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나그네/일반산행후기

융건백설(隆健白雪)과 만나다

맨발나그네 2012. 12. 27.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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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산하와 사랑나누기(16)>

 

        융건백설(隆健白雪)과 만나다

 

어 디 를 : 화성시 태안읍 융건능

언 제 : 20121225

누 구 랑 : 나홀로

코 스 는 : 매표소-융릉-화산 산책로-건릉-융능-매표소

 

 

(백설에 휘감긴 융건능)

 

화성시의 산하와 사랑을 나누고자 마음먹은 것이 20105월이니 벌써 3년반이 지났다.

그런데 딴곳에 한눈을 파느라 별로 성과가 없다.

물론 융건능은 작년에 두차례에 걸쳐 다녀가긴 했지만 명색이 화성의 산하와 사랑을 나누겠다는 사람이 화성팔경중 제1경인 융건백설을 이제야 만난다는 것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 일이다.

화성8경은 융건백설, 용주범종, 제부모세, 궁평낙조, 남양황라, 입파홍암, 제암만세, 남양성지를 말한다.

아직 글로 다 기록은 못했지만, 화성8경중 융건백설, 남양황라, 입파홍암을 제외한다면 한차례이상 접한 곳들이긴 하다.

 

 

(융능으로 가는 길)

 

 

오늘 아침 눈을 떠 창밖을 보니 하얀 눈이 소복히 쌓여있다.

인터넷으로 일기예보를 검색해보니 수원지방 날씨가 영하 7~10도를 가르킨다.

그래도 화성8경중 아직 접해보지 못한 융건백설을 보기위해 길을 나선다.

융건능은 뒤주 속에서 한많은 생을 마감한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합장능인 융능과 개혁의 군주라 일컬어지는 정조와 효의왕후의 합장능인 건능으로 나뉜다.

융건능이 자리잡은 화산(花山)어린 서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노는 형국의 길지로 천리 안에 없는 터이고, 천년 만에 한번 만날까 말까 하는 최고의 명당이라 한다.

선조 임금의 능자리로 추천되었던 것을 비롯하여 효종 임금의 능 후보였던 곳이기도 하단다.

 

 

(융능가는길 만나는 곤신지(坤申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융건능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0.

눈 치우는 직원을 빼고는 간발의 차이로 나보다 앞서 입장권을 사서 능안으로 들어가는 분을 빼면 오늘 두 번째로 융건백설과 만나는 사람이 된다.

경건한 마음으로 능안으로 들어선다.

어제 온 눈의 양이 많지않고 바람까지 불어 노송에 백설이 덮힌 모습이야 볼 수 없지만 눈덮힌 융건능원이 무아의 경지로 나를 인도한다.

사방을 덮은 하얀 눈밭은 마음을 푸근하게 하면서 온갖 스트레스를 씻어낸다.

 

 

(융능의 백설)

 

곤신지를 거쳐 도착한 융능이다.

능을 한바퀴 둘러보고 수라간 툇마루에 앉아 사도세자와 권력이란 것을 생각해 본다.

융능의 주인인 사도세자는 누구이던가?

역사평론가 이덕일은 사도세자의 고백에서 서인인 노론과 소론 사이에서 당쟁의 희생양으로 뒤주속에 갇혀 죽었다고 한다.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은 광증을 앓아왔기 때문이라 한다.

조선왕조실록영조실록에는 반란죄로 죽었다고 한다.

조선의 문예부흥을 일군 영조가 아들을 뒤주에 갇힌 지 8일만에 죽음에 이루게 한 것이 반란이었리도 없고 광증이었을리 없으니, 당파싸움의 과정에서 희생되었다는 것이 중론이긴 한데 아직도 학자들간에 이론이 있으니 지켜 볼 뿐이다.

 

 

(융능 수라간 툇마루에 앉아 쉬고 있는 맨발나그네)

 

다만, 절대권력의 왕이 있음에도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당파싸움이 계속되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조선시대는 왕과 신하가 권력을 나눠가진 정치제도였기에 고려시대 최충헌 같은 절대권력자가 없어 당파싸움이 계속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당파싸움이란 것도 내가 보기엔 시덥지않은 것으로 시작한다.

효종이 죽었을 때 효종의 어머니가 상복을 1년간 입어야 한다는 서인의 송시열과 2년간 입어야 한다는 남인의 윤선도가 피터지게 싸운 끝에 서인의 승리로 끝난다.

승리라고 해봐야 정치적 이해관계로 임금이 서인의 손을 들어주었을 뿐이다.

