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이 되어 올라본 토함산
● 산행일시 : 2008. 10. 25(토)
● 누구랑 : 대학동문 산악회랑
토함산에 올랐어라 해를 안고 앉았어라
가슴 속에 품었어라 세월도
아픔도 품어 버렸어라
터져 부서질 듯
미소 짓는 님의 얼굴에도
천년의 풍파 세월 담겼어라
바람 속에 실았어라
흙이 되어 남았어라
님들의 하신 양
가슴 속에 사무쳐서 좋았어라 아하
한 발 두 발 걸어서 올라라
맨발로 땀 흘려 올라라
그 몸뚱이 하나 발바닥 둘을
천년의 두께로 떠바쳐라
산산히 가루져
공중에 흩어진
아침 그 빛을 기다려
하늘을 우러러 미소로 웃는 돌이 되거라
힘차게 뻗었어라
하늘 향해 벌렸어라
팔을 든 채 이대로
또 다시 천년을 더 하겠어라
세월이 흐른 뒤 다시 찾는 님 하나 있어
천년 더 한 이 가슴을
딛고 서게 아하
한 발 두 발 걸어서 올라라
맨발로 땀 흘려 올라라
그 몸뚱이 하나 발바닥 둘을
천 년의 두께로 떠바쳐라
산산히 가루져 공중에 흩어진 아침
그 빛을 기다려
하늘을 우러러 미소로 웃는 돌이 되거라
한 발 두 발 걸어서 올라라
맨발로 땀 흘려 올라라
그 몸뚱이 하나 발바닥 둘을
천 년의 두께로 떠바쳐라
산산히 가루져 공중에 흩어진 아침
그 빛을 기다려
하늘을 우러러 미소로 웃는 돌이 되거라
(토함산/송창식노래)
이 노래속의 주무대인 천년고도 신라의 수도 경주의 불국사, 석굴암을 둘러보고 토함산도 올라보기 위해 동문들 20여명과 출발했다. 경주는 중학교 2학년때 1,900원을 내고, 500원의 용돈을 받아들고, 발안-수원은 버스로, 수원-경주간은 콩나물 완행열차를 타고 수학여행을 다녀온곳이고, 1994년인가 초등학생인 아이들의 현장학습 겸해서 여름휴가 겸해서 와 본적이 있기는 하지만, 이번 여행은 남달랐다. 동창회산악회가 1년에 한두번 지방의 동문들과 연합산행을 하곤 하는데 이번에는 울산,포항,경주 쪽 동문들과의 만남의 자리였던 것이다. 중학교 수행여행 시절의 사진을 보니 그때 우리학교에서 가장 총각선생님들의 애간장을 녹였던 김미자 미술선생님과의 사진도 있었다. 꽤나 도회적인 인상을 풍겼던 미술선생님은 한창 사춘기에 접어든 우리들 마음을 설레이게 하였고, 짓꿋은 몇몇 아이들은 미술시간에 선생님 주위에 몰려들어 뭔가를 설명들을 때면 슬며시 뒤에서 거울을 마루바닥쪽에 대고는 선생님의 은밀한곳을 훔쳐보기도 하였다. 물론 나는 그것을 부러워하는 촌띠기 소년이었고... 또한 국어선생님이었던 노OO선생님과의 연애설이 나돌때는 괜한 질투심을 느끼기도 하였고... 후일담이지만 OOO선생님과 OOO 선생님의 연애는 사실이었다나. 동창 0 0 이가 그 사랑의 편지 메신저 역할을 하였다니 말이다. 옛날 중학교시절의 경주 수학여행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괜한 감상에 젖어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다.
중학시절 수학여행 <다보탑앞에서(가운데가 김미자 선생님)>
중학시절 수학여행(불국사 대웅전앞에서)
하여간 수원을 출발한지 4시간여만에 경주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점심식사을 하고 본격적인 불국사와 석굴암 투어에 들어갔다. 특히 그곳에서 대우해양조선에서 전무직을 마치고 성진지오텍(주)의 사장으로 있는 신언수 동문의 호의로 문화재해설사까지 대동하여 자세한 설명을 들어가면서, 신라천년의 지기를 받기 위해 맨발로 부처님의 나라인 불국을 약 1시간에 걸쳐 둘러보았다.
