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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산' 2011년 5월호 기사 - “맨발로 산 오르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져요!”

맨발나그네 2011. 5. 17. 14:01

 

[화제 모임] 맨발산악회
“맨발로 산 오르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져요!”

봄기운이 완연한 4월 첫 주말, 파주 심학산 아래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배낭을 멘 차림세로 보아 산악회 회원들이 분명했다. 그런데 사실 심학산은 산악회의 산행지로 삼기에는 규모가 작은 곳이다. 해발 높이가 192m에 불과한 나지막한 산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심학산은 서울 근교에서 찾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기 산행지다. 코스가 부드러워 맨발로 오르기 좋기 때문이다.

심학산 주차장에 모인 이들은 인터넷 카페 ‘푸른나무 맨발산악회’ 회원들이다. 지난해 9월 개설된 이 인터넷 카페의 회원은 500명 정도. 날이 지날수록 점점 회원 수가 늘고 있다. 맨발 걷기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 카페를 개설한 남요현(닉네임 곰발바닥)씨는 허리와 무릎이 좋지 않아 맨발 산행을 시작한 케이스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지인(현 서울지역대장 아드반님)의 권유가 계기가 됐다. 그는 맨발 산행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상생활은 물론 운동까지 자유롭게 즐길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이 호전됐다. 그는 기적 같은 맨발 산행 효과를 공유하기 위해 카페를 만들게 됐다.

“맨발 산행은 신발을 벗고 걷는 것이 전부인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행위입니다. 하지만 시작이 쉽지 않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혼자하기에는 부담되고 쑥스럽습니다. 하지만 여럿이 같이 하면 그런 문제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모이게 된 것도 그 이유가 가장 큽니다.”

맨발 걷기의 또 다른 장벽은 부상에 대한 공포다. 포장도로와 달리 산길은 적지 않은 변수가 상존한다. 돌출된 돌부리나 나무뿌리는 물론, 날카로운 이물질로 인해 부상을 입을 염려가 있다. 하지만 맨발산악회 회원들은 그런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은다.

“맨발이기 때문에 조심하기도 하지만 발바닥이 다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저희들끼리 ‘콩’이라고 부르는 작은 돌멩이를 밟으면 상당히 아프지만 부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뾰족한 돌이나 나무 조각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발바닥이 지닌 방어력은 정말 대단합니다.”

등산로 입구에서 간단한 체조로 몸을 푼 회원들은 신발을 벗어 배낭에 매달고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숲 속으로 이어진 흙길은 부드럽고 널찍했다. 이곳을 산행지로 고른 것은 맨발로 걷기에 적합한 환경 때문이다. 산이 나지막해 2시간 정도면 산행을 마칠 수 있는 것도 이곳을 선택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심학산이 벌써 세 번째네요.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코스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아요. 간 곳을 또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울에서는 청계산, 우면산, 도봉산, 북한산, 안산 등을 주로 갔고요, 가끔은 지방의 좋은 곳도 방문하고 있습니다.”


 
▲ 1 “우리들의 발을 보여 드릴게요!” 푸른나무 맨발산악회 회원들이 심학산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2 배낭에 신발을 매달고 걷는 맨발산악회 회원. 3 등산로 입구에서 회원들이 산행을 위해 신발을 벗고 있다.
맨발 산행은 운동효과가 1.5배 이상

이들은 맨발로 걷기에 좋은 산으로 대전 계족산의 황톳길을 추천했다. 특히 초보자나 어린 아이가 있는 가족에게 최고라는 설명이다. 맨발로 걷는 일은 생각 외로 힘들다. 신발을 신고 걷는 것의 1.5배가 넘는 운동효과가 있을 정도로 체력 소모가 심하다. 그래서 동호회 산행은 보통 2시간을 조금 넘는 선에서 마무리한다. 이날도 심학산 정상을 넘어 능선을 타고 간 뒤 약천사로 돌아내려오는 코스를 밟았다.

“맨발로 산길을 가다보면 조심스러워서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어요. 일반 산악회는 누가 빨리 가는지가 이슈지만, 우리는 속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정복이 아닌 자연과의 친화가 목적입니다. 회원들끼리 서로 배려하며 뒤에 처진 사람들을 기다렸다가 같이 갑니다. 젊은 여자 분들이 많은 것은 산행에 부담이 없고 분위기가 좋기 때문일 겁니다.”
건강 관련 모임이라 중년  이상의 나이든 사람들이 주축을 이룰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이 산악회는 30대 초중반의 회원이 모임을 이끌고 있다. 비슷한 연령대의 회원이 산행 참가자들의 3분의 2가 넘는다. 매주 빠지지 않는 젊은 여성 회원들도 있다. 한마디로 골수팬이 많은 모임이다.

한겨울 눈이 쌓였을 때는 제외하면 매주 정기산행을 한다. 보통 10~15명이 산행에 참가하는데, 많을 때는 20명이 넘는 회원들이 맨발로 산길을 걷는다. 한번 이상 산행에 참가한 회원들 수가 70명을 넘는다. 이들이 그룹을 지어 산행할 때 주변에서 “놀랍거나 걱정스러움”보다는, “맨발이 건강에 좋으니 나도 해보면 좋겠다”는 부러움 섞인 반응이 많다.

“여자 분들이 참여도가 높은 것은 아마 맨발의 효과를 확실하게 느끼기 때문일 겁니다. 변비나 손발이 차가운 증상은 곧바로 개선되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맨발로 걷고 나면 저녁 때 몸이 후끈한 열감이 느껴지는데, 이는 피의 순환이 잘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효과를 경험한 여자 분들은 저절로 맨발 걷기 마니아가 됩니다.”


 
▲ 1 맨발산악회 회원들은 돌길, 흙길, 계단을 가리지 않고 걷는다. 2 회원 한 사람이 심학산 산행을 마치고 샘터에서 발을 닦고 있다. 3 젊은 여성 회원들이 맨발로 산길을 걷고 있다.
 
맨발산악회 회원 가운데는 산을 전혀 다녀보지 않은 이들도 있다. 하지만 서로 배려하고 모두 함께하는 분위기라 산행을 힘겨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맨발 산행의 고수 역시 카페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심학산 산행에 참가한 ‘맨발나그네’는 맨발로 전국의 산을 오르고 있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산에 다닌 지는 오래됐는데, 맨발 산행을 시작한 것은 3년 전부터입니다. 지금까지 맨발로 걸은 누적거리가 800km를 넘어요. 악천후와 겨울철만 빼놓고 거의 맨발로 산행하는데 1년에 300km 정도 걷고 있습니다. 건강 때문에 걱정해 본 적이 없어서 몸이 좋아지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마음의 고통을 이겨 내는 데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넘어서면 도를 닦는 듯한 마음으로 무념무상의 상태가 됩니다. 많을 때는 20km 이상을 걷는데, 거리가 멀수록 점점 발이 아파옵니다. 처음에는 통증이 1주일이나 갔지만, 지금은 적응이 되서 그런지 신발만 신으면 괜찮아요.”

푸른나무 맨발산악회는 맨발 산행의 긍정적 효과를 많은 사람과 공유하기 위해 만든 모임이다. 하지만 무작정 조직이 커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이상적인 것은 맨발 걷기의 유용함을 아는 작은 모임이 늘어나는 것이다. 맨발 산행이 보편화되면 우리 사회의 평균 건강 수준이 높아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인터넷 동호회지만 이들이 추구하는 목표는 이처럼 크고 높다. 보다 많은 이들이 맨발로 산을 오르는 그날까지 이들의 활동은 쉬지 않게 계속될 것이다.

< 월간 산 2011년 5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