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눈으로 감상한 비슬산 진달래 군락지
● 산 행 지 : 비슬산(1083.6 m, 대구)
● 산행일시 : 2010년 4월 11일 (일)
● 산행코스 : 주차장-유가사-정상(대견봉)-진달래군락지-대견사지-소재사-휴양림주차장(약 11km, 약 5시간)
● 사진은 ? : 따스한마음, Mr. WEST, 본인
항상 새로운 애인(山)과의 데이트는 즐겁다.
그녀들과의 운우지정이 기다려진다.
오늘도 새로운 애인 비슬산을 만나 안고 뒹글기 위해 길을 나선다.
오늘은 더군다나 갑장인 명동거리님이 회장인 산수산악회에 처음 따라 나선 길이니 이 또한 반가운 일이 아닐수 없다.
거기다 대구의 비슬산은 비파 비(琵), 거문고 슬(瑟)자를 쓰는 산으로 정상 바위의 생김새가
신선이 앉아 비파를 켜는 형상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니,
나 또한 신선이 되어 유유자적하며 비파 연주에 맞추어 참꽃(진달래)들의 봄의 교향악 합창을 들으며
비슬산과의 합방을 생각하니 떠나기 전부터 가슴이 설렌다.
아니 내가 신선이면, 합방을 하고 운우지정을 나눌 비슬산은 선녀란 말인가??? ㅎㅎㅎ
비슬산은 봄이면 정상 부근 30여만평의 참꽃(진달래) 군락지에서 일제히 붉은 빛을 뿜어내어
온 산을 연분홍 물감으로 도배하고,
여름에는 깊은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더위를 식혀준다고 한다.
가을에는 억새 군락이 장관을 연출하고,
겨울에는 얼음동산이 산을 찾는 이들을 반갑게 맞아준다고 한다.
그래서 혹자는 대구 팔공산에 가려 그 빛이 가려진 안타까운 산이라 한다.
하지만 산림청 지정 100대 명산에도 당당히 그 이름을 올린 명산이라 하니
오늘 비슬산과의 운우지정이 더욱 기대되는 바이다.
산행의 들머리는 대구 달성군 유가면 유가사(비슬산) 주차장이다.
유가사는 신라 흥덕왕 2년, 827년에 세워졌으며, 주변의 소재사, 도성암, 대견사터 등과 함께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 비슬산에서 '삼국유사'를 편찬한 고승 일연이 37여년를 머물며 수도하였다 하니
문화와 역사가 숨쉬는 그런 곳이다.
유가사 일주문에서 인증샷을 하고 조금 오르면 갈림길이다.
우측은 유가사 방향이고, 왼쪽으로 대견봉(정상)으로 향한다.
수도암 입구까지는 포장도로이다.
이후 산길이 이어져 솔향 솔솔 풍기는 오름길의 연속이다.
그곳에서 이 맨발나그네와 같은 맨발족을 만난다.
산수산악회의 원리쌈닭님이 신발을 벗어 배낭 뒤에 매달고 맨발산행을 즐기고 계셨다.
반갑다. 어느 외국에서 고국 사람을 만난 것처럼....
그뿐아니고 산수산악회의 고문님은 연세가 84세이시라는데, 웬만한 젊은이 보다 산행속도가 빠르시다.
같이한 산7000의 회장인 따스한마음과 우리도 나이먹어 고문님 나이때까지 즐겁게 산행하기를 소망해본다.
경사가 심한 오름길을 힘들여 오르니 정상과 주변의 풍광이 조망되는 능선 어깨에 올라선다.
이름하여 전망바위인데 주변은 안개에 싸여 조망이 좋지 않다.
거기다 피어 있기를 소망한 진달래 꽃은 어디로 가고 매운 바람꽃만 가득 피어 그동안 산길을 오르느라 흐르던 땀을 모두 걷어가고 한기가 돈다.
그곳에서 아늑한 곳을 찾아 점심상을 펼친다.
