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나그네/맨발걷기 경험담

다시 찾은 낙영산과의 특별한 만남

맨발나그네 2012. 7. 23. 21:13

다시 찾은 낙영산과의 특별한 만남

 

● 산 행 지 : 괴산 낙영산( 684m)

● 산행일시 : 2012년 7월 22일 (일)

● 누 구 랑 : 산7000 산악회

● 산행코스 : 공림사>헬기장>정상>안부 갈림길>공림사

● 사진은 ? : 산7000 산악회 회원 여러분

 

 

(들머리에서)

충북 괴산에 위치한 낙영산은 작년 이맘때 산7000산악회와 함께 다녀 온 산이다.

해서 떠날 때부터 이번 산행에 대해선 다녀온 이야기 없이 그냥 보내기로 마음 속으로 약속을 하고 떠난 길이다.

하지만 낙영산 다녀와서 산악회카페에 올려진 사진과 댓글들을 보고 있자니 간단하게나마 낙영산을 다녀온 소회를 적지않고는 못배기겠으니 이 또한 큰 병이다.

 

 

(낙영산)

 

 

낙영산은 속리산국립공원권에 속한 산자락으로 속리산을 조산(祖山)으로 백악산(858m)과 도명산(642m)사이에 기암 절벽을 이룬 산이다.

남과 북으로 용대천과 화양구곡을 안고 있기도 하다.

이 산을 산7000산악회가 작년에 이어 여름 특별산행지로 잡은 것은 산의 아름다움과 산행코스가 짧아 산행을 마친후 간단하게 물놀이를 즐길 산으로 더없이 좋기에 그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오늘도 장마권에 들어 있어 곳에 따라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되어 있으나 버스 2대는 일찌감치 자리가 동나 산7000산악회의 인기를 실감하게 한다.

그 산악회의 일원이 되어 공림사 간이주차장에 차를 둔후 공심사를 들머리삼고 날머리 삼아 산행을 시작한다.

 

 

 

 

(공림사의 천년 역사를 지켜 본 느티나무)

공림사 입구에 쭉 늘어서 있는 느티나무 숲은 세월의 무게를 느끼기에 더할 나위없다.

그 느티나무 숲 끝자락의 1,000여년을 견디온 느티나무는 너무나 인자한 우리네 옆집 할아버지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맞는다.

둘레가 8m에 이르며 그 앞으로 20여 그루의 느티나무 고목을 거느리고 있으니 운치가 제법이다.

 

 

 

 

(천년의 영욕을 함께한 공림사)

 

공림사도 서기 873년 신라 경문왕 때 자정선사가 지은 절이라고 하니 느티나무와 함께 천년이상을 그곳에서 역사를 함께한 절이다.

조선 중기까지는 속리산 법주사보다 더 융성했지만 임진왜란 때 대웅전과 요사채만 남고 다 타서 중건되었고, 6.25때는 인민군에 의해 점령되었다가 국군의 작전으로 전소되는 바람에 지금의 절은 30여년 밖에 안된 젊은 절집이 되어 버렸지만 1,000여년된 느티나무와 조화를 이루고 있으니 그냥 천년을 그곳에 서있는 절집처럼 보인다.

천년의 세월을 보듬으며, 임진왜란과 6.25의 아픔까지를 온몸으로 느꼈을 느티나무 옆을 지나 공림사 오른쪽 능선을 따라 맨발나그네되어 낙영산으로 향한다.

 

 

(대 바위 슬램과 어울린 노송)

 

 

공림사 오른쪽 능선길은 쉬운 길이 아니다.

모두들 땀으로 목욕을 해가며 오른다.

하지만 숲의 솔향과 산우들과의 정담과 함께 힘든지 모르게 오르다보니 대 바위 슬램이 왼쪽 11시방향에 나타난다.

장관(壯觀), 장엄(壯嚴)이라는 말 밖에 떠오르지 않는 바위와 노송이 어우러진 대 바위 슬램은 암골미(岩骨美)가 뛰어나다.

나 개인적으로야 작년 이맘때에 이어 두번째이기에 꽃잠자리 같은 떨림과 환희와 황홀함을 느끼기에 약간 부족함이 있었지만 처음으로 이곳을 찾는 산우들은 그야말로 감탄사 연발이다.

