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나그네/맨발걷기 경험담

바다와 진달래 군락이 어우러진 혈구산과의 만남

맨발나그네 2014. 4. 13. 23:46

 

바다와 진달래 군락이 어우러진 혈구산과의 만남

 

● 산 행 지 : 강화 혈구산( 466m)

● 산행일시 : 2014년 4월 13일 (日)

● 누 구 랑 : 금호산악회

● 산행코스 : 고비고개-혈구산 정상-고비고개

 

 

▲ 혈구산 정상에서 오늘 함께한 일행들

 

  

  혈구산은 강화도에 위치한 산이다.

  강화(江華)라는 지명에 대해 찾아보니 첫음절인 강은 강(江)과 연관된 것이 틀림없는 것 같다. 금강산에서 첫물이 솟아 철원, 화천, 춘천, 가평을 돌고 돌아 내려 온 북한강과 삼척 대덕산에서 발원하여 영월, 단양, 제천, 충주를 휘돌아 내려 온 남한강이 양수리에서 만나 한몸이 되어 흘러온 한강, 함경남도 마식령에서 발원하여 강원도와 경기도 북부를 거쳐 흘러온 임진강, 황해도 수안군 언진산에서 발원하여 황해도 동부지역을 흘러온 예성강이 한데 어우러져 서해로 흘러드는 강 어구이기에 붙여진 음절이라 보는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다만 두 번째 음절인 화(華)에 대해서는 <물의 전설(2000.10.30,도서출판 창해)>에 의하면 마리산 참성단에서 겨레의 영화를 빌며 성화의 불꽃을 밝혔기에 붙인 이름이라 하고, 고을학교 교장 최연(고을연구전문가)님에 의하면 한강, 임진강, 예성강이 한데 어우러져 서해로 흘러드는 강들이 만나는 아래 고을로서 강하(江下)라 부르다가 강아래 아름다운 고을이란 뜻으로 강화(江華)로 바꿔 부르게 된 것으로 본다고 한다.

 

 

▲ 혈구산 정상 부근의 진달래 군락

 

 

  이름으로 보나 풍광으로 보나 강화도는 참 아름다운 고장이지만, 역사적으로는 우리나라 5000여년 역사와 영욕을 함께한 고장이다. 옛 기록들에 의하면 단군이 나라를 세운 뒤 마니산에 참성단을 쌓고 천제를 올렸으며, 세 아들로 하여금 삼랑성(三郞城)을 쌓게 하였다 한다. 이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강화도에는 무려 150여기의 고인돌이 널려있으며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몽골의 침입을 받자 고려조정은 강화도로 천도하여 고려궁을 짓고 고종과 원종사이 39년간이나 고려의 도읍 노릇을 한 곳이기도 하다. 조선조 정묘호란 때는 인조가 옮겨왔으나 그예나 후금(청나라)와 굴욕적인 형제의 맹약을 맺은 치욕의 역사를 지켜 본 고장이기도 하다. 이후 조선조말이 되면 지정학적인 위치로 인하여 1866년 병인양요, 1875년 운요호(운양호)사건, 1871년 신미양요 등 수난의 역사를 지켜 본 땅이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강화도는 역사박물관 자체라고 말한다.

 

 

▲ 혈구산 정상에서 건너다 보이는 고려산 

 

 

  그곳 강화도에는 민족의 정기가 서린 마리산(마니산, 472m), 고구려 연개소문 장군이 태어났다는 고려산(436m), 봉화대가 있어 적의 침공을 가장 먼저 알렸던 봉천산(291m)과 함께 오늘 우리가 걸어 볼 혈구산이 있다. 상고시대에는 강화의 진산 역할을 해왔으나 작금에는 민족의 성산이라 일컬어지는 마리산에 눌리고 진달래로 유명한 고려산에 가려있는 혈구산이다. 혈구(穴口)는 고구려 때 강화를 부르던 옛지명이라 한다. 혈구라는 말은 한강을 통해 육지로 접근할 수 있기에 그 구멍의 입구에 자리한 산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 초입의 급경사지를 오르고 있다

 

 

  오전 9시 수원을 늦으막히 출발하여서 그런지 강화대교를 건너서 부터는 여간 정체가 되는 것이 아니다. 봄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강화를 찾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 품에 안길 혈구산의 바로 옆산인 고려산은 진달래축제가 아직 시작도 되기 전인데도 차와 인파로 붐벼 우리의 발걸음을 더디게 하고 있다. 해서 11시반이나 되어 들머리인 고비고개에 차량을 주차하고 원점회귀 산행을 시작한다. 초입의 경사가 심해 조금 어렵지만 일단 안부에 오르면 어렵지 않게 정상으로 향할 수 있다. 초입부터 진달래 군락을 이뤄 아름다운 산길을 걷게 된다.

