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화성예총의 <화성예술 2010 제2호>에 실린 글입니다)
<화성의 숨결따라 화성 사랑하기>
맨발 나그네의 홀로 걷는 산행기
● 산 행 지 : 서봉지맥 화성시 구간
● 산행일시 : 2010년 5월 16일 (日)
● 산행코스 : 봉담읍 협성대- 태봉산(225m)~서봉산(241m)~동오리고개~천석산~양석골~주산봉(108m)~양감면 요당1리 (약9시간)
백두대간과 닿아있는 서봉지맥
조선 초기의 문장가인 김일손은 '두류산 기행' 에서 “선비로 태어나서 덩굴에 달린 박이나 외처럼 한 곳에만 매어 사는 것은 운명이다. 천하를 두루 구경하여 견문을 넓히지 못할 바에는 자기 고장 산천이라도 두루 탐방해야 하겠지만, 사람의 일이란 매사가 어긋나기를 잘해서 항상 뜻을 두고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십중팔구는 된다. “ 라고 말한다.
비록 선비는 아니지만 화성시에 고향을 둔 터라 행정구역에 속한 산 중에 가장 높은 건달산과 만의사를 품고 있는 동탄의 무봉산, 봉담과 비봉에 걸쳐있는 삼봉산과 태행산을 맨발나그네가 되어 걸은 후 이번에 서봉지맥 화성시 구간을 걸어보기로 하였다.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한반도의 중심뼈대를 이룬 백두대간이 남으로 속리산에서 발원한 한남금북정맥이 경기도 산하를 휘젓게 되는데 안성의 칠현산에서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으로 갈라진다. 한남정맥은 다시 용인의 부아산과 수원의 광교산을 거치고, 김포평야를 거쳐 서해로 내려 앉는다. 이 정맥이 군포의 오봉산에서 수리산으로 치솟기 전 안양베네스트CC 근처에서 분맥하여 서봉지맥을 이루는데 내 고향 화성시의 산하를 휘젓고는 평택의 계두봉을 거쳐 아산만으로 숨어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성시의 거의 모든 산들은 이 서봉지맥을 모태로 하고 있으며 백두대간과 닿아 있는 것이다.
어머니의 품과 같은 서봉지맥을 걸어 보는 것은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는 일임에는 분명하나 이 서봉지맥은 대략 60 여km에 이르기 때문에 한 번에 전체구간을 종주하기엔 불가능하므로 3~4구간에 나누어 종주하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을 듯 싶다.
40여년간 꿈꾸고 짝사랑하던 여인~서봉지맥
난 남들에게 종교는 광교이고, 나의 조강지처는 광교산이라 말한다. 그리고 나머지 모든 산들을 나의 애인으로 비유하기를 좋아한다. 하긴 내가 하는 일은 산을 오르는 게 아니고 그녀(山)들이 내준 품에, 그녀들이 허락한 시간동안, 그녀의 깊은 가슴선을 따라 그저 잠깐 안겼다 오는 일이다. 그래서 그녀들을 만나기 전부터 기대가 크다. 그러니 난 그녀(山)들을 만나기 100m전이 아니라 만나기 3~4일전이 되면 홍역을 앓는 것처럼 들뜨고 행복에 젖는다.
이번 주는 어떤 여인의 품에 안기지? 이번 주에 만나는 여인은 어떤 여인일까? 그녀는 키가 클까?(높이는?) 아님 몸집이 좋을까?(산행 길이는?)미모는 어떨까?(꽃, 계곡, 낙엽, 눈꽃은 아름다울까?) 성격은 내 취향일까?(바위산일까 육산일까?) 등등... 그래서 그녀들을 만나기 전 이런 저런 자료를 찾고, 그녀들에 대한 상상을 하며 즐거운 며칠을 보내게 된다. "원래 '함께 산책하다(Walk out together)'라는 영어 표현은 '교제하다'라는 뜻을 가졌는데 이때 '산책'은 구애행위였다는 점이다." 라고 미국의 문화 비평가이자 환경운동가인 레베카 솔닛은 그의 저서 <걷기의 역사>에서 말하고 있다.
