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나그네/일반산행후기

소박한 가리산과의 데이트

맨발나그네 2011. 1. 28. 23:55

 

 소박한 가리산과의 데이트

   

● 산 행 지 : 홍천 가리산(1051m)

● 산행일시 : 2011년 1월 23일 (일)

● 누 구 랑 : 산7000 산악회

● 산행코스 : 가리산자연휴양림-삼거리-가삽고개-가리산-무쇠말재-삼거리-자연휴양림

● 사진은 ? : 산7000 산악회 회원 여러분

 
 

 

계속되는 추위와 눈이 올 것이라는 예보속에 떠난 길이다.

추위에 약한 나에게는 달갑지 않은 길이지만 오래간만에 여인(山)과의 데이트이니 즐거운 마음으로 길을 나선다.

가리산은 강원도 홍천군과 춘천시 경계에 솟아 있으며, 조망이 뛰어나 '강원 제1의 전망대'라 불리운다고 한다.

날씨가 좋은 날은 향로봉, 설악산, 오대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과 고산준령이 파노라마를 펼치며 한꺼번에 보이고 발아래로는 소양강이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복이 없는 내게 오늘 가리산은 그런 행운을 나에게 주지 않았다.

 

 

 

 

어째거나 정상에는 암봉 3개가 힘차게 솟아 있어 어떤 사람은 고깔처럼 솟아 있는 1~2봉이 여인의 젖무덤을 연상케 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노적가리처럼 보인다고 하여 가리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국어사전의 '가리'는 '단으로 묶은 곡식이나 장작 따위를 차곡차곡 쌓은 더미'를 뜻하는 순우리말이라고 하니 산 이름으로는 제대로 갖다 붙인 듯 싶다.

 

들머리인 휴양림은 아담하다.

가족과 함께 며칠쯤 머물며 지내면 좋을 듯 싶다.

휴양림을 지나 왼쪽으로 얼어 붙은 계곡을 끼고 조금 걷노라면 가삽고개와 무쇠말재를 나누는 삼거리가 나오고 오른쪽 가삽고개 비탈길로 방향을 잡는다.

 

 

 

 

 

 

 

S자로 이어져있는 길을 한참 오르니 시원하게 쭉쭉뻗은 낙엽송숲이 나타나고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로 이어진다.

약한 눈발속에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니 숨이 턱에 찬다.

추운 날씨로 껴입은 속옷이 비든하다 못해 땀까지 배어난다.

그렇게 한참을 오르니 능선이 나타나고 한 20여분 걸으니 정상으로 향하는 암벽이 나타난다.

그러나 진도개 산행대장은 우회를 명한다.

강원제1의 전망대라고 하는 정상을 오르지 못한 섭섭함이 앞서지만 많은 인원을 인솔해야 하는 집행부의 고심이 엿보이니 따를 수 밖에 없다.

홍천강의 발원지라고 하는 석간수 샘도 그냥 멀리서 눈도장만 찍고 하산을 서두른다.

 

 

 

 

 

 

 

 

 

정상과 무쇠말재 중간지점쯤에서 점심상을 펼친다.

이렇게 추운날 산에서의 식사는 고역이기도 하고 추억이기도 하다.

몇몇이 준비한 버너와 코펠로 끓인 라면은 환상이다.

추워서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지겠지만 모두들 맛있게 먹은 점심이다.

무쇠말재까지는 완만한 하산길이다.

봄철이면 산철쭉과 진달래 군락이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무쇠말재는 홍수가 났을 때 무쇠로 배터를 만들어 배를 묶어 두었다고 해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는데 설마 그것이 노아의 홍수 때는 아니리라.

점심을 먹으며 한잔 걸친 반야탕의 후유증인지 내려오는 길 내내 기분은 괜찮은데 눈이 얼어 산길이 미끄러워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다.

 

 

 

 

가리산은 1000m가 넘는 산이지만 동네 뒤산같은 푸근함이 있는 소박한 산이다.

비록 빼어난 비경이 있는 것도 아니요, 자랑할 만한 기암괴석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우리가 길을 가다 만나는 그저 그런 동네 아줌마와 같은 평범한 산인 것이다.

