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나그네/맨발걷기 경험담

두 기인(奇人) 수리산을 걷다

맨발나그네 2014. 6. 30. 23:47

 

 

두 기인(奇人) 수리산을 걷다

 

● 어 디 를 : 수리산

● 언 제 : 2014년 6월 29일(日)

● 누 구 랑 : 신겸수와

● 코 스 는 : 산본역-태을봉-관모봉-금정역

 

 

▲ 태을봉에서 두 또라이

 

  오늘 수리산을 중학교 동창인 신겸수군과 걷는다. 그와 만난게 1967년이니 벌써 47여년전이다. 중학교 3년간 2번인지 3번 같은 반을 하였으니 꽤 깊은 인연이다. 중학교 3학년 마지막 겨울방학을 맞아 그와 나는 이별여행을 떠난다. 그는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이 결정되어 있었고, 나는 여러 가지 사정상 시골에 있는 고등학교를 가지않으면 안될 처지였기에 헤어짐이 섭섭하여 떠난 여행이다. 그시절 까까머리 중학생이 떠날 수 있는 여행이란 쉽지 않았지만 지금의 평택항 근처인 그의 고모님 댁으로 떠난 여행이다. 그 시절 한적한 어촌이었는데, 며칠간이나 겨울 바람을 맞으며 바닷가를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그 이야기의 내용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우린 꽤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 이후 그는 서울의 모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영문학자가 되어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나는 턱걸이로 대학물을 얻어먹고 그럭저럭 생활하는 처지이었지만 이런저런 인연이 될 때마다 아주 가끔씩 얼굴을 보며 지내는 사이였는데 그가 얼마전 퇴임을 하여 서로 시간을 낼 수 있어 산행을 한 번 하기로 연락이 되었다. 그 연락이후 다시 일정을 맞추는데 서너달이 훌쩍 지나고서야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세상일이 바빠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와 함께 숲길을 걸을 수 있음은 행복이다.

 

  들머리는 전철 산본역이다. 역 대합실에서 우리의 조우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한 놈은 죽장에 삿갓까지 쓴 영락없는 김삿갓차림이요, 또 한 놈은 아예 집에서부터 맨발로 출발한 맨발나그네이니 왜 안그렇겠는가? 제목을 점잖게 빼느라고 기인(奇人)으로 표현했을 뿐이지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두 또라이들이라고 했을게 뻔하다.

 

 

▲ 전망대에서 신삿갓과 맨발나그네

 

▲ 전망대에서의 신삿갓

 

▲ 전망대에서 본 수리산의 명물 병풍바위와 그 뒤로 수암봉이 보인다

 

▲ 전망대에서 본 슬기봉

 

▲ 전망대에서 남쪽으로 본 산본시내

 

 

  어째거나 두 또라이는 수리산 태을봉을 향한다. 산본역쪽에서 태을봉을 향하는 길은 꽤 된비얄이다.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며 쉬엄쉬엄 걷다보니 태을봉 못미쳐 전망대가 나오고 다시 약간 더 걸으니 안부부터는 능선길이다. 이때부터 그의 진가가 발휘된다. 이 노래 저 노래 흥얼거리더니 김삿갓이 구월산에서 학동들에게 들려주었다는 시조 한 수를 멋들어지게 뽐는다. 흥얼거리는 노래속에는 명국환의 ‘방랑시인 김삿갓’ 노래도 들려온다. 그리고 도착한 태을봉이다.

 

 

▲ 태을봉에서 신삿갓과 맨발나그네

 

▲ 2008년 11월 태을봉에서의 맨발나그네 

 

 

  태을봉에서 우리의 차림은 사람들의 구경거리이다. 심지어 어느 등산객은 친구로부터 죽장과 삿갓을 빌려쓰고 사진까지 찍고 있다. 내가 닉네임을 맨발나그네라고 짓고는 시인 박목월의 ‘나그네’라는 시 속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처럼 살고자 흉내를 내고 있는데 이 친구는 자체가 그냥 신삿갓이다. 하긴 공학을 전공한 공돌이인 나에 비해 명색이 영문학을 전공하고 학자로서 후학을 가르쳐 온 친구이니 차원이 달라도 한참 다르겠지만 말이다.

