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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으로의 여행 ~ 홍성 용봉산

맨발나그네 2010. 3. 31. 17:10

추억으로의 여행 ~ 홍성 용봉산

 

● 산 행 지 : 용봉산(381m, 충청남도 홍성군)

● 산행일시 : 2010년 3월 27일 (土)               

● 누 구 랑 : 발안중.고 동문 등산회

● 산행코스 : 주차장-용봉사-마애석불-악귀봉-노적봉-주차장(약 6km, 약 2시간반)

● 사진은 ? :  경인일보 송수복기자, 본인(마애석불 달랑 한장이지만....)

 

 

계절은 봄이라 하건만 완전 사우나탕 날씨이다. 냉탕과 온탕을 왔다갔다하는...  폭설이 내리는가 하면, 따듯해졌다가는 다시 꽃샘추위로 몸살을 떨게 한다. 다만 남쪽으로 매화꽃 구경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서 있는 것을 보곤 봄이라 여길 뿐이다.

 

 오늘도 날씨가 잔뜩 흐린데다가 바람도 제법 있고, 쌀쌀하기 까지 하다. 그래도 20여년전 안겼던 그녀 용봉산의 품에 안기기 위해 집을 나선다. 20여년이면 강산이 두번 변할 시간이 흘렀으니 그녀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 있을까 궁금한 마음 한가득이다. 더군다나 오늘은 내 어릴적 20여리 비포장도로를 자전거 통학하며 동문수학한 중.고등학교 총동문회 산악회의 정기 산행일이어 그 감회가 남다른 그런 날이다. 그뿐아니라 경인일보에서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을 연재하고 있는 송수복기자도 취재차 함께여서 그의 사진을 마음껏 퍼다 쓸 수 있으니 이 또한 행복이 아니겠는가? 송수복기자는 몇번인가 산행취재와 이런저런 일로 만났는데, 그의 카페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http://cafe.daum.net/soobok-song)에 졸필인 나의 산행후기를 실을 수 있는 독립된 메뉴를 제공해줘 몸둘바를 모르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이다.

 

 용봉산!  고려시대에는 북산, 조선시대에는 팔봉산으로 불렸다가, 일제강점시대에 용봉사의 절이름을 따서 용봉산으로 불려졌다고 한다. 산의 형상이 용의 몸집에 봉황의 머리를 얹어놓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용봉산이라 불리워진다고 한다.

 

 

 

 

 (1989년 1월 금호전기직장산악회와 찾은 용봉산에서)

 20여년 전에도 그러했지만, 대부분은 용봉초등학교를 들머리로 해서  용봉산의 능선들을 거쳐 용봉사 쪽으로 하산하거나, 수암산을 거쳐 덕산온천 쪽으로 하산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주차장을 들머리로 해서 한바퀴 도는 원점회귀 산행을 목표로 삼았다. 아마도 동문산악회의 특성상 뒤쳐지는 사람들이 되돌아 오기 쉽게하기 위한 주최측의 배려이니,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들머리에서 등산화와 양말을 벗어 배낭에 챙긴다. 날씨가 쌀쌀하여 찬기운과 맞닥뜨린 내발이 긴장한다. 뇌에서는 별안간 반란을 일으킨 주인의 발을 보호하기 위해 찬기운을 이겨낼 수 있는 방어기전을 지시하고 있다. 그래도 내색 안하고 동문 선후배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오르니 금방 왼쪽으로는 용봉사요, 오른쪽으로는 병풍바위 가는 길이다. 내심 병풍바위 쪽으로 방향을 잡아 용봉사까지 둘러 보면 좋을 것 같았으나, 이 또한 안내하는 후배들의 뜻에 따라 용봉사로 향한다.

 

  백제시대의 고찰 용봉산을 둘러보고, 미쳐 가보지 못한 병풍바위의 위용을 용봉사 지붕너머로 올려 보며 가슴에 새겨둔다.

 

 그리고 고려시대의 불상인 마애석불(보물355호)로 향한다. 마애불이 잔잔한 미소로 우리를 맞는다. 바위면에 새겨진 마애불 입상은 오른 손바닥을 펴 손 전체를 아래로 내리고, 왼 손을 펴 손바닥을 들어 보이는 시무외인(施無畏印)으로 중생들을 고난과 우환으로부터 지켜주고,원하는 바를 이루게 하는 공덕을 표하는 수인이라 한다. 그래서 그런지 마음까지 차분해지는 듯하다.

 그곳에서 또다시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도 찍으며 즐거워 한다.

 

 길은 이어져 절고개를 거쳐 악귀봉으로 향한다. 그새를 못참아 악귀봉 못미쳐 어느 정자에서 신재호 동문이 준비한 복분자주가 한잔씩 건네진다. 마애불이 많이 산재해 있는 이 용봉산에 와서 반야탕(般若湯: 범어에서 반야는 Prajna로 지혜라는 뜻을 가진다, 그래서 반야탕, 즉 술은 '지혜의 물'인 셈이다)으로 복분자주를 한잔씩 나눠 마시니 모두가 지혜가 샘솟는 생불이 따로 없다.  반야탕으로 가슴을 적시고 본 용봉산의 아름다운 암릉의 행렬은 더 더욱 장관이다.