그런 아줌마 같은 가리산과의 운우지정이 추운 날씨와 흩날리는 눈발 등으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허파 가득 밀려 들어와 폐부를 간지럽히는 차가운 기운이 나를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그렇게 내려오다 보니 어느덧 휴양림 주차장 근처의 식당이다.

 

 

 

다시 시작된 뒤풀이가 오늘은 별로 반갑지 않다.

아마도 점심을 먹은지 얼마 안되는데다 점심때 즐긴 반야탕의 기운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혼자 자리를 빠져나와 산책로의 숲과 이야기를 나눈다.

개울가 옆 잣나무 숲이다.

양지바른 곳은 눈이 녹아서 잣나무 솔잎만 수북하여 푹신하다.

그 잣나무 밑 양지바른 곳에서 여덟팔자로 하늘은 보고 누워 단전호흡을 해본다.

내리고 있는 싸락눈이 코끝을 간지럽히고 눈섭에 붙어 차가움을 선사하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기운으로 꽉차오른다.

떠들석한 일행을 벗어나 잠시나마 고독을 즐긴다.

멀리서 왁자지껄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지만 또다른 고요가 내 마음을 훓고 지나간다.

한참만에 뒤풀이 장소로 왔건만 사람들이 권하는 반야탕이 오늘은 별로이다.

그래서 다시 뒤풀이 장소를 떠나 산책로의 숲길을 걷는다.

명색이 산책로 이건만 눈덮인 산책로엔 이름 모를 동물의 발자국이외에는 아무도 밟지 않은 길을 홀로 걷는다.

정말 좋다.

고독이 있어 좋고, 사색이 있어 좋다.

순백의 자연이 나를 맞아주어 더욱 좋다.

정말 오래간만에 홀로 걷는 눈길이어서 더욱 좋다.

더욱 거세지는 눈발이 있어 더더욱 좋다.

 

 

 

 

 

버스로 이동하는 길 산우님들이 즐거워 하는 걸 보며 나도 덩달아 즐거워 진다.

 

 

  ( 답글 )

  • 이번 산행은 진도개가 선봉이자 대장? ㅋㅋㅋ 무쇠말재라 ..거기에 옛날에는 배가 지나다녔나봐요.ㅎㅎㅎ
    사진만 보이면 잘볼텐데..아쉽네요. 어려운 산행글 편히 잘보고 갑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2013.02.06 10:21

     
  • 마지막잎새
  • 고독이 있어 좋고, 사색이 있어 좋다. 순백의 자연이 나를 맞아주어 더욱 좋다.
    정말 오래간만에 홀로 걷는 눈길이어서 더욱 좋다. 공감합니다. 더욱 거세지는 눈발이 있어 더더욱 좋다. 공감 한표 꾹!!!!!!!!!!!
    2013.02.06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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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현이
  • 참 재미나게 읽고 보고 갑니다. 추운날씨 안산하세요. 2013.02.07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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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립스틱
  • 아줌마처럼 푸근한 산을 잘도 다녀오셨네요. 운우지정은 못나누신듯,...조강치처 광교의 염원 때문인가...
    멋진 산행기 즐겁게 보고 갑니다.
    2013.02.08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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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든이여
  • 즐거운 자리에 가면 저절로 즐거워지고 슬픈자리에 가면 저절로 슬퍼지는게 꼭 전염병처럼 번져가지요. 항상 즐거운 산행하셔서 올한해도 즐겁게 지내세요.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 2013.02.0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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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희
  • 아주 멋진 산행기입니다. 마음으로 보고 갑니다. 2013.02.1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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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로시
  • 황당한 전설도 때로는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지요. 산마루에 뱃턱이 있었다니...
    믿거나 말거나...그런 옛이야기가 있어 우리는 전설처럼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며 산의 속살을 헤집고 다니나 봅니다.
    2013.02.11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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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순이
  •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 잘하네요. 수고하셨어요. 건강하시길..늘.. 2013.02.12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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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촌놈
  • 추운 겨울산에서 끓이는 라면맛이란 먹어본자만의 진미이지요. 굿. 2013.02.12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