 

  어째거나 맨발나그네로서 존경하는 나그네를 꼽으라면 『대동여지도』를 편찬한 김정호와 『택리지』를 저술한 이중환을 꼽는다. 허나 동경하는 나그네를 꼽으라면 주저함이 없이 매월당 김시습과 방랑시인 김병연을 꼽지않을 수 없다. 매월당 김시습은 세월을 잘못만나 1455년 수양대군(세조)의 왕위찬탈 소식을 듣고 3일간 통곡후에 보던 책을 모두 불사르고 스스로 머리를 깍고 승려가 되어 산사를 떠나 전국 각지를 유랑하며 많은 저술을 남긴 인물이다. 방랑시인 김삿갓이라 일컬어지는 김병연은 조상을 욕되게 하는 글로 장원급제를 하였다는 자책감에 22세부터 전국 방방곳곳을 떠돌아 다니며 시대상을 반영한 많은 시를 남기고 57세를 일기로 세상을 등진 사람이다. 이유와 어찌되었건 죽장에 삿갓쓰고 미투리신고 산수를 넘나들며 해학과 풍자로 한세상을 떠돌던 김병연의 삶이 부럽다.

 

  맨발나그네 그들의 발뒤꿈치도 못따라가겠지만 가끔씩 일일선(一日仙)이 되어 오늘처럼 전국의 애인(山)들과의 운우지정이나 나누려한다.

 

 

   

▲ 태을봉에서 관모봉으로 향하다 잠시 쉬며...

 

 

▲ 관모봉에서

 

 

▲ 관모봉에서 신삿갓이 풍경 스케치에 열중이다

 

 

▲ 관모봉 동쪽 풍경 스케치

 

 

 

▲ 스케치 속 풍경

 

  태을봉을 떠나 관모봉으로 향한다. 그리 어려움없는 코스이다. 다시 친구는 뭔가를 흥얼거린다. 그렇게 관모봉에 도착한 후 한참을 쉰다. 그는 다시 배낭을 뒤적이더니 스케치북을 꺼내 관모봉 서쪽 풍경을 스케치북에 담는다. 이 모두가 허겁지겁 산행을 따라다니며 운우지정 타령이나 늘어놓고, 일일선(一日仙)입네 하며 시도 때도 없이 유하주니 반야탕이니 하며 음주를 즐긴 나를 다시한번 초라하게 만든다.

 

 

▲  <산염불>을 흥얼거리며 유유자적 걷고 있는 신삿갓

 

 

  내려오는 길, 친구는 다시 들어본 적 없는 노래를 구성지게 읊어댄다. 물어보니 <산염불>이란다. 궁금하면 참지못하는 이 맨발나그네 집에 돌아와 술이 취했음에도 인터넷을 통해 <산염불>을 뒤적여본다. <산염불>은 평양식과 개성식으로 나눈다는데 그의 <산염불>의 후렴이 “에헤 에헤야 아미타불이로다”라 들리는 것으로 볼 때 평양식인 것 같다.

 

  대략 내용을 살펴보니

 

북망산천아 말 물어보자/영웅호걸 죽은 무덤이 몇몇이나 되며/절대가인 죽은 무덤이 몇일러냐

(후렴) 아하에 에헤에 에헤이 어허미/타아하 어히야 불이로다

 

서산낙조 떨어지는 해는/내일 아침이면 다시 돋건마는/황천길은 얼마나 먼지/한번 가면은 영절(永絶)이라

(후렴)

 

어젯밤에 꿈 좋더니/임에게서 편지왔네/그 편지를 받아다가/가슴 위에다 얹었더니/인철지 한장이 무겁겠소마는/가슴 답답해 못살겠네

(후렴)

 

활 지어 송지(松枝)에 걸고/옷은 벗어 남게 걸고/석침(石枕) 베고 누었으니/송풍은 거문고요/두견성은 노래로다/아마도 이 산중에/사무한신(事無閑身)은 나뿐인가

 

로 이어진다. 하지만 날머리 거의 다 내려와 약수터에서는 ‘약수터 다 왔으니 약수나 한 잔 마시고 가세~~’로 개작하여 부르는 것을 봐서 얼마던지 창자(唱者)에 의해 고쳐 부를 수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날머리 근처의 두부요리 식당에서 요기를 하고 산본재래시장을 거쳐 금정역을 끝으로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한다.

