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나그네/일반산행후기

백두대간 '설국'의 능경봉-고루포기산과 나눈 사랑

맨발나그네 2010. 3. 15. 15:44

백두대간 '설국'의 능경봉-고루포기산과 나눈 사랑 

 

● 산 행 지 : 능경봉(1,123m)~고루포기산(1,238m)

● 산행일시 : 2010년 3월 14일 (日)               

● 누 구 랑 : 은하수 산악회를 따라서

● 산행코스 : 대관령-능경봉-대관령전망대-오목골삼거리-고루포기산-오목골-횡계5리 마을회관(9km, 약4.5시간)

 

 

 

꽃피고 새가 울어야 하는 춘삼월에 대관령은 지난 6일부터 10일까지 닷새동안 눈폭탄이 퍼부어져 총110cm의 적설량을 보였다고 하니 세계적인 기상이변이 남의 일 같지 않다. 하지만 그 덕분에 올겨울 마지막이 될 雪國으로의 여행을 떠나 보려 한다. 이곳 저곳 산악회카페를 들러 보았지만 모두 꽃향기 그윽한 남쪽으로의 산행소식 뿐이다. 선자령 정도면 좋겠다 싶었는데, 선자령을 간다는 곳은 없고, 다행히 은하수산악회가 능경봉~고루포기산을 간다고한다. 몇명에게 전화를 해서 같이 가자고 권해보지만 대답이 시원치않다. 눈이 너무와 러셀도 안되었을거고 가봐야 고생이 뻔하단다. 그러나 雪國에서의 능경봉~고루포기산과의 운우지정을 위해서 기꺼이 나선다.

 

  오늘 품에 안길 그녀, 능경봉과 고루포기산은 한반도의 등뼈인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이루는 산이다. 산행 들머리는 옛 영동고속도로(지금은 옛 영화를 뒤로하고 465번 지방도로임) 하행선 대관령휴게소이다. 대관령은 영동과 영서를 이어주는 고개이다. 영동지역에서 서울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이다 보니 수많은 역사적 사연과 옛사람들의 애환을 간직한 그런 고개이다. 어디 그뿐인가? 대관령은 동쪽은 경사가 급하고, 서쪽은 완만하면서 펑퍼짐하다. 이름하여 경동지괴(傾動地傀) 지형이라 한단다. 이런 지형적 조건이 수증기를 포함한 대기의 동서간 이동을 막아 눈과 비가 많이 내린다. 남한에서는 서리가 가장 먼저 내리는 곳이기도 하고, 겨울에는 가장 춥고, 눈과 바람이 많다. 이런 이유로 겨울철이 되면 이곳 대관령을 들머리로 하는 선자령, 제왕산, 능경봉~고루포기산등이 눈꽃산행을 즐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된다.

 

 

 

능경봉이 1,123m, 고루포기산이 1,238m이지만 걱정할 것 없다. 들머리인 대관령이 832m이니 웬만하면 부담없이 눈꽃산행을 즐길수 있는 최고의 산행지이다. 약4~5시간동안 雪國의 정취에 맘껏 취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오늘은 눈은 대략 60~70cm 쌓여 있으나 날씨가 봄날씨여서 눈꽃이나 상고대는 구경 할 수 없어 아쉬움이 컸다. 그러나 안내표지판 다리가 파묻힐 정도로 많은 눈이 쌓인 백설의 카페트 위를 걷는 기분 또한 쏠쏠하다. 지금은 삼월하고도 중순이 아니던가...

  

   들머리인 대관령휴게소를 떠나 오른쪽의 긴계단을 오르면 영동고속도로 준공기념비을 만난다. 그 우측에 안내판을 보니 능경봉 1.8km, 제왕산 2.7km, 대관령박물관 7.6km이다. 그곳을 떠나 대략 500여m 앞으로 나아가니 산불감시초소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능경봉과 제왕산이 갈린다. 쌓인 눈은 대략 60~70cm 이지만 등산로는 이길을 먼저 걸은 분들이 러셀을 해놓아 대략 20~30cm정도 파진 외길을 걸어야 한다.

 

 드디어 능경봉 정상. 시원하게 경관이 펼쳐진다. 이제까지 지나온 대관령과 그너머로 풍차들이 들어찬 아름다운 모습이 장쾌하게 펼쳐져있다. 강능쪽으로는 제왕산이 위용을 자랑하고, 안개 때문에 선명하지는 않지만 저멀리 동해바다가 펼쳐져 있다. 눈길을 남쪽으로 돌리면, 앞으로 가야할  고루포기산이 그 위용을 뽑내고 있다. 그 능경봉을 뒤로 하고 제법 경사가 심한 내리막길을 내려온다.

 

 

 돌탑을 지나면 또다시 그리 높지않은 오르막길을 올라야 한다.  그리고 능경봉을 다시한번 둘러 볼수있는 작은 봉우리를 만난다. 그리고 잠시 숨을 몰아쉰후 조금 내려가니 그곳이 샘터 쉼터란다. 눈속에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벤치만이 눈속에서 빼곰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곳에 앉아 짐시 쉼을 갖는다. 그리고 오늘 이 산악회의 산행대장과 동행이 되어 갈길을 재촉한다.

