 없는 쾌락속에 보낸 맨발나그네의 나그네길이었다. 그녀(山)가 있음이 내겐 행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