14년후 효종의 왕비 장씨가 죽자 이번에는 장씨의 시어머니인 자의대비가 1년간 상복을 입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9개월만 입어야 할 것인가를 가지고 다시 서인은 9개월을, 남인은 1년을 주장하게 되는데 이때 현종은 지난번과 달리 남인편을 들게 되어 송시열을 비롯한 서인이 숙청된다.

 

 

(사도세자가 잠들어 있는 융능)

 

이밖에도 경신환국’, ‘갑술환국’, ‘신임사화’'계축옥사' 등등 수많은 환국과 사화와 옥사로 이름지어지는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은 당파싸움이 별것 아닌 것으로 시작하여 종국에는 역적모의라는 이름으로 계속된다.

우리 속담에 제 버릇 개 못준다라고 했던가.

복수, 모함, 과거들추기, 용서안하기, 별것 아닌 일에 목숨걸고 반대하기, 정당의 계속적인 자체분열에 의한 분당  등등 정쟁(政爭)이 조선시대와 하나도 달라진게 없이 계속되고 있는 현실정치를 보고 있기가 민망하다.

그렇게 한참을 수라간 툇마루에 해바라기를 하며 나와 상관도 없는 일로 머리 속을 헤집는 것을 보면 나도 정치는 내 일과 무관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이 되나보다.

하긴 이미 2300여년전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정치학'에서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고 단정지어 놓았으니 나라고 예외일 수는 없겠지만....

 

 

융능을 뒤로하고 화산 산책로로 들어선다.

산책로는 융능에서 건능까지 이어지는 둘레길이다.

백설에 뒤덮인 한적한 숲길을 걷는다.

아무도 없는 산책로를 나보다 먼저 이길을 간 이의 발자국을 따라 걷는다.

느릿 느릿 한가하게 걷는다.

 

 

(고즈녁한 숲길을 한가로이 걷고 있는 맨발나그네)

 

소나무로 뒤덮힌 고즈녁한 숲길을 걷고 있자니 다시 융건능의 소나무와 정조에 얽힌 일화가 떠오른다.

어느 날 아버지의 능 주변 소나무에 송충이가 대단히 번식하여 소나무를 갉아먹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행차를 서둘러 산에 와서 보니 송충이가 기승이자 정조가 진노하여, 송충이를 잡아 꾸짖고 아무리 미물일 망정 네 어찌 내가 부친을 그리워하며 정성껏 가꾼 소나무를 갉아먹느냐며 깨물고 돌아서자 천둥번개와 함께 장대비가 쏟아져 송충이가 사라졌다는 일화다.

그렇게 가꾼 소나무들이다.

물론 그 소나무들의 자식이나 손자 소나무이겠만 말이다.

 

 

(융건능의 장래를 책임 질 새끼 소나무들이 무럭 무럭 자라고 있다)

 

건능에서 융능으로 가는 지름길 한 구석에 이 소나무들이 없어질 때를 대비하여 새끼 소나무들이 자라는 것을 보니 정조의 정성이 현재까지 계속되는 것 같아 흐뭇하다.

 

 

(건능의 백설)

 

홀로 산책로를 걸으며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머리를 채워 갈 무렵 도착한 건능이다.

건능을 한바퀴 둘러보고는 다시 양지바른 건능의 수라간 툇마루에 앉아 정조를 생각해 본다.

건능의 주인인 정조가 누구이던가?

생부인 사도세자가 뒤주속에 갇혀 생을 마감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고, 세손이 된 후에도 왕위 계승을 반대하는 세력들에 의해 계속 견제를 받았으니 그의 왕위계승이야 말로 험난한 길이었다.

즉위 이후 홍국영을 통해 자신의 정적들을 제거한 후에는 갖가지 개혁정책과 탕평을 통한 대통합을 추진하였다 한다.

 

 

(건능 수라간 툇마루에서)

 

그 개혁의 총결산이 화성(華城)의 건설이다.

화성을 통해 개혁과 대통합을 이루고 백성들이 생업이 편안해지고 질서가 잡힌 세계를 꿈꾸었겠지만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그의 꿈은 만개해보지 못한다.

재위 24, 그의 나이 48세에 승하하게 되는데 그의 죽음이 의료사고설, 독살설, 병사설 등 여러 가지로 이야기되고 있기도 하다.

아무튼 개혁과 탕평을 통한 대통합이 화두가 된 올해 대선을 떠올리니 정치란 정조가 살았던 200년전이나 또 그보다 더 이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한게 없는 것 같아 씁쓸하다.

 

 

(건능에서 융능으로 이어지는 길)

 

그렇게 정조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길을 떠난다.

건능에서 융능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걷는다.

어째거나 임금으로 있는 동안 한해도 거르지 않고 부친의 능을 참배하였으며, 죽은후에도 아버지의 능침의 발치에 묻혀서라도 시묘효행(侍墓孝行)을 하겠다고 생전에 정하여 둔 이곳에 묻혔다는 정조의 효를 생각해 본다.

