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나그네/맨발걷기 경험담

미혼탕에 젖어 참 힘들게 다녀온 조령산

맨발나그네 2014. 5. 27. 20:18

 

미혼탕에 젖어 참 힘들게 다녀온 조령산

 

● 산 행 지 : 충북 괴산군 과 경북 문경시의 경계 조령산(1,017m)

● 산행일시 : 2014년 5월 25일 (日)

● 누 구 랑 : 산7000 산악회

● 산행코스 : 이화령>조령샘 삼거리>문경새재 주차장

● 사진은 ? : 미루, 노루귀

 

 

▲   Tranggle GPS 기록된 오늘의 코스

 

 

▲   Tranggle GPS 기록

 

 

▲   원래 목적지였던 황장산

 

  참 힘든 하루였다. 원래 산행지로 잡은 황장산까지 갔다가 황장산이 출입통제구역이어서 장소를 조령산으로 급변경하여 다시 이동을 하여 이화령에서 조령산 정상 못미쳐 안부를 거쳐 문경새재주차장까지 걸은 길이다. 조령산은 산세가 웅장하고 해발도 높지만, 고도 529m의 이화령에서 산행을 시작하므로 큰 부담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며칠간 계속하여 미혼탕(迷魂湯 : 사람의 지혜를 흐리게 하는 물, 즉 사람의 혼을 미혹하게 하는 음료로 불교에서 술을 가르키는 말 중의 하나임)의 세계에 빠져 몸도 마음도 말을 듣지 않는다. 거기다가 능선길 4km정도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계곡길 2km는 고난의 연속이다. 길을 잘못들었는지 등산로는 제대로 없는데다가 험하기까지 하니 맨발인 이 나그네를 시험에 들게 한다. 그래도 주변의 등산화 신으라는 조언을 귀등으로 흘리고 꿋꿋하게 맨발로 고행을 자처한다.

 

 

▲   맨발로 걷기에는 부담스러운 산행길

 

 

  정말 며칠간 계속된 미혼탕만 아니었드라도 견딜만했겠다 싶었는데 힘들어도 너무 힘든 하루였다. 그놈의 미혼탕을 만난게 고딩시절이니 40여년이상 함께 해 온 친구이다. 그동안 나와 희로애락을 함께 해 온 동반자인 것이다. 난 농담삼아 오늘날 발안지역사회의 경제발전은 어디까지나 나와 내 친구들이 학교가 파한후 발안장터에 내려와 목로집에서 술을 마신 결과라고 우기고 있다.

 

  젊었을때의 주량을 따라가지는 못하지만 요즘도 즐겨 마시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주량에 관한한 조상님들의 덕이 많은 듯 싶다. 뵙지는 못했지만 나의 조부께서는 “주객은 청탁(동동주와 막걸리)을 가려서는 안되니라”라고 하셨다하고, 91세를 일기로 몇 년전 세상을 떠나신 나의 부친께서는 식사때 반주를 즐기셨으며 돌아가시기 전날도 소주 몇 잔을 맛있게 드셨으니 나도 그 분들의 후예아니랄까봐 제법 술을 즐기는 경지에 다달았다.

 

  나의 어머니는 육칠십년대 밀주단속을 피해 농주를 마련하기에 정성을 쏟았다. 일년에 서너번씩 출동을 했던 세무서원을 피해 나무 간 깊숙이나 울타리 밑, 심지어는 뒷동산 허름한 곳에 묻어두기도 했다. 아마 술을 먹기 시작한 것은 고딩시절이 아니라 뒷동산에 숨겨져있던 술독에서 술을 조금씩 빼다 먹기 시작한 초딩 무렵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랬기에 나뿐아니라 일곱이나 되는 남자형제들이 대체적으로 술을 즐겨한다. 무슨 행사가 있어 모이게 되면 밥상에 밥보다는 술이 먼저 올라야 직성이 풀리는 가족이다. 술을 많이 마신다는게 자랑은 아니다. 더군다가 술을 마신후 가끔 실수를 하는 경우도 생기고 나이도 있고하니 술을 마냥 마실게 아니라 한 잔을 기울이더라도 인생과 술의 참 의미를 생각하여야겠다는 마음이다.

 

 

▲   조령산을 걷고 있는 회원들

 

 

  그런데 얼마전 인터넷서핑을 하다 A HOP SI VAHN UNIVERSITY를 만났다. 최근에 개교한 酒립대학이다. 대학을 졸업한지 벌써 35년전이고 그후 이런저런 단기코스의 수강을 위해 대학문을 드나들기는 했지만 UNIVERSITY와는 담쌓고 산지 꽤 되었다. 그런데 만 19세이상이면 수능성적도 내신 성적도 따지지 않으며 복잡한 입학전형과 까다로운 입학전형관의 심사 따위도 없다는 대학이라는데 마음이 쏠렸다. 더군다나 누구나 학생이 되고 교수가 된다지 않는가. 이 학교의 초대총장은 방송인 김제동이다. 그는 설립이념으로 “술자리에서 배우는 것이 진짜 인생이다”라고 설파하며 “밤이 학교다”라고 말한다. 한 소주회사의 마켓팅 전략으로 만들어진 UNIVERSITY이지만 酒문학부는 주임교수 진중권, 부교수 박기원, 조교수 하재욱 등 면면도 그럴 듯 하고 해서 냉큼 3개학부중 酒문학부에 입학원서를 제출하고 학생이 되었다. 졸업이나 제대로 할는지 모르겠지만...

