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나그네/일반산행후기

무주 적상산과 사랑 나누다

맨발나그네 2016. 1. 19. 23:28

 

무주 적상산과 사랑 나누다

 

어 디 를 : 무주 적상산(1,034m)

언 제 : 2016117()

누 구 랑 : 내고향산악회

코 스 는 : 서창마을-적성산성 서문-안렴대-안국사-적성산성 서문-서창마을

사 진 은 : 소리새

 

대저 국토의 70%가 산지라고 하는 대한민국에는 산이 몇 개나 있을까? 국가나 사람에 따라 산에 대한 정의가 다르기는 하지만, 2015년 국토지리정보원이 발표한 전국의 산은 산 명칭이 고시되어 있는 산 5,700여개와 고시는 되지 않았으나, 예전부터 산 명칭이 명명되어 있는 산 1,700여개를 합쳐 7,400여개의 산이 있다고 한다. 하기에 이 맨발나그네 산=여인이라 일컬으며 그녀()들 품에 안겨오길 꽤 여러 해 되었건만 안기고 또 안겨도 계속되는 꽃잠자리의 연속이다.

 

▲  적상산 트랭글GPS 기록

 

 

▲  적상산 트랭글GPS 기록

 

  오늘 사랑나누기를 할 여인()은 무주 적상산이다. 전라북도에는 전라북도의 지붕이라고 불리며 다른 지역에 비해 산지가 많고 고원지대에 위치한 무주, 진안, 장수를 뭉텅그려 무진장이라 부른다. 네이버 백과사전의 <답사여행의 길잡이>편을 보니 무진장 산골이고, 무진장 눈이 많이 내리고, 무진장 아름답기에 붙여진 이름이라 설명하고 있다. 하긴 장수군의 평균 고도는 430m에 이르고, 진안군의 경우 전체 면적의 80% 쯤이 산지이고, 무주는 전라북도에서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이 가장 적은 지역이라고 하니 세 지역 모두 산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고장으로의 특색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그곳 무주에 덕유산이라는 걸출한 산이 있고, 그 덕유산에 가려 진면목을 내보이지 못하는 산이 있으니 바로 적상산이다.

 

  적상산은 가을에 마치 온 산이 빨간 치마를 입은 여인과 같다 하여 이름이 붙여질 정도로 경관이 뛰어나며, 덕유산 국립공원구역인 점 등을 고려하여 산림청은 100대명산에 그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 산이다. 고려 공민왕 23(1374) 최영 장군이 탐라를 토벌한 후 귀경길에 이 곳을 지나다가 산의 형세가 요새로서 적지임을 알고 왕에게 건의하여 축성된 적상산성과 안국사 등 유서 깊은 문화 유적이 있어 운치를 더해 주는 산으로 소개되어 있다.

 

▲  들머리인 서창마을, 뒤로 적상산이 보인다

 

▲  적상산 오르는 정다운 산길

 

▲  적상산 오르는 정다운 산길

 

▲  적상산 오르는 정다운 산길

 

  오늘의 들머리는 서창마을이다. 서창마을에서 적상산성 서문으로 이어진 길은 낙엽이 두툼이 깔린 산길로 정답기 그지없다. 바닥의 돌계단은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하지만 <동국여지승람>에 자연요새인 적상산을 걸어서 오를 수 있는 길은 서창(西倉)과 북창(北倉), 단 두 곳뿐이라 하였다 하는데 그 길 중 하나가 서창에서 오르는 길이니 유서 깊은 산길이 아닐 수 없다. 그 길을 산 벗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다. 낙엽이 수북히 쌓인 등산로는 지그재그로 이어져 어렵지 않게 오른다. 그 옛날 산성으로 짐을 나르기 위해 만들어진 길이기에 그럴 것이다.

 

▲  최영장군의 전설을 품은 장도바위

 

 

그렇게 오르다 보니 어느덧 장도바위이다. 적상산성 서문아래 서있는 이 바위는 고려 말 최영장군이 적상산을 오르다 길이 막혀 장도를 내리쳐 길을 내고 올라갔다는 전설을 가진 바위이니 믿거나 말거나이다.

 

▲  적상산성 서문

 

▲  적상산성

 

▲  적상산성

 

  장도바위를 우회하여 조금 더 오르니 적상산성 서문과 만난다. 산성은 원래 8km 가량이 있었는데 현재는 일부 지역에 복원을 하여 산성을 감상할 수 있게 하였단다.

