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나그네/일반산행후기

애끓는 사연을 지닌 보련산과의 송년 운우지정

맨발나그네 2010. 12. 30. 20:01

애끓는 사연을 지닌 보련산과의 송년 운우지정

 

 

● 산 행 지 : 충주 보련산(764.9m)

● 산행일시 : 2010년 12월 26일 (일)

● 누 구 랑 : 산7000 산악회

● 산행코스 : 하남고개>676봉>석굴>스핑크스바위>무명봉>보련산>안부>동암계곡>유엔아이

              스파

● 사진은 ? : 산7000 산악회 회원 여러분

 



 

 

이런 저런 일로 오랬만에 그녀(山)의 품에 안기기 위해 길을 나선다.

오늘은 충주에 위치한 보련산과의 운우지정이다.

보련산을 품고 있는 충주는 우리나라의 중원(中原)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격돌했던 지역이기도 해서 삼국의 유물들이 골고루 출토되고 있다고 한다.

철의 산지이자 교통의 요충지인 충주는 삼국 모두에게 전략적 가치가 있었으리라.

남한강을 이용한 배편으로 많은 물산이 왕래하였으며, 남한강 주변의 넓은 평지는 더 없이 좋은 지역이었으니 삼국 모두 탐낼만한 그런 곳이었다.

삼국중 맨처음 충주땅을 지배했던 나라는 백제다.

이후 고구려의 장수왕이 남하정책을 펴면서 백제를 밀어내고 중원지역을 석권했다.

그후 6세기에 신라는 고구려를 북으로 밀어내고 이곳에 <중원소경>을 세우고 대가야 유민들을 이주시켰기에 가야문화의 흔적이 보이기도 한단다.

이렇게 중원을 차지하기 위해 삼국이 기를 쓰고 싸우는 바람에 많은 성들이 만들어졌고, 이곳 저곳에 옛 전쟁의 흔적이 지금까지도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누군가는 충청도 사람들이 말이 느린 이유를 이때의 전쟁 때문이라고 한다.

싸움이 그칠 날이 없던 그때, 하루밤 자고 나면 성의 주인이 바뀌어 있었으니, 고구려 병사 앞에서 고구려 욕을 하면 안되었기에 병사들을 만나면 그가 어느 나라 병사인지부터 확인하고 행동을 하느라 말이 느려졌다는 말도 안되는 우스개소리가 전해지고 있단다.

 







 

어째거나 그런 충주에 몸담고 있는 보련산과의 운우지정을 위해 떠난 길이다.

보련산(寶蓮山)은 충북 충주시 앙성면과 노은면 경계에 솟은 산이다.

보련산의 동쪽 7km 거리에는 장미산(長尾山 373.7m)이 있고, 이 보련산과 장미산에 얽힌 남매지간의 애절한 전설이 있다.

삼국시대에 충주시 노은면 가마골 마을 부근에 장미라는 남동생과 보련이라는 누이가 있었는데 명산의 정기를 타고 나서인지 태어날 때 부터 장사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한다.

그런데 관습에 따르면 한 집안에서 장사가 둘이 출생하게 되면 숙명적으로 그 중 한 사람은 죽음을 당해야 했다.

따라서 이 두 남매도 비운을 안고 있음을 자인하고 있기 때문에 성장하면서부터 운명을 정하는 방법은 상론하게 되었던 것이며 그 방법으로 성쌓기 내기를 하게 되었다.

같은 분량의 다듬어진 돌을 가지고 규정된 규모의 성을 쌓는 것인데 물론 성을 먼저 쌓는 쪽만이 살아남는 시합이었다.

아무리 남매라 하더라도 생명에 대한 애착도 애착이려니와 장사라는 명예가 있기 때문에 심각했다.

보련은 노은에서 장미는 가금에서 드디어 운명의 싸움은 시작되었다.

그 어머니는 두 남매보다도 더욱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속도가 아무래도 장미보다는 보련이가 더 능숙함을 판단한 것이다.

아들·딸이 꼭 같다지만 어머니의 심정은 그래도 아들쪽이 컸던 모양이다.

장미의 속도가 미흡함을 본 어머니는 생각 끝에 떡을 해 가지고 보련에게로 가 떡을 좀 먹고 하라며 떡을 펴 놓았다.

보련이가 한창 배도 고프고 피로도 한 판에 한그릇을 맛있게 먹고 또 다시 시작해서 마지막 돌 한 개를 가지고 올라가는 도중 장미 쪽에서 축성이 끝났다는 북소리와 함께 기치가 올랐다.