오늘도 어느분은 돼지껍대기 요리로 우리에서 콜라겐을 무한공급하고,
어느분은 야들야들한 어린 상추와 부추잎으로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해준다.
누군가는 세계의 고봉들을 무산소 등정한다고 한다.
무산소 등정은 아니어도 오늘 하루 무알콜 산행을 작심해본건만,
펼쳐진 음식과, 복분자주 앞에 작심 서너시간을 지켜내지 못하는 내가 한심할 따름이다.
그뿐인가?
그 알콜 덕에 점심을 먹느라 배낭에서 꺼내 놓았던 등산화를 못 챙겨 오는 바람에,
뒤에 오던 산수산악회 회장님이 수고를 하게 하였으니,
정말 산행뿐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무알콜 생활을 생활화해야 할까 보다.
다시 시작된 산행길.
왼쪾으로는 대구 앞산 또는 용연사 방향이니, 오른쪽 정상쪽을 향한다.
마른 억새 무성한 완경사 능선길에 진달래 나무가 지천이다.
그러나 기대했던 연분홍 물결은 그곳에 없었다.
젖몸살을 앓고 있는 진달래 꽃망울이 넓은 평원을 뒤덮고 있을 뿐이다.
그저 사내녀석들 젖몽우리 만한 꽃망울이 우리를 맞을 뿐이다.
어느것은 그것보다는 좀더 커보인다.
아마 사춘기 직전의 소녀의 젖몽우리 만은 하려나?
복분자주에 취해 피지 않은 진달래 꽃망울을 보며 허튼 소리를 하자니,
같이 걷고 있던 노루귀님이 그 젖몽우리를 보기나 하고 하는 소리냐고 핀잔이 크다.
핀잔을 받았으니 고쳐 말해야만한다.
사내녀석의 젖몽우리는 짐승 숫컷의 젖꼭지로,
사춘기 직전의 소녀의 젖몽우리는 짐승 암컷의 젖꼭지로 말이다.
이래야 복분자주에 취한 주사가 아니라
반야탕(般若湯: 범어에서 반야는 Prajna로 지혜라는 뜻을 가진다, 그래서 반야탕, 즉 술은 '지혜의 물'이란다)에
물든 지혜롭고 고상한 맨발나그네가 되겠기에 말이다.
복분자주나 반야탕이나 얍삽하게 말만 바꾼 알콜이겠지만...
오늘의 포토메니저인 따스한마음님이 진달래꽃 색깔로 차려입은 두 회원을 모셔 진달래꽃을 대신한다.
어째거나 시간이 걸릴 뿐이지, 2주정도 뒤면 만개하여 산상화원을 이룰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 세월의 이치이니까....
드디어 비슬산 정상이다.
정상석 주변은 많은 등산객들이 차지하고 있고, 바람이 많이 불어 정상석 뒷면을 배경삼아 사진 몇장을 찍고는 자리를 뜬다.
비슬산이 신선이 비파를 타는 모습을 닮았대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데,
내 눈이 세속에 찐든 범인의 눈이어서인지
그저 주위 조망이 좋은 좀은 색다른 산으로 밖에 안보이니 속물은 속물인가 보다.
이곳에서 대구시가지와 낙동강 물줄기도 감상할 수 있다고 하는데 안개가 끼어 있어 그런 복도 오늘은 틀린 것 같다.
다음 목표는 정상에서 약 4km거리에 있는 대견사지이다.
헬기장을 지나 계속되는 내리막길이다.
좌측으로 여러 산들이 겹겹이 둘러싸여 산그리메를 만들며 산물결을 만든다.
좌측 앞으로 청도 화악산과 남산이고, 그 뒤편으로 머얼리 영남 알프스 산군들이라 한다.
계속되는 내리막길을 내려오다 뒤를 돌아 본다.
대구쪽으로는 가파른 벼랑을 이루고, 청도쪽으로는 완만한 육산이다.
마령재에 도착이다.