융건능과 관련이 있는 정조의 할아버지인 영조, 사도세자와 정조의 3대에 걸친 드라마틱한 삶이 오늘에까지 이어져 많은 TV드라마로 탄생하나 보다.

대충 훑어봐도 조선조 제21대 영조임금의 생모이자 19대 숙종임금의 후궁이었던 천민출신 여인 숙빈최씨를 다룬동이’, 정조 이산의 인생을 담은 이산’, 사도세자와 장용위 무사들의 활약상을 그린 무사 백동수가 있다.

논점이 위 드라마들과 다르기는 하지만 드라마 성균관스캔들도 시대배경을 정조때로 하고 있다.

물론 드라마는 실화와 허구가 혼합된 팩션인 경우가 대부분이니 내용자체를 역사로 받아 들이기는 어렵다.

 

 

(백설로 치장한 건능)

 

못나도 정말 못났다.

그냥 화성제1경 융건백설을 즐기면 될 것을 조선시대의 당쟁이 어떻고 저떻고, 사도세자와 정조의 죽음이 어떻고 저떻고, 현실정치에서의 정쟁이 어떻고 저떻고 할 일이 아니지 않는가.

하긴 암만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걷는다해도 제법 많은 시간을 나홀로 걷다보면 이 생각 저 생각이 꼬리를 물게 되어 있다.

아동문학가 이원수님은 나그네 수첩에서 나그네 길은 역시 생각할 일, 즐거운 일들이 많은 것인가 보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앞으로라도 걸을 때는 잡생각을 줄이고 그냥 걷자.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라는 책을 쓴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에세이 작가 피에르 쌍소는 느림, 내게는 그것이 부드럽고 우아하고 배려 깊은 삶의 방식이라며 느림의 삶을 받아들이는 9가지 태도 중 첫 번째로 한가로이 거닐기를 꼽는다.

 

 

 

느려서 아름답고, 융건백설이 있어 즐겁다.

겨우 5km 내외의 산책로를 2시간여에 걸쳐 걷다 쉬다 한다.

추운날씨이지만 눈덮힌 융건능원을 역사를 반추하며 소나무와 친구삼아 걷다보니 그 여유로움에 행복감이 두배로 쌓인다.

그리고 지난번 들렸을때에 못보던 건물 융능.건능 역사박물관을 둘러 보고 행복했던 융건능 걷기를 가슴속 또다른 추억으로 쟁이며 집을 향한다.

 

( 댓 글 )

 

  • 쥬얼리

    놀멍쉴멍 5키로를 2시간여..과연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심...산행기 내내 과거로의 역사기행을 떠나게 되었네요.
    여러갈래 논쟁으로 어느것이 진실인지 알지 못하지만 못난 역사임에는 틀림이 없네요. 즐겁게 일고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2012.12.27 20:48

  • 아스라히

    융건백설(隆健白雪)과 만나다를 읽다보니 즐거움이 두배로 샇이고 행복감이 저절로 밀려오네요.
    나그네님은 천상 글쟁이로 나서야겠어요. 좀 늦었지만 늦었다고 할대가 가장 빠른것이라더라구요. 항상 좋은글
    올리셔서 즐감한답니다. 감사해요.

    2012.12.28 21:37

  • 핑크쭈니

    이곳이 용주사 뒤인가? 숲이 우거지고 아주 넓든데...산행기를 읽으면서 그곳이 생가이 나네요. 바로 근처인데도 못가보네요. 따스한 날이 오면 함 가봐야지요. 2012.12.29 09:32

  • 야호만만세

    사랑하는 자식을 뒤주에 가둬 비참하게 죽인 가족사가 어쩜 우리의 역사가 아닐까..이념이란 허울로 아직까지 양분된 조국과 민심..그리고 지역...역사는 돌고돌아 제자리를 찾아가고 우리는 수레바퀴에 깔려 한줌 흙으로 돌아가고..하여 남는것은 역사?.. ㅎㅎㅎ 산행기 정말 재미있게 보고 또 생각하고 갑니다. 2012.12.29 20:52

  • 가시나이

    참 즐겁게 읽고 갑니다. 멋진곳을 알게되어 기쁘네요. 2013.01.01 20:01

  • 소현이

    릉주위에 사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아주 좋다고 그러네요. 지금은 너무 눈이 많이 오고 미끄럽다고 날 좋은날 가보라드군요. 산행기 덕분에 좋은 곳 알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2013.01.02 19:39

  • 도로시

    가족 나들이길로 아주 안성맞춤이라네요. 혼자서도 아주 좋아요. 함가보세요. 2013.01.05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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