  

 

 샘터에서 조금 오르다 연리지 나무를 만난다.

연리지란, 두나무의 가지가 맞닿아 오래동안 있으며, 가지가 하나로 합쳐져서 하나의 가지가 되어 서로 연결된 나무를 말하며,대부분 소나무와 소나무 사이에 많이 연결이 되어지지만, 이종나무(소나무와 도토리 나무 등) 사이에도 간혹 연결이 되어지는 곳도 있다고 하는데 이곳 고루포기산의 연리지 나무는 참나무인것 같다. 한 나무에서 자란 두 나무가지가 서로 연결이 되고, 또 다시 옆에 있는 나무가지와 3중으로 연결된 나무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들은 부부나 연인, 또는 부모 자식 사이의 애틋한 사랑을 표현할 때 연리지 사랑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송나라 범영이 쓴 역사책 <후한서>에 의하면, 후한 말의 대학자인 채옹이라는 사람은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지극 정성으로 간호를 하였다. 그러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무덤 곁에 초막을 짓고 3년 동안 묘를 지켰단다. 얼마 후 채옹의 초막 앞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서로 마주보면서 자라나기 시작했는데, 차츰 두 나무는 서로의 가지가 맞붙어 마침내 연리지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채옹이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와 자식이 한 몸이 된 것이라고 칭송했다. 이때부터 연리지는 효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은 부모 자식 간의 사랑보다는 남녀 간의 사랑을 비유할 때 더욱 많이 쓰인다. 그것은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쓴 ‘장한가(長恨歌)’ 때문이다.

 

七月七日長生殿(칠월칠일장생전) 7월 7일 장생전에서

夜半無人和語時(야반무인화어시) 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맹세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연리지)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 높은 하늘 넓은 땅 다할 때 있는데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 이 한 끝없이 계속되네.

 

이 시에서 백거이는 당현종과 양귀비의 애절한 사랑을 연리지에 비유했다. 그 후 연리지는 남녀 사이의 애틋하고 변함없는 영원한 사랑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생물학적인 연리지는 두 나무의 몸이나 가지가 서로 맞닿아서 성장하면서 맞닿은 부분이 압박을 견디다 못해 껍질이 벗겨지면서 생살이 부딪혀 하나로 이어진다. 그 쓰리고 아픈 시간을 견뎌낸 뒤에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먼저 부피성장이 일어나는 부름켜가 이어지고 유세포(柔細胞)가 하나로 섞인다. 그 뒤를 따라 일반 세포들이 이어지면서 연리의 과정이 끝난다.

이렇듯 아픔을 견뎌가며 서로 합쳐져 하나가 되는게 참된 사랑임을 연리지 나무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연리지 나무를 보고 조금 가파르다 싶은 오르막을 오르면 그곳에 전망대가 있다. 동계올림픽 유치를 희망하는 평창은 물론 저 멀리 북쪽으로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따라 장쾌하게 펼쳐진 대관령 주변의 설원 풍경을 조망하기에 적격이다.  한마디로 시원하다. 아마 올여름 한참 더울 때 나는 이 전망대에서 바라보던 대관령 설원을 생각하며 그 더위를 이겨내게 될 것이다. 이 전망대 이후로는 높낮이가 별로 없는 평평한 길이 이어진다.

  

 전망대 조금지나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눈을 밟아 빠지지 않게 한후 산행대장과 둘이서 점심상을 펼쳐놓고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고루포기산 400m, 오목골 1.6km라는 이정표가 있는 쉼터에 다다르고, 산행대장은 그곳에 남아 사람들을 챙기겠다고 한다. 그 오목골 삼거리로 다시 돌아와서 하산을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 고루포기산을 향한다.

 

고루포기산 정상이다. 누가 백두대간길 아니랄까봐 여기저기 리본이 휘날리고, 표지판도 뻑저지근하다.  그러나 정상에서의 조망은 영 시원치 않다. 지나가는 님께 사진 한장을 부탁한후 바로 되돌아 하산을 한다.

 

 

  오목골 삼거리에서 오목골로 내려오는 길은 경사가 급하다. 밧줄이 매어진 급경사로에서 일행중 엉덩방아를 찢는 사람도 있다. 경사가 심하지 않은 곳에서 마침 산행대장이 비료푸대를 준비하여 눈썰매를 타길래 나도 잠깐 빌려 동심으로 돌아가 본다.

 

  오목골을 거쳐 횡계리로 내려오는 길이다. 이제 그녀 능경봉~고루포기산과 헤어질 시간이 온 것이다. 들머리를 떠나 9km정도를 약4시간반에 걸쳐 그녀의 품에 안겨 맘껏 사랑을 나누었다. 오늘 본 연리지의 사랑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그녀와의 긴 포옹은 나를 환희에 차게 만든 것만은 분명하다.  날씨까지 포근하여 그녀의 품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돌아오는 길, 계절이 봄임을 알리는 봄비가 설국에서 돌아오는 나를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