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나그네/맨발걷기 경험담

맨발로 수리산과의 데이트

맨발나그네 2009. 6. 26. 06:41

맨발로 수리산과의 데이트

 

● 산행일시 : 2008. 11. 2(일) 10:30 ~ 15:45

 

● 누구랑 : 나홀로

 

● 산행코스 : 명학역(10:35) ~ 봉정암약수터입구(11:00) ∼ 관모봉(11:35) ∼태을봉(11:55 점심, 휴식, 단풍감상으로 12:20분출발) ∼ 슬기봉(13:25} ∼수암봉(14:20, 간식, 휴식, 단풍감상으로 14:50분출발 ∼병목안 시민공원(15:45) (휴식시간 포함 5시간10분 약 15km)

 

  수리산과의 데이트에 나선다. 그동안 여러차례 별렀건만 처음이다. 마음이 설렌다. 바로 가까이에 내애인 광교산을 두고 새애인과의 데이트를 앞두고 설레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사실은 몇몇이 도봉산이나 수락산을 가자고 시간약속까지 하였는데 약속이 깨지는 바람에 궁여지책으로 마련한 차선책이지만, 항상 염두에 두고 있던 수리산이었다. 그래서 새애인을 만나기 위해 집에서 9시반쯤 나서서 명학역에서 김밥 2줄을 배낭에 챙기고 데이트를 시작한 시간이 10시35분쯤이다. 성결대 좌측으로 해서 성문고등학교 정문이 나오면 다시 좌측 좁은 소로길로 길을 잡아야 한다. 안내판이 없어 좀 불편하다. 봉수정약수터 못미쳐에서 새애인 수리산에게 내 속살(? = 맨발)을 보인다. 수리산이 첫 만남부터 속살을 보고는 소스라친다. 내애인 광교산 같으면 오래 보아왔던 모습이어서 태연할텐데 말이다. 올라가는 등산로는 그야말로 인산인해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을 단풍을 보기위해 길을 나섰나보다. 그렇게 명학역에서 출발하여 1시간만에 새로운 애인 수리산의 첫 번째 봉우리인 관모봉(426m)이 모습을 드러낸다.

 

  새로운 애인 수리산은 네 개의 영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안양에서는 관모봉, 군포시에서는 태을봉, 화성시에서는 슬기봉, 시흥시와 안산시에서는 수암봉을 수리산으로 생각한다. 그 이유는 U자형 산세의 특징에서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그래서 수리산을 애인으로 삼으면 수리산이 네 번의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을 맛볼 수 있다고 해야 할까. 하여튼 그런 산이다. 뭐 서갑숙이 멀티 오르가즘인가 뭔가 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였는데, 수리산이야 말로 태고적부터 등산객에세 멀티 오르가즘을 제공해 왔던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내애인 광교산을 두고왔고, 또 이곳 관모봉에서 광교산은 손에 잡힐듯 가까이 보여 관모봉과의 찐한 애정행각을 벌리기는 좀 거시기하다. 하지만 오늘은 오전 안개 때문에 새애인과 바람피고 있는 나를 옛애인 광교산이 알아보지 못할거 같아 다행이기는 하다.

 

     (태을봉에서 바라본 관모봉, 그 너머로 안양시내가 보인다)

 

  관모봉은 무지 붐빈다. 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찍기도 무지 힘들어 포기한다. 그래서 다시 새애인 수리산의 두 번째 오르가즘을 위해 태을봉을 향한다. 관모봉에서 태을봉까지는 꽤 부드러워 쉽게 오를 수 있다. 그런데 태을봉(488m)은 그야말로 시골장터가 따로 없다. 도착시간도 11시55분이어서 여기저기서 식사도 하고 단풍구경도 하고 난리가 아니다. 나도 한쪽구석에 자리를 잡고 명학역에서 사온 김밥과 사과 한쪽으로 요기를 한다. 약 30여분의 점심식사와 주변경관을 둘러본후 길을 나선다. 새애인의 감추어둔 다음번 성감대인 슬기봉을 찿아서....