 

 

▲  산본재래시장을 둘러보고 있는 신삿갓

 

  오늘은 수리산의 일부구간을 한가로이 걸으며 눈이 즐겁고 귀가 즐거운 하루였다. 묵은지 같은 친구의 흥얼거리는 노래소리가 있고 <산염불>이 있어 귀가 즐거웠고, 도심속 오아시스에서 만난 풍경에 눈이 즐거운 하루다.

 

  동의보감을 쓴 허준은 '약보(藥補)보다 식보(食補)가 낫고, 식보보다는 행보(行補)가 낫다.'라고 하였으며, 히포크라테스는 ‘걷는 것은 인간에게 최고의 보약이다’라고 하였다한다. 다산 정약용은 자연속에서 한가로이 걷는 것을 청복(淸福:맑은 즐거움)이라 하였다. 플럼 빌리지(틱스님이 이끄는 영성 수행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는 베트남의 수도승 틱낫한은 그의 저서 <걷기명상>에서 '자유 때문입니다. 어떤 자유냐고요? 고민과 두려움 외로움, 그리고 계획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그러면서 땅과 발의 접촉을 즐깁니다. 그리고 온몸으로 호흡을 즐기지요.'라며 걷기에 대해 말한다. 오늘 친구 신겸수와 또라이가 되어 걸은 수리산은 청복이었다.

 

 

맨발나그네가 일일선(一日仙)이 되어 세상을 걷는 이야기 (  http://blog.daum.net/yooyh54/524 )

 

( 댓 글 )

 

김영희(고31) 14.07.01. 04:51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이런건 가 보다
아이들은 공주옷을 입으면 공주가되고
슈페맨옷을 입으면 슈퍼맨이 된다.
이 두사람 너그러이 서로의 세월을 품고
존경하며 그리워하는 겸허함의 옷을 입었지않은가!
내 좁은 가슴에 이런사랑 바래본다.
 
최원재(중18) 14.07.02. 12:33
산본재래시장에서는 신을 신고 다녀나봐요. 선배님
 
최원재(중18) 14.07.03. 09:54 new
성님 산본에 오시면 전화라도 주시면 피로연을 족발집에서 접대를... 아쉬웠습니다. 다음을 기약합니다.
 
신 선배님께서 정년을 하셨군요...
죽장에 삿갓쓰고 다니시는 모습이 예상치 않으십니다.ㅎㅎㅎ
유선배님의 맨발나그네 또한 그러하시구요...
재밋게 읽었습니다.

 

삿갓님이 복장만 제대로였으면 더욱 좋았을꺼 같은생각에 조금은 아쉽네요
두분의 늣은해후 끈끈한 우정이 그려집니다
좋은우정 즐겁고 행복하게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ㅎㅎㅎ
 
소리새 08:44 new
수리산역에서부터 종주를 했으면 좋았으련만.. 이제는 중생들의 관심을 은근히 즐기는 듯 하이.. ㅎㅎ
 
브레드 00:32 new
재미있게 잘읽었습니다 너무나 반가우셨겠어요. 조만간 다시오를 예정 산행지 인데. 미리 설명 잘해 주셨네요. 앞으로는 자주 만나 시나요? 언제 한번 산행때 같이 오셔요 ^*^

 

새별 17:13 new
아~ 부럽네요.
 
♡♡ 7월엔 ♡♡

1. 더 건 강 하 기♡

2. 더 행 복 하 기♡♡

3. 더 사 랑 하 기♡♡♡

4. 언 제 나 웃 기~^^♡♡♡

S(*^-^) (^^*)
☆━m━━m━━★
┃항상변함없는┃
♥사랑 ━━♡
감솨드려요~*^-----^*

오늘도 이쁜하루 되시길~^^♡ek♡

 

 
부르니 14.07.01. 09:15
멋진산행 하셨읍니다! 부럽네유 좋은글 감사합니다.
 