 

 

▲ 혈구산에서의 맨발나그네

 

  고비고개부터 정상까지의 능선에는 4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대부분 우회로가 있어 그 길을 이용하여 걷는다. 4번째 봉우리가 정상이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막힘이 없으나 오늘도 운무인지 미세먼지에 시야가 좋지 않은게 흠이다. 어째거나 북으로는 고려산이 마주 보이고, 동으로는 강화읍내가 시야에 들어온다. 남으로는 진강산과 마니산이 실루엣을 이루고, 서쪽으로는 외포리 앞 서해바다가 실루엣을 이룬다. 정상 주변의 진달래 군락은 또다시 맨발나그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오래간만에 불타는 듯한 진달래 군락지와의 만남이다.

 

 

▲ 혈구산에서 만난 진달래꽃

 

 

  진달래는 잎이 나오기 전인 4월부터 가지 끝에 2~5송이씩 모여 피며, 화관은 벌어진 깔때기 모양이고 지름이 4∼5cm이며 붉은빛이 강한 자주색 또는 연한 붉은 색이고 겉에 털이 있으며 끝이 5개로 갈라진다. 수술은 10개이고 수술대 밑 부분에 흰색 털이 있으며, 암술은 1개이고 수술보다 훨씬 길다. 진달래의 전설을 살펴보니 하늘나라 선녀의 다리를 치료해 준 나무꾼은 그것이 인연이 되어 선녀와 결혼하고 예쁜 딸을 낳아 이름을 달래라고 지었다. 어느덧 예쁘게 자라난 달래는 새로 부임한 고을 수령의 첩이 되는 것을 한사코 거절했다. 화가 난 고을 수령이 달래를 죽이자, 나무꾼도 딸을 부둥켜안고 울다가 그 자리에서 죽게 되었다. 그런데 달래의 시체는 온데간데없어 지고, 나무꾼의 시체에는 빨간 꽃이 피어 무덤을 만들었다. 그 후 사람들은 이 꽃을 나무꾼의 성인‘진’과 딸의 이름인 달래를 합쳐 진달래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편 진달래꽃은 두견화라고도 하는데, 옛날 촉나라 임금 우두가 억울하게 죽어 그 넋이 두견새가 되었고, 두견새가 울면서 토한 피가 두견화로 변했다고도 한다.

 

 

 

 

진달래는 여러 시인들이 자주 읊던 소재이다. 이흥렬의 가곡 「바위고개」는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 님이 그리워 눈물납니다

고개위에 숨어서 기다리던 님

그리워 그리워 눈물납니다

 

바위고개 피인 꽃 진달래 꽃은

우리 님이 즐겨즐겨 꺾어주던 꽃

님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님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 남이 그리워 하도 그리워

십여년간 머슴살이 하도 서러워

진달래꽃 안고서 눈물집니다.

 

라고 조국의 비운을 노래한다. 바위고개는 우리의 삼천리 금수강산이고 진달래는 우리 겨레란다.

 

 

 

 

어제는 청석령을 오늘은 고령을 넘으니

겹친 봉우리 다 지나 내 집에 온 것 같네

사월이라 변방의 산은 봄바람 차가운데

숲 사이에 활짝 핀 두견화 보기 좋구나

昨行靑石今高嶺

過盡重巒似到家

四月邊山寒料峭

林間喜見杜鵑花

 

『백사별집』제5권 조천록에 수록된 이항복의 「고령(高嶺)의 고개 위에 두견화(杜鵑花)가 만발하다」이다. 사행에서 돌아오던 백사 이항복이 고향의 경계에 들어와 비로소 두견화를 보며 안온함을 느끼다는 내용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원수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지었다는 「고향의 봄」이다. 전국민이 애송하는 동요로 한국인은 자연스럽게 누구나 고향하면 진달래꽃을 떠올린다. 진달래꽃은 고향의 기억이다.

 

 

 

 

삼월 나면서 활짝 핀

아! 늦봄의 진달래꽃이여

남이 부러워할 자태를

지니고 태어나셨도다.

아! 동동다리

   

월령체 노래인 고려가요 「동동」의 4연에 있는 삼월의 월령체 노래로 남성의 아름다운 자태를 진달래꽃에 비유한 노래이다.

 

 

 

 

천지가 넓고 넓은데 나는 집이 없으니

하루 저녁에 등불 돋우고 아홉 번 일어나 탄식하네

누가 멀리 나온 사람에게 귀가 있게 하였는가

두견새가 두견꽃에 피 쏟으며 우나니

乾坤蕩蕩我無家

一夕挑燈九起嗟

誰使遠遊人有耳

杜鵑啼血杜鵑花

 

윤여형의 「관동여야(關東旅夜)」<『동문선』 제21권, 칠언절구(七言絶句)>이다.

