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경인년 설날 풍경

맨발나그네 2010. 2. 15. 21:20

         경인년 설날 풍경

 

  설날이다. 설은 새해의 시작이건만 올해는 양력으로 맞는 정월초하루와 45일이나 차이가 나는 또다른 정월초하루를 맞이 하려니 어딘가 어색하다. 그래도 '설'은 음력 정월 초하루여야 제맛이 난다.

 

설을 언제부터 명절로 지내왔을까?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새해의 첫날을 알 수 있는 달력이 있어야 했으니, 아마  태양태음력이 만들어진 6세기 전후가 아니었겠나 하는 추측들을 할 뿐이다. 그러나 수서(隨書)를 비롯한 중국의 사서들에는 신라인들이 원일(元日)아침에 서로 하례하여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이날 월신을 배례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삼국사기(三國史記) 제사편에는 백제고이왕 5년(238)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으며 책계왕2년(287)정월에는 시조동명왕 사당에 배알하였다고 한다. 이때의 정월제사가 오늘날의 설과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미 이때부터 정월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것으로 보아 오늘날의 설날과 유사성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에서는 제36대 헤공왕(765)때에 오묘태종왕 문무왕 미추왕 헤공왕의 조부를 제정하고 1년에 6회씩 성대하고도 깨끗한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정월 2일과 5일에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설날의 풍속이 형성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설, 정월대보름, 삼짇날, 팔공회, 한식, 단오, 추석, 중구, 동지가 9대 명절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설, 한식, 단오, 추석을 4대 명절이라 하였다한다.

1895년 을미개혁이후에는 공식적으론 양력 1월1일을 양력설이라하여, 조선통독부는 양력설 쇠기를 적극 권장하였지만, 수천년을 이어온 민족의 명절이 법이나 강제력으로 막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1985년 정부는 음력설을 '민속의 날'로  지정했지만, 이마저도 지켜질리 없는 탁상행정이었다. 그래서 1989년부터 원래대로 되돌아가 음력 1월1일을 설날로 정하고 3일간의 휴무로 정했으니, 그때부터 설은 제자리를 찾은 셈이다.

 

 설!

국어사전에 의하면

[설ː] <명사> ① 새해의 첫머리. <동의어> 세수(歲首).

② 정월의 초승. <동의어> 세시①. 세초(歲初). 연두(年頭). 연수(年首). 연시(年始). 연초(年初). 정초(正初). <참고> 세밑

이라고 되어있다.

그러나 너무 간단하기에 백과사전을 찾아보았지만, 설에대한 조사가 시원치않다. 그래서 여기저기 뒤적여본다.

설에 대한 유래중  하나가 '서럽다'는 `설'이다. 선조 때 학자 이수광이 `여지승람'이란 문헌에 설날이 '달도일'로 표기되었는데, '달'은 슬프고 애달파 한다는 뜻이요, '도'는 칼로 마음을 자르듯이 마음이 아프고 근심에 차 있다는 뜻이다. `서러워서 설 추워서 추석'이라는 속담도 있듯이 추위와 가난 속에서 맞는 명절이라서 서러운지, 차례를 지내면서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간절하여 그렇게 서러웠는지는 모르겠다.

다음은 '사리다'[愼, 삼가다.]의 `살'에서 비롯했다 설(說)이다. 각종 세시기들이 설을 신일(愼日)이라 하여 '삼가고 조심하는 날'로 기술한 것도 몸과 마음을 바짝 죄어 조심하고 가다듬어 새해의 첫 시작을 경거 망동하지 말라는까닭이다.

  옛날 문헌들에 정초에 처음 드는 용(辰)띠 날 말(牛)띠 날 쥐(子)띠 날 돼지(亥)띠 날 그리고 2월 초하룻날을 신일(愼日) 로 적혀 있음을 근거로 하여 육당 최남선이 풀이한 기원설이다. 새해부터 처음 맞이하는 십이일을 상십이지일(上十二支日)이라 하여 여러 가지를 삼가며 조심할 것을 가르친 풍속이 있는 걸 볼 때, 매우 타당한 설이다.

  설'의 어원에 대해 또 다른 견해는 나이를 댈 때 몇 살... 하는 '살'에서 비롯된 연세설이다. 한국말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우랄 알타이어계에서 해가 바뀌는 연세를 '살(산스크리트語) · 잘(퉁구스語) · 질(몽고語)'이라 한다.