도요새의 눈 14.07.01. 16:20
수리산 산행하셨군요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짱~가 14:31 new
죽장에 맨발에 너무 어울립니다~~~ 즐산을 축하드립니다~~~

 

차순돌(이철희) 14.07.02. 09:15
저두 두부집에서 밥먹을때 삿갓쓰신분보았어요.
맨발나그네님두 뵐수있었는데 아까워요
신기하게만 보고있었는데......
같은시간에 걸었다는생각에 기분이 이상하네요
즐거운 산행기 잘보고갑니다~
..꾸벅^^
 
좋은분과 함께하시는 선배님 언제나 즐거운 걸음 되시길 바랍니다^^

 

대박이 14.07.01. 23:46
두분 너무 보기 좋네요..
잘 읽고 갑니다..... 
 
 

  • 문희

    우연은 아닐테고..그렇다고 필연도? 하여튼 두분 명물이시네요. 저도 자유를 얻고 싶네요. 나그네님이 전도하시는 맨발로 걸으면서 얻는 진정한 자유를.. 2014.07.01 07:34

  • 미리내

    참 멋진 기인들이시네요. 덕분에 즐감하고요. 내내 건강하세요. 2014.07.01 16:44

  • 나유미

    신삿갓님 멋쟁이...맨발님의 동행으로 썩 어울립니다. 2014.07.01 16:56

  • 소낭구

    기인은 기인들이시네요. 멋진사진 글 흥미진진..즐기고 갑니다. 2014.07.02 07:58

  • 소영

    저도 진정한 자유를 쟁취하고 싶어요. 맨발도사님..ㅎㅎㅎ 2014.07.02 08:12

  • 오라이

    너무 멋진 산행기 잘보고 가네요. 늘 안산하시길.. 2014.07.02 13:54

  • 동이

    '약보(藥補)보다 식보(食補)가 낫고, 식보보다는 행보(行補)가 낫다는 말씀 명심하고 싶네요. 즐감입니다. 2014.07.03 08:20

  • 아리수

    죽는날까지 걷다가 건강하게 살고픈 마음은 가지고 있지만 그게 그리 쉽지 않네요. ㅎㅎ 2014.07.03 10:23

  • 미수다

    아름다운 산행입니다. 즐감. 2014.07.03 17:52

  • 순희

    멋지네요. 두분 참 잘 어울립니다. 2014.07.04 22:11

  • 범수

    기인은 기인 이네요. 즐감하고 갑니다. 늘 즐산안산하세요~~~ 2014.07.04 22:28

  • 날센돌이

    같이 산행을 하면서 구수한 이야기를 들으면 참 좋겠다.. 2014.07.05 16:59

  • 은순이

    기인들의 일일선 이야기를 즐겁게 보았네요. 감사합니다. 2014.07.06 06:45

  • 이루미

    멋진 산행기입니다. 즐감하네요. 2014.07.09 08:10

  • 쥬라기

    두분 걸으시면 구경꾼도 따라 붙을듯 합니다. ㅎㅎㅎ 2014.07.09 17:47

  • 땡중

    여기에 땡중이 따라 붙으면 세기인이 될것이로다..ㅎㅎㅎ 2014.07.10 08:18

  • 쉰세대

    아주 멋진 동행입니다. 산행기 잘보고 즐겼네요. 2014.07.15 08:24

  • ( 카톡 댓글)

     

    김미경

    따뜻한 우정이 다시 시작...

    더욱 가까이

     

    김원식

    내용이 아주 재미있네요. 계속 발전 기원 함다. 감사함다.

     

    박정희

    산행후기 책 한권 출판하셔도 손색없을듯 하네요

    언제나 건강한 모습 감탄사 절로 납니다

     

    이현숙

    멋쪄요^^

     

    황보

    건강을 위해 벗은 신발 이제는 건강을 위해 신고 다니세요 제발

    여름은 세균번식이 왕성한때 이거든요

    상처나지 않게 조심하세요^^

     

    김병학

    더운데 ~~ 수고 많구나

    언제 함께 산에 가려나???