 

▲  적상산성 서문을 지나 적상산 오르는 길 

 

▲  적상산성 서문을 지나 8부 능선에 이르자 나타나는 눈길

 

▲  잠시 폼을 잡아보기도 하고

 

▲  눈길은 이어지고....

 

  적상산성 서문을 떠나 조금 더 오르니 눈이 제법 덮힌 길이 나타난다. 사실 오늘 적상산과 운우지정을 결정한 것은 어디까지나 며칠 전 내린 눈이 이곳에 제법 쌓여 설산을 걷는 맛을 보기위해 떠난 길이었는데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어디 세상사가 뜻대로만 되는가. 아쉽기는 하지만 눈 사이로 아기자기하게 난 길을 따라 걷는 재미도 쏠쏠하니 두런 두런 이야기 꽃을 피우며 걷는다.

 

▲  흐린 날씨로 안렴대에서의 조망이 별로이다

 

 

▲  안렴대에서 함께한 일행들과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 덧 안렴대(按簾臺)이다. 고려 때 거란의 침입이 있었을 때 지방장관 격인 삼도 안렴사가 군사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들어와 진을 치고 난을 피한 곳이라 하여 안렴대라고 했다고 한다. 또한 병자호란 때는 적상산 사고 실록을 안렴대 비위밑에 있는 석실로 옮겨 난을 피했다는 유서 깊은 사적지이다. 그곳에서의 전망이 일품이라 하는데 오늘은 흐린 날씨로 인해 시야가 좋지 못하니 아쉬움을 뒤로 하고 안국사로 발걸음을 옮긴다.

 

 

 

 

 

안국사는 고려 충렬왕 때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광해 때 적상산 서고가 적상산성안에 설치되어 관군과 승병이 주둔하는 호국의 성지가 되었는데 사찰이름도 이에 연유한다고 무주군청 홈페이지는 전하고 있다. 1995년 양수발전소가 들어서며 이 곳으로 옮겨진 안국사를 둘러본 후 오던 길을 되짚어 서창마을로 향한다.

 

▲  지난 가을 초딩 동창들과 거닐었던 적상호 주변 풍경

  사실 적상산은 작년 가을 초딩 동창들과 소풍을 왔던 곳이다. 그 때는 가을비도 오는데다 말 그대로 소풍이다 보니 양수발전용 인공호수인 적상호 주변을 한바퀴 돌고 전망대에 올라 주변의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하였던 추억이 서린 곳이다. 그곳을 이 한 겨울에 다시 찾은 이유는 지난 주 태백산에서 만났던 풍광이 눈 앞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근한 날씨로 눈도 녹았고, 또한 상고대를 만들 조건도 되지 않아 그런 호사를 누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적상산성, 안렴대, 안국사 등 유구한 우리의 역사 속 한 현장을 둘러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행복한 하루였다.

 

▲  적상산과 사랑나누기를 하고 있는 맨발나그네

 

  이 맨발나그네에게 산이라는 여인네는 사랑의 묘약이자 최상의 보약이다. 언제든 닥아가면 두 팔 벌려 품을 내주는 그녀()와 한 판 사랑나누기를 치룰라 치면 오욕칠정에 찌든 나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니 정신건강상 최고이다. 거기에다 인간세상에서의 사랑나누기처럼 젊고 건강해지고, 칼로리 소모가 많아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고, 노화를 방지하며, 면역력이 향상되고, 뼈를 튼튼하게 하는 효과가 있으며 사람을 안정시키고 우울증을 완화하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 산과의 사랑나누기이던 인간세상의 사랑나누기이던 사랑나누기가 행복한 운동이고 예방의학 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산과의 사랑과 달리 인간의 열정적인 사랑에는 유효기간이 있으니 900여일이라고 코넬대학 인간행동연구소의 신시아 하잔 교수는 주장한다. 물론 900일이 넘어도 헤어지지 않는다면 파도처럼 오르락내리락 한다고 하잔 교수는 결론짓는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소설 <안나 카레리나>에서 사람들의 머릿수만큼 마음도 많다네, 그러한 마음의 수만큼 수만 가지의 사랑이 있다네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런지 인간의 사랑은 복잡하고 어렵다. 하기에 이 맨발나그네 산과의 사랑에 만족하려 한다. 그래서 또다른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기 위해 다음주 일요일 강원도 평창군의 박지산(두타산)행을 예약한다.

 

맨발나그네의 블로그 가기☞  맨발나그네가 세상을 걷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