 

 

 

 

일연이 쓴『삼국유사』, 제2권 제2 기이편(紀異篇) 하(下)의 「수로부인(水路夫人)」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성덕왕 때에 순정공(純貞公)이 강릉태수(江陵太守)―지금의 명주(溟州)―로 부임할 때 바닷가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그 곁에는 바위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쳐서 바다를 굽어보고 있는데, 높이는 천길이나 되는 그 위에는 척촉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공의 부인 수로(水路)는 이것을 보고 가까이 모시던 이들에게 청했다.

“누가 저 꽃을 꺾어다 주겠소?”

종자들은 대답했다.

“그곳은 사람의 발자취가 이르지 못하는 곳입니다.”

그러고는 모두 안 되겠다 했다. 그 곁으로 한 늙은이가 암소를 끌고 지나가다가 부인의 말을 듣고 그 꽃을 꺾어와서는 또한 가사를 지어 바쳤다. 그 늙은이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노인의 <헌화가(獻花歌)>는 이렇다.

짙붉은 바위 가에

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받자오리다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먼저 진달래꽃이 등장하는 작품이란다. 소를 끌고 가던 노인이 꺽어 수로부인에게 바친 척촉(躑躅)이라는 꽃이 바로 진달래의 한자 표기이다. 한국의 미인을 논하매 있어 수로부인은 상당한 미인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진달래꽃이야말로 수로부인의 미모와 대등함을 의미한다고 한다.

 

 

 

 

연꽃이 좋다하여도

연못 안에 늘어지고요

버들꽃이 좋다하여도

눈비 맞아서 부러지고요

설중매화가 좋다하여도

눈비 맞아서 부러지고요

해바라기가 좋다하여도

해를 안고야 돌아가고

외철쭉 진달래야 이산 저산 만산중에

봉지봉지 피었구나.

 

강릉단오제의 후반부 극락으로 가는 망자의 넋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 불리는 「꽃굿노래」다. 그야말로 진달래가 가장 귀한 꽃임을 찬양하고 있다.

 

 

 

 

하지만 진달래꽃하면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압권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떠나는 임을 보내는 여인의 심정을 표현할 글이라 한다. 아름답고 처절한 사랑이 자기희생적이고 이타적인 인고의 마음을 바탕으로 승화시켰다. 이어령님은 이 시에 다른 해석을 하고 있는데 이별의 가정을 통해 현재의 사랑하는 마음을 나타낸 것이라 한다. 밤의 어둠을 바탕으로 삼지 않고서는 별빛이 영롱함을 그려낼 수 없듯이 이별의 슬픔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서는 사랑의 기쁨을 가시화할 수 없는 역설로 빚어진 것이 바로 소월의 「진달래꽃」이라고 한다. 또 다른 해석으로 마광수 교수는 『문학과 성』에서 이 시를 마조히즘적 쾌락에의 동경이라고 한다. 「진달래꽃」속에 매정하게 떠나는 님은 새디스트요, 버림받은 이 시의 화자는 마조히스트라는 것이다. 마조히스트인 이 시의 주인공은 버림받아도 좋으니 제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밟아 달라고 님에게 호소한다.

“꽃으로 상징되는 자기 자신 또는 자신의 성기를 밟아 달라고 간청하는 것은 성적 마조히즘이요, 님이 자기를 버리더라도 그것을 고맙게 감수하고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는 것은 님이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자기는 무조건 복종만 하겠고 그것이 오히려 즐겁다고 생각하는 정신적 마조히즘이다”라고 이 책에서 마광수 교수는 말한다.

 

 

 

 

 

그러고 보니 진달래꽃은 작자에 따라 겨레가 되기도 하고 고향길이자 고향에 대한 기억이 되기도 한다.  고려가요 「동동」에서는 남성미로 표현되기도 하고 윤여형의 「관동여야(關東旅夜)」에서는 정처없이 떠도는 방황으로 형상화되기도 하고, 작품에 따라 아름다운 여인, 슬픔, 서글픔, 이별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외에도 진달래꽃을 수많은 작품들으로 녹여낸다. 하지만 지면관계상 여기서 멈추려 한다.