 

 

▲   쉽지않았던 하산길

 

  술이란 무엇인가?

사전적의미로는 알코올성분이 들어 있어 마시면 사람을 취하게 하는 음료의 총칭이고 주세법에 의하면 알코올성분이 1도 이상의 음료를 말한다.

공자나 맹자가 들으면 까무러칠 일이지만 酒色友學이란다. 천하에 술마시는 일이 가장 어렵고, 다음은 여색을 대하는 일이요, 그 다음으로는 벗을 사귀는 일이며, 그 다음으로는 학문을 하는 일이란다.

 

  하긴 속인의 술은 흥을 돋우고 몸을 상하게 하며, 군자의 술은 기를 기르고 마음을 상하게 하지만, 도인의 술은 흥과 기를 함께 하여 몸과 마음을 이롭게 한다고 하니 술마시는 일이 가장 어려운 것은 확실한데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아 아타깝기 그지없다. 술에 취해 마음을 잃는 자는 신용이 없으며, 우는 자는 인이 없는 자고, 화내는 자는 의롭지 못하며, 소란한자는 예의가 없고, 따지는 자는 지혜가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마음이 어진 사람은 술을 잘 할 수 있고, 술에 취하면 정과 사랑을 알고, 하늘의 마음과 만물의 이치를 안다고 한다. 뭐 술 한 잔에 거기까지 생각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속인이 아닌 도인의 술마시기가 되고 싶다. 내 삶의 매일매일이 일일선(一日仙)이라 우기지 않던가.

 

 

▲   조령산에서 만난 엉겅퀴 꽃

 

 

  그럼 술은 어떻게 마실 것인가?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술마시는 일은 가장 어려운 일이기에 주도(酒道)가 있어야 하는데, 인륜의 여섯 가지 예법<六禮 : 관례(冠禮)•혼례(婚禮)•상례(喪禮)•제례(祭禮)•향례(鄕禮:鄕飮酒禮•鄕射禮)•상견례(相見禮)>중의 하나인 향음주례鄕飮酒禮)로 발전되어 왔다. 향음주례는 모두 13단계로 되어있는데 옛날에는 향교, 서원, 관아(官衙) 등에서 춘추로 관내의 선비들이 모여 엄격한 음주의 예절을 하나의 의식으로 행했었다. 그러나 내용이 방대하기도 하거니와 오늘날의 바쁜 일상과 거리가 먼 듯하여 전부를 소개하기에는 마땅치않다. 다만 술과 음식을 소중히 다루며 술자리를 흐뭇하게 즐기면 될 일이다. 결국 이 모두는 술이 술을 마시는 단계에 이르지 않도록 적당히 마시자는 취지인 것 같다.

 

 

▲   조령산에서 만난 복분자

 

 

  중국의 이백, 도연명, 고려의 이규보, 조선의 정철 등도 술을 즐기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 영국의 신학자 허버트는 “술이 들어가면 지혜가 나온다”라고 했다. 그리스의 극작가인 에우리피데스는 “술이 없는 곳에 사랑은 있을 수 없다”라고 한다. 프랑스 시인 레니에는 “술은 일종의 마음의 연지이다. 우리들의 사상에 일순간 화장을 해준다”라 말한다. 칸트는 “술은 입을 경쾌하게 한다. 그리고 마음을 털어놓게 한다. 술은 하나의 도덕적 성질인 마음의 솔직함을 운반하는 물질이다”라고 설파한다. 심지어 고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술을 마시지 않는 인간으로부터는 아예 사리 분별을 기대하지 말라”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술이란 많은 문학작품을 남기는데 일조하기도 하고 사랑과 지혜의 산실이기도 한가보다. 하지만 이는 적당히 마셨을 때의 일이다. 플라톤은 “두 번 아이가 되는 것은 노인만이 아니고 취한 사람도 마찬가지다”라고 했으며, 법화경묘(法華經妙)에서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사람을 마신다 ”라고 한다. 술은 적당히 마셔야 할 요물이다.

 

 

▲   함께한 일행들

 

 

  산을 내려오니 또 뒤풀이가 준비되어있다. 오늘 아침 나 자신과의 약속은 어디로 가고 그 자리에 엉덩이를 들이민다. 그리고 한 잔 술을 입에 털어 넣는다. 하긴 인류가 탄생되며 술의 역사도 함께 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과실이 상처가 나고 그 상처에서 과즙이 스며나와 과실껍질에 붙어 있는 천연효모와 결합하여 만들어진 술을 처음 이용한 인간은 계속 술만들기을 발전시켜왔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제의에 제주를 올리고 음복을 한 다음 시(詩),가(歌),무(舞)를 즐겨온게 인류의 역사다.