   태을봉에서의 나)

 

  (수암봉에세 바라본 태을봉)

 

  수리산에서의 백미는 내생각으로는 태을봉에서 슬기봉에 이르는 능선길이리라. 특히 태을봉에서 조금 내려가다 보면 병풍바위가 나온다. 약30여미터 이어지는 바윗길은 아기자기하다. 세로로 30도 정도 기울어진 칼바위 형태의 바위가 제법 날카롭다. 이길을 속살(?=맨발)을 보인채 걷기가 좀 부담스럽지만 새앤한테 아프단 소릴 할 수도 없고 그냥 앞으로 나간다. 숲속 여기저기에 점심식사와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로 무지 붐빈다. 병풍바위를 지나면 한동안 내리막. 이후 수암봉능선이 맞은편으로 펼쳐지는 전망 좋은 바위봉을 지나면 사거리안부(갈림길)이다. 사거리에서 좌측은 산본으로 우측은 병목안으로 하산이 가능하단다. 이정표상에 표시는 없지만 우측으로 내려가 수리산 산허리를 휘감으며 제1, 제2전망대를 거쳐 병목석탑 방향으로 하산하는 길은 산책코스로 더없이 부드럽고 쾌적한 길이란다. 그러나 나는 아직 배고프다. 산행에. 그래서 다음번 멀티 오르가즘이 기다리는 슬기봉을 향한다. 안부에서부터는 다시 오르막길이다. 이길을 올라 봉우리를 만난다. 군부대가 정상을 찿이하고 있고 슬기봉 표지석을 찿을 수 없다. 내가 못나서 그런건지, 아님 군부대 때문에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슬기봉이라는 오르가즘을 맛보긴 틀렸나보다. 그래서 슬기봉을 지나 주능선은 군부대가 찿이하고 있어 좌측으로 난 길을 가야하는데 요즈음 한창 등산로 계단을 설치하기 위해 작업중이어서 더 힘들고 혼잡하다. 국방을 위해서 필요한 건물들이겠지만, 저 아름다운 산하가 여기저기 저렇게 흉물스럽게 놓여있고, 등산객들에게 못가거나 돌아다녀야 하는 불편이 언제쯤이면 가능할까.

 

  (병풍바위 한 끝자락에서 휴식을 취하며.... 하늘이 예술이다)

 

  (수암봉에서 바라본 슬기봉)

 

  그렇게 어렵게 내려오다 보면 부대 정문을 만나게 되고 그곳에서 임도를 따라 조금 내려오면 좌측으로 수암봉이라는 아주 작은 표시판을 만나게 되고, 슬기봉에서 제대로 못느낀 수리산의 멀티 오르가즘을 느끼기 위해 좌측길을 따라 수리산의 또다른 성감대 수암봉으로 향한다. 수리산은 대체로 부드러운 산이지만 그 중 수암봉의 산세는 주위를 압도하는 힘이 있다. 수리산에서 수암봉(395m)보다도 높은 봉우리가 많지만 수암봉은 수리산의 상징이다.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유순한 주위의 봉우리들에 비해 독보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며 비상을 하기 위한 매를 연상케 한다. 수리산의 명칭이 수리사에서 유래되었다지만 어쩌면 수리(매)에서 유래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옛애인 광교산과 달리 새애인 수리산은 그동안의 거시기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 좀더 거시기 해달라고 막걸리 대접도 한다. 수암산을 향하는 8부능선 정도에 막걸리행상이 있다. 아마도 산행중의 막걸리 전국 고시가격은 2000원인가 보다. 여기서 나도 막걸리 한잔을 드리킨다. 전국 통일의 멸치와 마늘쫑을 고추장에 찍어 안주를 삼고 말이다. 맛이 기가 막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내애인 광교산도 이렇게 센스있으면 좋으련만 광교산은 기품있고, 고고한 분이셔서 이런 음주가무는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헬기장을 지나 바위길을 올라 바위덩어리 수암봉에 선다(14:20). 바라보는 수암봉 만큼이나 정상에서의 전망도 이에 못지 않다. 시흥시와 안산시가 발아래 있고 끝없이 줄을 그리는 서울외곽고속도로가 너른 평야에 긴 줄을 그리고 있다.

 

  (수암봉에서의 나)

 

  단풍이 물든 추색에 취해, 한잔한 막걸리에 취해, 수암봉이라는 여인내가 발산하는 오르가즘에 취해, 30여분을 쉰뒤 14시50분 하산길에 오른다. 그리고 내려오는 길에 새애인 수리산이 제공하는 마지막 접대인 막걸리 한잔을 더 사마시고 길을 재촉한다. 수암봉에서의 하산은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으나 나는 U자형 수리산을 일주하기 위해 창박골로 길을 잡았으나, 초행길이어서 내려오다 보니 병목안 시민공원으로 내려오게 되었다(15시45분). 이렇게 해서 내속살(?=맨발)로 수리산의 멀티 성감대인 관모봉, 태을봉, 슬기봉, 수암봉을 거시기하고 새애인의 멀티 오르가즘을 감상하며 끝낸 수리산 일주였다.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