물론 레베카 솔닛이 말한 '함께 산책하다'에서 함께한 것은 그녀(山)가 아니라, 함께 걸은 또다른 사람을 일컫는 것이겠지만, 그 대상이 산이라 한들 어떠한가? 더군다나 이번 주 데이트는 40여년간 꿈꾸어 왔던 여인의 품에 안기는 일이다. 무슨 소리이냐 하면, 내가 수원에 삶의 터전을 잡은 것이 화성시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입학하면서 부터이니 벌써 40여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고향집을 오가느라 43번 국도를 지날적마다 보이는 산줄기를 한번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해왔던 것이다.
서봉지맥 화성시 구간 중 서봉산과 서봉산~동오리고개 구간은 몇 번 걸은 적이 있으니 손도 잡아보고 뽀뽀도 해 본 사이로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서봉지맥 화성시구간은 내가 그동안 꿈꾸고 짝사랑하던 여인의 품이니 그녀와의 운우지정을 위해 위성지도를 찾아보고,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찾아 읽는 등 단단히 준비를 하였으니 제대로 된 오르가즘을 느껴보련다. 오늘의 들머리는 봉담읍에 위치한 협성대학으로 한다. 원래 서봉지맥의 화성시 구간은 오목천 삼거리부터 시작하여야 하나 이 구간은 원래 많이 변해있고, 도로를 많이 걸어야 한다고 하니 생략한다.
협성대학 캠퍼스를 가로질러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 생활관 앞에서 오늘도 맨발이 된다. 그리고 봄내음이 물씬 풍기는 고즈넉한 산길을 걷는다. 산책로도 뚜렷하고, 여기저기 운동기구들도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찾는 사람이 꽤 되는 것 같은데 오늘은 이른 시간이어서 인지 한산하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보면 문화재 발굴로 도로공사가 중단된 고개마루를 만나고, 우측 절개면을 따라 오른다. 가파른 오름길을 숨을 내쉬며 오르니 정상 0.3km 이정표가 맨발나그네를 맞는다. 주위 조망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서남쪽으론 화성시 최고봉 건달산이, 서북쪽으로 지난주 함께한 삼봉산이 위용을 뽐낸다. 그곳에서 잠시 머문 후 태봉산 정상을 향한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태봉산'이란 표지판이 나무등걸에 걸려 있다. 이마저도 없었다면 그냥 지나쳐도 모를 보잘 것 없는 산봉우리이지만 명색이 화성시에서는 열손가락 안에 드는 산이다. 그곳에서 한참을 쉰후 길을 나선다.
다음 목적지인 상방산을 향해 걷다 길을 잘못 들었다. 한참을 가다보니 정남면 관항리이다. 이런 낭패가.... 충분한 준비를 하였다고 큰소리 뻥뻥 친 자신이 우습게 되었다. 꽃잠자리인 그녀(서봉지맥)가 날 얼마나 우습게 보았겠는가. 준비가 부족하여 점직하긴 하지만, 다음번 그녀의 품에 안길 때는 더 애만지게 안길 것을 약속하는 도리 밖에 없다. 되돌아 가기도 그렇고 하여 관항리-오일리를 거쳐 정남면 백리에 도착하였으니 족히 30~40여분은 알바(산길 헤멤)를 한 셈이다.
서봉산 쉰길바위의 전설에 가던 걸음 멈추고...
백리의 보호수인 200여년 된 느티나무 밑에서 한참을 쉰 후 다음 목적지인 서봉산을 향한다. 백리에서 마하 제3고가교(경부고속철도)로 나아가 서봉지맥에 접근하여야 하나 그냥 지나쳐 계곡을 따라 한참을 오르다 이정표를 만나고 나서야 제 길로 찾아들 수 있었다. 인공구조물이 그리 달갑지 않은 입장에서 이정표 만큼은 예산에 더 반영해도 좋겠다란 생각으로 전환이 되는 시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산일 수록 이정표를 꼼꼼하게 정비해 놓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힘들고 어렵게 도착한 서봉산(棲鳳山)은 이 서봉지맥 마루금의 대표적인 산으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옛부터 봉황이 깃드는 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비록 241m 밖에 안되는 낮은 산이지만 정상에서의 조망도 훌륭하거니와 팔각정에 앉아 세상사 시름을 잊기에도 좋다. 고스락에 위치한 쉰길바위 전설 안내판에 적힌 스님과 낭자의 지극한 사랑이야기가 사람들의 발길을 잠시 붙들어 둔다. 지고지순한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해 더 애틋하고 우릿하여 후대에 까지 전설로 남겨지었으리라. 전설이 있어 서봉산이 더 사랑옵다. 나도 다은햇살을 받으며 쉰길바위의 사랑이야기에 취해 잠시 머문 뒤 다시 길을 나선다.