 

 

 

 

 

 

 비록 381m 밖에 안되는 낮은 산이지만, 곳곳에 장군바위, 촛대바위, 어머니바위, 삼형제바위, 사자바위, 매바위, 마당바위, 가마바위등, 이름도 다 거론하기 힘들정도로 많은 기암괴석의 전시장이요, 조망 또한 일품이어서 찾는 이들이 무척 많은 산이다.

 

 

쉬엄쉬엄 악귀봉을 거쳐 노적봉으로 향하는 동안 펼쳐지는 주변의 풍광은 그냥 소나무 분재 전시장이요, 수석 전시장이다.  아니 인공적으로 아무리 다듬는다고 한들 이만 할까? 바위틈을 비집고 생명을 모질게 이어가는 소나무들은 환상적이다. 어디 그뿐이랴?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듯한 바위도 그냥 바위가 아니다. 이런 저런 이름들을 붙여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기암괴석에 그져 탄성만 나올 뿐이다. 누군가는 이 산을 작은 금강산이라 한다고 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찬바람이 거세게 불어 오래 머물지 못함이다. 그래도 모두들 기암괴석을 배경으로 중고등학교 시절의 소년소녀로 되돌아가 어울어져,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한다. 매일이 오늘 같을 수는 없지만, 가끔이라도 이런 자리는 계속되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마루금을 걷는 동안의 조망도 일품이다. 흐린 날씨이지만, 예산의 덕숭산, 서산의 가야산도 어슴프레 모습을 드러내고, 드넓은 예당평야가 답답한 일상을 벗어난 나와 동문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확 뚫어 준다. 작지만 웅장한 산, 평야지대에 우뚝 솟아 그 아름다움을 뽐내는 용봉산을 다시 찾은건 행복이다.

 

20여년전 느꼇던 감동이 다시 스멀 스멀 닥아오는 그런 산행이었다. 거기다 선후배가 어울어져 웃고 떠들며, 낮지만 옹골찬 용봉산의 멋스러움을 함께하였으니 더 바랄게 없다.  날씨가 바람이 불고 흐려있으며, 몇군데 못들린게 조금은 아쉬웠지만, 2시간 반에 걸친 용봉산과의 데이트는 정말 유쾌하고 상쾌했다.  맨발나그네가 되어 오래간만에 만난 그녀(용봉산)의 품에 안겨 보낸 행복한 하루였다.  

 

(에필로그) 

 누군가가 산행은 웰빙으로 짧게, 뒤풀이는 길게 해야 한다고 하던가? 산행후 남당리로 이동하여 뒤풀이로 먹은 새조개 사브사브는 또다른 감동이었다. 적지않은 뒤풀이 식대를 부담한 송중석 선배님께 다시한번 고마움을 전한다. 그뿐아니라 항상 동문카페를 이끌고 있는 홍광표 카페회장님이나 홍순근 카페지기님도 이렇게 동문들이 모일 수있는 멍석을 깔아 축제의 장을 마련하고 있음에 감사드린다. 이런 모임에 손발이 되고 있는 집행부 여러분들께도 마찬가지로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신 박영숙, 김민정 선배님들과의 즐거웠던 대화도 이번 용봉산과의 데이트를 더 빛내준 일등공신이다.  오늘의 이 즐거움과 행복을 인터넷에 어느분이 남긴 '좋은 친구가 그리운 날'이란 글을 퍼다가 친구라는 단어를 선후배라는 단어로 바꿔 읽으며 오늘의 감흥에 다시 한번 젖어본다. 

 

   좋은 친구가 그리운 날

 

어느 누구를 만나든지
좋아하게 되든지 친구가 되어도
진정 아름다운 우정으로 남고 싶다면
아무것도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그냥 나의 친구가 되었으므로
그 사실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어쩌다 나를 모질게 떠나 간다해도
그를 원망해서는 안됩니다.

 

친구가 내 곁에 머무는 동안
내게 준 우정으로, 내게 준 기쁨으로,
내게 준 즐거움으로,
내게 준 든든한 마음으로 그냥 기뻐하면 됩니다.

 

진정한 우정은
세월이 지날수록 더 아름다워집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가까히 느껴져야 합니다.

 

보이는 것으로만 평가 되는 이 세상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서로 서로 마음을 맡기며 서로에게 
마음의 의지가 되는 참 좋은 친구...

 

아픈 때나, 외로운 때나, 가난한 때나,
어려운 때나, 정말 좋지 않은 때나, 
정말 몹쓸 환경에 처할수록 우정이
더 돈독해지는 우리들의 만남이
많아 졌으면 참 좋겠습니다.

- 좋은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