 

 

(헬기장에서 홍어 한점과 함께한 반야탕세계)

 

그렇게 몇번을 더 자연을 맘껏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 쉼터를 지나며 도착한 681봉 헬기장이다.

주변의 풍광은 거칠 것이 없는 시원한 풍광을 선보인다.

몇몇 산우님들이 얼린 막걸리를 내놓고, 진도개 산행대장이 내논 홍어회는 무알콜산행을 해보겠노라고 다짐한 맨발나그네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예 산우들의 부추김에 못이기는 척 냉막걸리 한잔과 홍어를 한점 입안에 털어 넣으니 그 옛날 낙영산에 기거했던 신선들이 부럽지 않았다.(솔직히 딱 세점....ㅎㅎㅎ 진도개 산행대장이 누가 몇점을 먹나 세고 있어서....)

 

 

 

그렇게 낙영산 신선이 되어 길을 떠난다.

낙영산(落影山)이 어떤 산이던가?

그저 그렇고 그런 산이 아니라 당나라 고조를 현혹한 미학의 산이다.

신라 진평왕때 중국 당나라 고조가 어느날 세숫물을 받아놓고 세수를 하기위해 세숫물을 들여다 보니 아름다운 산의 모습이 비쳐 화가를 불러 그림을 그리게 한 후 산을 찾게 하였으나 중국내에서는 찾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동자승이 나타나 세숫대야에 비친 산은 동방의 신라국에 있다고 알려줘 신라에 사신을 보내 이런 저런 고생 끝에 찾아낸 산에 낙영산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고 한다.

 

 

 

 

 

 

(산객들을 매혹하는 바위들)

 

그런 아름다운 산의 백미는 헬기장부터 안부 갈림길까지 이어진다.

능선길 따라 펼쳐진 기기묘묘한 바위들과 노송들은 자연 박물관이 따로 없다.

나이를 알 수 없는 소나무는 몸을 비틀며 바위에 기대 서있고, 옛 삼국시대 병사들이 암호를 새겨 넣은 듯한 바위는 세월의 무상함을 알리며 작년이나 올해나 그 자리에 서 있다.

보는 사람에 따라 상어가 되기도 하고, 돼지가 되기도 하고, 부처가 되기도 하는 바위들이 지천에 깔려 있어 산객들의 발걸음을 붙잡아 맨다.

한발짝 한발짝 내 디딜 때마다 숨어있던 동양화 화폭이 한폭 한폭 펼쳐지니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수십 폭의 동양화를 감상하며 걷는 맨발나그네...

거기다 좀 전에 헬기장에서 마신 반야탕(般若湯 : 범어에서 반야는 Prajna로 지혜라는 뜻을 가진다, 그래서 반야탕, 즉 술은 '지혜의 물'이란다)으로 몸은 신선이 되어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우암 송시열은 이곳과 가까운 화양계곡에 '암서재'를 짓고 책을 읽고 시를 쓰며 풍류를 즐겼다고 하는데 화양계곡 못지않은 낙영산의 울울창창 노송과 암능속에서 하루짜리 신선이 되어 풍류객이 되고 나니 마음조차 푸르러진다.

신이 빚은 자연의 예술을 감상하느라 한발짝 한발짝 내딛는게 아쉽기는 하지만 낙영산에 취한 푸른마음을 안고 산길을 걷다보니 자잘한 일상의 상처들이 저절로 아무는듯 하다.

그렇게 걷다보니 안부갈림길이고 왼쪽 공림사 쪽으로 방향을 잡아 내려온다.

안부부터 공심사까지는 여느 산과 다름없는 그렇고 그런 하산길을 다시 산우님들과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며 걷다보니 들머리였던 공심사와 만난다.

 

 

 

 

그리고 산악회가 마련한 흑돼지구이 안주삼아 반야탕에 취해 물놀이를 즐기니 이 또한 즐거운 힐링이다.

비록 꽃잠자리가 아니어서 전희(사전조사)도 없었고, 후희(산행후기 쓰기)도 때려칠까했었는데 그녀 낙영산의 품에 안겨 보낸 하루가 정말 즐겁고 행복했기에 장님 코끼리만지기식으로라도 그녀(낙영산)와의 운우지정을 기록하지 않고는 못배기겠기에 아직 깨지 않은 반야탕세계의 몽롱함으로 이렇게 중언부언 늘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