서봉산을 떠나 완만한 마루금을 걷다보면 동오리 고개를 만난다. 이곳도 몇번에 걸쳐 정감을 주고 받은 사이이다. 그런데 그 사이 이정표가 많이 늘어나 오가는 나그네들의 고민을 덜게 만든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하긴 산길을 걷다 이정표를 만나면, 누군가가 그녀들의 성감대 표시를 해놓은 것 같아 기쁘기 그지 없는 속물이 되곤한다. 아니 그 이정표들이 꽃잠자리를 환영하는 연희같아 얼굴이 붉게 물든다.
동오리 고개의 고개마루란 음식점에 들러 곰탕 한그릇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그리고 또 길을 떠난다. 주유소 옆으로 난 철계단을 오른후 앞으로 나아간다. 이곳도 작년 5월 서봉산-유봉산-초록산을 이어 걸을 때는 등산로가 정리되어 있지 않았는데, 아마 향남 택지 지구에 사람들이 입주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아서 인지 산책길로 잘 정돈되어 있다.
고독한 산길에서 만나는 한 줄기 바람과 친구가 되어
작년에 그냥 지나친 천석산에는 '천석산의 유래'를 적은 안내판이 새로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이정표도 서너군데 생겨 훨씬 편한 나그네길이 되었다. 별로 돌이 없는 이 육산에 제법 큰 돌 하나 놓여 있으니 이야기 거리가 없을리 없다.
그렇다. 현대는 스토리텔링의 시대이다.
화성시의 산들은 높아봐야 삼백 몇십미터이고 모두 올망졸망 비금비금하다. 이 산들을 찾고 싶게 만들고 걷고 싶게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이야기거리를 찾아내야 한다. 아시다시피 이 서봉지맥 화성시 구간을 따라 걸으며 양 옆으로 만나는 여러곳에도 역사와 전설과 명승이 있다.
마을이름 마다에도 전설이 깃들여 있고, 삼천병마골, 마하리 백제고분군등 스토리텔링을 하면 정말 명승지가 될 소지가 많은 곳이 널려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찾아내고 널리 알리는 것이야 말로 화성시가 해야 할 일이다. 화성시는 '살인의 추억'으로만 기억되어서는 안될 소중한 우리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천석산에서 머문후 고요한 산속 명지바람이 얼굴을 간지럽히는 얄푸른 소로길을 맨발나그네되어 홀로 걷는다. 산길 조차 육산이어서 발에 닿는 촉감이 아주 좋다. 높낮이가 심하지 않아 힘들지 않게 걷는다.
바람은 명지바람이건만, 바람타고 닥아온 고독이 가슴속에 잠시 머물다 떠난다. 고독의 옆자리에 외로움이란 놈도 함께 머물다 바람결과 함께 떠난다. 애절한 그리움이 밀려와 텅빈 가슴을 휘저어 놓고 떠난다. 이름 모를 새한마리 내 곁에 다가와 위로하고는 그마져도 떠난다. 때 묻고 지쳐 무거운 마음 헹구러 왔는데 마음속은 더 헝크러져 있다. 이래서 아마도 인간은 길을 가면서 동반자가 있기를 소망하나 보다. 인생길이 되었건 산길, 들길이 되었건 마음에 드는 사람과 같이 걸을 수 있다면 그 또한 행복이리라. 길이 평탄하고 좋으니 별 생각을 다한다. 그냥 즐기면 될 것을....