 

 

▲   조령산에서의 맨발나그네 

 

 

   고려의 이규보는 술 없이는 시를 짓지 않았다고 하고, 조선의 시주객으로 이름난 송강 정철은 술에 지나치게 탐닉됨을 반성하며 단주를 결심하나 결코 술과 절연할 수 없음을 시로 표현했으니 『주문답삼수(酒問答三首)』다. 아마 이 맨발나그네도 단주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절주는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한다. 일일선(一日仙) 흉내를 내며 살고 있는 중이니 수의 한 벌 얻어 입고 이승을 떠나는 그날까지 모든 술을 신선들이나 마셨다는 유하주(流霞酒)라 우기며 적당히 즐기며 살아가련다. 성직자였던 마르틴 루터 조차 “술과 여자와 노래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일생동안 어리석은 자로 남는다”라고 했다지 아마....

 

( 댓 글 )

 

따스한마음(회장) 14.05.27. 23:25
산행을 하신건지 술에대한 예찬인지 ... ㅎㅎㅎ
아무튼 대자연속에 풍덩 바저있는 맨발 나그네님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오늘도 산행기에 잠시머물며 함께함을 생각해 봅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ㅎㅎㅎ
 
풍류 14.05.31. 21:39 new
ㅋ 혼자내러오시구 글잘읽고감상잘 혓씀 ㅋ

 

군시절 전라도 외딴섬에서 지역 특산주인 고구마 발효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마시고 잠이들어 군기교육받은 기억이 납니다. 선배님의 애주가의 사랑이야기에 감사 드립니다.
 

 

  지기호 14.05.29. 19:59

시간이 많은건지~ 여유롭게 생활패턴을 만들어 가는건지
등산으로 즐기며 살아가는 모습이 참으로 부럽구랴~~~~

 

오애자(고17) 14.05.28. 07:59
역시 맨발이군~~^^
 
김영희(고31) 14.05.28. 10:37
미리 선배님ㅋ 소맥도ㅋ 느낌아니까!

 

엘도라도 14.05.28. 07:21
쿠쿠쿸~~~
워째 산행후기가 ㅎㅎㅎㅎ
酒의讚歌가 되었나이다 小生도 酒道加이지만형님의 譽讚論은 하늘을 찌를듯 하여이다 ㅎㅎㅎㅎ
이번주 狂교산에서 그 다음 이야길 들어보쥬 허허허허~~~~
 
브레드 14.05.28. 15:44
주 주 주 ^*^

 

좋은친구 14.05.28. 23:45
초록의 싱그럼속에 홀로 서있는 맨발나그네님
멋지십니다

 

김학선 14.05.28. 12:22
산악회 따라서 6월8일 조령산 가려고 예약 했습니다.
우연히 두위봉,조령산 맨발나그네님의 뒤를 따라 갑니다.
나도 슬을 좋아하며 많이 먹습니다.
맨발나그네님의 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감탄 또 감탄!!
 
김광회 14.05.31. 12:40 new
사람이 술을마시고 , 술이,술을 마시고,
술이 사람을 마시는 일이 년중 무휴지요.~~ 잘,다녀오소, 산이 사람을 마시는 일 없도록..

 

 

  • 닥터진

    조령산에서도 맨발...맨발님의 산행기엔 산의 향기가가득합니다. 2014.05.28 08:08

  • 사무라이

    옛날이야기도 구수하고요. 멋진 산행기에 취해 일일선이 되어봅니다. 2014.05.28 08:14

  • 연아

    나그네님. 정말 즐겁게 보고 갑니다. 2014.05.28 08:19

  • 미스리

    한번 가본곳..전망이 아주 좋아요. 2014.05.29 14:24

  • 문희

    발이 불쌍해요.ㅠㅠㅠ 2014.05.29 17:21

  • 순희

    술이 술술술..일일선을 이루는 지름길... 2014.05.29 17:25

  • 티파니

    맛있는 산행기입니다. 2014.05.30 20:45

  • 상철희

    문경세재..조령산 즐감입니다. 근데 맨발로 거기를 어떻게 주파하셨는지 궁금... 2014.05.30 22:11

  • 해말금이

    멋진 산행기 즐감하고 갑니다. 부디 맨발 고히 보존하소서.. 2014.05.31 06:20

  • 가을여자

    조령산이 문경새재죠? 멋진산입니다. 즐감하고 가네요. 2014.06.01 15:00

  • 스노맨

    아름다운 글귀하며..구수한 옛이야기에 홀린듯..조령산이 더욱 멋진산으로 다가옵니다. 2014.06.02 17:34

  • 연아

    미혼타에 젖어 조령산을 갔다오신것을 참 다행...안다치고 ... 2014.06.04 05:46

  • 조랑말

    미혼탕 덕분에 험한산길을 맨발로? 고생하셨네요. 2014.06.06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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