 

  진달래꽃은 날 것으로 먹기도 하며 화채나 화전을 부쳐 먹기도 한다. 진달래꽃으로 술을 담가 100일이 지나면 먹을 수 있는데 오늘은 산 정상 부근에서 그저 두견화를 감상하며 진달래꽃으로 담근 두견주가 아닌 소주를 털어 넣는다. 그렇게 간단히 요기를 하며 진달래꽃을 감상하곤 들머리였던 고비고개로 내려와 외포리 근처의 식당으로 옮겨 계절의 별미인 꽃게탕과 쭈꾸미 샤브샤브로 술 한잔을 기울이니 오늘도 일일선(一日仙)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 댓 글 )

 

좋은친구 14.04.14. 17:02 new
강화를 그렇게 갔었어도
마니산 과 고려산 정도로만 알았지
혈구산이 있는것도 첨 알았슴다
또한 진달래꽃의 두견화의 슬픈 전설이 있는것도
첨 알았슴다
향도 없고 이쁘지도 않은 진달래꽃을
이렇게 많은 지인들이 진달래를 찬미한즐 또한 몰랐슴다
그저 진달래꽃하면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란 시
정도로만 알았지
오늘은 진달래꽃의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봅니다
좋은 자료 늘 감사합니다

 

 

따스한마음(회장) 14.04.14. 17:31 new
막바지 봄을 만끽하셨네요 반가운 옛 동려들과의 회포또한 행복했겠습니다
언제나 건강과 즐거움으로 멋진 시간 이어가시고 언제나 화이팅 입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ㅎㅎㅎ
 
아름다운 14.04.14. 22:35 new
님은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진달래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죽어도 아니눈물 흘리오리다
멋집니다

 

홍순근18.19 14.04.14. 18:44 new
오메 ! 멋찐곳...
진달래 핑크속에 있으니 잘 어울리십니다. ㅎㅎㅎ

 

도요새의 눈 14.04.15. 11:32
강화 혈구산 가셨군요
덕분에 구경 잘하고 갑니다
점심 맛있게 드세요

 

브레드 14.04.15. 11:11
헉!~ 꽃게탕 쭈꾸미 샤브샤브 ! 나그네님 한번 따라가야 겠습니다.^*^

 

지기호 14.04.15. 12:44
강화 헐구산도 매력있어 보이고
4월에 피는 진달래꽃이 진한 분홍색으로
내마음을 사로잡네 구랴 ~~~~~

 

이길선 14.04.14. 17:46
멋진 기행기임다......
 
Stefano(이재만) 14.04.23. 00:10 new
잘보고 흔적 남깁니다.

 

  • 해말금이

    산불났나요? 멋집니다. 2014.04.14 17:35

  • 아리수

    진달래꽃을 노래한 소월의 마음이 저 싸가지 없는 인간들에 의해 마구 짓이겨지는것 같네요.
    우리네 어릴적에는 배고프니까 따먹는 그저 배고픔을 달래는 꽃이였는데...
    2014.04.15 15:41

  • 산아줌마

    진달래 향기를 가득 담으셨네요. 즐감입니다. 2014.04.15 17:24

  • 사무라이

    진달래 꽃말을 이제 좀 알것 같아요. 너무 멋진 글입니다. 2014.04.16 12:12

  • 황소고집

    국어의 아름다움이 여기에 보이네요. 즐감입니다. 2014.04.16 12:24

  • 연아

    멋잇는 산행기네요. ㅉㅉㅉ 2014.04.17 12:08

  • 닥터진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고..어릴적 그리움의 샘물을 터트리네요. 2014.04.17 16:56

  • 문희

    해박한 지식과 미려한 글쏨씨로 산행기가 찰기가 있어요. ㅎㅎㅎ 2014.04.18 11:16

  • 소영

    멋있어요. 가보고 싶어집니다. 2014.04.22 10:50

  • 역발산

    진달래의 아름다운 꽃말이 그리움처럼 번집니다. 2014.04.22 15:46

  • 훈남

    마지막 뒷풀이가 더 좋았습니다. ㅎㅎㅎ 2014.04.23 13:00

  • 지영이

    너무 멋지네요. ㅉㅉㅉ 2014.04.24 19:03

  • 스노맨

    샤브샤브로 한잔 쭈~우욱 저도 반나절 선이라도...ㅎㅎㅎ 2014.04.25 12:29

  • 연정이

    산도 좋고..전망도 좋고..친구도 좋고..한잔술도 좋고.. 이래서 일일선인가? 2014.04.26 06:46

  • 순희

    산친구 술친구 너무 보기좋고 부럽네요.ㅎ
    혈구산 처음 들어 보는데 검색해보고 메모해뒀다가 꼭한번 올라봐야 겠네요~
    좋은사진 잘봅니다^^
    2014.05.13 18:34

  • 이슬

    붉게 물들었네요 2014.05.15 18:03

  • jdk620102

    저도 올 진달래 축제때 다녀왔습니다..
    고려산에비해 사람이 적어 편안한 산행을 할수있는 곳입니다~~
    2014.05.1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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