  산스크리트 말에서 `살'은 두 가지 뜻이 있는데 그 하나는 해가 돋아나듯 '새로 돋고 새로 솟는다'는 뜻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시간적으로 이전과이후가 달라진다는 구분이나 경계를 뜻하고 있다. 이 모두 정초와 직접 연관되고 있다.

  중국의 어원사전인 `청문엽서'에 보면 연세를 나타내는 `살'· `잘'은 세(世)· 대(代)· 세(歲)· 수(壽)를 뜻하고, 또 대나무나 풀이나 뼈마디를 뜻하는 절(節)의 어원이라고도 했다. '몇 살 몇 살' 하는 `살'이 그 연세의 매듭(節)을 짓는 정초를 나타내는 '설'로 전화됐음직하다.

  또한 설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다는 견해는 '설다. 낯설다' 의 '설'이라는 어근에서 나왔다는 설(說)이다. 처음 가보는 곳, 처음 만나는 사람은 낯선 곳이며 낯선 사람이다. 따라서, 설은 새해라는 정신·문화적 시간의 충격이 강하여서 '설다'의 의미로, 낯 '설은 날'로 생각되었고, '설은 날'이 '설날'로 정착되었다. 곧 묵은해에서부터 분리되어 새해로 통합되어 가는 전이과정에 있는 다소 익숙치 못하고 낯설은 단계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설은 동지로부터 시작하는 마무리 시기에서부터 새해를 맞이하는 새 시작의 설날을 정점으로 하여, 그리고 상십이지일(上十二支日)과 정월 대보름의 대단원까지를 한 선상에서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

누군가는 또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우리의 단군역사중 하느께서 내린 天地人의 ○□△중에 △은 사람천부인이고, 이것으로  ㅅ 이 만들어 졌으며, 'ㅅ'은 서(立)의 뜻을 가지고 있다. 립(立)은 한자로 설립 자이이고, 따라서 묵은 해가 가고 새해가 서는 날이 설날(立日)이라는 해석을 내놓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설날 떡국을 먹는다. 그 떡국을 나이먹는게 서러워 안먹겠다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떡국은 한 살 더 늙으라고 먹는게 아니다. 하얗고 뽀얗게 새롭게 태어나라고 먹는 음식이다. 순백의 떡과 국물로 지난 해 묵은 때를 버리라는 것이다. 처음 먹은 시기는 옛 문헌에 남아있지 않지만, 최남선이 쓴 ‘조선상식문답’에 보면 3세기 이전 상고시대, 떡이 주식이던 시절부터 전래된 것으로 본다. 멥쌀을 떡메로 친 가래떡은 예전부터 고급스러운 음식이다. 조선시대 세시풍속기 '동국세시기’ 행사 기록 책 ‘열양세시기"에는 떡국은 설날에 반드시 먹고 손님에게 대접해야 할 음식이라고 전한다. 가래떡을 쓰는 이유도 가래떡처럼 재산을 죽 늘려가라는 뜻이다. 어슷썰기한 떡은 재물을 상징한다. 조상들은 하얀색 떡국으로 경건한 한 해를 권하며, 동시에 재복도 빌었던 것이라 한다. 특히 떡국에는 꿩고기를 썼다. 고려후기 귀족들 사이에서는 매사냥이 유행했다. 이 때문에 매가 물어온 꿩으로 끓인 만두국, 떡국은 당시의 귀족음식일 수밖에 없었다. ‘꿩 대신 닭’이란 속담은 바로 귀족 아닌 일반인이 꿩고기를 못 넣고 닭을 써서 생긴 말이다.

 

 이제는 설, 추석으로 2대 명절로 압축이 되어 즐기게 되었다. 그리고 고향을 찾아 민족의 대이동이 이루어진다. 나야 고향이 엎어지면 코닿을 곳에 위치하니 설명절 전날도 나의 조강지처 광교산과의 데이트(http://blog.daum.net/yooyh54/236)을 즐긴후 아버지, 어머니가 계신 고향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요당리(http://blog.daum.net/yooyh54/237)로 향한다. 온 가족이 까치설날부터 모여드니 4대 30여명이 시끌벅적이다. 비좁은 집에서 대가족이 1박2일을 보내자니 불편함이 많지만, 매년 2대 명절인 설과 추석은 모두가 모여 전쟁을 치룬다. 주방에서는 어머니의 며누리이자 이집 형제들의 여인들이, 이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남편들을 씹으며, 전을 부치고, 만두를 빚는다. 아들들의 흉이 듣기 싫은 89세의 우리 어머니 이지만 오늘만은 너그럽게 맞장구를 치며 아들들을 나무라신다.