불국사(佛國寺)는 경상북도 경주시 토함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다. 한국을 대표하는 사찰이며, 이제 세계 문화유산으로서의 위상을 함께 간직하게 된 유서 깊은 도량이다. 먼저 불국사의 사찰 이름을 주목해 보면, ‘불국’은 글자 그대로 부처님의 나라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즉 불국사는 신라인이 그린 불국, 이상적인 피안의 세계를 지상에 옮겨 놓은 것으로 법화경에 근거한 석가모니불의 사바세계와 무량수경에 근거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 및 화엄경에 근거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를 형상화한 것이다. 우리 중생들이 살고 있는 이 사바세계를 차안(此岸)이라고 한다면, 부처님의 나라 불국토는 피안(彼岸)으로 부른다. 온갖 번뇌와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하는 차안의 세계에 비해 피안의 세계는 정토(淨土), 그 자체다. 그래서 사바세계의 불자들은 불국토에 태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하며, 더 나아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차안의 세계를 불국토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불국사는 이러한 신라인들의 염원이 그대로 반영된 사찰 이름을 지니고 있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신라 땅 한 곳에 불국토의 염원을 담아놓은 사찰을 건립함으로써 이곳이 곧 불국토라는 정토사상의 실현을 간절히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신라인들의 염원은 불국사의 전체적 가람 배치를 통해 그대로 구현되고 있다.
(불국을 돌아보며 앞줄 왼쪽 맨발이 나)
불국사의 건축구조를 살펴보면 크게 두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차안과 피안의 세계를 한 공간 속에 표현해 놓고 있으면서도 석축과 계단, 연못(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등을 통해 두 세계를 명확히 구분해 놓고 있다. 그 하나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청운교, 백운교, 자하문, 범영루, 자경루, 다보탑과 석가탑, 무설전 등이 있는 구역이고 다른 하나는 극락전을 중심으로 칠보교, 연화교, 안양문 등이 있는 구역이다. 불교의 가르침에 의한다면 사바세계와 불국토는 결코 둘이 아니다. 하지만 사바세계에서 불국토에 이르는 길은 매우 험난하며 그 이르는 길을 이렇게 계단이나 연못 등으로 상징해 놓은 것이다.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다른 불국의 세계에서는 크게 세 개의 구역으로 나뉜 불국토를 만나게 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주재하는 대웅전 영역, 아미타 부처님의 극락세계를 표현한 극락전 영역, 그리고 비로자나 부처님의 연화장세계가 구현된 비로전 영역 등이 그것이다. 이들 세 개의 영역이 한 공간 안에 조화롭게 자리하고 있는 불국사의 모습이 바로 신라인들이 그려내고자 했던 이상적 불국의 세계였을 것이다.
불국사의 본래 이름은 ‘화엄불국사’였다고 한다. 이렇게 세 개의 서로 다른 불국토를 한 공간 안에 표현하고자 했던 정신이 바로 화엄(華嚴)의 가르침이요 화엄의 세계라고 이해할 수 있다. 화엄사상은 창건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불국사의 사격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불교 사상이라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불국사 전면에서 바라볼때 장대하고 독특한 석조구조는 창건당시 8세기 유물이고 그 위의 목조건물은 병화로 소실되어 18세기에 중창한 것이며, 회랑은 1960년대에 복원한 것이다. 불국사의 석조 구조는 길고 짧은 장대석, 아치석, 둥글게 조출된 기둥석, 난간석 등 잘 다듬은 다양한 형태의 석재로 화려하게 구성되었는데 특히 연화교와 칠보교의 정교하게 잘 다듬은 돌기둥과 둥근 돌난간은 그 정교함, 장엄함과 부드러움이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불국사의 높이 8.2m의 삼층석탑인 석가탑은 각 부분의 비례와 전체의 균형이 알맞아 간결하고 장중한 멋이 있으며, 높이 10.4m의 다보탑은 정사각형 기단위에 여러가지 정교하게 다듬은 석재를 목재건축처럼 짜맞추었는데 복잡하고 화려한 장엄미, 독특한 구조와 독창적인 표현법은 예술성이 매우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다음으로 버스로 이동하여 석굴암에 도착이다.최재호님이 쓴 석굴암이라는 시에 이수인님이 곡을 붙인 석굴암이라는 노래는 이렇다.
