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나그네/일반산행후기

신선이 되어 노닌 옥순봉과 구담봉에서의 하루

맨발나그네 2010. 11. 30. 21:53

신선이 되어 노닌 옥순봉과 구담봉에서의 하루

 

 

● 산 행 지 : 단양 옥순봉( 286m) 과 구담봉(335m)

● 산행일시 : 2010년 11월 28일 (일)

● 누 구 랑 : 산7000 산악회

● 산행코스 : 계란재>374봉삼거리>275봉>갈림길>옥순봉>갈림길>철모바위>구담북봉>구담봉>374봉삼거리>계란재>장회나루

● 사진은 ? : 산7000 산악회 회원 여러분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그래도 팔난봉꾼(? : 산에 관한 한) 내겐 그녀(山)들의 유혹을 견뎌낼 재간이 없다.

천하일색 단양팔경중 그 빼어난 미모가 더할 나위없는 제3경 구담봉과 제4경 옥순봉과의 운우지정이니 명색이 전국의 산하를 애인으로 두겠다고 큰소리 뻥뻥치고 있는 맨발나그네가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따라 나선 길이다.

구담봉과 옥순봉을 품고 있는 단양(丹陽)이라는 지명은 <鍊丹調陽>이란 말에서 왔다고 하는데 <鍊丹>은 옛날 신선들이 만들어 먹었던 특수 환약이었고, <調陽>은 그 빛이 고르게 비친다는 뜻이라고 하니 <丹陽>이야 말로 지명 자체가 신선들이 놀던 곳이었으니 내가 하루쯤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신선이 되어 본들 누가 뭐라 하겠는가?

들머리인 계란재에서 출발이다.

수은주는 영하를 가르키고, 어제 내린 눈발이 아직 여기저기 녹지 않고 하얀 이불을 쓰고 있으니 이 맨발나그네 맨발이 되어 볼 엄두를 못낸다.

산우님들의 인사가 여간 아니다.

모두들 맨발이 아닌 내가 더 이상해 보이는지 한마디씩 거든다.

그랬거나 말거나 나도 인간인지라 벗어 볼 엄두가 나지 않으니 오늘은 등산화에 맡겨볼 요량이다.

 




 

 

그렇게 시간여 오르니 단양팔경의 제4경이라는 옥순봉이다.

희고 푸른 빛을 띤 바위들이 힘차게 솟아 마치 대나무싹과 같이 보인다는데서 유래한 옥순봉은 원래 청풍에 속에 있는 경승지였다고 한다.

조선 명종 때 관기였던 두향은 그 절경에 반해 당시 단양 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 선생에게 옥순봉을 단양에 속하게 해달라고 청을 넣었다고 한다.

하지만, 청풍부사의 거절로 일이 성사되지 않자 이황선생은 석벽에 단구동문(丹丘洞門)이라는 글을 새겨 단양의 관문으로 정했다는 사연이 전해진단다.

훗날 청풍부사가 그 글씨를 보고 감탄하여 단양군에 옥순봉을 내주었다는 뒷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작가 정비석은 소설 ‘명기열전(名妓列傳)’의 두향편에서 두향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정비석씨의 또다른 글 ‘퇴계일화선’에도 실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시와 거문고에 능해 단양군수 퇴계 이황에 의해 관기로 발탁되었고, 그런 인연으로 두향은 퇴계 이황을 사모하는 정이 남달랐다고 한다.

퇴계 이황이 경상도 풍기 군수로 전근을 가자, 신임 사또에게 ‘이황을 사모하는 몸으로 기생을 계속할 수 없다’며 ‘기적에서 이름을 없애달라’고 청원해 기생을 면하게 된다.

풍기군수로 전근간 이황이 몸이 쇠약해져 사직하고 고향인 안동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은 두향은 칠성당을 짓고 이황의 건강을 소원했으나, 이황이 죽자, 저승에서 다시 모시겠다는 일편단심으로 자신의 유해를 남한강 강선대(단성면 장회리 소재)에 묻어 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26세 꽃같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사실여부야 어찌되었든 지금도 단양 단성면에서는 ‘두향제’가 열리고 있고 그 애뜻한 사랑이 내가 사랑하는 여인(山)들과의 사랑은 어림도 없을 것 같아 그냥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는 접어두고 자연이 선사하는 아름다운 풍광에 취한 맨발나그네가 될 뿐이다.

 




 

"바위 벼랑 벼랑엔 군데군데 단풍이 물들고. 서리가 내리니 가을 강물은 더욱 맑아. 조각배에 탄 사람은 병풍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구려. 천태만상에 부족함이 없으니 화옹(畵翁)과 시선(詩仙)이 같이 만든 것은 아닐는지…"

16세기 중엽 유학자이며 이황의 제자인 금계 황준량이 옥순봉을 두고 시인과 화가가 함께 만든 절경이라고 감탄하며 한 말이다.

같이 걷고 있는 여군님은 연신 충주호의 코발트색 물빛이 이쪽 저쪽이 달라 보인다고 신기해 한다.

아마도 햇빛에 따라 산 그림자를 머금은 모습이 각각이어서 보이는 모습일지니 산과 호수의 절묘한 조화에 한 폭의 수묵화가 따로 없다.

옥순봉에서 바라보는 장회나루에서 청풍나루까지 이어지는 충주호의 아름다움에 모두 탄성이다.

그 물줄기를 가로지른 붉은 빛 옥순대교와 충주호 맑고 푸른 거대한 물줄기에 포말을 그리며 오가는 유람선까지 더해 지니 수묵화 속의 신선이 될락말락하는 맨발나그네 떠나고 싶은 마음이 싹 가신다.

하지만 또다른 비경 구담봉과의 운우지정을 위해 떠나야 한다.