왼쪽은 용천사, 오른쪽은 유가사, 직진은 대견사지이다.
우리는 대견사지로 향한다.
마령재에서 대견사지에 이르는 길이 가장 매혹적인 길이 아닌가 싶다.
키 낮은 진달래나무 동산이어서 주위 조망이 좋다.
물론 이 진달래 나무들이 만개하여 우리를 맞이하였드라면 더 행복했을테지만,
그냥 마음속으로 만개한 진달래 연분홍 물결속을 걷는다고 생각하니, 기분은 거기서 거기다.
좌측으로 조화봉 정상아래 강우레이더가 서있다. 낙동강 유역의 정확한 홍수 예측을 위해서란다.
드디어 대견사지에 도착이다.
대견사지 뒤쪾으로 드넓게 펼쳐진 진달래 평원은 우리를 더욱 아쉽게 만든다.
저 넓은 바다 물결이 모두 연분홍일 것을 생각하니 무척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저 제철에 왔으면, 사람바다에 빠져 제대로 구경도 못했을 거라며,
그곳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 속의 진달래 꽃구경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 밖에...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아주 너른 터에 대견사지가 놓여 있고, 끝단 벼랑에는 3층 석탑이 장엄하게 속세를 굽어보고 있다.
주위에는 부처바위, 코끼리바위, 형제바위등 기묘한 바위들이 볼거리를 더해주고 있다.
우뚝솟은 부처바위는 사바세계의 중생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대견사지는 중국 당나라 문종에 얽힌 애기가 전해 온다고 한다.
좋은 절터를 찾던 문종은 어느날 세숫대야에 비친 한 폭의 아름다운 산수에 흠뻑 빠져 신하들에게
수소문하게 한 결과 찾은 곳이 대견사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대국(大國)에서 본(見) 절(寺)라 한다고 한다.
이곳에서의 낙조가 특히 아름답다고 하는데,
이 맨발나그네의 당일치기 산행으로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기는 난망이다.
휴양림내에는 예쁜 숙박시설도 여러채 준비되어 있던데,
언젠가 다시 한번 들려 대견사지 낙조를 감상하리라 마음 먹어 본다.
하산은 대견사지 좌측으로 난 산길을 따라 소재사를 거쳐 휴양림으로 한다.
내려오는 길 오른쪾으로 계속되는 너덜은 비슬산 암괴류로 2003년 천연기념물(435호)로 지정된 곳이라 한다.
지름이 1~2m에 이르는 화강암 덩어리들이 골짜기를 흘러내리며 쌓인 암괴류는 1만~8만년전 지구의 마지막 빙하기 때인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 길이가 자그마치 약 2km에 이르고, 폭은 대략 80m라 한다.
그 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그렇게 한참내려오니 휴양림이다.
잘 닦여진 길을 따라 좌우를 살피니 왼쪽으로는 계곡물이 '철! 철! 철!' 흐르며 봄의 전령사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계곡의 암괴류 밑으로도 봄의 소리인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청아하다.
관음(觀音)으로 계절을 맞는 것도 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봄은 소리로도 우리 곁에 이미 와 있었다.
비록 정상부근의 군락지에는 아직 꽃망울 밖에 보이지 않아 볼멘소리를 해댔지만,
봄은 유가사 들어오는 길 벚꽃으로,
그리고 이곳 휴양림의 화알짝 핀 진달래 꽃으로 슬그머니 봄이 왔음을 알린다.
오늘도 약 10여km에 이르는 길을 맨발나그네되어 역사가 숨쉬고,
풍광이 아름다운 비슬산의 품에 안겨 뒹근 하루였다.
비록 기대했던 연분홍 물결이 파도치는 군락지가 아니 보여
절정없는 스킨쉽 같아 아쉽기는 하였지만,
세월이 흐르다 보면 언젠가는 또다시 볼 날이 있을 것이니,
오늘 그녀 비슬산과 나눈 운우지정은 행복이었다.
산이 있음이 내겐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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