상처만 가득한 그리운 고향 땅
그렇게 걷다보니 양석골(화리현1리)에 도착하고, 그곳 43번 지방도를 따라 조금 걷다가 누에박물관(뽕나무골)의 좌측으로 해서 오른다. 이곳부터는 나의 나와바리(?)라고 해도 좋을 고향땅 양감면으로의 진입이다. 그런데 댕이고개(대양리고개)에 올라 내려다 본 내고향 양감 땅은 찢어지고, 헐뜯겨져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져 가고 있었다. 그나마 그곳에서 멀리 내가 다녔던 양감초등학교의 뒷산인 초록산을 볼 수 있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지금까지도 이리 저리 헤메느라 목표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댕이고개~주산봉 구간은 첩첩산중이다. 산이 높고 골이 깊어 첩첩산중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걸은 길이 아니라서 우선 길이 확실하지 않다. 그리고 밤송이에 발이 찔려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길은 선답자의 산행기와 그들이 매어 놓은 리본으로 간신히 찾아 걷는다지만, 밤송이는 도대체 해결할 방법이 없다. 배낭속의 운동화를 꺼내 신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사실 오기를 부릴 일이 따로 있건만 오기인지 신념인지 맨발로 계속 나아간다. 내발만 아픈 것이 아니라 내 고향 양감 땅도 많이 아프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여기저기 파헤쳐져 이제 마루금이란 말이 어색할 정도이다. 그런 절개지를 몇 곳을 지나야 하는지 모른다. 그렇게 내고향 마을 요당리의 주산인 주산봉에 도착한다.
어렷을 적에 땔감을 구한다고 올랐고, 이른 봄에는 칡뿌리를 캔다고 쏘다녔고, 누이가 없는 우리집에서는 가끔 산나물을 뜯으러 오르던 그런 추억 어린 산이다. 정월 대보름날이면 불놀이를 위해 오른던 산이기도 하다. 다른 마을보다 더 큰 불꽃을 이루기 위해 추운 줄 모르고, 기를 쓰며 나무를 짤라 불꽃놀이를 즐겼던 그런 산이다. 해어스름에 주산봉 통나무 의자에 앉아 한참을 유년시절로 돌아가 그 시절을 음미하니 입가에 웃음이 절로 난다.
서봉지맥의 정기 받아 수 많은 박사를 배출한 박사촌
주산봉에서 마을을 향해 조금 내려오다가 400여년전 이 마을로 낙향하여 마을을 이룬 전주 유(柳)씨의 9세손이자 나의 13대조 유(柳) 영(永)자 하(賀)자 할아버지의 묘소가 자리잡고 있는 곳이니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이 서봉지맥은 내 고향 요댕이의 400여년된 은행나무를 통과해 마을 가운데를 지나 덕지산을 향해 마루금을 형성한다. 그래서 은행나무에 떨어진 빗방울의 운명은 대체로 세가지 중의 하나이다. 은행나무의 양식이 되면 그보다 더 행복할 수가 없을 것이요, 그 빗방울이 요댕이의 웃말 쪽으로 흐르면 조암만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이룰 것이고, 그 빗방울이 아랫말로 흐르면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물줄기의 운명을 갖게 될 것이니 조금은 특이한 마을 구조이다.
마을의 주산을 주산봉으로, 앞산을 덕지산으로 둔 서봉지맥의 기를 받아서 인지 2008년 5월 18일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고수가 왔다'라는 프로에는 40여가구에 현존하는 박사가 15명이나 되는 명당으로 소개된 바도 있다.
그 은행나무 밑을 지나 고향집에 잠깐 들려 발을 씻고 신발을 찾아 신은 후 아버지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버스를 타기 위해 면소재지가 있는 생이(신왕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정말 힘든 길이었다. 약 20여km에 이르는 서봉지맥 화성시구간을 9시간에 걸쳐 맨발을 찔러대는 밤송이와, 가슴을 후벼대는 고독과 싸우며 걸은 길이었다.
