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영원한 만남 ‘칠삼회’

맨발나그네 2014. 1. 21. 21:13

 

 

         영원한 만남 ‘칠삼회’

 

  요람에서 무덤까지 가는 동안 우리는 무수한 만남을 갖는다. 이 세상에 태어나며 어머니와 만나고, 가족과 만나게 된다. 그 이후 초등학교를 입학하며 많은 친구들을 갖게되고, 이후로 중고등학교와 대학, 직장, 그리고 사회의 여러 인연들이 있고 배우자와의 만남을 통해 일가를 이루게 된다. 오늘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만남은 인연이 시작된지 40여년이 된 만남이다. 우리의 인연이 시작된 곳은 1973년 대학캠퍼스에서 꿈많은 프레쉬맨으로 만나면서 이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신설대학이면서 후기대인 아주대에 입학하면서 만나 초대 학생회 회장선거에 같은 팀으로 선거에 승리하고 그 후 학생회를 구성할 때 학생회 임원이 되어 1년간 학생회를 운영하면서 맺여진 인연이니 참 오래된 인연이다.

 

 

   

▲  1973년 안성군 삼죽면 미장면에서 펼쳐진 농활의 이모저모

 

 

   

▲  1973년 안성군 삼죽면 미장면에서 펼쳐진 농활의 이모저모

 

 

▲  농활중의 휴식시간

 

 신설대학이다 보니 학생회를 꾸려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이들 중 많은 사람이 중.고등학교 시절 학생회 임원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대학 학생회는 그 차원이 다른 모임이었다. 우선 73년 첫 여름 방학을 맞아 치루어야 했던 하계농촌봉사활동(농활)팀을 꾸리는데 나서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임원들이 거의 나섰고, 그들의 친구들을 포섭하여 어찌어찌 팀을 꾸려 안성군 삼죽면 미장리라는 곳으로 농활을 떠나 성공적인 끝낼 수 있었다. 그후에도 74년 맞은 첫 축제는 그야말로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이리뛰고 저리뛴 뒤에야 그럭저럭 치러낼 수 있었다. 이외에도 모든 일이 선배들의 경험을 이어받아 진행하는게 아니라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일에 힘들어 하기도 하였다. 더군다나 우리가 학생회 임원을 지낸 시기는 유신헌법에 의해 비상계엄령하의 학교였으며, 1974년1월8일에는 긴급조치 1호가 선포되어 시위는 물론 학생집회까지 금지된 사회였으니 더더욱 활동의 제약을 받던 때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975년 학도호국단 제도가 만들어져 우리 이후에는 학생회가 아닌 학도호국단이라는 병영체제로 운영되었으니 말해 무엇하랴.

 

 

▲  1박2일 모임중의 저녁식사(2014년 1월 17일)

 

 

  그렇게 만난 친구들이니 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때 정말 술을 많이 마셨다. 지금이야 건강 때문에 술을 피하는 친구들도 있고, 대부분 술을 줄여 먹지만, 옛날에야 주머니 사정이 빠듯해서 그렇지 술은 없어서 못 먹던 시절이었다. 대의원들과 부딪치고 나서도 마셔야 했고, 학생회가 추진하던 일이 잘 안풀릴 때도 마셔댔다. 쌍권총을 찬 학점 걱정에도 마셔야 했고, 시대적 아젠다에 비분강개하며, 조국의 안위를 통크게 걱정하면서 통크게 마셨다. 그시절 한참 히트를 한 이장희의 ‘한잔의 술’을 목청껏 외쳐대며 통음을 했다. 그렇게 제1대 총학생회를 마칠 무렵 자연스럽게 죽을때까지 모여보자는 취지하에 우리의 만남이 시작된 73년도를 넣어 ‘칠삼회’라는 모임을 만들고 40여년째 만나오고 있는 모임이니 정말 묵은지같은 모임이라 하겠다.

 

 

▲  아주대 초대 학장님댁을  방문(1992.1.2)

 

 

▲  가족들과 나선 나들이(1992년, 현충사)

 

 

  40여년을 이어오는 동안 가끔씩 가족들도 함께하며, 어린이날 같은 때는 아이들과 함께하기도 하고 부부동반으로도 만나고 하였다. 그러다가 아이들은 커서 쫒아다닐 생각을 안하고, 몇몇이 상처를 하게되는 경우가 생기고 하여 어느때 부터인가 우리들끼리의 모임이 되고 말았다. 일년에 서너번씩의 모임이니 작지 않은 모임이다. 그런데 올 신년에는 일박을 하잔다. 그래서 대진대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빌려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까지 1박을 하면서 보냈다. 대학 입학후 40여년이 지나다 보니 각자의 처지는 제각각이다. 누구는 제법 알려진 중견기업의 CEO가 되어있고, 누구는 자기가 창업을 한 기업의 CEO가 되어있기도 하다. 누구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누구는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기도하다. 누구는 사업실패로 어려워진 경우도 있다. 현재의 위치는 제각각이지만 우린 만나면 73년의 프레쉬맨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밤새워 술을 마신다.  그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물론 프레쉬맨 시절과는 대화의 내용이 달라지긴 했지만....

 

 

▲  대진대 게스트 하우스에서 밤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칠삼회(2014년 1월 17일)

 

 

  대화의 주요내용은 역시 건강이다. 각자의 건강유지법과 그 많은 건강에 좋다는 먹거리가 등장한다. 그리고 지나온 세월들을 회상한다. 그리고 잔을 부딪친다. 그렇게 잔을 부딪치며 이야기는 앞으로 남은 인생설계로 이어진다. 그렇게 새벽이 되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추억을 하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리고 올 여름쯤 진천에서 다시 일박을 하기로 결정한다.

 

아마 멤버중의 대다수가 거동이 불편하지 않는 한 이 모임은 지속될 것이다. 이제 술먹는 량도 줄것이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과거를 추억하는 이야기가 더 많아질 것이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먼저 세상을 등져 참석을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안하던 짓이던 1박하기가 늘어가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쭉 만남을 이어갈 것이다. ‘칠삼회’라는 이름으로....

 

                                                                                                   (2014년 1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