토함산 잦은 고개 돌아보면 쪽빛 동해
낙락한 장송등걸 다래넝쿨 휘감기고
다람쥐 자로 앞질러 발을 멎게 하여라
한 고비 또 한 고비 올라서면 넓은 한계
스러진 신라 천 년 꿈도 서려 감도는가
막달아 아늑한 여기 굴이 하나 열렸네
칡뿌리 엉긴 흙을 둘러 막은 십륙 나한
차가운 이끼 속에 푸른 숨결 들려오고
연좌에 앉으신 님은 웃음마저 조으셔라
(석굴암-최재호詩-이수인曲)
석굴암(현재는 유리로 막혀있음, 퍼온사진임)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을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으며, 건립 당시에는 석불사라고 불렀다. 경덕왕은 신라 중기의 임금으로 그의 재위기간(742∼765) 동안 신라의 불교예술이 전성기를 이루게 되는데, 석굴암 외에도 불국사, 다보탑, 석가탑, 황룡사종 등 많은 문화재들이 이때 만들어졌다.
토함산 중턱에 백색의 화강암을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석굴을 만들고, 내부공간에 본존불인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그 주위 벽면에 보살상 및 제자상과 역사상, 천왕상 등 총 40구의 불상을 조각했으나 지금은 38구만이 남아있다. 석굴암 석굴의 구조는 입구인 직사각형의 전실(前室)과 원형의 주실(主室)이 복도 역할을 하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360여 개의 넓적한 돌로 원형 주실의 천장을 교묘하게 구축한 건축 기법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뛰어난 기술이다.
석굴암 석굴의 입구에 해당하는 전실에는 좌우로 4구(軀)씩 팔부신장상을 두고 있고, 통로 좌우 입구에는 금강역사상을 조각하였으며, 좁은 통로에는 좌우로 2구씩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다. 원형의 주실 입구에는 좌우로 8각의 돌기둥을 세우고, 주실 안에는 본존불이 중심에서 약간 뒤쪽에 안치되어 있다. 주실의 벽면에는 입구에서부터 천부상 2구, 보살상 2구, 나한상 10구가 채워지고, 본존불 뒷면 둥근 벽에는 석굴 안에서 가장 정교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서 있다.
원숙한 조각 기법과 사실적인 표현으로 완벽하게 형상화된 본존불, 얼굴과 온몸이 화려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 용맹스런 인왕상, 위엄있는 모습의 사천왕상, 유연하고 우아한 모습의 각종 보살상, 저마다 개성있는 표현을 하고 있는 나한상 등 이곳에 만들어진 모든 조각품들은 동아시아 불교조각에서 최고의 걸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특히 주실 안에 모시고 있는 본존불의 고요한 모습은 석굴 전체에서 풍기는 은밀한 분위기 속에서 신비로움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의 본존불은 내면에 깊고 숭고한 마음을 간직한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모든 중생들에게 자비로움이 저절로 전해질 듯 하다.
석굴암 석굴은 신라 불교예술의 전성기에 이룩된 최고 걸작으로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어 더욱 돋보인다. 현재 석굴암 석굴은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석굴암은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록되었다.
석굴암 관광을 마치고 토함산을 오른다. 원래 불국사부터 올라야 하는데, 여러 일정 때문에 석굴암부터 오르기 시작하니 산행이라기보다는 그냥 산보 정도라고나 해야 할까부다.
토함산은 태백산맥의 한 줄기인 해안산맥에 속해 있으며 해발 745m로 이 산맥 가운데 가장 높은 산이다. 이로 인해 경북 동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달리는 산맥을 토함산맥으로 부르기도 한다.
토함산에서 대학 동기들과
등산후 가끔은 이렇게 모여 앉아 소주 한잔 곁들이는것도 즐겁지 아니한가........
토함산 일출광경(퍼온사진임)
그리고 여기 100여년전 불국사의 옛모습을 둘러본다.
1... 1909년경 정면에서 바라본 대웅전의 모습... 2... 북서쪽에서 본 대웅전1924년 수리전 지붕에 보이는 풀들... 3... 동쪽에서 본 불국사 1914년 뒷쪽에 다보탑이 보인다... 4... 불국사 극락전 앞 칠보교와 연화교 1919년... 5... 1919년의 불국사, 자하문의 지붕은 허물어지고, 청운교, 백운교는 겨우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 6... 청운교, 백운교의 허물어진 모습... 7... 1924년 복원전의 좌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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