40여 년간 꿈꾸어 왔던 꽃잠자리이기에 달콤할 줄 알았는데 오랜만에 찾아 왔다고 그녀(서봉지맥 화성구간)가 토라져도 단단히 토라져 나를 애태운 그런 날이다. 하지만 마음만은 즐겁고 행복하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걷는 것은 청복(淸福)"이라 했으니 곧 맑은 즐거움이라는 말씀일게다.
누군가가 그랬다지 "걷기야 말로 가장 가난한 방법으로 부유한 천국을 맛볼 수 있는 것"이라고....
(이글에 쓰인 순우리말)
꽃잠 : 신랑 신부의 첫날 밤
점직하다 : 약간 부끄럽고 미안한 느낌이 있다
애만지다 : 소중히 여겨 어루만지다
우릿하다 : 진한 감동을 느끼다
사랑옵다 : 마음에 꼭 들도록 귀엽다
다은 : 따사롭고 은은한
비금비금하다 : 견주어 보아서 서로 비슷하다
명지바람 : 보드랍고 화창한 바람
얄푸르다 : 옅게 푸르다
( 댓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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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뒤따라 걷고 있는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글에 흠뻑 빠져 읽었습니다.
순우리말에 대한 풀이 고맙습니다.사랑옵다...자주 쓰고 싶어지는 예쁜 말이네요.
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한반도의 중심뼈대를 이룸:
이 말의 설명으로 백두대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단어적인 정의만 생각하였는데, 실제로 우리나라의 모든 산맥의 큰 줄기가 거쳐가면서 한 맥을 이루네요.
큰 산들의 지명만 알고 있는 문외한에게 군데군데 위치한 작은 산들의 이름도 알게 되었습니다.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와 대화를 하게 되면 이해의 속도가 빨라지는 데 도움이 되니까요.
[화성: 건달산, 동탄:무봉산, 봉담과 비봉:삼봉산과 태행산, 용인: 부아산, 수원: 광교산]
기타 지리적 맥락에 대한 설명 감사합니다.
어릴 때부터 터전이 된 화성 고향에 위치한 산에 대한 동경심이 대단하였네요.
그곳에 이르고 싶다는 끝없는 갈망과 갈증을 오랫동안 품고 살아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침내 이루게 되는 설레임
서봉산 지명풀이.
스님과 낭자의 사랑이야기
산에 이르면 항상 이런 지명과 사랑에 대한 전설이 이야기이 중심이 되는데,
역시나 하나씩은 가지고 있네요.
고운 우리말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배웠습니다.
그 생긴대로 이름을 지었으니,그 곳에서 유래된 역사와 전설이 함께 숨쉬는
한글로 작명된 동네이름에 호감이 생깁니다.
등산하면서 잠시 마음을 정화하는 시간이 참 소중하네요.
삶이란 그런 저런이겠지만
외롭다, 새가 친구가 된다, 바람이 스친다 하는 순간에
맑고 깨끗한 자연의 일부로 인간이 살아가는 것을 알게 하니까요.
고향 情을 담고 생각해보면 유년시절이 모두 살아나고,
그 곳에서 자리 잡은 나무는 제자리에 머물고 있지만
맨발나그네님은 고향을 찾아가 그들을 다시 만나고 오셨네요.
세월이 묻어나는 것들 속에서 크는 것은
꿈과 언젠가 고향에 돌아가리라는 생각이 분명 메아리치고 있을 것 같아요.
맨발 나그네님을 똑같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해주려고 그자리에...
이 소식을 전할 때 저도 다행히 TV를 보고 있어서 그 때에 전해들은 내용을 기억합니다.
박사가 지맥의 영향으로 배출되었다고 명당자리라고 들었습니다.
柳씨 일가에서 박사가 많이 배출된 것이었네요.
산이 맨발나그네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맨발나그네님은 항상 더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려주려고 하네요.
자연인으로 걸어가는 인생길에 더 다가가고 싶어하시는 뜻 깊은 의미를 저는 대강 요약하며 읽었습니다.
소개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등산 다니는 곳에 대한 기록을 적고 계시는 일상에 대해서 작문을 매끄럽게 잘하셔서 한 말씀 덧붙입니다.
(물론 글이 좋다는 뜻입니다.)
등산 한 번의 기회에 자연의 마음을 담기하는 노력에 감탄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