 그래도 옛날 설 명절 맛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마나 가족들이 모여 가족임을 확인하는 자리를 갖게 해주는 것이 명절의 의미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게 3교대, 4교대로 나누어 저녁도 먹고, 소주도 한잔 곁드리며 까치설날을 보낸다. 물론 주방이 좁아 돕지 못한다는 핑게를 대며 남자 형제들은 고스톱 삼매경에 빠지고, 조카들은 오래간만에 만나 이야기꽃을 피운다.

 

 설날 아침도 전쟁의 연속이다. 그렇게 일개 소대가 아침식사를 마무리 하고 아버지 어머니께 세배를 드리기 위해 안방으로 모여든다. 92세인 아버지와 89세인 어머니에게 우선 아들들이 두분이 경인년 한해도 건강하게 우리들 옆에 계셔 주기를 소망하며 함께 세배를 드린다. 이어서 며느리들이 세배를 드리고, 어머니는 며느리들에게 아들들 잘 건사해줘 고맙다며 세배돈을 나누어 준다. 원래 세배돈은 세배를 받은후 덕담으로 "결혼했다지", "집을 샀다지", " 취직을 했다지"라며 과거형으로 덕담을 하던 것이 어느 때부터인가 물질로 바뀐 것이라 한다. 그러나 오늘날 덕담보다는 세배돈에 더 비중을 두니 그야말로 '염불보다 잿밥'이라든가....  하여튼 세배는 이어져 손자 손녀 순으로 이어지고, 증손자 증손녀 순으로 이어 세배가 이어진다.

 

 이어서 사랑채로 자리를 옮겨 다시 세배 퍼포먼스가 이어지니, 우리 형제들이 자식, 조카들로 부터 세배를 받는 순서이다. 물론 시간 절약을 위해 단체로 진행이 되는데, 그 방법은 우선 큰형 내외가 앉고, 결혼을 한 큰조카내외와 그 자식들이 먼저 세배를 올리고, 덕담에 이어 세배돈이 지급된다. 그리고 이어서 남자 조카애들의 세배, 덕담, 세배돈 지급, 그리고 여자 조카애들의 세배, 덕담, 세배돈 지급이 있은후 둘째형이 좌정을 하고 앞서와 똑같은 순서에 의해 행사가 치루어진다. 이렇게 돌아가신 첫째형을 제외한 여섯 형제가 세배를 받자면 꽤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다. 적당한 덕담과 간간히 흘러나오는 우스개소리에 모두가 즐겁다.

 

 이어서 남자들끼리만의 산소 성묘를 마치고, 다시 점심식사 전투를 치루면 제각각 옆지기네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게 되니 1박2일간의 시끌벅적한 설 명절 행사가 마무리 된다. 또다시 외톨이가 되는 구순의 부모님이지만, 그것이 우리들 삶이니 어찌하겠나... 그냥 자주 찾아 뵙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이나 하는 수 밖에........

 

 

                                                                  (2010년 설날에)

 

( 댓 글 )

 

  • 병만이

    아주 어릴적 설풍속이 아른거리게 만드는군요. 지금은 설이랴야 그저 그렇지요. 2014.01.30 11:29

  • 미스리

    모르고 지내온 설풍속이네요. 감사합니다. 2014.01.30 11:44

  • 가을여자

    아는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천지차이..하찮은 것으로 치부하던 설의 연유..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그렇게 살아왓는데...유익한 정보? 감사합니다. 2014.01.30 21:00

  • 순희

    새삼 설의 어원을 생각하니 좋네요. 2014.01.31 06:52

  • 감치미

    오래도 그녀는 우리곁에 없었습니다. 어머니... 2014.02.02 09:13

  • 황소고집

    새옷한벌 얻어입기가 엄청 힘들었던 어린시절의 설..그래도 그때의 설은 설다웠습니다. 2014.02.04 12:19

  • 아리수

    설은 서러워서 설설설...없는놈..가족이 없어 서러운놈...갈곳이 없어 서러운놈..그저 설은 서러운 이들의 밤잠 못이루는 불면의 날들.. 2014.02.05 16:56

  • 주전자

    뜬눈으로 설날이 밝기를 기둘리던 유년의 설은 마냥 행복하고 즐거운날..지금은 그저 그래요. ㅎㅎㅎ 2014.02.0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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