보련은 주저앉고 말았다.

그제서야 떡을 주신 어머니가 아들을 살리기 위한 술책인줄을 알았지만 모든 것을 운명으로 돌리고 그 길로 노은땅을 벗어나 어리론가 떠나갔는데 다음날 저녁에 보련의 본집을 향해 큰 별이 하나 떨어졌다고 한다.

그때부터 보련이가 성을 쌓던 산을 보련산, 장미가 성을 쌓던 산을 장미산이라고 하고 그 성을 각각 보련산성과 장미산성이라고 부르며 지금까지 남아있다.

 





 

보련이의 애닮픈 사연을 뒤로하고 들머리인 599번 지방도로 상의 하남고개마루를 출발한다.

하남고개가 340m이니 765m인 보련산을 얕잡아 보았는데 카랑카랑한 그녀가 꽃잠자리(첫날밤의 순우리말) 신고식을 제대로 받겠단다.

처음부터 칼바람을 머리에 이고 된비얄 비탈길을 숨을 헐떡이며 오른다.

약간의 감기 기운에 코가 막혀 입으로 숨을 쉬며 오르려니 더더욱 숨을 몰아쉬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추위속에 맨발이 아닌 나를 보고 몇몇 산우님들이 오늘같은날 맨발이 되어야 진정한 맨발나그네라고 놀려댄다.

그 농담을 농담으로 받으며 한참을 오르니 얼굴을 때리는 찬바람이 매섭기는 하지만, 이 차가운 유혹이 나로 하여금 그녀(산)에게 빠져 헤어나질 못하게 한다.

냉냉한 전율 속에 얼은 가슴이 그녀(산)가 읊어주는 서사시에 사랑의 불꽃이 일어 뜨거운 열기로 녹아난다.

676봉에 이르니 무명봉과 보련산 정상이 한눈에 와 닿는다. 그곳에서 잠시 쉼을 갖고 다시 능선을 따라 정상을 향해 걷는다.

물어뜯을 듯 이빨을 드러낸 삭풍이 겨울 나목들을 건드려 보지만, 나목들은 이미 견뎌낼 준비가 되어 있다고 아랑곳 하지 않는다.

 


 

긴 세월을 묵묵히 지켜온 보련산의 소나무들도 서로의 어깨를 맞대고 그들의 인고의 세월을 자랑이라도 하는 듯 의연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하긴 모든 것이 멈춘듯한 이 겨울에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고, 우리 귀에 들리지 않을 뿐이지 삼라만상은 살아 숨쉬고 있다.

닥아 올 새 세상인 봄, 여름, 가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저 인간만이 춥다고 웅크리고 힘들다고 투정하며 남을 원망하며 그렇게 생을 이어간다.

하지만 이렇게 추위를 가르고 힘들게 산길을 걷다보면 여러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있는 보람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맑은 마음을 얻을 수 있다.

그렇기에 이렇게 추운날도 많은 사람들이 애인(산)들을 만나러 길을 떠나나 보다.

 



 


그렇게 도착한 보련산 정상에는 누군가의 묘소가 남한강을 굽어보며 있으며, 정상표지석과 어깨높이의 케언이 자리잡고 있다.

꽃잠자리 맨발나그네에겐 어디가 어딘지 잘 구분이 되진 않지만, 정상에서의 조망이 일품이다.

정상에서 한참을 주변 경관에 취해있다가 다시 길을 떠난다.

정상과 쇠바위봉 중간의 안부에서 동암계곡으로 하산이다.

원래 코스는 쇠바위봉을 거쳐 능골로의 하산인데 나와 일행이 되어 걷던 몇몇은 동암계곡을 거쳐 돈산리로 하산하기로 한 것이다.

조금이라도 빨리 온천장에 몸을 담고 싶어서이다.

이곳의 온천들은 탄산온천으로 탄산온천수는 모세혈관의 개방과 관상동맥의 혈행을 6.5배 향상시켜 심장병, 중풍, 어깨결림, 요통, 냉증, 당뇨병, 우울증에 효과가 있다고 하니 안 들르면 섭섭해서 이다.

그렇게 산행과 온천욕까지 마치니 마음을 가리고 있던 혼탁이 한꺼풀 벗겨져 나간다.

눈과 마음이 맑아져 온다.

모든 가식을 씻어내고 순수한 정신이 되어 본다.

비롯 몇시간 뒤 사바세계로 돌아가면 바로 혼탁해질 눈이고 마음이고 정신이겠지만....

이어진 산악회 송년회에서 모두들 일년간의 무사산행을 감사해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