옥순봉에서 북구담봉에 이르는 길은 어제 내린 비와 눈으로 얼어 붙어 구담봉과의 운우지정을 시샘하고 있다.

 






(김홍도의 옥순봉도 : 보물 782호)

 

그래도 가끔씩 뒤돌아 보면 병풍을 닮은 바위 절벽과 그 바위를 고향삼아 뿌리내린 소나무들이 1796년 김홍도가 그린 옥순봉도가 그곳에 옮겨진듯 환하게 웃음지며 발걸음을 붙잡는다.

그렇게 철모바위를 지나 점심상을 펼친다.

오늘은 노루귀님표 만두국이다.

적당히 고픈 배에 정성이 깃든 만두가 들어가니 산해진미가 따로 없다.

다만 막걸리 한잔 생각이 간절하건만 어찌 된 일인지 내 배낭에도 없고 권하는 사람도 없어 그야말로 오래간만에 무알콜 산행이 되고 말았다.

누구는 히말라야를 무산소 등정한다는데 하루 쯤 무알콜 산행을 한다고 어디가 덧나는 것은 아니지만 웬지 좀 섭섭하다.

황산님,마일드님! 그러는 거 아녀! 막걸리 한잔은 남겼어야지!(ㅎㅎ)

하긴 무알콜이었기에 점심후 오른 구담북봉에 이르는 길이 험하고 가파라도 어려움없이 오를 수 있었으니 고마워해야 할 일이지만 말이다.




 



(겸재 정선의 구담도 : 1737년 작품)

 

북구담봉을 거쳐 단양팔경의 제3경인 구담봉에 이른다.

구담봉은 기암절벽의 암형이 거북을 닮았고 물속의 바위에 거북무늬가 있다하여 구담봉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한다.

삼봉 정도전, 퇴계 이황, 토정 이지함, 단원 김홍도, 겸재 정선, 이방운, 김성일, 김삿갓등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그림으로 글로 찬사를 아끼지 않은 그 구담봉에 드디어 오른 것이다.

비록 그분들의 재주에는 못 미쳐 그림 한 폭 남기지 못하지만, 이렇게 글을 쓰며 그 분들이 느꼈을 감흥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볼 수 있는 행복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특히나 조선조 인종 때 이지번(토정비결의 저자 이지함의 형이자 선조 때의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의 아버지)은 벼슬을 버리고 구담에서 세월을 보냈는데, 항상 푸른 소(靑牛)를 타고 강가를 오르내리고 또 칡넝쿨로 큰 줄을 만들어 구담의 양쪽 벽에 붙들어 연결해 놓고 나무로 학을 만들어 그 줄에 매달아 타고 내왕하였다고 하니 그가 바로 신선이요 400여년이 지난 지금 그의 발끝이라도 흉내 내볼까 조바심내 보지만 어림없는 일이다.

 



 

구담봉을 소재로 쓴 시가 100여편 넘게 전해져 온다고 하니 그 명성이야 말해 무엇하오리만은 그래도 여기서 그 분들이 쓴 시 중 한편을 감상하지 않을 수 없으니 퇴계 이황 선생께서 팔경이라는 단어를 만들게 된 소상팔경이 이보다 나을 수 없다며 쓴 시 한 수를 소개할까 한다.

 

구담을 지나는 새벽 달은 산에 걸려있어

그 곳을 상상하니 뵐동말동 아득하이

주인은 이제와서 다른 곳에 숨었으니

학과 잔나비 울고 구름만 한가하네

 



 

구담봉에 오르니 발아래 수직 낭떠러지 밑 남한강 물줄기 유유히 흐르고 충주호 장회나루에 드나드는 유람선들의 모습이 한가롭기 그지 없다.

저 멀리 겹겹히 병풍속의 수묵화 되어 제비봉, 두악산, 소백산 등이 펼쳐치고, 눈을 돌리면 금수산, 발목산, 가은산이 펼쳐지는 구담봉에 서서 그저 신선 흉내를 내며 보낸 하루가 유쾌할 뿐이다. 

 

영하의 날씨이지만 제법 햇살까지 퍼져 옥순봉과 구담봉의 두여인(山)과의 운우지정에 옛말로 하자면 '도끼자루 썩는 줄'모르는 하루였고, 시쳇말로 하자면 '멀티 오르가즘'에 몸둘바 모르게 즐거운 하루였다.

1790년 다산 정약용은 이곳 구담과 옥순봉 일대를 말을 타고 바삐 지나가고 말았는데, 그 때의 심정을 <단양산수기>에서 "아름다운 미인을 보았으되 얼굴은 아름다웠으나 그 자태는 기억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 맨발나그네는 두여인 옥순봉과 구담봉과 너덧시간을 그녀들이 내준 품에 안겨 보냈으니 그 자태 뿐 아니라 그녀들을 속속들이 느껴보았노라고 감히 주장해 본다.

하긴 남녀간의 상열지사는 은밀해야 함이 옳은데 이렇게 만천하에 떠들고 나니 어딘가 조금은 못나 보이지만 그래도 그녀들 옥순봉과 구담봉을 잊을 수 없어 떠들지 않고는 못 배기겠기에 이렇게 졸필이나마 중언부언해본다.

하긴 위 옥순봉도나 구담도를 보건대 모두 나룻배 한 척 씩이 있으니 아마도 나룻배타고 두향이 같은 기녀와 풍류를 즐기며 감상해야 하는 옥순봉과 구담봉이 아닌가 객적은 생각에 젖어보기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절경으로 안내해준 산7000 산악회 집행부 여러분과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산악회를 잘 이끌어 주고 있는 따스한마음 회장님께 고개숙여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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